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은 망국 가야부족의 해상군함 거북교회당
거북 비석 제사그릇등 가야 유물, 태종때에 거북선 훈련실록기록
이순신을 정여립 세력지 태인현감 까지 겸임시킨 유성룡의 전술탐구 의도.. .
거북선은 태인허씨 가야족 해상왕국 수천년 해신 거북신앙 에서 선박왕국
가야인은 거북을 토탬신을 신앙하는 김수로왕 부족국가이다
거북은 이미 요순 다음 임금 우임금의 아버지 능(能) 즉 세발자라 비내리는 천신으로
태초의 신앙으로 은나라에서 종교로 사용하엿고 은나라 기자가 망명하여 기자조선을
익산 금마에 세웠다
그러나 마한국 세력이 들어서고 신라와 함께 가야국도 떨어저 나온 것으로 생각 된다
가야국은 여러 부족으로 그중에서 철기무예가 강력한 부족이 청도 이서고국(伊西古國 )에서 살면서 서라벌을 습격한 허루(許婁)의 부족이 있엇다
그래서 위급한 신라가 고구려에 부탁하여 가야를 멸망시켜 버리니 신라와 원수지간인 경북청도 이서고국(伊西古國 ) 허루(許婁)의 부족 허세신족이 백제로 망명하여 원래 마한시대 연고가 있는 태산(정읍) 허왕보굴에 정착하고 고구려 계 백제 왕조에 대산성 반란으로 저항하다가 밀려났으나
무령왕 친 가야 세력으로 다시 정착하다가 백제가 망하여 서해 도서와 중국 해변으로 해적생활로 떠돌이 해상군 부족으로 살았다
이들은 구지산 거북을 모시는 신앙체가 없어 젔다
그래서 거북의 모양으로 배를 만들어 거북 교회당으로 기도하며 파도위 바다에서 24시간
공포를 견뎌냈다
백제마저 망하여 국토없는 가야인 태인허씨 유랑해상군 거북 교회당
이들 가야인 들은 거북의 종교 찬송가 소리를 거북의 뼈 갑골에 줄을 메어 가야금을 만들어 거북 소리를 내어 수신 해신의 소리로 기도했다
그래서 냇물 건너는 돌다리 즉 ‘징검다리 돌’을 노디 라고 부른다
당나라 안록산난에 태인허씨 '허이기'가 이때에 참전하여 승리로 노힉한 도공들이 부안 에서 만든 당나라식 대형 가야국토기 비교사진
이들이 후에 태산 허씨로서 그들 정읍 정착지 땅 이름이 능다리 능교 너디 능향으로 불리며
그 ‘노디’가 현재 너디 마을로 옛날 누평현(淚坪縣) 돌평현(堗坪縣)으로 노디들 노들강변이리는 뜻인데 모두 세발자라 노(能)로서 일본에서는 노(能) 라고 발음하고 일본탈춤을 노가꾸(能樂)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백제 가야족에서 건너간 일본은 거북신을 상징하는 거북탈을 쓰고 종교신으로 나타나서 복을 주는 것이 탈춤이다
그런 우리종교탈춤을 강도 양반의 가면으로 한국은 가르치고 있다
태인허씨 시조 허왕보굴에는 일본 서기 478년 기록문 신화 천석굴 신화와 같은 구조로 된 필자가 그린 설명도
그래서 백제는 비들기, 고구려는 꾀꼬리, 신라는 닭 말 까치, 가야국은 거북이 종교신이엿기에 그 종교신앙으로 남은 농악에서 반드시 하늘신 당산굿 다음에 징검다리 거북 돌에가서 굿을 치고 복을 빌고 마을굿을 한다
우리가 잘아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도 이곳 태인허씨 본향은 사슴이 아니고 거북이 가르처준다
묘비에 거북등과 비들기 머리 가야와 백제의 거북 비들기 토탬신앙 허씨 세력시대부터 유행
그리고 태인허씨 시조 굴이 바위굴로서 거북이 잠자고 있고 그 앞에 진시황제가 타고다닌 5두마차를 만들어 천신 거북을 모셔내는 씨름대회를 열어 천하장사가 분황사 같은 굴문옆에 숨어 서서 기다리다가 거북신을 힘으로 모셔내는 전설이 있다
이런 신화 종교로 일본에 정착한 천황족 신화로서 일본서기 ‘천석굴’신화와
478년의 대산성 반란(帶山城 反亂) 기록의 대산성帶山城이 이곳의 백제 지명이다
이순신은 함경도 여진족 전투에서 패전하여 파직된 백의종군 군인이였다
원균과 같이 명나라 척계광의 정규대항전 군법으로 배워 이순신 원균이 모두 그 전법으로 패전했다
이순신은 정읍의 정여립과 친했고 그 때문에 역모죄로 죽을 뻔도 했다
