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토문자(가림다)의 개념 해석ykk0126 2007.01.02 2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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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림다 개요
우리말이 글로 되는 것은 <환단고기>에 따르면 환웅시대 이후 다음의 길을 거친다.
신지, 녹도문자 > 신지, 신획 ㄱ, ㄴ > 을보륵, 가림다 ○□△중심 38자 ( 이후, > 세종, 훈민정음 28자 > 한글 )
<환단고기>, 단군세기에는
“제3세 단군 가륵 2년(BC2181)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正音 38자를 만들게 하여 이를 ‘가림토(=가림다)’ 라고 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가림다가 훈민정음해례 정인지 서문에서 "字倣古篆자방고전=형상은 옛글자를 모방한 것이고"라고 말한 옛글자이다.
단군의 삼랑, 을보륵은 가림다글자의 모양을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하고 우리 말소리의 뜻과 같게 하여 소리글이면서 뜻글인 가림다를 완성한다.
가림다의 해석을 위해서는 ○□△(원방각)개념의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 <환단고기>에 따른다면, ○□△ 상징기호는, 환웅시대 신지의 신획에서 시작된 철학적 개념을 가진 ㄱㄴ의 상징문자가 철학사상/음성학/기호학적으로 발전하여 단군시대 삼랑 을보륵이 완성한다는 것인데, 을보륵은 가림다문자를 ○□△을 중심으로 한 상징문자/사상개념체계로 완성하고, 우리말의 소리/음을 관리통제하여 일치시킨다.
그 근본이 되는 사상은 한겨레의 전통사상인 삼태극/삼일사상이다.
우리말에 부합하는 우리글을 갖추게 되니 한겨레의 한얼이 드러난 우리 말을 보존, 발전시켜 널리 무리를 가르치고, 깨우침의 새로운 시작이 되니, 비로소 여러 부족무리들이 우리 한겨레 민족국가로 하나가 되는 토대가 된다.
2. 가림다 창제 원리
-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상징하는 개념은 구체적 사물에서 추상화하여 획득한 인간의 지적 산물이다. 즉, 글자(글씨)의 뜻이란 인간의 정신작용에 의해 개념의 형태로 고착화한 지적 상징이다.
- 뜻(개념)은 논리적인 자기 전개과정을 가지며 우주자연의 섭리와 인간삶의 법칙을 반영한다. 삼태극/삼일사상으로 파악된 논리철학을 내포한다.
- 가림다는 우리말소리가 가진 뜻에 관리통제하여 일치시킨, 소리글(표음문자)이면서 동시에 뜻글(표상문자=표의문자)이다.
- 소리글이라는 것은 가림다가 음성기호, 즉 음성상징기호라는 의미이고, 훈민정음은 이 음성기호적 기능을 살려 용음합자방식을 바꾸어 세종에 의해 재창재된 것이다.
- 뜻글이라는 것은 가림다가 개념기호, 즉 개념상징기호라는 의미이고, 말소리가 가지고 있는 뜻을 기하학적 형상, 즉 개념기호로 상징하여 정확히 일치시켰다는 의미이다. 사물의 형상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고, 개념을 상징하는 기학학적 형상을 의미한다.
- 이 글에서는 음성기호적 기능은 배제하고, 기하학적 형상에서 그 개념기호의 뜻/개념만 해설한다.
○ ; 없음(0)을 상징한다. 없음은 있음이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1)이고, 있음과 하나(1)이다. 따라서 있음도 하나(1)이다. 이 하나인 없음에서 모든 것 있음이 나온다. 하늘(선천>짐천>후천)에서 나온 개념이다. 없음에서 처음 나오는 흐름이 0.ㄹ(=ㅇ.ㄹ=얼/알의 가림다 표현)이며, 후천에서 하늘은 0.ㄹ과 하나이니 보이지 않는 0.ㄹ을 상징하기도 한다.
ㆆ(=ㅎ) ; 빛 있음=밝음과 따뜻함을 상징한다. 선천의 불(火)과 같은 해(日)에서 나온 개념이다. 선천이라 함은 지구생성 전의 우주의 시공간를 말하며, 짐천은 지구생성 과정의 시공간이고, 후천은 지구생성 후 지구 대기권/대기막 내의 하늘이다.
□ ; ○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물질(ㅇ.ㄹ_ㅁ) 있음을 상징한다. 닫혀있음, 뭉쳐있음, 나뉘어짐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ㄴ ; □의 처음끝(있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ㄱ ; □의 마지막끝(있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ㄹ ; ㄴ 에서 ㄱ 로 이어짐(있음). 이음, 흐름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工 ; 가림다에서 ㄷ으로 있음이 없음을 두름(있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 ; 가림다에서 ㅂ으로 가운데 선이 없는 모양, 즉 ㄷ이 선 형태로 비어있는 기학학적 형상. ㄴ이 ㄱ으로 닫히고 막히어 채워진 ㅁ이 되기 전의 빔(있음). 빔에서 채움, 즉 받음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ㅋ ; 끝이 새로이 생겨 커짐(있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 ; ○과 □이 서로 소통되는 생명(ㅇ.ㄹㅣㄹ.ㅇ) 있음을 상징한다. 생명은 없음에서 있음으로 있음에서 없음으로 되는 것인데, 생명은 있음과 없음이 하나로 있음을 상징한다.
