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한옥마을은 1930년을 전후로 뜻있는 선비들과 주민들이 서쪽의 일본인 거주지의 반대편, 조상의 얼이 스민 오목대와 이목대, 한벽당이 굽어보고 있는 동쪽 지역에 집단으로 한옥을 건립하고 마을을 건설했다고 알려져 있다.
근대 도시형 한옥들로 형성된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년 전후까지만 해도 부촌이었다고 한다.
문화연필, 백양메리야쓰 같은 유명 기업이 한옥마을에 자리하기도 했으며 문화연필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생긴 연필 공장으로 1946년에 대전 동아연필이 생겼고, 1949년에 문화연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또한, 1950년대 이후 내의류업체 BYC의 옛상표인 백양메리야스를 제조하던 생산시설도 1980년까지는 이곳 한옥마을에 위치했었다고 한다.
점차 시대가 변할수록 제조업이 도심 외곽으로 이전해 나가고, 또한 주거 환경이 변화되고 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한옥마을이 퇴락하기 시작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퇴락은 빠르게 진행됐지만 1977년 한옥보존정책이 시행되면서 그나마 기존의 한옥들은 보존이 될 수 있었지만 마을은 급격하게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지속되기 시작했다.
이후 주민 반발이 높아져 1987년 2층까지 건축이 가능하도록 건축 규제가 완화됐으며, 1997년에는 한옥보존지구가 해제되기도 했다.
이 당시 전주 한옥마을에는 2층으로 된 양옥들도 몇 채가 들어섰지만, IMF와 건설 경기 불황으로 많이 훼손되지 않고 현재와 같은 경관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빈촌으로 자리해 가던 한옥마을은 2000년대에 들어와 극적으로 변모됐다.
전주시가 2002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세계인들의 축제를 앞두고 전통문화도시 전주의 면모를 대내·외에 알리고자 계획에 따라 전주 한옥마을이 전통문화 특구로 지정됐다.
그리고 지속적인 재정 투입을 통해 한옥을 정비하고, 관광객들을 위한 문화시설들을 구축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2010년에 전주는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도시형 국제슬로시티로 선정됐고, 2016년 재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2016년 론리플래닛이 선정한 ‘1년 안에 가봐야 할 아시아 10대 명소’에 3위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전주 한옥마을은 국제적인 문화관광의 명소로 자리 잡아 한 해 동안 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전주 한옥마을을 다녀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국제적인 문화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그 중에서 전주 한옥마을의 관광 명소라 하면 경기전을 비롯해 풍남문, 오목대, 전동성당, 전주향교, 한벽당 등지를 꼽을 수 있겠다.
전주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모신 곳으로 조선시대 중기 전통적인 건축 기법 양식이 잘 준수된 안정된 구조가 돋보인다.
특히 경기전은 조형 비례뿐만이 아니라 건축적인 품위를 보여주는 건물로서 주변 공원과 박물관 등의 건축과 함께 문화시설로 현재까지 개방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이채로운 풍경이 단연 눈에 띄는 곳은 바로 전동성당이다.
전동성당은 조선시대 말기에 박해만 받았던 천주교 신자들의 사형 장소에 지어진 성당이기도 하다.
1914년에 완성된 전동성당은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해 지어진 건물로 초기 성당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미를 가진 건물로 손꼽힌다.
전주향교의 경우 유학 교육과 인재, 양성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교육기관으로 고려시대에 세워졌으며, 당시 초기에는 경기전 근처에 위치했으나, 향교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황화대로 옮겼다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은 뒤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됐다고 한다.
갑오개혁 이후로 교육 기능은 없어져 실제 교육이 이뤄지는 모습은 볼 수는 없지만 우리의 옛 교육시설을 둘러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설이기도 하다.
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