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천재 소년 이일문의 6.25 죽음
국민을 내세운 전쟁으로 희생된 판소리 꿈나무
마을 당산밑 이일문의 집 뒤에 지당 연목에서 판소리 연습을 했다
동학군 전봉준과 김개남장군이 살았던 정읍군 산외면 정량리 마을 외가집에서 정읍군 옹동면 노탱이 마을로 도피한 동학군의 아들이 1945해방을 맞아 양반이 되고 벼슬한다는 꿈이 1948년 6학년 졸업생으로 부풀었다
이일문의 아버지는 김개남 장군마을이름 ‘정량골양반’이라는 호칭으로 동학군의 갑옷을 시앙골과 배미골에 뭍었다는 곳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일문은 정냥골양반의 외아들로 양반의 목소리 판소리를 배우게하여 동학군 김구선생이
집권하면 양반스타로 연극과 판소리의 꿈을 이루려고했다
마침 호남창극단을 옹동면장 권오남이 이마을에서 유료공연을 하여 명창 이기권 신영채를 보고 또 판소리를 장기간 배웠다
조선 500년간 없어진 금지노래가 이시대 판소리로 탄생했다
칠보면 석탄마을 사는 신영채는 엿장사를 하다가 협율사 에서 아악소리를 배워서 일본유학생 호남학생단장 김낙기의 주선으로
일본판소리 순회공연 스타로서 대성공을 하였다
이시기에 무용에서는 최승희가 무당춤에 서양 발레춤을 접목시켜 동아시아를 울리였다
엿장수가 외치는 노래를 궁중소리 아악(정악)소리로 노래한 첫구성소리를 천재 소년 이일문이 배웠다
해방후 호남최고의 판소리 명창 이기권 신영채는 전주대사습 창설자 송광섭 송영주 김판철 김원술도 이시기에 판소리를 배웠다
옹동면 마을의 세도가 권치도는 서울 전주등 전국을 자주 다니며 ‘양반잡놈’이라는 유명한
활동인으로 자기 외아들 권태일과 조카 권태진을 가르치기 위해서 자기집에 판소리 교습소를 만들어 이일문과 단골 유달선도 함께 배웠다
그런데 이일문은 가르치는데로 암기하여 현재 유태평양 실력을 능가했다
1949년에는 신파연극 '안중근'의 극본도 짓고 마을에서 추석에 판소리 공연도하였다
유달선은 이마을의 단골 무당으로 종래의 천한무당소리 노래를 버리고 서울궁중 아악소리
즉 임금의 목소리로 최신가요로 판소리를 배웠다
조선유교시대는 소리도 계급인데 도레미솔라(궁상각치우)에서 무당은 ‘라(우)’음으로 고음성 노래를 하였는데 임금계급소리 ‘도(궁)’음계로 저음소리로 호통치는 소리로 배우게 된다
조선시대 무당이나 평민이 ‘도’음계로 저음소리로 노래하면 반역죄 처형이 된다
동학군 패망으로 흩어진 자와 무당 재인등이 양반의 복장에 양반의 소리가 기본으로 양반으로 살아보고 싶은 희망으로 판소리가 요즘 사교육열풍으로 유행했다
1948년에 판소리를 배워 출세하려던 소년 이일문이 6.25 전쟁으로 소년단에서 이용되어 빨치산으로 따라 간다
철모르는 중학생 나이로 판소리를 배우면 양반출세 한다는 꿈이 이제는 산으로 가야 판소리로 출세한다는 말에 따라 갔다
1950, 1951남부군이 국군의 토벌작전으로 판소리는 부르지도 못하고 야간 전투와 밤에 봉화불 지르기, 양식구해 나르기를 하였다
이일문과 판소리를 같이 배운 권태일이 판소리를 잘하여 판소리를 옹동면 지서 b순경은 그 부인이 관심 있었다
그래서 6.25에 보안서에 부역하여 이유로 권태일을 학살하였다
가룻재 고개 넘어 초등학교 길 그때는 갈대밭 집도없었다
그래서 권태일과 판소리를 배운자는 모두 산으로 도망하여 이일문도 산으로 갔다
정읍의 산내 산외 순창의 쌍치 복흥 구림면등은 그당시 북한 정부 땅으로 존재했다
그러다가 마을리장등 반동분자를 지명 처단하라는 상부명령이 나려온다
밤에 산을 넘어 나려와서 반동분자를 잡아오고 죽이는 명령은 어길수 없고 어긴다면
자기가 죽는다
그것도 자기마을 사람은 자기마을 사람이 처형하기로 된다
또 여자는 여자가 처단하는데 처녀가 그런 악행을 맡아아 자기 목숨이 살았다 한다
비나리는 이른 봄날 밤에 옹동면 이웃마을이장을 체포하고 처단하라는 명령에
나이든 어른은 경험이 많아서 모두가 회피한다
그래서 나이 어리고 철모른 이일문은 어른들이 시키는데로 죄를 지어야 했다
모든 책임은 어른들이 지는줄 알았다
컴퓨터 께임 같은 작난으로 알고 철모르기에 캄보디아 크메르 폴포트 학살에서도 어린 중학생이 학살을 담당했다
그러나 빨치산은 거의 괴멸되는 시기에 국군 경찰에 포위되고 모두 자수하여 나왔다
그런데 판소리를 배워 양반이 되려던 소년 이일문은 자기의 죄가 너무 무서워 펑펑 울고 고향으로 나오질 못했다
산내면 매죽리 진상골에서 빨치산 연대장(돌진부대장)을 하였던 이마을 모씨도 자수하여 옹동지서장의 환영을 받았다
명령자와 시킨자로 기능도 없는자는 살고있어도 철모르는 천재 이일문은 그기능 마저 숭레문처럼 사라저 버렸다
철모르는 어린학생에게 나쁜일을 조종하는 일은 그 학생의 일평생 죄를 안고 산다
순박한 인심의 시대 그랬다
이 시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판소리로 소원의 양반 출세의 기능이 충분한 판소리 천재소년 이일문이 떠 오른다
판소리 발상지 동학군 지역에서 단골 재인 유달선과 정통적인 소리를 천재적인 재질로 칭송을 받은 그 소리가 전쟁과 어른들로부터 이용당해 죄가 무서워 자수도 못하고 사라진 인간문화유산이였다
히틀러나 크메르 폴포트는 국민을 위한다고 외치며 죽음의 지옥을 만들었다
학생과 국민을 진정 사랑하는 교육자 정치가가 누구인가
여기 마을당산나무를 신봉하는 아래 옛 무당집에서 품팔이 아들로 살았다
권희덕 notany3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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