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500년 전 신라인들이 보낸 '타임캡슐'일까

도심안 2020. 1. 22. 22:04

1500년 전 신라인들이 보낸 '타임캡슐'일까

노형석 입력 2020.01.22. 18:21 수정 2020.01.22. 20:16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모인
문헌사·고고학 연구자 70여명
소월리 유적 출토 목간 둘러싸고
팽팽한 논쟁·즉석 판독회 열려
전공별 별도 학술행사 관례 깨고
저녁 뒤풀이에서까지 함께 토론
뚜렷한 결론은 내지 못했지만
학제 간 장벽 깬 모처럼의 명장면
지난 18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모인 학계 연구자들이 공개된 경북 경산 소월리 유적 출토 목간 실물을 살펴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신라 사람들이 이 목간에 글씨를 쓴 시점을 7세기보다 더 빠르게 보는 건 곤란해요.”

“무슨 소리! 목간과 같이 출토된 신라 인화문 토기 조각이 6세기 초중반 것인데요.”

땅속을 뒤지는 고고학자와 옛 문서를 살피는 문헌사학자의 입씨름이 팽팽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하지만 그네들 표정은 마냥 즐겁고 들떠 있었다.

지난 18일 토함산이 올려다보이는 경주시 불국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내로라하는 문헌사, 고고학 연구자 7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이 몰려든 이유는 단 하나. 나무 꼬챙이에 90여 자가 촘촘히 쓰인, 옛 신라 관리들의 행정용 목간(나무쪽 문서)을 보기 위해서였다. 실물을 공개한다는 소식에 학자들은 이날 아침 9시 전부터 찾아와 보존액에 담겨 공개된 목간을 미리 보고, 즉석 글자 판독회까지 열었다. 뒤이어 한국목간학회가 함께 주최하는 오후 세미나에 참석해 목간의 내용과 용도 등에 대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전공 영역별로 따로따로 학술행사를 하는 국내 역사·고고학계의 관례로 볼 때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꼬챙이 목간이 어떤 유물이길래 그토록 열광했을까. 이유가 있다. 목간이 구덩이에서 나올 당시 상황과 출토된 유적 자체가 흥미로운 수수께끼였기 때문이다. 목간은 길이가 무려 74.2㎝나 되는 국내 최대 길이의 고대 문서다. 지난해 11월 경북 경산 소월리 능선 자락 유적의 한 구덩이(수혈)에서 ‘펭수’를 닮은, 사람 얼굴 모양의 구멍 뚫린 토기(인면 토기), 시루, 자귀 모양 목기, 싸리 덩어리와 함께 출토돼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소월리 고신라 유적의 107호 구덩이(수혈) 발굴 현장. 지표면 아래 50cm 지점에서 사람얼굴 뚫음무늬 토기와 토제 시루가 드러난 모습이다. 이 토기들 바로 아래에서 대형 목간이 발굴됐다.

나뭇가지 모양의 목간 표면에는 6세기 혹은 7세기 경산 일대 계곡 지역의 저수지 둑과 농토를 상대로 신라인들이 토지 운영과 세금을 받기 위해 단위 면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목간이 발견된 직후 바로 수습해 지난달과 이달 초 목간학회 전문가들과 1·2차 판독을 벌였다. 발견 당시 6면이라고 알려졌던 것이 실제로는 5면이며, 98자가 판독 가능하다는 잠정 결론을 냈다. ‘감말곡’(甘末谷), ‘구미곡’(仇彌谷), ‘내리’(內利), ‘하지시곡’(下只尸谷) 같은 경산 일대로 추정되는 옛 마을에서 논을 뜻하는 신라 특유의 문자인 ‘답’(畓)과 밭을 뜻하는 ‘전’(田)에 ‘결’(結)과 ‘부’(負)라는 면적 단위를 매겨 세금을 걷는 장부로 활용했다는 추정이 나왔다.

신라에서 ‘결’과 ‘부’라는 면적 단위를 매기고 좀 더 정교하게 세금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일본 왕실창고 쇼소인(정창원)에서 발견된 신라 촌락 문서가 나온 시기인 7세기 통일 이후로 봤던 것이 그간의 통설이었다. 그런데 이번 목간 발견으로 100여년을 끌어올린 6세기께부터 이런 토지 평가와 세금 제도가 정립됐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구덩이 펄흙 속에서 목간을 수습할 당시 찍은 사진이다. 글자가 새겨진 길쭉한 목간 몸체 오른쪽 위로 싸리덩어리가 붙어있다. 이 싸리 덩어리의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다. 목간은 본래 다 적고 난 뒤 폐기장에 버려졌던 유물인데, 이 소월리 목간은 1m80㎝ 깊이로 정성껏 구덩이를 판 뒤 다시 펄 흙을 1m50㎝ 높이로 가득 채워넣고 그 위에 사람 얼굴 토기와 함께 묻어 놓았다. 제례 등의 목적으로 묻었다는 정황이 짙다.