ㅅ ; 생명이 섬. 서있음. 솟음, 세움, 섬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ㅊ ; 지움을 뚫고 치솟음. 치솟음, 침 등의 뜻/성질을 가진다.
. ; 없음에서 있음으로 있음에서 없음으로 되는 점(있음/없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_ ; 솟지 못한 물질있음/생명없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ㅣ ; 있음(1). 솟은 생명있음(1). 나눌 수 없는 하나(1)의 있음의 뜻/성질을 가진다.
4. 삼태극사상, 삼일사상에 대한 해설 보충
가림다에 대한 이해는 삼태극/삼일사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야 하는 바, 간락히 그 내용을 소개한다.
모든 것들은 처음없음(=○=0)과 하나인 처음있음의 하나(1)가 변화하여 된 것이고, 하나는 둘로 나뉘고 셋을 낳아, 큰 하나안에 셋를 이룬다는 것이 삼태극사상이다. 이 삼태극 사상에서 세계를 셋으로 나누어 보고, 십진법의 수리로 만물을 파악하는 수학개념의 틀을 만들게 된다.
다시 말하면, 삼태극/삼일사상은, 하나의 세상을 ○□△이 상징하는
ㅇ.ㄹ(=얼/알의 가림다 표현, 하늘, 율려의 자연법칙/정신현상. ○이 상징한다),
ㅇ.ㄹ_ㅁ(=알음/얼음의 가림다 표현, 땅, 물질현상. □이 상징한다),
ㅇ.ㄹㅣㄹ.ㅇ(=아리랑의 가림다 표현, 사람, 생명현상. △이 상징한다)
크게 세 범주(삼태극)로 나누어 보는 것인데,
하나가 있으면 이것에 대응하는 다른 하나가 있고, 이 두개의 하나하나를 잇고 상호공존하는 다른 하나가 있어 모두 셋이나 하나의 고리(0)안에 있는 하나라는 것이다.
삼태극 각각은 다시 2로 나뉘고 3으로 되어 정립되며, 하나의 고리(원=○=0)가 9로 분화발생 완성된다. 여기에 하나가 더 쌓이면 무궤화삼(고리/원=○=0 밖의 새 화삼, 즉 3으로 분화되는 1)인 10이 되어 십의 자리 1과 일의 자리 0이 된다는 것이다.
최치원의 천부경은 삼태극/삼일(=화삼=삼이 되는 일)의 법칙이 십진법으로 되는 것을 보여 준다.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삼태극/삼일사상은 하나의 세상 있음(1)이 없음(0)에서 나오는 것이고,
0이 1이 되는 하나의 흐름 0.ㄹ(=있음/없음이 공존하는 흐름)이 있고,
이 하나의 0.ㄹ(없음/있음이 공존)에서 만물이 나오는 것을 화삼(삼일)의 법칙으로 이해하는 사고의 틀이다.
만물을 삼태극의 큰 셋(대삼=천지인 삼재)으로 나누어 보고, 이 대삼=삼태극이 거듭 화삼(셋으로 나뉘어 됨)하여 9(=3*3)로 완성되는 것으로 보는 논리적인 틀이다.
이 9에 1을 더하면 새 1(십자리, 무궤화삼)과 0(일자리)을 낳는 10진법의 수리적 논리로 삼태극/삼일/화삼의 법칙을 완성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며,
가림다는하나의 세상을 ○□△과 . - ㅣ이 상징하는 천지인 삼재로 나누어 이해하는 삼태극/삼일사상을 논리철학적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자의 발달과정19930126 2005.03.12 1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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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녹도문(鹿圖文)
기재:단군조선 시조 단군이 나라세운후,문자가 없어 골치 아프다가,신지를 명하여 문자를 만들어라고 명하자 신지는 답답한 김에 사냥갔다가 우연히 사슴발자국을 발견하여 이에 크게 깨달아 모방하여 녹도문을 만들었습니다.
시간:4천3백여년전.
실성:아직 이 문자를 발견한 사람이 없지만,많은 사람들이 믿는 환단고기에서 나온 기재이기에 아직 더 연구해야 할것같습니다.
2.가림토문(加臨土文)
기재:시조 단군이 만든 녹도문은 문자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못하였습니다.이에 제3대 갸륵단군은 신지에 명하여 새로운 문자를 만들게 하였는데 바로 훈민정음의 조상 가림토문입니다.
시간:4천1백년전.
문자특징:총 38자로서 자모음이 구성되는 과학적인 문자.(훈민정음은 28자)
실성:1.산동성에서 대량 발견되였습니다.2.훈민정음 반대상소에 "비신자야"라는 구절에서 실존했다는걸 알수있습니다.
3.이두(吏讀)
기재:신라시대 원효대사의 아들 설총이 말뜻을 못나타내는 한자를 대하기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시간:1천5백년전.
문자특징:한자를 흉내 만든 문자.일본가나와 비슷.
실성:지금도 몇가지 이두로 엮은 향가가 전해져 실존했음.
4.훈민정음(訓民正音)
기재:세종대왕이 집현전학자들과 가림토문38자를 28자로 줄여 만든 문자.가장 세계에서 과학적이여서 지금 일부 문자없는 민족에게 쓰도록 합니다.
