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한민족史, 중국·아시아 역사 종가집
中 역사 핵심인물은 한민족…원 홀필열, 명 주원장, 후금 누루하치 우리핏줄

▲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
▲ NGO 환경교육연합 고문
세계도 마찬가지다. 식민사관자들을 멸시하고 그들이 쓴 책을 참고하지 않고 버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변과학기술대학에서 기증된 식민사관 역사책을 버렸다는 글을 접했다. 필자는 그나마 우리 민족의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됐다.
러시아를 비롯해 외국의 학자들도 우리한민족의 역사를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유독 우리나라 식민사관자만이 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우리역사를 부정하고 망국적인 매국의 길로 가고 있다. 참으로 비극이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1만년이 넘는 역사다. 환국(기원전 7199~3897), 배달국(기원전 3897~2333), 고조선(기원전 2333~238), 예맥,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마한, 진한, 변한, 고려, 조선, 대한민국으로 이어져 왔다.
필자는 이 우리역사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제32회 고대사역사탐사’ 팀에 한 일원으로 합류해서 상고시대에서 고대시대의 선조들이 살아온 자취를 같이 찾아나셨다. 오늘은 4일째 소감을 말하고자 한다.
이날에는 적봉시(赤峰市)에 있는 적봉박물관, 홍산공원(紅山公園)의 일대에서 예상했던 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중국이 우리 고조선의 흔적을 송두리째 지우며 거란, 여진, 몽골, 만주족을 내세우는 것이 너무 뚜렷하게 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우리 조상의 흔적을 지운 중국문명을 선도한 우리한민족의 남긴 족적은 가는 곳 마다 벅차게 느낄 수 있었다.
선진문화민족 ‘한민족’ 족적 살아 있다
우리한민족의 역사는 일찍이 외적의 강압, 내부의 사대주의자들, 그리고 폭력으로 정권을 쟁취한 자들이 자기비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기만책으로 인해 위조되고 있다.
우리역사 위조의 효과로 그들은 유구한역사의 상반(上半)과 광대한 영역(領域)의 절단(切斷)이라는 세상에 유례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천년의 연대사(年代史)와 한반도의 축소된 민족활동지역으로 한정하려고 무모한 왜곡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 같은 역사왜곡은 자신들의 저질은 폭력을 합리화하고 마땅히 다시 강탈,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제2세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다시 답습하게해서는 아니 되는데 현재 우리나라교과서는 한심하게도 식민사관자들에 의해 이를 답습하고 있다.
이번 답사에서도 확인되듯이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대륙에 먼저 선주(先住)한 민족이며 선진민족으로서 대륙에서 5대문명을 주도하며 활동했던 사실, 민족 특유의 문화를 가지고 그들의 문화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그들은 이를 은폐하고 있었다.
엄연한 역사를 지울 수 없는 데도 중국과 일본은 상고사가 없는 나라이기에 우리한민족이 중국과 일본의 문화전반과 국가구성에 지대한 공덕이 있었음을 철저히 숨기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한민족의 역사는 아시아의 종가(宗家)집으로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중국은 한민족(韓民族)을 옛 부터 이족(夷族)이라고도 하고 동이족(東夷族)이라고 했다. 이는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민족을 ‘오랑캐’라고 하는 것은 명(明)나라 때부터 우리한민족의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성자라는 공자(孔子)도 우리역사를 중국을 내세우는 휘치필법으로 왜곡했으나 그도 늙어서 동이(東夷)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한 것은 우리민족이 얼마나 예의바르고 천손(天孫)으로서의 법도를 잘 지키고 인간을 사랑하며 사상이 건전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만한 중국인들도 이 공자(孔子)의 경서(經書)와 역사서(歷史書)에 “예의를 지키며 겸손하고 양보하기를 좋아하며, 굳세고 부지런히 생산하며, 무용과 노래를 즐기는 죽지 않는 군자(君子)의 나라”라는 예찬을 받은 민족이 우리한민족이다.
그런데 중국은 상고사가 없고 고대사의 불실을 메우기 위해 우리역사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역사기록조차 없애며 동북공정을 하는데 이는 문화민족이면 할 짓이 아니다.
