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씨 考
안동권씨 추밀공파후 매헌공파로 태산군 입향조는?
안동권씨 추밀공파에 파조는 權守平으로 태산군에 흔적이 있는 분은 파조 權守平에 8세인 權遇부터 구전으로 전하는데 계보를 살펴보면 權守平-權韙-權㫜-權溥-權準-權皐-權僖(1319~1405)-權遇-權採(1399~1438) [권수평-권위-권단-권부-권준-권고-권희(1319~1405)-권우(1363~1419)-권채(1399~1438)] 로 이어지는데 권채와 유자광에 이야기는 좀더 구체적으로 동촌면에 와서 살며 학문을 닦았는데, 기록이 아닌 구전으로 전하는 것이 매우 아쉽다. 이 구전은 스승님이신 권희덕 선생님 상계 집안이야기로 선생님이 누구보다 잘알고있을 것이다.
일재 권채(一齊 權採 :1399~1438)의 아들은 權晟이 있고 손자인 權怡가 곤경에 처하자 외당숙인 무령군 유자광(1439~1512)에 도움을 받는 기록이 있은 것으로 보아 이곳에 전하는 구전이 사실이 근거한다는 것을 알수 있다.
1903년에 권채-권성-權怡(권이) 후손들이 정읍 옹동면 칠전리에 추양단을 건립하였고 1917년에는 실전한 료를 설단을 하였다.
권우에 1째 아들 권조에 묘는 황해도에 있고 2째 아들 권채의 묘는 실전하여 1917년에 옹동면에 설단하였다.
권채-권성-權怡(권이)는 아들 2명 龜元(구원)과 麟元(인원)이 있었는데 권인원이 1507년에 생원급제한 방목에 거주지로 태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龜元은 고향 태인현 동촌면 麥田(칠전)-옻밭골에서 번창하여 살았다.
權龜元(권구원)의 진손자인 권극평(權克平)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최경희 장군휘하로 들어가 2차 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였다. 사세가 급해지자 최경희 장군에 유품을 수습하여 의주 행재소로 달려가 선조에게 전말을 보고하였다. 선조는 공에게 오위도총부 도사직을 내려 호종케 하였다. 공은 이듬해 진주성에서 입은 창독으로 졸하였다. 묘는 고현면 향도동에 있으며 그 아래 제실 율수재가 있다.

1903년에 후손들이 정읍 옹동면 칠전리에 추양단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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