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고구려 유럽연합군) 아바르. 페르시아. 게르만. 불가르. 슬라브

도심안 2010. 11. 27. 17:07

 

 

왼쪽은 그리스 전사. 오른족은 표범무늬 전투복을 입은 걸로 보아 고구려 아바르 전사일거라고 본다.

(이런 류의 유적유물들이 대부분 근세기에 대량으로 제조된 가짜자료들로 밝혀진 바 있으나 놔 두겠음.)

   

 Viking Ship Raiding 9th Century France. 바이킹 배.(8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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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페르시아)의 왕과 궁중여인들. 모두 몽골에 가까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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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산간지역에 살고 있던 고구려계 여인들. (코카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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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용맹한 고구려의 후예들.(북방대륙 고려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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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발스와 아바르는 서양에 알려진 고려국명입니다.(옮김)

 

 

 In 567 vernietigden de Longobarden samen met de Avaren het rijk der Gepiden, 상투머리의 아발스 전사들.

아발스는 아바르 아바론 아바렌 오브리라고 불리웠는데 '(올)바른 사람들'이라는 뜻이리라 추정된다.

 

 

아발스인 유골을 복원한 훌륭한 인간의 모습.

 

고대 서양인들은 고구려를 아바르(아발스.Avars)라고 칭했다.

아바르는 유럽최초의 강력한 통일제국을 형성했고 유라시아의 근원이 되었다. 

아바르의 역사는 고구려(몽골)과 백제(페르시아)의 결합된 국가였었던 걸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타남.

이들은 패망 이후 동유럽과 러시아 산간지역 등지로 밀려나며 지금의 '코카서스'인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다.

아바르오브리라고도 불리웠는데 이는 '아바이''아빠'와 '오빠'와 동일한 이름이다.

 

Avars Slave folkmusic. 아발스국의 왕은 비잔틴국에 음악연주가들을 사신으로 보낸 일이 있다.

 

 

Avar open-work bronze attqachments. Belt tips, buckles, bridle pieces, and mountings, including two pieces depicting horses.

Ex German collection. 5th-6th Century AD. 아바르군 허리띠 고리 모음. (게르만 고려선).

 

 

아바르(고구려)와 페르시아(백제)와 게르만(독일)과 부여(불가리아)와 슬라브(러시아)의 동맹연합군을 발견했다. 

 

그 출처인 국방과학기술연구정보센터는 국가공인논문기관인 걸로 알고 있는데. 다 읽어보질 못해 무슨 의도로 쓴 글인 지는 모르겠지만 내용 안에 단 한 마디도 아바르가 고구려였다는 사실을 적시하질 않았을 걸로 추정된다.


왜 그랬을까? 아바르가 고구려인 줄을 진짜 몰라서였을까? 

어쩌면 고구려의 서역 분국이었던 아발스왕국의 유럽에서의 마지막 전쟁으로 인해 고구려 본토에서의 패망(668년)에까지 이르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아바르는 그후 신성로마제국(독일)과의 전쟁을 마지막으로 멸망에 이른다.(795년)

 

유럽에서의 고구려가 본토의 고구려보다 133년은 더 버틴 셈이다. 이런 중요한 역사기록이 완전히 묻혀버린 것이다.

 

그 직후 바이킹이 유럽대륙에 또다시 상륙하는데. 바이킹도 다름 아닌 고구려의 후예들이다. 발해 백제임. 또 고구려와 페르시아인 것이다. 바이킹은 곧 부여킨이다. 노르망디에서는 바이유(Bayeux. 백옥. 바이크)라고 하는데 바이킹이 부여의 후예들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말인거다.

 

이전에도 고구려 연합군이 비잔틴을 공략할 때 비잔틴 연합군(돌궐터키. 흉노신라)이 후방에서 고구려를 공격했던 적이 있었는데 마지막 전쟁도 그 때문일 거로 보인다. 그것이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세계 대결구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옮김) 돌궐은 삼국이 새로 개척한 서방(유럽)에서 격돌한 것이다. 고구려의 무쿠리족인 아발스가 비잔티움 제국(그리이스)을 공략하고 있을 때 배후에서 돌궐의 공격을 받아 동쪽으로 무크리와 타브가쯔에게 도망갔다는 것은 신라가 고구려를 쫓아와서 뒤에서 공격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551년의 일이다.(중략)

 (돌궐 =  터어키) (타브가츠 = 아브카즈 = 카브카즈 = 코카서스)

 

당태종 묘역앞에 진덕여왕(신라)과 돌궐칸의 묘가 나란히 있다고 합니다. (이상 송동건님의 '고구려사복원'에서 발췌)

 

http://jsrpower.org/bbs/board.php?bo_table=tbl_07&wr_id=554  (참고출처 : '궐한의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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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efence.co.kr/bbs/bbs.cgi?db=history2&mode=read&num=12215
(발췌원문출처 : 국방과학기술연구정보센터. 제목 : 비잔틴의 마지막 페르시아 전쟁)

 

(전략) 한편 비잔틴의 반격이 시작되자 아바르와 페르시아는 동맹을 맺고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알아차린 헤라클레이오스는 배를 타고 수도로 돌아와 증가한 위협에서 도시를 방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중략)

 

626년 페르시아는 새로운 작전을 구상했다. 각각 오만명씩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군단을 편성하여 각각 호스로, 샤힌, 샤르바라즈가 맡고 호스로는 폰토스에 있는 헤라클레이오스의 정예군을 견제하고 샤힌은 헤라클레이오스와 테오도로스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며 샤르바라즈는 아바르와 힘을 합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드디어 그해 6월 29일 슬라브, 게르만, 불가르 속민군대들이 포함되어 있는 십만명의 아바르군이 수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비잔틴의 공물제의까지 거절한 그들은 성벽가까지 진을 치고 공성을 시작했다. 폰토스로 돌아온 헤라클레이오스는 만이천명의 병력을 콘스탄티노스의 지휘하에 수도방어를 위해 보낸뒤 많은 어려움을 격고 있었다. 한편 아바르의 하간과 샤르바라즈는 신중한 상의끝에 8월 1일 총공격을 시작하였다. 아바르군이 육지의 성벽을 공격하는 동안 페르시아군은 땜목과 슬라브인들이 준비한 소형선박을 타고 해협을 건너려고 하였다.(후략)

 

 

 

출처 : 군대 무기 게시판
글쓴이 : irjdjrjd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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