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극적인 회심은 부흥회에서 비롯되었다. “1930년 1월 10일에 나는 처음으로 신의 음성을 듣다. 눈과 같이 깨끗하라. 아아! 참 나의 기쁜 거룩한 생일이다.” 1931년 9월 다시 기전여학교 교사로 전주에 온 방애인은 그 때부터 수도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전주서문교회 옆 골목에 있었던 전주고아원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전주 사람들은 그녀가 고아를 업고 추운 밤길을 가는 모습, 다리 밑에서 거지나 나병환자를 끌어안고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방애인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고아들을 사랑하다가 장티프스에 걸려 1933년 9월 16일 소천하였다. 당시 나이 스물넷이었다. 소복입은 여신도들이 그녀의 상여를 메고 화산동 묘지로 향할 때 기전의 여학생들과 고아들이 만장을 들고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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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