시간:550년전.
문자특징:역시 자모음으로 구성된 문자.
5.현대한글(現代韓-)
설명:훈민정음을 바탕으로 하여 24자의 자모음으로 구성되였는데,우리나라와 북한,및 간도지역의 통용문자입니다.
시간:70년전.
이제 우리는 문자역사5백년이라는 열등감에서 벗어나고,고유문자를 세계에 당당히 자랑하여 기상을 펴야합니다.
출처 : [직접 서술] 직접 서술
녹도문자 > 신획 ㄱ, ㄴ > 가림다 ○□△중심 38자 ( 이후, > 훈민정음 28자 > 한글 )
“제3세 단군 가륵 2년(BC2181)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正音 38자를 만들게 하여 이를 ‘가림토(=가림다)’ 라고 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군의 삼랑, 을보륵은 가림다글자의 모양을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하고 환인께서 만드신 말소리의 뜻과 같게 하여 소리글이면서 뜻글인 가림다를 완성합니다. 우리말에 부합하는 우리글을 갖추게 되니 한얼이 드러난 우리 말을 보존, 발전시켜 널리 무리를 가르치고, 깨우침의 새로운 시작이 되니, 비로소 여러 부족무리들이 우리 한겨레 민족국가로 하나가 되는 토대가 됩니다.
"가림다"는 우리말인데 "다"는 "따"="땅"이고, "가림토"의 "토=土"도 같은 뜻으로 "토대"를 뜻합니다.
- 가림다가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상징하는 개념은 구체적 사물에서 추상화하여 획득한 인간의 지적 산물입니다. 가림다는 인간의 정신=뜻을 기하학적 기호/도형으로 상징하는 글자입니다.
- 뜻/개념은 논리적인 자기 전개과정을 가지며 우주자연의 섭리와 인간삶의 법칙을 반영하는 데, 우리 한겨레의 전통사상인 삼태극/삼일사상을 체계화한 ○□△(원방각)논리철학체계를 바탕으로 합니다.
- 이 글에서는 가림다의 음성기호적 기능은 배제하고, 개념기호(표의문자, 뜻글자)적 측면만을 다루고 그 기하학적 형상에서 그 뜻만 해설하겠습니다.
○ ; 없음(0). 없음은 있음이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1)이고 있음과 하나(1)임. 따라서 있음도 하나(1)임. 이 하나인 없음에서 모든 것 있음이 나옴. 하늘(선천>짐천>후천)에서 나온 개념. 없음에서 처음 나오는 흐름이 0.ㄹ(=ㅇ.ㄹ=얼/알)이며, 후천에서 하늘은 0.ㄹ과 하나이니 보이기 않는 0.ㄹ을 상징하기도 함
ㆆ(=ㅎ) ; 빛 있음=밝음과 따뜻함. 선천의 불(火)과 같은 해(日)에서 나온 개념. 선천이라 함은 지구생성 전의 우주의 시공간를 말함. 짐천은 지구생성 과정의 시공간. 후천은 지구생성 후 지구 대기권 내의 하늘
□ ; ○에 상대적인 개념으로 물질(ㅇ.ㄹ_ㅁ) 있음. 닫혀있음, 뭉쳐있음, 나뉘어짐 등의 뜻을 가짐
ㄴ ; □의 처음끝(있음)
ㄱ ; □의 마지막끝(있음)
ㄹ ; ㄴ 에서 ㄱ 로 이어짐(있음). 이음, 흐름 등의 뜻을 가짐
工 ; 가림다에서 ㄷ으로 있음이 없음을 두름(있음).
∪ ; 가림다에서 ㅂ으로 가운데 선이 없는 모양, 즉 ㄷ이 선 형태로 비어있는 기학학적 형상. ㄴ이 ㄱ으로 닫히고 막히어 채워진 ㅁ이 되기 전의 빔(있음). 빔에서 채움, 즉 받음 등의 뜻을 가짐
ㅋ ; 끝이 새로이 생겨 커짐(있음)
△ ; ○과 □이 서로 소통되는 생명(ㅇ.ㄹㅣㄹ.ㅇ) 없음/있음. 생명은 없음에서 있음으로 있음에서 없음으로 되는 것인데, 생명은 있음과 없음이 하나로 있음임
ㅅ ; 생명이 섬. 서있음. 솟음, 세움, 섬 등의 뜻을 가짐
ㅈ ; 솟음을 누름. 죽음, 죽임, 지움 등의 뜻을 가짐
ㅊ ; 지움을 뚫고 치솟음. 치솟음, 침 등의 뜻을 가짐
. ; 없음에서 있음으로 있음에서 없음으로 되는 점(있음/없음)
_ ; 솟지 못한 물질있음/생명없음.
ㅣ ; 있음(1). 솟은 생명있음(1). 하나의 있음
분석하지 못한 글자들은 보다 깊은 연구를 기다려야 할 듯 합니다.
가림토 문자
훈민정음 창제(1443년) 이전의 고(古) 한글로 추정되는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국내 최초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가림토 문자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이암(李巖)이 저술한 단군세기에 제3세 단군 가륵이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짓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3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 학리 명마산(鳴馬山) 중턱에 자리한 바위(가로 1.8m,세로 3.4m)에서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됐다. 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돼 있다.
