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스크랩] 후백제 궁중악 태인허씨 이자겸이 정읍 음성향에서

도심안 2009. 4. 20. 23:18

 

 후백제 궁중악 태인허씨 이자겸이 정읍 음성향에서    

 

백제 비들기, 고구려 꾀꼬리, 마한은 말, 신라는 새,

 

 

 

토탬 6새소리로  백제가요 정읍사를 정읍농악 반주로 재현한 1000년 전소리

 

우리나라도 솟대 짐대 라고하는데 새를 조각하여 꽂아 세운 장대 신당이다

삼국시대 우리나라 이름이 여러 가지 전설이 있으나 이치에 맞지 않고 토탬신앙(동물을 모시는종교) 새의 이름으로 비교하여 풀어보면 국가의 이름이 새의 이름으로 거의 확실하다

 

한국의 예술문화는 자연미의 모방 자연 숭배신앙이다

미술은 하나. 둘. 셋. 넷. 즉 해. 달. 산. 내(日月山川)을  그려서 그림을 신으로  숭배하는 신앙이 그림이 되었다

음악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 하늘님  환웅(桓雄)님을 하늘에 떠있는 새로 알고  새의 소리를 내어 하늘님소리로 종교행사를 하였다

                      

그 종교 신당이 한국불교 고유의 이름으로 '큰새집'이라는 뜻으로  대웅전(大雄한웅殿)이다

기독교 선교 순교자시대 처럼  불교 역시 신라 불교순교자 이차돈의 순교가 있어서 삼한 삼국시대의 신전 대웅전에 슬며시 석가모니 불상을 모시고 조종행사를 하여 화랑도 신전에 불교신앙으로 오늘의 한국불교 사찰이름이 되었다

삼국시대 대웅전 신당은 일본의 신사당으로 일본에 한문수입 이전에 지어진 일본 신사당 입구에 새가내려와서 앉는 나무 도리이(鳥居)가 있다

 

 

부여에서 출토된 백제향로에서 백제시대 토탬 관현악을 연주한다

백제향로에는 대웅새  아래 비들기 5마리가 기우제를 비는 백제소리로 연주하고있다

새소리로 유인하여 내려온 천신과 지신인 동물이 고기를 먹으며 음악을 듣고 있다

삼국시대 음악은 아래와 같이 국가마다 다른 새와 짐승을 종교신으로 신앙한 증거가  백제향로에 남아있다


백제 비들기,

비들기는중국 상고시대  은나라 탕왕이 천신제사에서 비들기소리를 내어서 기우제로 비내리기를 빌었다

그런 종교국가 은나라가 망하여 기자조선으로 전북 익산 금마에 망명국으로 정착했다

이 기자조선 종교계의 왕족 유화가 부여국의 금와와 화친하는 결혼으로 고주몽을 낳았다

동이전 '북사'에서 백제는 비류가 세워 동생 온조왕이 이어갔다고 기록했다

백제에서 건너건 일본어로  남아있다  '비류새' 즉 '비류도리이' '비류鳥居' 즉 '비류鳥' 비류도리'라는 발음으로 백제시대 비들기를 천신으로 부른 이름이다

비들기 새를 솟대에 앉혀 세워 놓은 나무를 '박달나무' '배달나무' 라는 '박달'이름이 비들기 발음과 같다

다시 기자조선 종교계의 왕족  소서노가 '비류(비들기)'  아들이 비들기 소리로 종교국가 이름을 비들기 발음이름 ‘백제’가 되었다

그 소리가 현재 아리랑가사로 “아리랑아리랑아라리요”와 일치한다


창세기 신화부터 여호수아의 대홍수에서도 비들기가 하늘의 심부름으로 비와 물의 관리자였다

그래서 서양종교사원에서도 비들기를 신처럼 기르고 있다


 고구려 꾀꼬리,

고구려는 부여와 한나라 사이에서 간신히 살아난 국가이다

한나라의 양진이 천신  황조(黃雀)새 꾀꼬리를  살려내어  후손이  수나라를  세웠다

꾀꼬리를 흥부가 이야기처럼 보호하고 신앙하는 종교 찬송가는  반드시 꾀꼬리소리였다

한나라 고구려 부여 공히 꾀꼬리를 하늘님으로 모시는 그 시대 유행하는 북방 토탬종교였다

고구려 유리왕의 왕비 치희가 송희와 싸우고 한나라고 돌아가 버리자 유리왕이 솟대 도리이위의 꾀꼬리새를 보고 치희왕비 구국을 기도하였다

그 노래가 황조가로서 지금 아리랑 민요에서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소리와 일치한다

 

마한은 말,

박혁거세는 마한 사람으로 마한국의 말우는 소리로 종교생활을 하였다

신라 박혀거세는 는 진나라에서 피난와서 마한에서 의탁하고 살았다

마한역시 몽고나 진나라에서 내려온 종족으로 말을 천신으로 신앙하고 살았다

그래서 박혁거세 신라 시조시대는 마한의 토탬신앙으로 말소리를 내면서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오기를 빌었다


