밀양.진도아리랑은 일본이 스웨덴민요로 바꾼 오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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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1904년 레코드 스웨덴 힛트민요 돗도돋고 박자를 세마치장단이라고 솎여 밀양. 진도아리랑 조선민요로 유도했다
필자가 이곡에 두곡을 마추어 노래하였다 아 젠타 자 곡에 맞는 가사로 중간에 스웨덴 인간문화재들의 가무발표와 악보와
한국가사로 붙여 이해하게한다
영산회상 12곡은 동학군 강증산 12당산굿(농악)의 멜로디
일본 石川 義一 田邊尙雄 이면상 태아실 장애아 바꿔치기 수법으로
1895년 일본은 청일전쟁에 이어 1904년노일전쟁의 승리로 조선국을 합병하여 妖艶하게 아름다운 한국음악을 일본의
음악으로 바꿔치기 하는 작전을 한다
일본의 임진난포로 조선인 신사당을 모두 페지하고 음악을 엄금하여 버렸다
일본제국대출신 조선도공 심수광의 조선신당도 옥산신사에 합병 일본음악으로 기도하게하여 말살하여 한류소리를
청소하였다
그리고 이택수이 등 하바드대 유학생 등에 의하여 일본황제의 노래 민요 군가 아리랑등 조선음악곡을 일본 학교교육 교과서 창가로 편곡 일본인 인간용 음악으로 교육하였다
조선인을 가축같은 계급 식민지 노예용도 음악으로 스웨덴 민요 를 조선민요로 속여 유성기 판으로 대량유포하였다
스웨덴 제국이 러시아에 대패하여 포로들이 사할린 등지에 노예로 살다가 러일전쟁의 일본승리로 스웨덴 교민이 북해도 만주 조선 함경도등지에 러시아 포로로 살게된다
러시아 포로유랑인 스웨덴 대표 민요 ‘아 젠타 자’가 1904년에 구미 레코드 노래로 유행하게된다
1910년 이후에 일본제국의 조선합병으로 러시아인으로 평안도 함경도에 스웨덴 포로출신 러시아인이 평안도 .맹덕에서 서도소리에 섞여 편곡에서 양산도 장단으로 세마치장단이 새로운 유행민요 장단으로 유행한다
함경도 와 평안도 접경지 함주군 초등학교 교사 이면상이 石川 義一 의 하수인으로 조선민요 스웨덴곡으로 바꿔치기로서 아리랑곡을 세마치장단으로 울산아가씨 이름으로 편곡하고 대힛트하자 아예 스웨덴 대표 민요 ‘아 젠타 자’ 전체곡을 前부는 밀양아리랑 後렴은 진도아리랑으로 편곡하여 동북아를 대힛트하여 만주. 조선 대만 일본까지 모두 부르게 된다 레코드 유성기판이 있는 곳에서 같은 시간에 불려지는 그당시 유행가였다
그래서 양산도 도라지타령 작곡가 이름이 없었는데 이면상을 모방하여 노들강변곡을 문호월이 세마치장단을 넣어 작곡하였는데 민요라는 단어도 없는시대였다
산부인과 태아실에서 장애아로 태어난 산모가 다른집 우량 태아와 바꿔치기한 범죄가 자주 뉴스에 보도된다
'우리음악은 요염하고 중국음악은 청아하다(중종실록) 하였다 아리랑은 북한의 예술단 이경숙의 소리가 정답이다
아라랑도둑 일본이 스웨덴 포로의 노래 1904년판 레코드 노래를 조선고유민요로 오리발을 만들어 일본 군가작곡가 이면상이 石川의 명으로 조작된 단군 탕왕 고주몽 혁거세 김알지 석탈해 흑치상지 허기등이 계승발전시킨 염려지곡(艶麗之曲)이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역사에서 나홀로 독립군으로 외치고 있다
맣해버린 백제를 수복한 흑치상지 장군이나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전투로 바로세울 용사를
구한다
일본 중국 인도 등지에도 없는 고유 스웨덴 하지절축가 ‘아 잰타 자’ 즉 절룸발이 박자를 조선민요로 교육제도화하고 새소리 토탬5천년 정읍 황조가 동동로 조선말에 남은 영산회상 12곡 등을 조선군악대에서 악보화한 백우용을 제거하고 田邊尙雄 등이 느린악보로 만들어 명문대 국악으로 인계시켜 오늘에 이른다
조선용 자동차에는 소달구지 속도엔진을 일본인용 자동차는 비행기 엔진으로 속였다
정읍 동동 영산회상 12곡을 빠르게 연주하면 전라도 농악(軍樂)곡과 유사하다
