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동시/ 최향 엮음·박요한 그림/ 글동산
‘황금 주머니 속에/빠알간 구슬이 부서졌구나’. 이는 율곡 이이(1536~84)가 3살때 석류를 보고 읊었다는 즉흥시. 그런가 하면 ‘다리는/만리를 걷는다//만리를 가도록/시키는 것은 마음이란다’라는 시는 일본에 성리학을 최초로 전한 학자이자 ‘간양록’의 저자인 강항(1567~1618)이 5살때 지었다.
‘우리 옛 동시’(글동산)는 김시습이 3살때 쓴 시를 비롯해 이황·이이·허난설헌·이매창·윤선도·정약용·신채호 등 조선시대 27명의 천재 소년·소녀들이 썼던 42편의 시를 모았다. 최향 엮음·박요한 그림. 각 편마다 원문과 감상을 위한 도움말, 그리고 해당 시인에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들을 실었다.
‘유모 등에 업혀/보리방아 찧는 걸 보았어요//천둥소리도 없는데/어디서 흔들흔들’(김시습), 또는 ‘돌을 등에 지고/모래 파는 게는/스스로 집이 된다//(중략) 강과 호수의 물이/얼마나 될까/묻지 않는다’(이황) 등 수록작들은 근대 이후의 어린이들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표현과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어린이’에 대한 관념이 싹튼 것은 근대 이후라는 학계의 시각을 반영하자면 조선시대 아이들은 ‘나이 어린 어른’들이었다. 따라서 당시 천재 소년·소녀들이 쓴 시의 장르는 동시가 아니라 ‘한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나이 어린 도학자’들의 한시 모음인 것이다.
‘등잔불이/방 안에 들어오면//밤은/밖으로 나가는구나’(박엽), ‘산은/흰구름 속에/푸르디푸르고//구름은/푸른 산 속에/하얗게 희구나’(이매창) 등 절창들이 수두룩하다. 앵무새처럼 외국어를 잘 한다든가 계산기처럼 산수를 잘하는 요즘 천재와는 다르게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자기의 언어로 제대로 표현해내는 게 조선시대의 천재들이었다.
/김중식기자 uy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