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있는 한단고기 때문에 결국 준회원으로 등록해서 글을 작성할 수 밖에 없군요.
뭐 많은 사람들이 재야 사학자들을 무시하지만 제가 볼 때에는 오히려 강단 사학자들의 노력 덕분인지 몰라도 전부 다 식민사관에 길들여져 사물을 보게 되는 것 같아서 이렇게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상고사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그대로 옮겨 적기 때문에 당연히 퍼 가시는 것은 금지입니다.)
한단고기에 관계된 댓글에서 보면 삼국, 즉 신라, 백제, 고구려가 한반도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거기에 더해 한단고기 같은 것을 읽으면 우리 한민족이 대단한 민족이라고 착각들 하기 쉽다고 언급하시던데 과연 그럴까요?
(솔직히 울 민족이 대단한 민족이고 차이나 대륙을 주름 잡던 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한단고기 같이 정확히 기술되지 않는 책들을 인용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냥 지나애들이 작성한 사서만 정확히 찾아보면 전부 다 확인이 가능합니다.)
거기에 더해 규원사화라던지 한단고기 같은 것을 안 믿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대략 알 수 있는 중국 사서라던지 삼국사기, 그리고 삼국유사 같은 경우 최치원님이 언급하신 내용등을 가지고 작성된 상고사의 재발견이라는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글을 다 읽고 판단하시고 의문나는 것이나 틀린 부분은 지적 바랍니다. 단 답글은 제가 못 달아드리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사학을 잘 아시는 회원님들이 많기 때문에 더 정확한 근거를 위해서는 한자도 같이 올려 드려야 하지만 워낙 제가 한자 실력이 짧기 때문에 일일이 한자로 변환시키면서 글을 쓰다간 하루가 넘게 걸릴 것 같아서 그냥 한글로 올려 드립니다.)
1. 신라인들은 지나족의 후예?
상고사의 재발견의 책에서 제 4장. 삼국의 건립부분을 옮겨 드리겠습니다.
여기 삼국사기 "의자왕"편 본문에서 다시 보기로 한다. 신라인자이소호금천씨지후, 즉 신라인은 스스로가 소호금천씨 후손이라고 믿고 있다.
이게 뭐가 문제가 되냐고 하면, 바로 소호금천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소호금천이 누굴까요? 우선, 소호금천을 설명하기 전에 울 한민족의 조상이라고 일컫어지는 치우는 다 아실거라 봅니다. 그 치우와 치열하게 싸운 황제도 아실거라 봅니다. 그리고 그 황제는 식민지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중국의 황제입니다.
그런데 소호금천은 그 치우와 싸운 황제의 아들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삼국사기만을 놓고 본다면 신라인들은 지나족의 후예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삼국사기를 보면 더 재미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상고사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만 간단히 옮겨 드립니다.)
김부식이 쓴 신라본기에 보면 제 1편 시조성박씨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서라벌을 국로 정했다고 했다.한편 박혁거세는 조선유민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박혁거세는 알에서 깨어 났다고 앞 문장에서 기록해 놓고서는 뒷문장에서는 박혁거세는 조선에서 온 유민이다라고 기록했다는 것 이죠. 그렇다면 박혁거세도 소호금천의 후손일까요?
아니면, 이 책의 저자가 밝히는 대로 황제도 신라 사람일까요?
아마도 기존 식민지사관을 그대로 수용한 사람들은, 신라인이 지나족의 후예라는 것도 혹은 그 반대로 반고한인부터 이어져 온 황제가 울 조선 사람이라는 주장 그 어느 것도 믿지 못할 것 입니다.
원래 제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 즉, 삼국이 한반도에 없었다는 증거들.
1)똑같은 책 본문에서
고려초기 태조 3년에 한반도에 한문으로된 지명을 옮기는 것이 처음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밝히고 있다. ...중략... 그리고 지명의 마무리 작업은 고려 27대 충숙왕때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즉 한반도에 땅이름이 완결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60년전이었다. 그 이전은 한국땅 이름이 한자표기가 아닌 순 우리말 표기법이었다. 몇가지를 예를 들어 보기로 한다. "모래내", "밤골", "감골" (예가 많지만 이 정도로 줄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즉, 현재의 경주가 경주라는 명칭을 가진 것도, 현재 평양이 현 평양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도 아무리 길게 봐야 660년 정도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삼국사기를 비롯해 수많은 사서에 등장하는 조선 혹은 동이족과 관계된 그 수많은 한자식 지명은 한반도에 없었다는 뜻이기도 도 합니다.