재야 사학자인 예대원(62·경북 경산시 사동)씨는 '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72·역사학) 명예교수는 '바위에 암각된 문자가 가림토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연구검토를 거쳐 가림토 여부를 판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54·국문학) 박사는 '상당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돼 언어 역사 민속학 인문지리학 등 여러 분야 학자들이 공동으로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 가림토 문자 비석 발견.
단군조선의 문화
① 가림토 문자
단군조선시대에는 선대인 배달국으로부터 계속 사용해온 진서(眞書), 즉 녹도문자가 있었다.
그러나 배움이 부족한 일반 백성들이 녹도문을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또 음문자이며 만물을 형상화한 뜻글자인 녹도문만으로는 완전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렇게 해서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조선의 문자인 가림토(加臨多) 문자가 탄생하게 되며,
가림토 문자(38자)를 토대로 더 쉽게 정리하여 4177년 뒤 재창조된 것이 바로 훈민정음(28자)이다.
② 가림토 문자는 훈민정음의 원형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가림토 문자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원형이다.
그리고 근세조선 시대 세종 때에 이르러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로 재창제 되었으며, 최근에는 주시경 등에 의해 24자로 재정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림토는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일본에도 전해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문자가 되었다.
또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분국이었던 몽고로 건너가 "파스파"란 고대문자가 되었으며,
배달국의 분국이 있었으며 그 후예들이 살고있는 인도로 건너가 산스크리스토 알파벳과 구라자트 문자의 원형이 되었다.
▶ 가림토 문자 창제동기
단군조선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B.C, 2181년)에 갸륵 단제께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多)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다."
<한단고기 - 단군세기>
▶ 훈민정음 재창제의 증거
①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非新字也>. 언문은 전조선 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 (세종실록 103권 ; 세종 23년에 발표한 글)
②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한 것이다.(세종실록 25년 ;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첫 발표문)
③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한글 재창제를 반대하는 최만리와 당대 유학자들의 집단 상소문 중에서)
▶ 해외에 남아있는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
그러나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은 한단고기 뿐 아니라 일본, 인도, 몽고 등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나라들에 풍부하게 남아 단군조선 시대와 그 영향력을 지금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다.
다만, 우리만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 일본의 신대(神代)문자
일본에는 한글을 닮은 고문자가 있다.
대마도의 아히루 가문에서 전해져왔기 때문에 아히루 문자라고 하며 신들의 시대에 신들이 쓰던 문자라 해서 신대문자라고 한다.
신대문자는 지금도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 대마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 등에 아직 보관되어 있다.
일본 이세신궁에 소장된 신대문자의 기록은 서기 708년의 유물이다.
서기 700년 무렵은 대조영이 고구려 멸망 후 발해를 건국했을 무렵이며, 세종대왕은 1446년에야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단군조선 시대가 신화였고, 가림토 문자도 한단고기에 나왔으니 믿을 수가 없다고 전제한다면, 1446년의 훈민정음에서 708년의 신대문자가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면 일본의 신대문자에서 훈민정음이 나왔는가?
실제로 일본의 오향청언(吾鄕淸彦 고쿄 기요히코)이란 학자 등도 708년의 신대문자의 유물을 증거로 들면서 "일본의 신대문자가 조선으로 건너가 훈민정음을 낳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고 그것을 연구한 결과, 자신의 "일본의 아히루 문자가 조선 훈민정음의 뿌리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신대문자의 원형인 원시한글이 한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다."고 인정했다.
일본의 천황가 자체를 비롯, 일본이 단군조선이래 한국인이 건너가 세운 나라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일본인들에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것을 인정하기를 기본적으로 꺼릴 뿐 아니라 오히려 기회만 있으면 거꾸로 왜곡하려고 애를 써왔다.
그런데 그런 풍조 속에서 일본의 학자가 그때까지 자신의 주장을 뒤엎고 가림토 문자에서 일본의 아히루 문자가 나왔고 그 뿌리임을 학자적 양심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통 사학계와 국어학계에서는 아직도 "훈민정음이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는지 신하들과 함께 만들었는지" 논쟁 중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제를 입증해준다.
단군조선이 있었다면 단군할아버지도 실제하셨던 민족의 조상임을 믿을 수 있고, 가림토 문자가 발견되는 곳은 단군조선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가림토가 일본에 보급되어 아히루 문자가 된 것이다.
▶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인도의 남방 구자라트 주에서 쓰이는 문자는 우리의 한글과 흡사한데 자음은 상당수가 같고, 모음은 10자가 꼭 같다.(ㄴㄷㅌㅇㅁㅈㅂ 그리고 ㅏㅑㅓㅕㅗㅛㅡㅣ등)
이 지역은 배달국 시대 우리 민족이 인도로 이동해가서 세운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 드라비다족의 후예가 사는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자라트인들이 사용하는 타밀어에 문자뿐 아니라 발음과 뜻이 비슷한 단어들(나-난/너-니/엄마-엄마/아빠-아빠/보다-봐/날-날/오다-와/나라-나르/너 이리와-니 잉게와 등)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편 산스크리스트어 알파벳은 우리가 국민학교 때 배운 한글과 너무나 흡사하고 (찌커거.., 쪄쳐져..., 떠터더..., 뻐퍼버..., 셔허), 우리 한글처럼 "ㄱ"에서 시작해 "g"으로 끝난다.
