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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에는 초목만 무성하네

도심안 2019. 6. 8. 06:32

산성에는 초목만 무성하네

입력 2005.11.20. 11:04 수정 2005.11.20. 11:04

         

[오마이뉴스 서종규 기자] 전자우편이 한 통 왔습니다. 전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한국 고미술을 연구하는 이선옥 박사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냥 느낀 대로 쓴 기사 <아니, 산 정상 부근에 갈대가 있다니>와 <입암산성에서 보석을 찾았습니다>라는 기사를 잘 읽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필요하면 참고하라 하시며 첨부한 그림이 바로 18C에 그려진 <입암산성도>였습니다.

<입암산성도>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175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채색화입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박정혜, 이예성, 양보경 박사가 발간한 <조선왕실의 행사그림과 옛지도(2005. 10. 30. 민속원)>에 수록된 <입암산성도>를 촬영하여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이예성 박사는 위 책에서 "<입암산성도>는 요새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산성을 그린 것으로 군사적 목적과 축성, 수축 등 산성에 변화가 있을 때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입암산을 따라 성이 구축되어 있으며 성 안에는 큰 못이 여러 개 연결되어 그려졌고 관청과 많은 민화가 표현되어 있어 산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이 소장하고 있는 58.2×78.8cm 크기의 <입암산성도>는 175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채색화입니다.
ⓒ2005 장서각
▲ 매표소 입구에 세워진 입암산성의 조감도입니다.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지만 산성은 출입이 통제된 능선을 따라 있습니다.
ⓒ2005 서종규

<입암산성도>를 들고 내장산국립공원 남창지구 입암산성에 올랐습니다. 요 한달 새 벌써 세번째입니다. 산불방지를 위한 입산금지 기간이라 장성군청과 국립공원 관리소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남창계곡을 혼자 전세 낸 기분으로 오후 3시에 입암산성 남문에 도착했습니다.

▲ <입암산성도>에 그려진 남문과 남장대의 모습입니다.
ⓒ2005 장서각
▲ 입암산성의 남문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있습니다.
ⓒ2005 서종규
▲ 그림 속 남장대는 간 곳이 없고 수풀 우거진 터에 산불감시 초소만이 녹슨 채 서 있었습니다.
ⓒ2005 서종규

성곽 둘레 약 5.2km 중에서 정비가 된 곳은 남문밖에 없었습니다. 전체 성곽 중 계곡에 위치한 남문은 성 내부의 물이 흘러나가고 있었는데 <입암산성도>에는 남문루가 그려져 있었으나 흔적도 없고 다만 문설주를 세웠을 도리석 3개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성곽 오른쪽으로 약 500m 정도 대체로 양호하게 정비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입암산 등산로는 남문을 통해 계곡을 따라 북측 암문지로 나 있습니다. 그런데 취재는 성곽을 따라가야 했기 때문에 남문 왼쪽으로 약간의 흔적만 남은 가파른 길을 올라야 했습니다. 남문을 지나 왼쪽으로 올라가자 여기저기 많은 돌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성곽이 이미 허물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림과 같이 '남장대'터에서 '서장대'터로 이어지는 아주 가파른 능선을 따라 성곽이 쌓여 있었습니다. '남장대'가 있었을 자리에는 넓은 터에 여기저기 돌들이 흩어져 있었고 초목만 무성하였습니다. 산불 감시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감시망에 오르는 사다리는 이미 벌겋게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그나마 '서장대'는 어디인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성곽은 대부분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온전하게 남아 있는 곳은 많아야 4~5m 정도이고 허물어진 돌들이 능선 아래로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성곽은 끊어지지 않고 그대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담양에 있는 '금성산성'처럼 정비를 한다면 중요한 문화재로 가치를 발휘할 것 같았습니다.

▲ <입암산성도>에 그려진 입암 망대(갓바위 망대) 모습입니다.
ⓒ2005 장서각
▲ 현재 입암(갓바위)에서 망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2005 서종규

'갓바위 망대'에 올랐습니다. 입암(笠巖)이란 말은 삿갓처럼 생긴 바위란 뜻입니다. 입암에 오르면 담양, 장성과 고창, 정읍이 다 내려다보입니다. 천혜의 망대입니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고려시대에 몽고군과의 전투, 조선 시대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겪은 성입니다.

그림에는 '진남루' 등의 표현으로 보아 동헌과 객사가 있으며 절이 두 곳, 암자가 세 곳, 각종 창고, 그리고 연못이 여섯 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갓바위에서 바라본 성 안은 초목들만 무성하였습니다. 연못들은 습지로 변하였는지 수생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특히 갈대나 버드나무가 무성하였습니다.

▲ <입암산성도>에 나타난 성 안에는 동헌과 객사, 사찰, 민가, 창고, 그리고 여섯개의 연못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2005 장서각
▲ 성 안은 수풀만 무성하고 그 흔적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05 서종규

오후 5시, 북문에 도착했습니다. 북문에도 문루는 없고 돌들만 남아 있었습니다. 북문에서 북장대로 추정되는 가장 높은 봉우리에 이르는 길도 능선이 쭉 이어져 있었습니다. 북장대에서 성 안의 모습이 잘 보였는데 역시 성 안은 수풀만 가득하였습니다. 떨어진 낙엽들로 인하여 더욱 황량하게 보였습니다. 동쪽 하늘엔 둥근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북장대의 터에서 동장대의 터를 지나 다시 남문 계곡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그 길은 험한 바위로 되어 있어서 끊어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조그만 흔적으로 남아 있는 길은 능선을 따라 남창계곡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내려오다 보니 떠오르던 달은 다시 보이지 않고 캄캄한 길에 전등을 켜들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 북문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많은 돌들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2005 서종규

오후 7시에 남창매표소에 도착했습니다. 18세기에 그려진 지도 한 장 들고 떠났던 산성 답사는 답답함만 가득했습니다. 모두 무너져 내린 산성의 돌들을 밟고 걸었던 발길에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피곤함으로 변하였습니다.

'입암산성'은 전남 장성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종합 정비 기본 계획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지고 2010년까지 단계별 보수정비가 이루어 질 것으로 보입니다. 유적지 원형 유지가 최우선으로 목표이어야 합니다. 무분별한 건물의 신축은 억제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습지의 생태 환경도 잘 조사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보존 관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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