정여립의 게릴라 전법 왜적 퇴치법을 터득하여 정읍 입안산성을 둘러본 유성룡이
정여립 수하들이 많은 정읍현과 태인현 두곳 겸하여 통치하면서 남명 조식선생의 친구 이항의 제자 김천일등 다수 선비와 교유하고 임진난에 진주성방어 충청수사로 이순신 작전을 도왔다
여기가 가야 허씨 수천년 토착지로 몽고격퇴 송군비장군과, 왜장군 아지발도를 친 이성계 , 조선동학군 6.25 남부군 승전지로서 그 비결은 베트남 아프칸 처럼 지형이 험하고 군량이 풍부한 평야 인접지 천하요새지 허왕보굴 가야족 지역 게릴라 전투 백전 백승의 병법을
알고 참전하였다
일본은 임진난에 패전하였으나 가고시마현으로 잡아간 남원도공의 기술을 부흥 세계 도자기 1등국이 되고 이순신의 전투 법을 이용 청일전쟁 노일전쟁 게릴라 급습으로 승전하였고 그 기술을 영국이 독일함대를 처서 세계가 영어국가로 되었다
망국 가야가 백제로 가서 백제마저 망해 서해에서 떠다니는 태인 허씨족은 마침 안록산의난에 당현종을 도와서 승리하여 그 당나라 참전군 가야세력 장보고 최치원 견훤 왕건이 후삼국 쟁탈전으로 견훤을 지지한 가야족이 후에 고려 현종이 글안군 침입에 나주로 피난가는
기회에 태인허씨 허겸이 현종을 태인에서 유숙하고 가무잔치러 외손녀 3을 왕비로 바꾸어버려 이자의 이자겸 세력시대로 이어지다 김부식 김돈중 신라계 세력이 정권을 잡자
태인허씨 족 이의방 허승등이 정중부난으로 일으키고 정중부가 이의방을 죽이자 부안
이의방의 동생이 이한 부안김씨 김광립 손 김준 등이 함경도로 가서 여진족 퉁두란과 합세하여 조선국이 이루어 젔다
이의방의 동생이 이한이 전주이씨 시조라고도 한다
그래서 그 가야족이 거북을 종교로 사용 조선유교 제사그릇도 모두 가야토기 고배 그릇이며 거북을 모시고 가정방문하는 농악이 경기도 거북놀이 농악으로 조선 태조시대에 거북종교를 궁중에서 당산굿으로 행하던 유습으로 본다
조선 이성계 시조 전주이씨 궁중 유교제사 그릇은 고려 백제. 신라도아닌 가야 고배그릇이
고려 '이한'의 형 이의방이 태인허씨 이허겸 후손
그러므로 조선초기에는 해군에서 거북선 기록도 있고 해상 거북 종교신당겸 전투군함으로
사용하였다
일본군과 전투에 이겨서 이성계가 결국 왕이되었다
조선 태종때에는 임진강가에서 거북선으로 일본군을 치는 해군훈련을 한 기록이 다음과 같다
태종 25권, 13년(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2월 5일(갑인) 1번째기사
통제원 남교에서 머무르다. 임진도를 지나다가 거북선과 왜선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다
세자가 안색이 기쁜 빛를 띄었다. 임금이 임진강도(臨津渡)를 지나다가 거북선[龜船]) 과 왜선(倭船)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
【태백산사고본】
태종 30권, 15년(1415 을미 / 명 영락(永樂) 13년) 7월 16일(신해) 2번째기사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이 병비(兵備)에 대한 사의(事宜)를 올렸다.
거북선[龜船]) 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탁신(卓愼)이 이 때에 병조를 맡았는데, 임금이 보고 병조에 내리었다.
【태백산사고본】
이순신이 수일 만에 발명하는 것은 시행착오도 없이 백전백승이 불가하다
가야족 국토 없이 해상유랑으로 해신 거북만 신으로 기도하고 산 긴 전통의 거북모양 배만들기와 바다에서 전투하며 산 그 종족이 조선왕으로 그 거북선 종교신당배 만드는 수많은 세월에서 배 만드는 조선선박 제조산업이 세계의 1등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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