▶ 영어와의 관계
가림토 문자에는 X O M P H I 등 알파벳의 자모도 여러 개 보인다.
가림토 문자가 4177년 전에 만들어진 반면, 알파벳의 역사는 겨우 3000년을 넘지 못한다.
제후국의 왕 또는 어떤 지역의 우두머리를 나타내는 말인 한(汗)은 하늘을 뜻하는 글자인 한(桓)에서 나온 이름이다.
즉 한(桓)에서 한(韓), 한(漢), 한(汗)이 나온 것이다.
또 한(汗 : HAN)이 몽고로 건너가 칸(KAN : 징기스칸)이 되었으며, 징기스칸의 유럽 정복 때 서구로 건너가 킹(KING)이 되었으며, 그후에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하버드대학에서의 연구결과로도 발표된 바 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우리말과 우리의 고문자는 한단시대의 영역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되면서 각 지역의 독특한 환경과 조건들에 따라 변화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다
알타이계 언어의 차이점(한국어,일본어,중국어)
제가 아는 것만 적겠습니다.
우선 세 나라의 언어는 한자말을 쓰고 있는게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우선 한국어는 주어와 서술어가 한꺼번에 제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학교에 간다'와 같이 말이지요.
그런 면에선 일본도 우리나라와 문법이 흡사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예외죠. 한자도 간체자라는 것을 만들어서 우리나라한자를 알더라도 중국한자를 보면 좀 생소하죠.
문법도 한국과 일본보다는 다소 거리가 있구요.
알타이가 어디인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랫글을 보세요.
러시아 연방 시베리아 남서부에 있는 지구.
오브 강 상류와 그 원류인 비야·카툰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남동쪽으로 몽골·중국과 접해 있다. 한때 중가리아 칸 국의 일부였던 알타이 지방은 18세기에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북부와 북서부는 완만하게 기복진 평원과 그 앞쪽의 산으로 이루어졌으며, 곳곳에 스텝 지대 및 삼림-스텝 지대가 펼쳐져 있다. 고르노알타이 자치주를 형성하는 남부는 넓은 산간분지와 깊은 골짜기들을 포함한 숲이 우거진 산맥과 높은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부 스텝 지대 대부분에서 주요농작물인 밀·귀리·옥수수·해바라기·아마·대마·사탕무 등이 재배되며, 산악지대 목초지에서는 소와 양의 목축이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구리·아연·납·은·수은·바륨·텅스텐·금 같은 비철금속 광물이 주로 즈메이노고르스크와 고르냐크 주변에서 채광되며, 행정중심지인 바르나울을 비롯한 주요도시들에서는 경공업·화학공업·목재업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광활한 쿨룬다 스텝 지대를 관개하기 위해 카멘나오비 시가 댐과 수력발전소를 건설할 장소로 설계·개발되고 있다. 면적 169,100㎢, 인구 2,695,000(1995).
러시아 연방 시베리아 남서부에 있는 지구.
오브 강 상류와 그 원류인 비야·카툰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남동쪽으로 몽골·중국과 접해 있다. 한때 중가리아 칸 국의 일부였던 알타이 지방은 18세기에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북부와 북서부는 완만하게 기복진 평원과 그 앞쪽의 산으로 이루어졌으며, 곳곳에 스텝 지대 및 삼림-스텝 지대가 펼쳐져 있다. 고르노알타이 자치주를 형성하는 남부는 넓은 산간분지와 깊은 골짜기들을 포함한 숲이 우거진 산맥과 높은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부 스텝 지대 대부분에서 주요농작물인 밀·귀리·옥수수·해바라기·아마·대마·사탕무 등이 재배되며, 산악지대 목초지에서는 소와 양의 목축이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구리·아연·납·은·수은·바륨·텅스텐·금 같은 비철금속 광물이 주로 즈메이노고르스크와 고르냐크 주변에서 채광되며, 행정중심지인 바르나울을 비롯한 주요도시들에서는 경공업·화학공업·목재업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광활한 쿨룬다 스텝 지대를 관개하기 위해 카멘나오비 시가 댐과 수력발전소를 건설할 장소로 설계·개발되고 있다. 면적 169,100㎢, 인구 2,695,000(1995).
알타이어계 외 다른 계통의 언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우랄어족이 알타이제어와 함께 더욱 큰 어족을 형성한다고 가정했을 경우의 총괄적 명칭이 우랄 ㅡ알타이어계이다.
이 학설이 발생한 것은 상당히 오래 되었지만 학문적으로 나타난 것은 M.A.카스트렌부터이다.
그는 핀우그르어 ·사모예드어 ·투르크어 ·몽골어 ·만주퉁구스어를 하나의 그룹으로 보고 각 언어간의 형태를 연구하였다. 카스트렌에 의하면 상기 제언어간의 유사점은 인도유럽어족에서처럼 발견되지는 않으나 이들 제언어가 한 어족이 될지는 장래에 가서 결정될 것이라고 하였다.
