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받으세요
한 사람이 같은 신문 100부를 보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그랬다. 나는 성령 체험을 하고 나서 국민일보 100부를 구독했다. 내가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 매일 아침 국민일보 100부를 들고 울산 고속버스 터미널로 달려갔다.“사장님,이 신문 보세요. 복음 실은 국민일보입니다. 이 신문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신문 보면서 좋은 정보도 얻고 하나님의 복음도 들으세요. 그리고 교회에 나가세요. 교회에 나가면 사장님의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들고 가정과 직장일도 순조롭게 풀리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건강하세요. 그리고 부자 되세요….”
도대체 무슨 용기며 배짱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신통했다. 설사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나신다 해도,또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시킨들 이렇게 했을까? 겨울에는 동상이 걸려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그래도 좋았다. 힘든 줄도 몰랐다.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보람도 느꼈다. 아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얼마 전 경기도 이천의 알로에마임 연수원에서 열린 국민일보 비전클럽 세미나 때 간증을 하라기에 이 부분을 강조했더니 참석자들이 모두 좋아하셨다. 몇 차례나 박수를 받았다. 나는 오래 전부터 국민일보에 강한 애정을 갖고 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국민일보 구독을 권유하고 어떤 경우엔 내가 대신 구독료를 내주면서 구독을 시키니 “당신 의사요,국민일보 직원이요?”라는 농담도 많이 들었다. 요즘도 예전 울산에서 했던 식으로 국민일보로 전도활동을 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몇 개월째 새벽에 국민일보를 돌리다가 결국 아내에게 발각됐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당신 제 정신이에요? 명색이 성형외과 의사가 손가락에 동상이 걸리고 손등이 터져서 피를 흘리고 다니다니 정말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저도 더 이상 못 참아요!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제발 이러지 말아요.”
아내는 애원반 협박반으로 나를 설득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때까지 아내는 신앙을 갖지 않았고 내가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 믿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우리 가정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사탄의 사주가 아내를 통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아내의 눈에는 의사 남편이 새벽에 터미널에서 신문 돌리는 모습이 천박하게만 보여졌고 남편의 가슴속에 기쁨이 넘쳐흐른다는 사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뒤 나는 생활습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아니 정일봉이라는 인간 자체가 완전히 변화됐다. 무엇보다도 가슴속에서 샘물처럼 솟아나는 평안과 기쁨으로 매사가 마냥 즐거웠다. 세상 사람 모두에게 잘 대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예수 믿으세요?” “혹시 교회에 나가세요?”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다. 종일 예수님 얘기만 하고 지내고 싶기도 했다.
당시 교육부장관이 대학생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받은 사건을 접하고 기성세대의 죄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령님께서는 바로 고아들을 도와주라는 감동을 주셨다. 그 길로 보육원을 찾아가 봉사를 시작했다. 틈만 나면 울산 인근의 보육원을 찾아가 고아들의 병을 치료해주고 성경을 가르치며 기도해주었다.
주께 받은 은혜 갚으려 날마다 고민 |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환자만 받는 일상적인 업무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을 뭐든지 찾아서 해야만 했다. 머릿속에선 항상 ‘내게 엄청난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나는 일단 내 직업을 활용하기로 했다. 기독인 의사와 간호사들을 수소문해서 모아 울산의료선교회를 설립,회장을 맡았다. 매주 인근 농어촌을 돌면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기독인 남녀 만남의 행사를 주최했다. 젊은 기독교인들이 만나 서로 정보를 나누면서 신실하고 건강한 믿음 생활의 방법을 모색하도록 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믿음 안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이 여럿 나왔다. 뿐만 아니라 울산시복음성가대회 주최,청소년기독센터 발족 등 선교와 봉사활동을 벌여나갔다.매일 새벽기도를 마치면 빗자루를 들고 교회 인근 골목을 청소했다.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면 뭐든지 하고 싶었다. 예배 중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파리가 귀찮게 해도 쫓지 않았다. 파리가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냥 참았다.그런데 1991년 여름 내 인생에서 실로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우리 가족에게는 죽음과도 같은,꿈에서도 일어날 것 같은 어려운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차후에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하에 일어난 일인 줄 알았지만 당시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내 인생에서 벌어졌다.“여보,우리 서울로 이사 갑시다. 내 성형술로 서울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소. 김삼환 목사님이 담임하는 명성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소.”저녁 식사를 마치고 평소 내 마음속에 담아놓았던 말을 정중하게 아내에게 토로했다. 역시 아내의 반응은 내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았다.“당신,그게 말이라고 해요? 울산에서 자리를 잡았는데 교회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 게 말이나 돼요? 온전한 정신의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절대로 안돼요!”그런데 아내의 고성이 나온 직후 나는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졌다. 머릿속이 텅 비어진 것 같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기운을 차려 일어나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내의 부축을 받아 침대로 올라가 그대로 잠들었다.“여보,검사를 받아봅시다. 평소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그런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아내는 날이 밝자마자 어쩔 줄 몰라했다. “괜찮아요. 빈혈이 좀 생긴 모양인데 좀 지나면 괜찮을 거요.”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나는 내 몸에 조금도 이상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그러나 아내는 계속 졸라댔다.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검사나 한번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함께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도 내 증세를 듣고는 검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며 정밀검사를 하자고 했다. 상당히 오랜 시간에 걸쳐 검사가 이뤄졌다.며칠 뒤 진찰실에서 담당 의사와 다시 대면했다. 그는 검사 결과를 설명하기 전에 상당히 뜸을 들였다. 심상치가 않았다. ‘나도 의사인데… 뭔가 문제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애써 태연한 체하며 묵묵히 담당 의사의 말을 기다렸다. 마침내 그의 입에서 결과가 나왔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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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뇌종양 이라니…’ 처연한 기도 |