2)똑같은 책 본문에서
다음은 세종실록 지리지 본문 98페이지 경주편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고져 한다.
본시 경주는 경주부를 두고 별호를 낙랑(樂浪)이라했다. 이곳은 순화(淳化)에 정해져 있는 곳이다. 현은 네개가 있었는데 그 중 안강현이 본시 신라의 비화현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배우고 있는 교과서나 역사책에는 경주를 낙랑이라 하지 않는다. 또 그런 말도 없다.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경주를 분명히 별칭으로 낙랑이라고 되어 있다. 그 곳은 순화라고 되어 있다. 중략. 그런데 한국에 있는 낙랑도 별칭이 아니요 순화라는 땅이름도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한국에 있는 경주는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똑같은 책 본문에서
사기(史記)제왕(帝王)권 1편 오제기에는 백재의 강역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동남아 15개국 큰 섬은 모두 백제 강역이며 서안 즉 서경에서 13,000리까지 약 78개 나라가 백제의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설마 사기를 모르시는 분은 없겠죠?)
한반도가 삼천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죠. 그런데 백제의 영토가 13000리라면 한반도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 백제사 전공했다는 분의 말 처럼 백제가 한반도에 자리 잡고 중국 땅에 식민지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 사기에 따르면 그분의 주장은 틀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똑같은 책 본문에서
삼국사기를 보면 백제 온조왕 8년 2월, 말갈(靺鞨)병은 3,000명이나 위례성을 포위하고 침범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백제가 한국땅 경기도나 전라도에 위례성이 있다면 북쪽 만주지방과 신강성 산서성 섬서성 지방에 있던 말갈이 어떻게 위례성을 포위하기 위해 한국땅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북쪽은 강한 고구려가 도사리고 있는데 고구려땅을 지나서는 올수 없었을 것이다.
온조왕 38년 10월에는 왕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천지에 제사를 올릴 큰 제단을 쌓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당시 백제 남쪽에는 옥저(沃沮)가 있었다는 기록이 43년 겨울 10월에 있다. (자, 지금 현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비롯해 현재 대학에서 국사를 가르치기 위해 제작된 모든 책들을 보십시요. 그리고 옥저와 백제의 위치를 확인해 보십시요. 그리고 위에 나오는 백제 남쪽에는 옥저가 있었다는 기록과 비교해 보십시요. 참으로 황당하지 않습니까? 과연 누가 틀린 것일까요?)
삼국이 한반도에 없었다는 것은 수많은 사서들이 증명하고 있지만 일일이 그 책에 나온대로 언급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는 원래 저의 글 주제대로 쇼킹한 한국 상고사를 옮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역사를 기껏해야 만주 정도만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나족의 역사는 없습니다. 현 중국 땅과 만주에서 벌어졌던 과거의 모든 일들은 우리 한족 혹은 동이족끼리의 전투와 발달사에 불과합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주장하면 미친x이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상고사의 재발견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필자가 1991년 7월 북경사범대학 초청으로 중국가서 북경대학 교수이신 엄문명선생과 대담했을 때 엄문명 고고학 주임교수는 10여년동안 고고학 발굴을 중국전국에 해 봤지만 모두가 동이문화(東夷文化)라는 것을 시인하였다. 자유문학에 대담내용과 중소기업 경제신문에 필자의 기행문이 발표된 일이 있다.
----엄문명 교수가 언급한 내용----
앞에서도 한(漢)나라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진(秦)즉 진한은 육국을 통일했는가 하면 한(漢) 즉 마한과 마한의 후예인 고구려는 서한, 전한, 동한, 북한, 남한, 계한, 촉한, 성한 등에서 보여준 한(漢)의 강역은 천산으로 기준하여 일본 현 지나대륙 모두이다. 바로 위의 땅들은 마한의 강역이자 고구려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중국고대 민족관계사연구란 책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져 한다. 이 책은 중국에 있는 역사학자 24명의 논문집이다. 특히 고대 상고사와 민족관계를 다룬 책으로서 우리들의 시선을 끄는 책이다. 지나에서는 저명한 역사 학자들의 논문집으로서 매우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럼 이 책에 있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기로 한다.
소수민족처럼 중화민족은 바깥에서 왔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부에서는 서요라 한다. 즉 중국은 한(汗)이다. 한(汗)이란 것은 고대 한국의 대명사이자 총칭이다. 설명할 것도 없이 승인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중원에서 있었던 모든 왕조는 하나의 한(汗) 즉 한국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부분은 24명의 역사학자의 학술토론을 종합적으로 토론하여 결론을 얻은 대목만을 간략하게 엮어 보았다. 해동역사에서 많은 사서를 인용해 결론을 내린 것과 딱 맞아 떨어진다. 특히 종합토론을 학술적으로 결론 지은 사학자는 이진괴가 두소순씨이다.
