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스크랩] 쌍화점이 `쌍구정`(雙龜亭)으로 남은 최치원의 쌍분기

도심안 2019. 1. 28. 00:38

 쌍화점이 '쌍구정'(雙龜亭)으로 남은 최치원의 쌍분기

   쌍화정은 경주 쌍거북 순창  쌍구정 최치원 쌍분기 가무예술서 비롯 

쌍화점노래 유행하자  원나라 사신이  매질하며 금지

 

권희덕 notany350@hanmail.net

 

쌍구정에서 노래하는  쌍화점 쌍거북 용왕종교를 원나라 사신이 막았다

 경주에 있는 최치원의 종교 쌍구비석

 

삼장사 쌍화점이 '쌍구정'(雙龜亭)으로 남은 최치원의  쌍분기 사랑 이야기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처녀귀신의 소원을 시를 써서  풀어주는 모양은  신라 가무굿 무당이였던 화랑도 행동과 같다

삼국사기나 조선시대 선비들이 유교인물로  바꾸어 쓴 거짓 역사이기에 그렇게 믿었으나

중국의 가오춘 최치원 박물관의 유물에서  남여 교재의 시 그것도 죽은 두명의 처녀귀신과의 교재와 사랑의 이야기가

태산태수 최치원 시대 행적으로 고려시대 삼장사 가 지금에도 쌍구정 이름으로 선비 애국자의 시가 가무 유상곡수의 터로 남아있다

 그리고 삼장사 마을 앞에 '쌍구정'(雙龜亭) 이라는 '두 마리 거북의 신'을 신봉하는 용왕과 같은 비와 물. 풍년을 비는 유상곡수(流觴曲水 ) 가무놀이가  고려궁중에서도 대유행 하였다

유상곡수는 경주에있는  포석정에서 흐르는 물에 용왕님 기도문을  시로 읊거나 써서 물에 띠우는 가무잔치를 하였다

무당의 푸닥거리 신앙을 글과 한문시로 유식하게 향상된 용왕에 비는 신앙이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행적이 '쌍분기(雙墳記)' 처녀귀신과 글자로 대화하고 쌍화점  영화처럼 귀신과 사랑한 사실이 포석정에서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의 습격에 포석정 우물에서 빌고있었다

이런 유적이 정읍과 서울인 경주 뿐이다

 

 

 최치원이 당나라 지역 중국  가오춘 박물관의 유적으로 남아있는 두처녀 귀신묘 '쌍분기(雙墳記)' 처녀귀신과 글자로 대화하는 내용은 지금도  무속인들이 신과 대화하는 신들린 무당굿과 유사하다

이런 무당을 '호랑이 점쟁이' 라고 전라도에서 부른다

'호랑이점쟁이'는 신라 '화랑도 무당'을 말하는 데 당나라 말기 황소의 난에  참전한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유달리 유명한 이유는 음악과 시로서 귀신과 대화하여 실제로 처녀귀신이 밤에 방으로 찾아와서 사랑한 무당굿이 지금은 중국경극으로  보관되어 있다  

백제가 망하고 흑치상지 장군이 음악이 탁월하여 당나라 측천무후 세력으로 승진되고 귀족 무덤에 들어갔다

경상도에서는 남자무당을 화랭이라고 부르고 '한량' '화냥년'모두 무당을 가르키는 말이다

전라도에서는 이런 신들린 점쟁이를 '호랭이점쟁이'라고 부르니 모두 노래굿하는 화랑도 였다

그당시의 신라사람 화랑도 처럼 최치원도  당나라에서 한류예술공연자로 대단한 신화를 이루어 지금까지 전승되고 거대한 박물관이 관광객을 놀라게 한다

최치원 역시  출장 중에 여관 앞에서 처녀귀신무덤  비석에 시를 써서 귀신과  대화하여 신라고유의 화랑도 가무굿 이였다

쌍분기 두명의 처녀귀신은  최치원이 귀국한  근무지 태산태수 지역과 경주에서 만이  쌍구정, 쌍거북비석, 으로  용왕신을  종교로

 신앙하고 있었다 

 경주시 쌍거북비석 기록은,  [삼국유사] 원성왕(재위기감 : 785~798)조에 숭복사에 최치원이 지은비가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비가 이 귀부에 세워졋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비편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처럼 비석 받침을 쌍거북으로 조각한 예로는 경주 내남면 배리의 창림사터 쌍거북 받침, 그리고 경주 암곡동의 무장사터 쌍거북 받침 등이 있다. 이러한 쌍거북 받침은 대체로 9~10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최치원 박물관