카스트렌의 뒤를 이어서 우랄알타이어족설을 진척시킨 것은 W.쇼트이다. 그는 비교언어학적 연구의 기반 위에 서서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과의 상호관계를 연구하고 이들 언어간의 차이는 정도의 차에 불과하고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독일의 학자 H.빙클러도 우랄알타이어족설을 제창하였으며 특히 그는 처음으로 일본어를 이 어족과 관련지어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의 학설은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뒤를 이어서 프랑스의 A.소바조가 우랄알타이어 비교연구 분야에 있어서의 뛰어난 저서 하나를 저술하였다. 그는 《우랄알타이어 어휘의 연구》(1930)에서 규칙적인 음운대응을 수립할 단어의 비교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단어 수는 적어서 학계를 납득시킬 수가 없었다.
우랄알타이어족을 지지하고 있는 학자는 드물지만 핀란드의 투르크어 학자 M.레세넨은 그 적은 학자 중의 하나이고, 또 K.H.멘게스 교수도 우랄알타이어족설의 계승자이다.
그러나 우랄계의 제어와 알타이제어를 비교한 연구에는 아직 언어학적인 순서를 밟은 실증적인 연구가 많지 않아서 이 두 언어의 동계관계는 증명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알타이제어의 연구가 더욱 진척되어 그 동계관계가 완전히 입증되면 우랄알타이어족설도 새로이 취급될 것이다
이상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따온 것입니다.
우랄어와 알타이어는 둘 다 교착어입니다.
우랄어는 핀란드어, 헝가리어 등의 일부 유럽어와 시베리아에 분포하는 여러 언어를 포함합니다.이들은 지역적으로는 유럽에 가까우나 언어의 형태상으로는 인도 ㅡ유럽어족과 관계가 없고, 오히려 알타이어와 비슷한 점이 있어 우랄 ㅡ알타이어로 묶은 것입니다.
알타이산맥은 중국 신장성과 몽고의 국경으로부터 러시아령까지 동서로 이어진 산맥입니다.평균 높이 1300미터, 길이 1500 킬로미터나 되는 산맥입니다.이 알타이 산맥 동쪽의 어군이 알타이어계입니다.우리 나라는 이 산맥의 동쪽 끝에 있습니다.
알타이어계는 동으로는 일본, 서로는 터어키에 이르는 지방의 어군입니다.한국어 터어키어,몽고어, 만주어,일본어 등이 이에 속합니다. 알타이어계의 언어들은 발음이나 문법상의 공통점이 꽤 많으나 어휘의 차이가 심하여, 일부에서는 같은 어족으로 분류한다는 건 무리라고 하기도 합니다.
가림토 문자
훈민정음 창제(1443년) 이전의 고(古) 한글로 추정되는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국내 최초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사진)
가림토 문자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이암(李巖)이 저술한 단군세기에 제3세 단군 가륵이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짓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3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 학리 명마산(鳴馬山) 중턱에 자리한 바위(가로 1.8m,세로 3.4m)에서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됐다. 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돼 있다.
재야 사학자인 예대원(62·경북 경산시 사동)씨는 '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72·역사학) 명예교수는 '바위에 암각된 문자가 가림토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연구검토를 거쳐 가림토 여부를 판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54·국문학) 박사는 '상당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돼 언어 역사 민속학 인문지리학 등 여러 분야 학자들이 공동으로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 가림토 문자 비석 발견.
단군조선의 문화
① 가림토 문자
단군조선시대에는 선대인 배달국으로부터 계속 사용해온 진서(眞書), 즉 녹도문자가 있었다.
그러나 배움이 부족한 일반 백성들이 녹도문을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또 음문자이며 만물을 형상화한 뜻글자인 녹도문만으로는 완전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렇게 해서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조선의 문자인 가림토(加臨多) 문자가 탄생하게 되며,
가림토 문자(38자)를 토대로 더 쉽게 정리하여 4177년 뒤 재창조된 것이 바로 훈민정음(28자)이다.
② 가림토 문자는 훈민정음의 원형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가림토 문자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원형이다.
그리고 근세조선 시대 세종 때에 이르러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로 재창제 되었으며, 최근에는 주시경 등에 의해 24자로 재정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림토는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일본에도 전해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문자가 되었다.
또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분국이었던 몽고로 건너가 "파스파"란 고대문자가 되었으며,
배달국의 분국이 있었으며 그 후예들이 살고있는 인도로 건너가 산스크리스토 알파벳과 구라자트 문자의 원형이 되었다.
▶ 가림토 문자 창제동기
단군조선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B.C, 2181년)에 갸륵 단제께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多)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다."
<한단고기 - 단군세기>
▶ 훈민정음 재창제의 증거
①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非新字也>. 언문은 전조선 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 (세종실록 103권 ; 세종 23년에 발표한 글)
②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한 것이다.(세종실록 25년 ;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첫 발표문)
③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한글 재창제를 반대하는 최만리와 당대 유학자들의 집단 상소문 중에서)
▶ 해외에 남아있는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
그러나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은 한단고기 뿐 아니라 일본, 인도, 몽고 등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나라들에 풍부하게 남아 단군조선 시대와 그 영향력을 지금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다.
다만, 우리만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 일본의 신대(神代)문자
일본에는 한글을 닮은 고문자가 있다.
대마도의 아히루 가문에서 전해져왔기 때문에 아히루 문자라고 하며 신들의 시대에 신들이 쓰던 문자라 해서 신대문자라고 한다.
