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조선포로 빈센트 권
포루투칼에 400년 전통 농악 보존(1)
1592년 임진난에 10만명에 달하는 조선인 포로 노예는 포루투칼 천주교 세력을 축출하는
일본 덕천가강에 의해 처형된다
천주교 장군 소서행장의 목적은 종교전도로서 전라도 전주감영 안덕원 까지 함락하여 당시 전주부윤 권수
태인현 의병장 권극평. 권극정. 병조정랑 길회(吉誨, 1549년 ~ 1593년)등의 자녀를 납치하여 인질로 잡아가 금산군과 고산현 등지에서 천주교종교전도를 시켰다
소서행장은 전쟁보다 조선에 천주교 종교전파에 목적이 커서 아동 포로의 가족에게 진주성 습격의 정보를 권극평 김천일등에게 알려서 전라도 의병이 모두 왜군의 진주성 전투하러 집결하는 정보를 주었다
또 제2차 진주성 전투 일어나기 전에는 미리 조선측에 알려 백성들을 대피시키자고 주장했다.
『我日本往晋州兵馬三十萬, 恐不能當, 修書密報。』 今本府之民, 預避其鋒銳。 彼見城空人盡, 卽撤兵東回
권극평이 농악(군악)의 호각(소라)소리로 진주성안과 밖의 정보를 알리는 신호군악(군악)으로 일본의 공격이 힘들게 하였다
권극평 장군의 묘소 아래에는 순장된 묘라고 전해지는 작은 수십개 묘들이 있어서 그의 아들 권락의 묘를 위자리 땅에 설치하였다
빈센트 권이 13세에 잡혀서 포루투칼 선교사의 세례를 받고 중국에서 45세까지 선교활동을 하는 시기 조선사신 이수광 정두원등이 천주교성경과 화약무기등을 조선에 보내어 포루투칼이 접근하였다
포루투칼제국은 일본의 배신행위에 조선과 명나라에 천주교를 포교하려는 중책에 빈센트권의 친족 권극정의 고향친구 이수광이 중국사신으로 천주교 성경을 가져와 권씨 집성촌 금산군과 고산현 태인의 상두산에서 포교하여 이곳에 조선최초의 성당이 과 순교의 성지가 된다
13세에 잡혀와서 46세의 나이에 일본에 전도하려고 들어가서 잡혀 화형 당하여 죽었다
포루투칼은 조선 노예에서 주로 천주교 여자와 소년으로 신앙행적이 발각되면 일본인 주인이 연좌죄로 묶어 五家作同法으로 주인도 처형되므로 다투어 갚싸게 포루투칼 노예상인에 게 100배 싸게 팔아버렸다
포루투칼 섬 성 빈센트 지역 천주교 성가대로 조선인 양반의 상징 상투에 한복을 입고 5000년 단군찬송
멜로디를 천주교 성가로 사용한다
'빈센트 권'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게 붙잡혔다. 그런데, 그를 일본으로 데려간 사람은 스페인 신부 '세스페데스(Gregorio de Céspedes, 1551-1611)'다. 그는 천주교도였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의 요청으로 임진왜란 때 조선에 들어왔다. 기록상으로 조선을 최초로 방문한 서양인이다.
'세스페데스(Céspedes)' 신부를 따라 일본에 간 '빈센트 권'은 신학교에 입학해 선교사 수업을 받았다. 당시 일본에는 나가사키에서 1593년 3백여 명이, 1594년에는 2천명 이상의 조선인이 세례를 받았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돈을 모아 나가사키에 '성 로렌조'라는 이름의 조선인 성당을 건립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은 조선포로라는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일본을 천하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도 1612년 기리스탄 금지령을 발표한 이후 지속적으로 천주교를 탄압했다.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일본에서 포교에 매진하던 '빈센트 권'은 나가사키 시마바라(島原)에서 체포돼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니시사카(西坂) 언덕에서 46세의 나이로 화형 당했다. 1626년 6월 20일의 일이다(KBS의 역사 스페셜).
포루투칼 빈센트항 출신이 마데이라 섬을 정복하여 한국 농악의 소고에 쇠판을 끼어
꽹가리 대용으로 템버린을 만들어 사용하는 한국인
천주교 찬송에 1592년 임진난 시대 농악을 농부가 멜로디 곡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포르투칼 식민지인 마데이라섬. 기나. 자마이카. 서인도제도 인도 구자라트. 페루. 코롬비아. 멕시코.등에 수만명이 이주했다
포루투갈에 있는 빈센트 항구에서 선원들로 조직한 콜롬부스 함대가 처음 식민지로 마데이라 섬을 탐험하여 빈센트 선원들이 소유한 섬인데 인도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노예로 조선인이 일본에서 살다 옮겨와 집단으로 거주 조선 무속신앙 음악으로 천주교 신앙 찬송을 하였다
권극평장군의 고향마을 전라도 상두산 옹동면 농악 1592년 고유소리가 그당시 한복과 남자상투를 여자까지 상투모자로 만들어써야 예복이 된다
한국민속촌에도 없는 다리에 삼베행전을 그대로 한복을 입고 감투의 상징 머리에 상투를
여자들까지 모자로 만들어 쓰고 조선의 토탬 천신 새소리 멜로디 농부가에 농악으로 찬송하고있다
임진난의 조선의 단군 찬송가는 일본 가고시마 도공촌 묘대천신사에 '오날리소서' 의 심방가 곡조가 일본억압으로 사라젔다 그소리는 이곳 포루투칼의 섬에 사탕수수 농장 조선인노예집단 400년의 밀페생활에서 보존되어 있다
일본의 소서행장은 정한에 반대한 자로 오로지 천주교 전파목적으로 전주성 함락을 기피하고 조선왕조실록 탈취침공과 진주성 침공의 비밀을 권극평 김천일 등 에 아려서 전라도의 병력이 진주성으로 집결 성밖의 왜군 동정을 농악의 호적 나각의 신호로 성내로 전달 방어하였다
전라도 금산군은 고려 충신 길재의 후손 이 당시 병조정랑 길씨와 금산 조씨로 보이는 사람이 무형문화재로 얼굴이 한국인과 같다
포루투칼의 식민지 국가의 음악 만이 한국무속음악을 그대로 사용한다
한국음악을 일본이 일본음악으로 만들고 아악 정악 시조 를 한국음악으로 규정하여 100년을 교육하여 일본과 서구의 민요로 인식하고있다
notany350@hanmail.net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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