1985년 '중국사탐연' 이라는 고대사편을 저술한 제사화는 왕정안선생의 말을 인용하여 중국고대사는 일대 문제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다시말해, 한인, 한웅, 복희, 신농, 황제, 요순, 하, 은, 주, 진, 진, 한, 삼국시대 위, 진, 촉, 오, 남북조시대 송, 제, 양, 진, 수, 당, 오대 남북송, 걸안, 요, 금, 몽고, 원, 명, 청 등 모두의 나라는 한민족의 뿌리의 나라이다. 현재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도 이들 나라는 모두 고조선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국(朝鮮國)의 명사라는 사실을 똑똑히 숨김없이 기록하고 있다.
현재 지나대륙에 있는 학자들은 다 알고 있는 듯하다. <중략>.
요즘 들어 상고사를 쓴 이당의 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중국민족사들 쓴 임혜상과 중국사전사화를 집필한 서량지, 위진남북조사를 쓴 왕중락과 고사변등은 비교적 상고사를 보다 정확하게 실토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품들이다.
계속해서 우리가 중국 사서라고 알고 있는 책들을 통해서 쇼킹한 한국 상고사부분을 계속 언급하겠습니다.
1)왜국은 백제의 속국
사기 오제기 부분에 숙신과 백제의 강역을 기록한 부분......... (사기를 작성한 사마천이 다른 사서를 통해서 언급한 부분입니다. 착각들 없으시길)
괄지지에 의하면 백제국은 서남쪽에 있다. 바다 가운데 큰섬 15개개군데는 모두 사람이살고 있어 읍 즉 고을을 두었다. 이 섬들은 모두 백제에 속한다. 그리고 왜국도 서남 큰 바다 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러기에 백제의 속국이다. 즉 제후국이었다. 백제는 적은 나라가 백여군데가 있었다. 안황보밀의 말에 의하면 당무후때 백제는 왜국을 일본국이라 고쳤다. 사해 사방에 있는 바다안에 있는 섬 즉 일본이다.
(끝에 있는 부분이 아주 쇼킹한 부분입니다. 백제가 왜국보고 나라 이름을 일본국이라고 고치게 한 것을 보면 정말 어안이 벙벙할 지경입니다. 왜국 스스로가 아닌 '백제가 시켜서 나라이름을 바꾼 왜'라........)
2)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은 후한(後漢)의 후손?
똑같은 책 본문에서...........
장삼식이 지은 대한한사전(大漢漢辭典) 690페이지 후한의 계보에 대하여 적어보기로 한다.(장삼식은 중국 사람입니다.)
....<중략> 장제(章帝)의 세째 아들 천승왕신에게서 낳은 낙안왕총이 있었다. 낙안왕총에서 낳은 아들이 바로 발해왕이다. 발해왕의 이름은 유홍이며 홍이 대조영 발해왕이 된다. 발해왕에게는 장제가 증조할아버지이다. 발해왕은 후한의 왕을 하지 않고 발해를 창건하였다.
3)조선왕만이 한(漢)나라의 천자가 되었다?
전한서(煎漢書) 지리지 본문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한(韓), 조(趙), 위(魏) 세집은 소멸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스스로 일어선 제후집안이다. 그래서 한 조 위를 삼진이라 한다. 말하자면 진(晉)나라와 같은 조상이다. 그리고 한, 위, 진 모두 같은 희씨성이다. 중략. 한(韓)나라가 소멸되자 진(陳)나라가 회양땅에 섰다. 진나라도 본시 태호복희씨가 뿌리었지만 망한뒤 주무왕이 봉해진 뒤 생기게 되었다. 본시 요왕검의 아버지 제곡고신씨의 외척이 규씨었지만 순임금 이후에 규만이란 사람이 진(陳)나라의 선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조선왕만(朝鮮王滿)도 진나라의 후예인듯 하다. 어쨋든 조선왕만은 연나라 사람이다. 우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조선왕만과 그의 손자인 우거도 한(漢)나라의 천자가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조선왕만과 연,그리고 두 진(晉, 陳)과 우리 동이족과의 직계관계를 소상히 언급하려면 정말로 오래 걸리게 되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합니다.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한치윤의 해동역사를 비롯해서 쇼킹한 한국 상고사 부분에 대해서 더 언급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틀린부분과 잘못된 부분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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