필자가 이번 ‘32회 고조선유적답사팀’에 일원이 된 것은 고조선뿐만 아니라 환국과 배달국의 발자취를 찾으려는 욕구가 작용했던 것이었는데 공자의 경서(經書)와 역사서(歷史書)의 예찬은 거짓이 아니었다. 가는 곳마다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적봉박물관에서의 유물과 홍산공원(紅山公園)과 유물거리, 옹우특기를 지나며 본 사실은 아무리 우리고대역사를 지우고 만주족과 여진족, 거란족, 몽골족을 내세우며 우리역사를 지우려하나 우리의 역사흔적은 빛나고 있었다.
필자는 역사서(歷史書)만으로는 우리역사를 확인 할 수 없어서 직접 우리한민족이 걸어온 역정(歷程)과 지난날의 문물(文物)을 보고 이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함에서 고대문명의 자취를 찾아 답사팀에 참여했다. 이번 참여는 매우 잘 한 일이었다.
우리 역사, 중국·아시아 ‘역사의 종가(宗家)집’
이날 또, 적봉시(赤峰市)에 있는 적봉박물관, 홍산공원, 유물거리, 옹우특기 답사했다. 이 지역은 만리장성의 동북쪽 요서와 요동 지역이며 우리 선조들이 예부터 거주하며 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이곳은 네이멍구(內蒙古區)자치구 츠평시와 라오닝성(遼寧省) 조양시(朝陽市)일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곳이 우리 선조들이 터전을 이루고 놀라운 문명을 일으킨 곳이라 이를 확인한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중국은 우리역사를 지우기 위해 중국건국시조라며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우리 동이족으로 대체(代替)했다. 삼황은 태호복희(太昊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이고 오제(五帝)는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堯)임금, 순(舜)임금이다.
한편 탁록(涿鹿)지구에는 삼조당(三朝堂)을 짓고 자오지 치우제(慈烏支 蚩尤帝), 헌원황제(軒轅黃帝), 신농염제(神農炎帝)가 화하족(華夏族)의 조상이라고 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까지 하우(夏禹)가 자기들이시조라 하다가 지금은 우리 선조들을 시조(始祖)로 모시고 있다. 참으로 웃기는 앞뒤가 맞지 않은 주장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삼황오제(三皇五帝)는 모두 우리 한민족인 배달민족(동이족)이다. 그들은 제멋대로 이리저리 옮기며 우리조상들을 자기조상이라고 하고 있는 것인데 가관이다.
지금 중국의 상고사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이고 중국의 역사는 남쪽 변방의 남만족(南蠻族)이 북상하면서 중국은 춘추전국시대가 되고 이를 통일한 진(秦)나라를 세운 진시황(秦始皇)의 중국통일로 중국역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도 우리한민족이다.
진시황은 고조선의 후예이다. 따지고 보면 은(殷), 요(堯), 금(金), 원(元), 청(淸)은 동이족(東夷族)이고 거란족 여진족(女眞族) 몽골족은 여진족에 속한다. 하(夏), 진(秦), 조(趙), 촉(蜀), 오(吳), 제(齊), 송(宋), 양(梁), 진(陳)등은 모두 고조선의 후예들이다.
중국역사 주인공은 우리 한민족이 주축(主軸)이다
우리가 우리선조의 내력을 밝히는 것에서부터 이에 더해 우리가 선진문화민족으로서 이웃나라와의 문화교류관계를 밝히는 것은 우리역사의 토대를 바로 잡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명(明)은 고려의 후예가 세운 나라이고, 몽골과 금(金)은, 신농(神農)의 후예가 세웠고 청(淸)은 가야(伽倻)의 후예이다. 중국은 홍산문화(紅山文化)의 주역인 예맥도 지우려 안간힘을 다 쓰는데 예맥은 예(濊) 혹은 맥(貊)이라 하다가 예(濊)로 합쳐서 예맥(濊貊)이라 하고 있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예맥에 대해 쓰는 글자이다.
