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스크랩] 이항(李恒)선생이 지은 태산가 原典 | 태인향토사 태산군 2018.02.15 14:17

도심안 2018. 8. 23. 23:32

일재 이항선생이 지은 태산가(泰山歌)


1759년 후손들이 펴낸 일재선생집 속록에 

일재선생이 남고서원에  태산가를 지어 교육하면서 부르게 하였다하고 기록되었다.



정읍시 북면 보림리 관동마을에 있는 남고서원에 옛 지명은 태인현 남촌면 남촌이변면이었다.

일재 이항(1499~1576) 선생이 살았던 시대는  태인현 시대이지만 그 이전에 지명은 태산군 지역에 속하였다 



지금까지 태산은 중국에 산둥성에 있는 태산을 말하여 산에 올라 정상에 도달하듯오르는, 학문도 노력하여 경지에 오르기를 바라는 시라 소개돠었는데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태산가 중에 태산(泰山)에 다른 의미는?

(1) 일재 선생이 살던 곳이 泰山郡이었다.

일재 이항이 학문을 닦던 남고서원이 있던 곳은 옛 태산군 지역이었으며 태산군 관청은 남고서원과 가까운 칠보면에 있었다.

1409년에 태산군이 인의현과 합해서 태인현에 되었고  1415년에 이전에 결정되어 1416년에 거산역으로 옮겨졌으며, 칠보면에서 태인면으로 이전한 것이다.


(2) 일재선생에 남고서원 가까운 곳에 태산서원(泰山書院)이 있었다. 

태산군 관청은 태인현으로 이전한 후 그 자리에 시간이 지나서 태산서원이 되었고, 1696년에 무성서원으로 개칭되었다. 

일재선생은 고려시대  태산군 지역에 학당을 건립하였고 가까운 곳에 태산서원이 있었기에 태산은 태산군에 있던 태산서원을 염두했을 가능성도 있을듯 하다. 태산서원과 남고서원에 거리는 당시는 산길을 이용하던 시기임으로 태산서원에서 산을 넘으면 원백암리(백암)리가 나오고 여기서 산 길로 간다면 멀지 않는 거리이다. 현제는 정읍에서 칠보로 가다보면 연지마을로 우회전한 후 가정마을을 지나면 관동마을이 나온다.                 

    

先生嘗作歌 講業之假 使諸生歌 以爲勤勉 與起之資 歌曰

 

수운태산고(誰云泰山高자시천하산(自是天下山 

등등부등등(登登復登登자가도상두(自可到上頭 

인기불자등(人旣不自登매언태산고(每言泰山高




수운태산고(誰云泰山高자시천하산(自是天下山) -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등등부등등(登登復登登자가도상두(自可到上頭) -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인기불자등(人旣不自登매언태산고(每言泰山高) - 사람이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   항 : 1499(연산군 5)∼1576(선조 9). 

양사언 : 1517(중종12년)~1584년(선조17년)

일재집 : 1673년

병와가곡집 : 1713

청구영언 : 1728년

일재집속록 : 1759년(泰山歌를 자세히 기록함)

가곡원류 : 1876년


봉래 양사언에 泰山歌

泰山雖高是亦山(태산수고시역산) 태산이 비록 높다하니 이 또한 산이니   

登登不已有何難(등등불이유하난오르고 올라 그치지 아니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으리오  

世人不肯勞身力(세인불긍노신력사람이 몸으로 노력하지 아니하고  

只道山高不可攀(지도산고불가반다만 산이 높아 오를 수 없다고 말하네






















































 



先生嘗作歌 講業之假 使諸生歌 以爲勤勉 與起之資 歌曰

 


수운태산고(誰云泰山高자시천하산(自是天下山

 

등등부등등(登登復登登자가도상두(自可到上頭)

 

인기불자등(人旣不自登매언태산고(每言泰山高

출처 : 지리산문학관.지리산문학문화재현창회
글쓴이 : 지리산문학관.한국문학문화재현창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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