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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 진정한 설교란 무엇인가 고민해야"연합뉴스

도심안 2011. 1. 30. 00:24

"목사들, 진정한 설교란 무엇인가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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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1.26 09:34

정용섭 목사 ’설교란 무엇인가’ 출간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말처럼 한국 교회 강단에 설교가 넘쳐 나지만 살아 있는 말씀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청중들이 환호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살아있는 설교는 아닙니다.”

2006년부터 설교비평서 3권을 차례로 출간해 한국 개신교계에서 반향을 일으킨 정용섭(58) 목사가 설교 비평의 완결판 격인 책 ’설교란 무엇인가’(홍성사 펴냄)를 내놓았다.

그는 이번 책에서 한국 교회의 스타 목사 약 40명의 설교를 실명을 밝히며 해부했던 전작들과 달리 책 제목대로 ’설교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천착했다.

정 목사는 25일 전화통화에서 “설교자와 청중을 동시에 겨냥하고 쓴 책”이라며 “설교라는 행위가 도대체 무엇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나름대로의 대답을 찾는 내 개인의 신학적 반성이라고 봐도 좋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설교자가 성서 텍스트를 인용하고 찾아서 신자들로 하여금 성경 말씀대로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설교라고 여겨지지만 그런 방법은 부분적으로는 옳을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잘못됐다”며 “이는 성서 텍스트를 도구화할 위험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성서 텍스트를 적절하게 요리해서 신자들의 삶에 적용시키려 하지 말고, 성서 텍스트가 지닌 하나님의 존재론적 구원의 세계 안으로 설교자가 들어가야합니다. 소크라테스의 산파법을 생각하면 됩니다. 산파가 아기를 낳는 것을 돕듯이 신자들이 성서 텍스트의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설교자의 역할입니다.”

이는 한국 교회에서 상당수 목사가 강단에 올라 “청중을 값싸게 위로하거나 강압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기복적인 신앙으로 이끄는” 설교를 하고, 이 설교가 인기를 끄는 흐름과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물론 저 같은 주장은 지성인에게 먹히는 설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위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라도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식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진리를 향한 내면의 세계, 영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는 설교의 이런 기능에 대해 “2천년 기독교의 역사 안에 인간의 참된 삶에 대한 이해가 다 담겨 있다”며 “생명의 신비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켜켜이 간직하고 있는 성서 텍스트와의 진정한 만남이 없는 설교자의 설교가 청중들의 영혼에 공명을 일으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에서 성서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인문학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기독교가 2천년 간 자폐증 환자처럼 자기 세계에 숨어들지 않고 이 세계와 보편적 언어로 대화해왔으며, 이를 이해하는 도구가 곧 인문학이라는 설명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논의되는 구원, 마르크스가 제기하는 노동과 인간소외,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거론되는 존재와 시간의 연관성에 대한 깊은 이해로 구원의 지평을 심화할 수 있다. 동서양의 고전 문학이나 예술을 접하는 일도 중요하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청중이 믿으면 충분하지 철학적 사유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질문하겠지만 그런 식이라면 사이비와 이단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독교는 종교적 열광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141쪽)

아울러 그는 성서를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는 문자주의나 근본주의에 대한 경계도 빼놓지 않았다.

“2017년이면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 지 500년이 됩니다. 500년 역사의 이 개신교 가운데 한국에 들어온 교파는 미국의 근본주의적 교파입니다. 이 교파들이 지닌 제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 선악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이 신자유주의와 결합해 오늘날 대형 교회에서는 물질만능주의와 기복주의가 판을 치지만 그것이 과연 신앙의 본질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