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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30일 오전 10:00
괴산 홍명희
#충북의인물 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흔적을 찾아
#충북 #괴산 으로 떠나봅니다.
(글.사진 장희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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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괴산에 있는 벽초 홍명희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지금까지 네 차례 괴산읍 일대를 그렇게 돌아봤다. 그동안 자연도 바뀌고 사람 사는 공간도 많이 바뀌었다. 지난 6월17일 홍명희가 태어난 홍범식 고택을 돌아보며 옛 생각이 떠올라 옛 사진을 들추며 홍명희를 생각했다. 괴산에 있는 그의 흔적과 이야기를 간략하게 몇 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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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가 태어난 괴산읍 동부리 집
홍명희는 소설 <임꺽정>을 1928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했다. 소설 <임꺽정>은 조선시대 백정이었던 임꺽정을 주인공으로 한 당시 일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잘 나타난 대하소설이라는 평이다. 역사소설 대부분이 왕의 이야기이거나 왕을 중심으로 한 권력투쟁을 그리기 일쑤인데 홍명희의 <임꺽정>은 백성들이 주인공이 된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도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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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희가 태어나고 자란 집은 괴산읍 동부리에 있다. 이 집은 홍명희는 물론이고 그의 아버지인 홍범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 이전으로 올라가면 홍명희의 5대조부터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특히 홍명희의 아버지인 홍범식은 금산군수를 지낼 무렵인 1910년 일본이 강제로 나라를 빼앗자 자결로써 우국충정의 뜻을 남기기도 했다. 홍범식 고택(홍명희 생가) 옆에 그의 뜻을 기리는 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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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식 고택(홍명희 생가)이 지어진 것은 1730년 무렵이다. 그 이후 1800년 대 중반에 증축됐다. 그리고 최근에 보수했다. 이 집은 충북 최초의 만세운동 본거지라는 측면에서도 가치를 가지고 있다. 홍명희는 1919년 3월19일 괴산에서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했는데, 그 일을 준비한 곳이 동부리 집 사랑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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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만세운동유적비와 제월대>
홍범식 고택(홍명희 생가) 앞 다리를 건너 우회전해서 조금 간다. 큰 길 왼쪽에 느티나무가 보인다. 그 나무 아래 괴산 만세운동유적비가 있다. 홍명희와 괴산 사람들이 1919년 3월19일 유적비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시장이었다.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365에 홍명희가 괴산 만세운동을 주도한 이유로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살던 집터가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약 1km 거리에 제월대가 있다. 제월대에 홍명희 문학비가 있다.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신영복의 것이다.
문학비에서 언덕으로 올라간다. 굽이쳐 흐르는 달천이 굽어보이는 곳에 고산정이 있다. 고산정은 조선시대 충청도 관찰사 유근이 지은 정자다. 그는 이곳에 만송정과 고산정사를 지었다. 고산정사는 불타 없어지고 만송정만 남았다. 후대에 고산정으로 불렀다.
홍명희는 제월대를 흐르는 달천에서 낚시를 했다고 한다. 홍명희의 발길이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졌는지, 강기슭 어디쯤에 앉아 홀로 푸르른 산천을 바라봤는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그저 해가 길어지는 오후의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시간이 그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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