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광재 딸과 함께 건축여행
2010. 10. 29.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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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
1941년 종로 사동궁 생.
고종의 2남 의친왕의 11번째 아들.
의친왕은 이미 62세.
경동중·고등학교 거쳐 외국어대 서반어학과 입학.
외교관이 꿈.
부친은 말이 없고.
한국동란.
5.16 쿠데타.
그나마 이승만이 주던 왕가의 생활보조금도 끊기고.
알바.
우연히 종로2가의 한 음악감상실에 들렸다가 마침 열린 노래자랑에서 덜컥 1등.
그때 부른 노래가 ‘베사메무쵸’.
이제 음악다방 DJ.
그때 받은 생애 첫 월급이 4500원.
미8군 무대 신인가수 무대에 섰다.
배고프면 장사가 없는 거죠.
탈락.
가수 최희준이 월급 3만원 요구하다 잘리고.
대타로 다시 선다.
그 후 워커힐 쇼에서 영어로 사회를 보고 노래도 하고.
1966년 비둘기부대의 일원으로 베트남전 참전.
종군 도중 차량전복사고로 크게 부상하고 귀국.
1967년 <비둘기 집> 대박.
결혼 이혼 반복.
10.26 사태로 미국으로 도망.
미국에서 작은 슈퍼 운영.
1989년 귀국.
자살 기도 실패.
머리 깎고 통도사에서 3년간 목탁 치고.
서울에서 찜질방 생활.
머야 이거.
서울시에서 남산 한옥마을 한 칸 제공한단다.
됐걸랑.
2004년 전주시는 경기전 뒤 한옥마을 내에 ‘승광재’란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빛을 계승한다’는 승광재는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연호인 ‘광무(光武)’를 잇겠다는 거죠.
전주대학교 객원교수로 역사 강의.
2006년부터는 황손후원회의 뒤를 잇는 황실문화재단의 총재.
이제 이석도 70.
선생님 힘 내십시오.
제 책 대박나면 모시겠습니다.
그래도 힘든 분 손들어 봐유.
의친왕 이강은 고종의 5남.
모친은 덕수장씨.
평생을 기타등등으로 사시다 1955년 서울 성북동 성락원에서 79세로 별세.
의친왕은 생전에 12남9녀를 남겼고, 이 가운데 생존 아들로는 10남 이석씨와 이갑·이환·이정씨가 있다.
이 중 이석씨만 한국에 거주하고 나머지 세 아들은 미국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이 좋겠나.
의친왕의 큰아들 이건은 1947년 일본인 모모야마 겐이치로 귀화해 한국과 인연을 끊었다.
1991년 숨진 그는 자녀를 3명 남겼으나 소식이 끊긴 상태다.
이제 이석선생도 아들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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