그래서 일제는 영산회상곡 농악의 멜로디을 금지시켰다
일본에 1910년에 동경제대 수석으로 미국유학출신 다나베 히사오(田邊尙雄) 그리고 1920년에 石川 義一 가 평양 기생학교 교수로 정읍 동학군 토벌군 한량출신 김평창을 퇴출시킨다
石川 義一 田邊尙雄 은 보통 빠르기 =120 조선음악을 라르고 =60 속도로 가르치고 그들의 제가가 조선의 정악으로 느리고 낮은소리로 명령 식민지용 교육한다
조선군악대 에케르트와 - 제자 백우용 - 김안라 -홍난파 - 김교성- 김생려- 김대현-뽕짝 -박춘석 작곡풍으로 이어저 이미자 하춘화 남진 나훈아등 대힛트한 곡이 다행히 천년 한류를 이어왔다
포악한 북한독재를 유지하는데 김일성이 5천년 한류음악을 최대한 활용하여 굿게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음악을 남한사람도 싫어하는 명창의 노래로 유지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북한의 정치와 똑같은 남한의 독재는 음악이다
북한은 김일성 신격화, 남한은 세마치장단 우상화로 존엄우상화 바판은 죽음이다
모든행사 국악공연대회에서 모든국악이 라르고 탬포 고함소리로서 관객이 퇴장하는데
빠른 농악의 태평소 영산회상 연주에 몰려든다
일제시대부터 국악 귀족이된 국악거물들은 시조 판소리 가곡을 영의정의 의상 부채 갓을 쓰고 노래를 해도 인기가 없는데 영산곡 태평소 농악이 등장하면 관객이 박수갈채에 국악인구기족들이 스트레스가 쌓여 인간문화재 종목에서 12개 영산회상곡연주 농악의 태평소종목을 삭제하여 버렸다
영산회상 12곡은 구한말 전라도농악의 순서이다
그런데 일제가 영.호남에 태평소 악기를 금지시키고 경상도 밀양농악은 ‘병신굿’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순사가 오면 온통 장애인 춤으로 해야 허가가 된다 증언하였다
그래서 1978년 밀양농악은 태평소도 없고 병신굿이름으로 처음 등록하였다
그리고 전라도 농악 역시 걸궁 (거지굿) 걸궁대 걸립이라는 이름으로 해야 허가가 되었다
영산회상의 1순이 상영산은 왕족축가 중영산은 불교 세영산은 당산신찬가등으로 신의 계급순서로 부르는 찬송가이다
그런데 1895년 정읍의 동학군이 사용한 12영산굿은 항복한 동학군 강증산이 정읍시 칠보면 백암리에 12당산나무를 심어 12영산굿으로 시행하엿는데 상영산은 하늘의 상제(上帝)굿이였는데 이후에 강증산의 제자 차경석이 정읍시 입암산 아래 보천궁을 세우고 12영산굿을 농악으로 찬송하였다
그런데 일본총독이 직접 와서보고 상영산은 천자찬송이니 일본천왕 모독이라하여 상영산(上帝)과 중영산(부처; 僧)을 금지하고 세영산부터 연주하게 하였는데 石川 義一의 하수인 이면상이 ‘양산도’라는 이름으로 스웨덴(러시아포로)사람 민요를 붙여 한국고유농악이 되었다
(그 당시 농악 설장구 신기남은 러시아인이라고 증언했다)
처음시작은 오채질굿 세영산을 아주느리게 5박을 친다음 가락덜이 오봉산타령으로 그리고 최치원의 풍류곡으로 삼현도들이 들캉달캉 속요멜러디 그리고 염불은 탑돌이 중중때때중 음악 멜로디로 이다
日本の作曲家。(石川 義一(いしかわ よしかず、1877-1962)는 오오끼마사오 (大木 正夫おおき まさお、1901年 - 1971年)에게 전수시켰고 함경도 함주초등학교 급사-교사 이면상을 하수인으로 전라도 보성 독일음악유학 채동선 지역으로 전근 민요자료를 입수 일본 경찰 세전의용과 朝鮮曲으로군가 작곡
필자의 서라벌예대학 은사 김대현을 일본에서 石川 의 스승 오오끼마사오 로부터 石川 義一의 행적과 조선음악의 일본화 과정을 알고 귀국하여 石川 義一보다 먼저 조선동요곡를 작곡한 홍난파에 배우고 박춘석에 전통가요 전수
평양기생학교 아악부에서 조선음악을 배워 김대현에게 자전거등 아리랑 2박자 편곡을 전수하였다
notany350@hanmail.net 권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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