신라는 새,

그러다가 동쪽의 진한을 정복하여 토착 한민족 석탈해가 까치에서 태어나고  김알지가 계림에서 닭(금계)가 울며 하늘에서 내려왔기에 김알지 후손 미추왕시대부터 김씨 신라가 되었다

중국신화에서도  소호리 김씨는 새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순으로 왕족이 되었기에   말소리 까치소리 닭소리로 찬송가를 불러야 하는데 김알지 김씨왕족이 집권하여 지금은 닭소리 말소리 까치소리로 내는데 그 소리가 현재 아리랑가사로 “나를(닭) 버리고(말) 가시는님은(까치소리)”와 일치한다

 이런 각국의 종교음악소리를  통일신라시대는 닭소리가 1번으로 김씨 왕국 세력이엿다

그러다가 후백제시대부터 백제신앙체  비들기소리가 1번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후백제 태자 신검이 부왕 견훤왕을 감금하고 궁중악 궁녀와 악공으로 매일 위안시키는 금산사는  태산태수 영역 야서현이고  태인허씨 태수 허사문과 유금필의 호위로 고려에 투항하고 악공은 허사문이 사유화하여 그후에 고려현종이 나주로 피난하다가 태인에서 유숙하고 고려현종의 두왕비로 허사문의 후손이 들어간다

그래서  금산사는 고려 중기 법상종의 대표적인 고승인 혜덕왕사(慧德王師) 소현(韶顯 : 1038, 정종 4~1097, 숙종 2)의 생애를 기리는 탑과 함께 세운 비이다.

혜덕왕사는 태인허씨 후손 인주이씨(仁州李氏) 이자연(李子淵)의 아들로서 가계와 탄생 그리고 출가와 수행을 서술하고, 금산사에 광교원(廣敎院)을 설치하여 유식 전적을 간행한 사실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견훤이 금산사에 남기고간 악공 궁녀는 고려초기 태산태수 허사문 태인허씨 소유로 되고 정읍.김제지역에 막강한 군사력이 있어서

고려 현종왕이 이곳 태산과 나주로 피난하였다 

이후부터 고려는 고려이자겸의 난까지( 태인허씨 후손 인천이씨 이자의 이자겸) 왕궁 가무예술을 장악하고 정읍시 삼산동 음성향(국립국악원)을 두고 송나라 사신맞이로 그곳의 땅이 태인허씨 사당, 고려자기 도요지기 모두 이자겸 부족의 소유지였다

신라와 백제의 악공이 이처럼 인천이씨 이자의 이자겸 세력으로  최충헌 시대까지  음악 가수 무용 시가의 수도로서 송나라사신을

맞이하여 이자겸 사유화되어 후백제궁중악은 정읍 삼산동 음성향에서 정읍이란 이름으로 변경되어 불렀다

 

 

후백제 궁중악은 정읍(井邑)으로 부르고  그리고 신라궁중악은 계림- 동경- 동동,으로 부르다가 조선시대 민속악으로 버려진 것이였으나 국악의 선구자요 계면조 연주가   세조대왕의 충신 유자광에 의하여 천한 한글로 악학괘범을 만든다

유자광은 모친이 정읍 송씨의 하녀로 보이며 두분의 고모가 정읍지역에서 살았다

세조시대부터 성종, 연산군시대 유자광의 음악확충 노력으로 정읍, 동동 민족음악이 완성되었다

유자광의 모친이 이곳의 여자 악공으로  단종왕비 송씨집에서 하녀로 추정되며  그래서 유자광이 악학괘범을  만들려고 애를 섰다 

 중종반정으로 없애버린 것을  영상회상같이 느린소리로 편곡 수제천곡으로 남아있다

정읍, 동동의 토탬 음악은 산수화 화조화처럼 자연의 모방소리여야 한다

신라국은 신라 백제 고구려 토탬순으로 노래하고 후백제는  백제 고구려 신라 순서로 토탬 (비들기 꾀꼬리 닭 말 까치) 우는소리로

애국가를 만들었다

아리랑은 후백제소리, 성주푸리는 신라소리로 자기나라 새소리가 앞에 부르는 것으로 구분된다 

백제가요 정읍사  소리는 유자광의 마을 정읍 옹동면 옷밭골 마을의 논메는 소리가 일부분 유사하다

그리고 옹동면 농악대의 태평소소리로 백제가요 정읍사를  정읍 영원면에서 연주하여  녹화하였다

'도레미파' 궁상각치우 음계가 아닌  삼국시대 국가 신앙 6동물소리 순서로 연주하면 된다

진안농악 영산굿소리, 사물놀이 짝쇠굿, 새타령, 12지신굿소리, 모두 동물소리로 연주한다

백제악기는 동양화 처럼 동물소리 내는  음악이였다

 

후백제는 비들기 백제종교소리부터 시작하여 6새의  토탬찬송가 소리이다

아리랑은 수천년간 동물소리 그대로 지금까지 계승된 백제향로의 관현악 소리이다

아리랑 ,새야새야파랑새야 노래는 비들기소리와 똑같다 

 

    

출처 : 고구려 백제 신라 소리찾기
글쓴이 : notan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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