신대문자는 지금도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 대마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 등에 아직 보관되어 있다.
일본 이세신궁에 소장된 신대문자의 기록은 서기 708년의 유물이다.
서기 700년 무렵은 대조영이 고구려 멸망 후 발해를 건국했을 무렵이며, 세종대왕은 1446년에야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단군조선 시대가 신화였고, 가림토 문자도 한단고기에 나왔으니 믿을 수가 없다고 전제한다면, 1446년의 훈민정음에서 708년의 신대문자가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면 일본의 신대문자에서 훈민정음이 나왔는가?
실제로 일본의 오향청언(吾鄕淸彦 고쿄 기요히코)이란 학자 등도 708년의 신대문자의 유물을 증거로 들면서 "일본의 신대문자가 조선으로 건너가 훈민정음을 낳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고 그것을 연구한 결과, 자신의 "일본의 아히루 문자가 조선 훈민정음의 뿌리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신대문자의 원형인 원시한글이 한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다."고 인정했다.
일본의 천황가 자체를 비롯, 일본이 단군조선이래 한국인이 건너가 세운 나라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일본인들에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것을 인정하기를 기본적으로 꺼릴 뿐 아니라 오히려 기회만 있으면 거꾸로 왜곡하려고 애를 써왔다.
그런데 그런 풍조 속에서 일본의 학자가 그때까지 자신의 주장을 뒤엎고 가림토 문자에서 일본의 아히루 문자가 나왔고 그 뿌리임을 학자적 양심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통 사학계와 국어학계에서는 아직도 "훈민정음이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는지 신하들과 함께 만들었는지" 논쟁 중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제를 입증해준다.
단군조선이 있었다면 단군할아버지도 실제하셨던 민족의 조상임을 믿을 수 있고, 가림토 문자가 발견되는 곳은 단군조선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가림토가 일본에 보급되어 아히루 문자가 된 것이다.
▶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인도의 남방 구자라트 주에서 쓰이는 문자는 우리의 한글과 흡사한데 자음은 상당수가 같고, 모음은 10자가 꼭 같다.(ㄴㄷㅌㅇㅁㅈㅂ 그리고 ㅏㅑㅓㅕㅗㅛㅡㅣ등)
이 지역은 배달국 시대 우리 민족이 인도로 이동해가서 세운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 드라비다족의 후예가 사는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자라트인들이 사용하는 타밀어에 문자뿐 아니라 발음과 뜻이 비슷한 단어들(나-난/너-니/엄마-엄마/아빠-아빠/보다-봐/날-날/오다-와/나라-나르/너 이리와-니 잉게와 등)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편 산스크리스트어 알파벳은 우리가 국민학교 때 배운 한글과 너무나 흡사하고 (찌커거.., 쪄쳐져..., 떠터더..., 뻐퍼버..., 셔허), 우리 한글처럼 "ㄱ"에서 시작해 "g"으로 끝난다.
▶ 영어와의 관계
가림토 문자에는 X O M P H I 등 알파벳의 자모도 여러 개 보인다.
가림토 문자가 4177년 전에 만들어진 반면, 알파벳의 역사는 겨우 3000년을 넘지 못한다.
제후국의 왕 또는 어떤 지역의 우두머리를 나타내는 말인 한(汗)은 하늘을 뜻하는 글자인 한(桓)에서 나온 이름이다.
즉 한(桓)에서 한(韓), 한(漢), 한(汗)이 나온 것이다.
또 한(汗 : HAN)이 몽고로 건너가 칸(KAN : 징기스칸)이 되었으며, 징기스칸의 유럽 정복 때 서구로 건너가 킹(KING)이 되었으며, 그후에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하버드대학에서의 연구결과로도 발표된 바 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우리말과 우리의 고문자는 한단시대의 영역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되면서 각 지역의 독특한 환경과 조건들에 따라 변화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다
알타이계 언어의 차이점(한국어,일본어,중국어)
제가 아는 것만 적겠습니다.
우선 세 나라의 언어는 한자말을 쓰고 있는게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우선 한국어는 주어와 서술어가 한꺼번에 제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학교에 간다'와 같이 말이지요.
그런 면에선 일본도 우리나라와 문법이 흡사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예외죠. 한자도 간체자라는 것을 만들어서 우리나라한자를 알더라도 중국한자를 보면 좀 생소하죠.
문법도 한국과 일본보다는 다소 거리가 있구요.
알타이가 어디인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랫글을 보세요.
Altai라고도 씀.
러시아 연방 시베리아 남서부에 있는 지구.
오브 강 상류와 그 원류인 비야·카툰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남동쪽으로 몽골·중국과 접해 있다. 한때 중가리아 칸 국의 일부였던 알타이 지방은 18세기에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북부와 북서부는 완만하게 기복진 평원과 그 앞쪽의 산으로 이루어졌으며, 곳곳에 스텝 지대 및 삼림-스텝 지대가 펼쳐져 있다. 고르노알타이 자치주를 형성하는 남부는 넓은 산간분지와 깊은 골짜기들을 포함한 숲이 우거진 산맥과 높은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부 스텝 지대 대부분에서 주요농작물인 밀·귀리·옥수수·해바라기·아마·대마·사탕무 등이 재배되며, 산악지대 목초지에서는 소와 양의 목축이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구리·아연·납·은·수은·바륨·텅스텐·금 같은 비철금속 광물이 주로 즈메이노고르스크와 고르냐크 주변에서 채광되며, 행정중심지인 바르나울을 비롯한 주요도시들에서는 경공업·화학공업·목재업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광활한 쿨룬다 스텝 지대를 관개하기 위해 카멘나오비 시가 댐과 수력발전소를 건설할 장소로 설계·개발되고 있다. 면적 169,100㎢, 인구 2,695,000(1995).
