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점의 고려 용장사 기왓장 무늬가 다르다
충열왕의 실세 송인의 마을 용장사에 서역의 수막새 기와
이자겸의 땅에 송나라의 망명족이 세운 종교의 유적 용장사
신숙주의 증손 태인현감 신잠이 매화도를 여기서 그렸다
한국에서 볼수없는 서역의 기와 무늬이다
쌍화점에 몽고인 회회아비 아랍인이 등장한다
몽고는 동로마 서역까지 영토를 넖힌 세계최대의 통일국가이다
쌍화점 노래 즉 고려충열왕 24년에 고려궁중에서 유행된 삼장과 사룡이란 시를 개성에 올라간
고려궁중권력 핵심세력 송씨의 근거지로서 중국도 아닌 서역의 공예 건축의 무늬로서 몽고인이 이곳에서
몽고 부마국 고려시대에 살고 있었던 곳으로 여겨진다
개성 서울 부여 공주 경주에도 없는 볼수 없는 치미 기와도 몽고인 서역인이 이곳에서 몽고와 화친하기전에
살앗거나 원나라 화친의 시기 특히 고려 원종임금과 충열왕시대에 화려하게 가무를 즐기며 살았다는 근거가 된다
특히 최충헌 무신정권을 무너뜨린 송씨 임씨 홍씨의 집성 촌으로 송씨의 몰락 이후에는 공미왕의 모친이 이곳 홍씨로서
공민왕 3년에 이곳 태산현과 인접 임실까지 군으로 승격하고 관찰사 전주를 부곡으로 강등시켜버렸다
이성계와 이곳 송씨 송인의 아들 송안이 합류하여 지리산 아지발도 왜구를 격파하여 세력이커지고 최영장군을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웠으나 왕자 이방원의 구테타로 이지역 송씨 허씨 홍씨가 몰락하고 태산군까지 없애고 인의현과 통합하여 태인 현으로
강등되고 도강김씨에게 호족을 주었다
1970년에 고려명종시대 시인 김극기의 즐겨 찾고 조선 인조시대는 불경까지 출판한 사찰이다
여기 정유재란시에 페사지가 된 용장사(정읍 산내면) 입구에는 작은 폭포가 있었다
여기에서 조선 중종시대 조선의 공자라는 시산정 이정숙과 친한 신잠이 말년에 태인현감으로 이곳을
매화도 그림으로 그렸다
중종의 유자광 뿌리 자르기 순서로 이정숙을 역모죄로 꾸며 또 다시 숙청열풍으로 죽어가는데 신잠은
신숙주 가문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나서 그림을 그리고 이곳의 쌍화점 지역의 땅이 신숙주 동생 신말주의 땅으로
지금까지 내려온다
페사지에 해인사 사진을 붙여이고 아래에 신잠의 매화도를 붙여서 조선명종시대 경치를 복원한 그림
이 시대에 고려가요 삼장이 쌍화점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이곳 강건너 에서는 매년 가을에 들국화 구철초 축제가열리고 봄철에는 쌍치면 삼장사 계룡산 국사봉 철죽제가열리고있으나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르고 축제전문공연업체의 위탁축제로 예술의 역사는 매장되어 있다
일본식민지 문화과목 없는 교육으로 무문화 인력정치 세력하에서 모르는 문화는 누구도 챙기지않는다
조선 명종시대 태인현감 신잠의 매화도그림이 여기용장사의 폭포를 그린그림이다
억불사상으로 절은 자르고 폭포를 건느는 섶다리와 매화꽃 그림만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곳은 마을 이름이 산내면 매죽리 절안동네 마을 앞 계곡이다
권희덕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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