이것은 태산태수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활약하고  가져온 용왕 종교‘삼장사 ' 라는 지명. 유적역시 이곳 태산군과 

산청군 경주 등 최치원이 생활한 곳에 만 있다

 1299 충열왕25년에 쌍화점노래가  대유행하여 궁중에까지 기록되었다

원나라에서 온 사신 활리길사가 이런 고려 풍속을 막기위해 전국을돌다가 1299년 5월 경주 혜숙사에서 탑 아래 묻어둔 쌍거북을

꺼내 찬송하는 중이 있어 경주부시장(동경부사) 나윤을 매질하고 옥에  가두었다

하나의 중이 행동인데 부시장을 파면 매질하고 옥에  가두는 정도로  발악하는 몽고의 한민족 가무예술을 두려워했다

다음달 6월에  대장군송영방.송영이 원나라에 황제 궁중에 가니, 원 황제가 고려노래를 하여보라 하니 충열왕이   “쌍연가(雙鳶가)로 노래해보라” 고 했다

충열왕이 잘부르는 삼장사 쌍화점노래와 유사한 쌍연가를 굳이  충열왕이 지명하여 황제에게 한 이유는 쌍화점과 쌍연가는 같거나 가사가 유사한 노래로 보인다

그랬더니 ‘어이 어이 어이’하는 소를 모는 소리로 들렸는지 쟁기질소리를 한다고 웃었다고 한다

 

쌍분기. 쌍화점. 쌍구탑. 쌍연가. 쌍화정. 쌍계사. 등등 최치원과 연고가 있는이름은 '쌍' 글자가 들어간다

이 처럼 남녀가 사랑하는 시와 노래를  조선시대  유교숭상으로 금지시켜버렸다

그래서 쌍화점 곡소리와 유사한 백제가요 정읍사를  음란가요로  없애버렸다

이곳 순창군 삼장사 쌍구정은 물과 산이 있는 정자로서 시와 노래가 이어진 역사가 있다

그시의 내용은 애국시조였으나  가사를 기억하지 못해서 아쉽다

그런데 해방후에 정읍산내 능교초등 학생들이  '마을이름'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6.25 전쟁 시에 불타 없어진 자리에 쌍구정을 그려넣은 사진

  쌍구정 옛날모습 용왕으로 쌍거북에 시를지어 비는 유상곡수의 터

 

새터가서 새잡아서

구봉리가서 구워서 

소금실에 가서 소금찍어서

 먹산이가서 먹었다

(먹산마을은 삼장사 앞마을 쌍구정에서 시를 쓰는 '먹'을 만드는마을 그리고 종이 생산지로 인조때 법화경 책을 출판하였다)

 

동학군이 패하여 전봉준이  체포된 피노리 아래마을 인데 삼장사 입구 계룡산 바위벽에 녹두장군이 승천한 발자욱이 남았다는

 이야기를 1980년 스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일제시대 칠보산 아래 사는 조하식 노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여기 쌍구정에서 왕래하고 애국 시조를 읊고있었는데 쌍치등면 일본 헌병대들이  잡으러외도 했다고 했다 

1907 임병찬 최익현의 의병활동을 하였던 지역으로 김병로(전대법원장)가 최익현 의병으로 여기서 은신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람이 모이고 연락하는 군사적 요새지여서 6. 25 전쟁 중에   거점을 없애버 소각시켜 버리고 수풀과 냇물만 흐르고있다

 

권희덕 notany350@hanmail.net

 

출처 : 한민족소리 찾기. 아리랑은 애국가
글쓴이 : notan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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