최인(崔仁)선생은 중국인들이 부르는 예맥(濊貊)은 잘못이라 하며, 예맥(銳麥)이라 하고 있다. 예(銳)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의 (군쟁(軍爭)에 예졸물공(銳卒勿攻) 즉, 강병(强兵)을 공격하지 하지 말라고 한 것인데 이 예(銳)와 맹자(孟子-告子章句下-註-)에 맥(麥)을 합친 것이다.
맥(麥-보리)은 내한(耐寒)의 곡(穀)으로서 북방예맥의 땅에서 생산된다. 그런데 한족(漢族)이 입식(粒食)을 곡(穀)이라 칭하고 분식(粉食)을 곡(穀)이라 칭하지 아니하는데 맥(麥)을 분식(粉食)함으로 예맥(銳麥)이 상식(常食)하는 것을 듣지 아니했다 했다.
예맥(銳麥)은 맥(麥)을 상식하면서 강병(强兵)을 거느리고 천하에 횡행(橫行)한 것이다. 예맥이라는 명칭은 예맥(銳麥)의 본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예맥조선은 1천 년 간 중국을 지배한 강국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예맥을 철저히 지워 없애려 하고 있다..
필자는 이번 답사지역 내에 환국(桓國)에서부터 고조선(古朝鮮)에 이르는 북방의 평원과 북만주, 송화강 연안지대에 정착하면서 원주민의 일부와 융합하면서 이곳을 근거지로 해 발전했던 곳을 답사하고 이곳이 고대 우리조상의 터전임을 실감했다.
중국역사 주인공, 한민족 주축(主軸)
환국과 환웅시대의 배달국 환웅까지의 오랫동안의 신시(神市)시대를 거쳐서 단군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민족적 동방이동(東方移動)을 개시했는데 중국인들은 이들을 동이(東夷) 또는 숙신 국(肅愼國) 혹은 예(濊), 맥(貊) 족이라고 일컬었던 것이다.
필자는 선조가 살던 그 일부를 답사하면서 우리한민족이 이뤘던 고대사를 염두에 두고 살펴봤다. 특히 원(元), 명(明), 금(金), 청(淸), 후금(後金)에 대한 역사를 살펴보는데 중국은 이 나라들 특히 만주족을 내세워 우리 고조선역사를 지워가고 있었다.
예컨대, 중국이 세웠다는 원(元)나라는 세계를 절반이나 정복한 나라인데 원(元)을 세운 홀필열(忽必烈)은 단군4세 오사구의 아우 오사달의 후손이다. 1271년 몽골의 국호를 원(元)으로 한다. 원(元)은 중국이 세운 나라가 아니다.
명(明)나라를 세운 주원장(朱元璋)은 우리나라 함경도 함흥(咸興)사람으로서 우리와 피를 나눈 한민족이다. 또한 금(金)나라는 신라(新羅) 말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인 아골타(阿骨打)가 세운 나라로 나라이름을 금(金)이라 했다.
청(淸)나라는 신라 정순왕의 후손이 금(金)나라를 세운 후, 그 후손이 다시 건국한 나라가 청(淸)나라가 아니던가. 그리고 후금(後金)은 청나라의 전신(前身)으로 후금(後金)을 세운 왕은 누루하치로 그도 우리 한민족이다.
그의 성(姓)은 애신각라(愛新覺羅)인데, 이 애신각라(愛新覺羅)라는 뜻은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 한다는 뜻’이다. ‘애신각라’는 김씨(金氏)에게서 분가(分家)해 나간 성(姓)인 것이다. 청(淸)나라의 마지막 황제는 푸의(府儀)도 우리한민족이다.
중국에 세워진 나라는 거의가 우리한민족의 역사이다. 이러한 역사를 보아온 필자가 중국에 고대우리나라역사와 유적을 답사하며 그 실제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인류역사를 제대로 보지 않고 남의 역사까지 손을 대는 중국의 제국주의적 편향성은 중국 중심으로 한 역사왜곡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국이라는 국호(國號)도 우리가 쓰던 국호를 사용하며 진시황이 세운 나라도 지나(支那)인데 조선조(朝鮮朝)부터 지나(支那)를 중국(中國)이라 한다. 이같이 사대주의에 절여있는 우리나라 강단학파들이 문제이다.