뇌종양! 믿을 수가 없었다. 검사가 잘못됐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내의 입에선 순간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담당 의사의 표정도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나는 꿈을 꾸는 듯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뇌 중앙에 혹이 있는데 종양으로 보입니다. 본인도 모르게 뇌출혈이 있었다가 그게 굳어진 것일 수도 있고요…” 꿈 속에서 그 의사가 내게 뭔가를 설명해주는 듯했다.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몇차례 더 듣고 병원 문을 나섰다. 대낮인데도 온 세상이 깜깜했다. 다리에 천근의 쇳덩이를 단 것처럼 발걸음 옮기기가 힘들었다. 텅 비어졌던 머릿속에서 생각의 끈들이 한 가닥씩 자리를 잡았다. 그 끈들이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 도저히 풀 수 없는 실타래로 변하는 듯했다.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시야에도 물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건물,자동차,나무…. 그런 것들 가운데서 힘차게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유달리 눈에 들었다. ‘저 사람들은 나처럼 아프지 않을 텐데…’ ‘저 사람들은 나처럼 죽을 병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저 사람들은 희망을 갖고 있을 텐데…’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다.그러다 문득 집에 있는 두 딸이 머리에 떠올랐다. 최소한 애들이 대학까지 마칠 만큼의 재산이 있어야 하는데 별로 벌어놓은 게 없었다. 거기다 애들에게 아빠가 없으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옆에 서 있는 아내의 얼굴을 힐끔 훔쳐봤다. 내가 눈물을 삼키고 있듯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북받치는 설움을 억누르고 있듯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평소답지 않게 아내는 죽을 병에 걸린 남편에게 작은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극도로 조심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의 눈에선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일단 정리를 하자. 그리고 대범하자. 이럴 때일수록 강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혼자서 이빨을 깨물며 거듭 다짐을 했다. 혼자 가지 않으려는 아내를 간신히 설득해 먼저 집에 들어가도록 했다. 그리곤 일단 내 병원으로 갔다. 그리곤 간호사들을 불렀다.“내가 사정이 있어서 병원을 좀 쉬려고 하니 여러분도 준비를 하세요. 그리고 오늘은 이만 병원 문을 닫을 테니 모두 퇴근하세요.”의아해하는 간호사들의 눈빛을 뒤로 하고 원장실로 들어갔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궜다. 어느 누구와도 만나기도,대화하기도 싫었지만 딱 한분만은 만나고 싶었다. 아니,만나야만 했다. 자리에 앉아 두 손을 모아 책상에 올리고 머리를 손 위에 올렸다. 그리곤 눈을 감았다.“하나님,이제야 당신의 자식으로 거듭나 지금부터는 오직 당신만을 가슴에 모시고 살아가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물론 제가 지은 죄가 막중하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저에게도 기회를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오늘의 일이 한바탕 에피소드로 끝나게 해주세요. 당신의 신실한 종으로서 살겠습니다. 하나님,정 그것도 안되면 식물인간이 돼도 좋으니 당분간 두 딸의 커가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세요.…” |
하나님 안믿던 아내 “남편 살려주세요” |
간절한 기도,정말로 간절한 기도였다. 내 목숨이 걸린 기도였는데 얼마나 간절했겠는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그날 나는 내 병원 원장실에서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기도를 마치고 나니 온 얼굴이 눈물로 세수를 한 듯했다. 족히 1시간은 하나님께 매달렸던 것 같았다. 거울을 보니 내가 봐도 흉할 정도로 얼굴이 엉망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날 저녁 모임이 생각났다. 내가 회장으로 있는 의료선교회 정기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고 넥타이를 가다듬고 모임에 참석,아무 일도 없는 듯 회의를 마친 뒤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하늘도 내 마음을 아는 듯 갑자기 비를 퍼부었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빗줄기가 이내 장대비로 변했다. 집까지 가는 짧은 시간에도 무수한 생각이 머릿속을 교차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아내와 딸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 안된다’고 다짐을 거듭 했다.아파트 정문을 막 들어서려는데 입구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아내였다. 얼른 차를 세우고 달려갔다. 얼마나 오래 비를 맞았는지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처음엔 빗물인 줄 알았으나 곧바로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울었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아내의 몸이 많이 떨렸다. 안되겠다 싶어서 아내를 차에 태웠다. 손수건을 꺼내 아내의 얼굴을 닦아줬다. “여보,지금 당신의 기도가 필요해요. 내가 처한 상황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려면 당신이 기도해야 해요. 여보,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기도합시다. 그러면 최소한 내게 위로가 돼요.”나도 모르게 한 말이다. 아내에게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것과 진배 없었다. 내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아내에게 기도해 달라고 한 것은 평상시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아내는 아무 말도 없었다.집으로 들어가 씻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다시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사랑하는 두 딸이 거실에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불현듯 ‘아마 마지막 가는 길에 정을 떼려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놀라울 정도가 아니라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졌다. 내 아내가,세상에 내 아내가 하나님을 부르며 통성기도를 하는 것이 아닌가.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내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는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기도의 ‘기’자는커녕 하나님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던 아내가 “하나님,제 남편을 살려주세요. 제 남편이 너무 불쌍합니다. 남편을 살려주세요”라며 기도를 했다.순간적으로 내 머릿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건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깨우치게 하시기 위해 만드신 일이다. 내게는 별 해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도 얼른 일어나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하나님,전능하신 하나님,일을 이렇게도 만드시군요. 만약 제게 문제가 없으면,만약 제가 죽지 않는다면 생애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찬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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