Altai라고도 씀.
러시아 연방 시베리아 남서부에 있는 지구.
오브 강 상류와 그 원류인 비야·카툰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다. 남동쪽으로 몽골·중국과 접해 있다. 한때 중가리아 칸 국의 일부였던 알타이 지방은 18세기에 러시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북부와 북서부는 완만하게 기복진 평원과 그 앞쪽의 산으로 이루어졌으며, 곳곳에 스텝 지대 및 삼림-스텝 지대가 펼쳐져 있다. 고르노알타이 자치주를 형성하는 남부는 넓은 산간분지와 깊은 골짜기들을 포함한 숲이 우거진 산맥과 높은 고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북부 스텝 지대 대부분에서 주요농작물인 밀·귀리·옥수수·해바라기·아마·대마·사탕무 등이 재배되며, 산악지대 목초지에서는 소와 양의 목축이 대규모로 이루어진다. 구리·아연·납·은·수은·바륨·텅스텐·금 같은 비철금속 광물이 주로 즈메이노고르스크와 고르냐크 주변에서 채광되며, 행정중심지인 바르나울을 비롯한 주요도시들에서는 경공업·화학공업·목재업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광활한 쿨룬다 스텝 지대를 관개하기 위해 카멘나오비 시가 댐과 수력발전소를 건설할 장소로 설계·개발되고 있다. 면적 169,100㎢, 인구 2,695,000(1995).
알타이어계 외 다른 계통의 언어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우랄어족이 알타이제어와 함께 더욱 큰 어족을 형성한다고 가정했을 경우의 총괄적 명칭이 우랄 ㅡ알타이어계이다.
이 학설이 발생한 것은 상당히 오래 되었지만 학문적으로 나타난 것은 M.A.카스트렌부터이다.
그는 핀우그르어 ·사모예드어 ·투르크어 ·몽골어 ·만주퉁구스어를 하나의 그룹으로 보고 각 언어간의 형태를 연구하였다. 카스트렌에 의하면 상기 제언어간의 유사점은 인도유럽어족에서처럼 발견되지는 않으나 이들 제언어가 한 어족이 될지는 장래에 가서 결정될 것이라고 하였다.
카스트렌의 뒤를 이어서 우랄알타이어족설을 진척시킨 것은 W.쇼트이다. 그는 비교언어학적 연구의 기반 위에 서서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과의 상호관계를 연구하고 이들 언어간의 차이는 정도의 차에 불과하고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독일의 학자 H.빙클러도 우랄알타이어족설을 제창하였으며 특히 그는 처음으로 일본어를 이 어족과 관련지어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의 학설은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뒤를 이어서 프랑스의 A.소바조가 우랄알타이어 비교연구 분야에 있어서의 뛰어난 저서 하나를 저술하였다. 그는 《우랄알타이어 어휘의 연구》(1930)에서 규칙적인 음운대응을 수립할 단어의 비교에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단어 수는 적어서 학계를 납득시킬 수가 없었다.
우랄알타이어족을 지지하고 있는 학자는 드물지만 핀란드의 투르크어 학자 M.레세넨은 그 적은 학자 중의 하나이고, 또 K.H.멘게스 교수도 우랄알타이어족설의 계승자이다.
그러나 우랄계의 제어와 알타이제어를 비교한 연구에는 아직 언어학적인 순서를 밟은 실증적인 연구가 많지 않아서 이 두 언어의 동계관계는 증명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알타이제어의 연구가 더욱 진척되어 그 동계관계가 완전히 입증되면 우랄알타이어족설도 새로이 취급될 것이다
이상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따온 것입니다.
우랄어와 알타이어는 둘 다 교착어입니다.
우랄어는 핀란드어, 헝가리어 등의 일부 유럽어와 시베리아에 분포하는 여러 언어를 포함합니다.이들은 지역적으로는 유럽에 가까우나 언어의 형태상으로는 인도 ㅡ유럽어족과 관계가 없고, 오히려 알타이어와 비슷한 점이 있어 우랄 ㅡ알타이어로 묶은 것입니다.
알타이산맥은 중국 신장성과 몽고의 국경으로부터 러시아령까지 동서로 이어진 산맥입니다.평균 높이 1300미터, 길이 1500 킬로미터나 되는 산맥입니다.이 알타이 산맥 동쪽의 어군이 알타이어계입니다.우리 나라는 이 산맥의 동쪽 끝에 있습니다.
알타이어계는 동으로는 일본, 서로는 터어키에 이르는 지방의 어군입니다.한국어 터어키어,몽고어, 만주어,일본어 등이 이에 속합니다. 알타이어계의 언어들은 발음이나 문법상의 공통점이 꽤 많으나 어휘의 차이가 심하여, 일부에서는 같은 어족으로 분류한다는 건 무리라고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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