중국의 양심적인 학자들도 이를 긍정하고 있다. 중국학자 양계초(梁啓超), 사부아(謝扶雅)등은 중국을 중심으로 위조한 역사를 긍정(肯定)하고 인정하는 역사를 식민사관에 굳어진 학노(學奴)들은 위대한 우리선조들의 역사를 부정하는 죄악을 범하고 있다.
그들도 고대요하문명을 어떻게 평가할지. 진실을 외면하는 죄는 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주장을 보면, ‘중국 중심으로 위조한, 주(周) 무왕이 은(殷)을 멸한 후에 기자를 조선왕으로 임명하고, 기자가 주(周)무왕(武王)의 임명을 받아 조선왕이 돼 한민족(韓民族)을 지배하고 연인(燕人) 위만이 다시 기자조선을 계승해 한민족의 지배자가 됐다 했다.’는 것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무제(漢)武帝)가 위만조선(衛滿朝鮮)을 정복하고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해 완전히 한민족을 지배했다’ 하는데 이는 기자나 위만이 고대 우리나라를 지배 한 적이 없다. 모두 허구의 역사이다. 필자도 이미 이허구의 역사에 대해 이미 밝혔다.
세계학자들도 인정 않는 허구의 역사를 언제까지 이런 왜곡되고 허황된 역사를 말하려는지. 우리민족을 패배와 열등의식으로 몰고 가는 그들의 망령됨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허구의 식민사관을 견지하는 한, 우리의 역사는 바로 설 수 없다.
그들은 세계5대 고대문명을 주도한 우리선조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자랑스러운 고대문화를 이룩한 선조들의 여정을 바로 보고 말하기를 기대한다. 정부도 하루속히 우리의 빛나는 역사를 조속히 제대로 복원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다음에 계속)
본 칼럼은<최태영 ‘한국고대사'‘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단군을 찾아서’. ’최인 ‘한국학강의’, 신채호 저, 박기봉 옮김 ‘조선상고사’. 신용하, ’고조선국가형성의 사회사‘.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김세환, 고조선 역사유적지답사기‘. ’동남아역사 유적지를 찾아서‘. 智勝, ’우리上古史‘-桓檀古記古記, 符都誌의 실상-’. 二十一世紀出版社集團, ’山海經‘. 大連出版社, ‘行走 大黑山’.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임길채 ‘일본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송부웅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유우찬 ‘마드부활과 되마사상’. ‘조선사람의 형성과 기원’. ‘인류학적으로 본 조선사람과 북방주민들’. 홍윤기,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조희승 ‘일본에서 조선소국의 형성과 발전’. 韓昌建 ‘밝혀진 韓민족고대사’. 일본속의 백제 구다라‘. 김순진 ‘아리랑 수리랑’. 南帝 ‘命理속의 哲學’. ‘태백과 압록’. 日本國書刊行會 ‘神皇紀-天皇家 七千年の歷史’.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朴炳植 ‘日本語の悲劇’. 猪幸俣衛 ‘日本古代傳承の謎を解く’. 石井進外, ‘詳說日本史,‘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田畑喜作, ‘高天ケ原は實在した-原日本人の發見-’. 原田實 ‘幻想の超古代史’. 田邊昭三 ‘謎の女王卑彌呼-邪馬臺國とその時代’. 和歌森太郞) ‘大王から天皇へ’. 近江昌司 外 5人著 ‘ヤマト王權の成立’. 上井久義, ‘日本古代の親族と祭祀’. Georges Duby : L'HISTOIRE CONTINUE, 松村剛 譯 ‘歷史は續く’. 坂本泰良,‘明治維新から現代へ’.劉泳,海燕,‘赤蜂博物館’. 黃斌, 劉厚生, ‘箕氏朝鮮史話’ ‘各國別 [世界史の整理] 三省堂發行’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 世界史史料集’,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石井進, 笠原一男, 兒玉幸多, 笹山晴生, ‘詳說日本史’. 西東社출出版部編, ‘日本の古墳,古代遺跡’.외 다수서책을 참조, 본문인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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