흥미로운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꼬챙이 모양의 목간을 당시 관리들이 어떻게 지니고 다녔을까. 지팡이나 지휘봉처럼 세무 관리를 알리는 징표로 들고 다녔을 것이라는 설, 말뚝처럼 논에 꽂아놓고 현장 수첩으로 활용했을 것이라는 설도 나온다. 발굴 당시 목간 옆에 싸리 덩어리가 찰싹 붙어 있었는데 빗자루가 아니냐, 제례를 지낼 때 물을 털어 고수레를 하는 도구가 아니냐는 등의 추측도 쏟아졌다.

사실 소월리 유적 자체가 거대한 미스터리의 보고다. 사람 얼굴 토기와 목간이 나온 구덩이는 일층을 띄우고 이층에 시설물을 들인 고상 창고 터가 그 둘레를 둘러싼 독특한 공간 위에 만들어졌다. 지명에 쓴 계곡을 뜻하는 ‘곡’(谷)이나 방죽·둑을 뜻하는 ‘제(堤)’라는 글자가 다수 보인다는 점에서 제방을 쌓아 원활하게 논에 물을 대어 농사가 잘 되도록 기원하는 공동체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사람 얼굴 토기는 이런 제례 과정에서 신성 공간인 구덩이를 지키는 일종의 상징물 구실을 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18일 학술세미나는 예상대로 확실한 방향이나 뚜렷한 결론은 내지 못했다. 하지만 학자들은 모처럼 학제 간 장벽을 걷고 다양한 상상력의 보고가 되게 한 소월리 유적·유물에 얽힌 말판을 저녁 뒤풀이 자리에서까지 펼치며 마음껏 담론을 즐겼다. 소월리 목간과 인면 토기는 1500여년 전 신라인들이 새해를 맞아 문화재 학계에 보낸 타임캡슐이 아닐까.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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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댓글 1
  • 사기꾼들은무조건얼굴공개3시간전

    ●아래↓해당되면 국회에서 퇴출합시다● 1-군면제자-자녀포함 2-공안판사/공안검사출신 3-이중국적자-자녀포함 4-성폭행 범죄 저지른자-자녀포함 5-음주운전 한번이라도 적발된자-자녀포함 6-성매매 & 마약범죄자-자녀포함 7-사기꾼-자녀포함 8- 부동산 불법으로 재산 취득한자 9-가짜뉴스 기레기 기자 출신자 10-이행하지도 못할 공약 남발하는 자 11-친일파와 그후손들 12,거짓말 밥먹듯이하고 막말 망언 하는자 13-국회 일은 안하고 삭발하고 장외투쟁하는자 14-국회에서 욕하고 발목잡는년놈들~

  • 체이서3시간전

    신라왕족의 조상은 스기타이족..한국말로 흉노족의 일부로 생김새는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백인이었음. 골격이 크고 힘이 세고 말마다 주물용 화로를 싣고 다니며 철제무기를 수리하였음... 이들이 성골이 되고..후에 이들의 후예인 화랑들도 전쟁에 나갈때 백인처럼 보이고자 얼굴에 흰 분칠을 하고 전투에 나갔음... 화랑이 게이여서 화장을 했다라는 것은 친일 사학자들이 만든 거짓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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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UM 계정육포사랑 황장로3시간전

      흉노족이런 사실을 잊지말자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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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KAO 계정2020년1월3시간전

      ■ 토착왜구 ㆍ일베충 갱북 대구세끼들 졸 극혐!!

    • KAKAO 계정최인호3시간전

      우리역사상 없어져야 할 쓰레기 종족들 토착왜구 일베충 대구ㆍ갱북놈들!!!

    • DAUM 계정미개야만족 흉노 씨앗 신라3시간전

      신라의 마복자 풍습은 미개한 유목민 야만 흉노 풍습을 그대로 가져온 거! 신라 마복자 풍습이란? 자기 부인이 임신했을때 상관에게 마누라 대주는 독특한 산라만의 풍습! 흉노 어원: 흉폭한 노예란 뜻! 한민족 전통 계보 부여 발해 고구려 백제의 한민족과 그 근본이 다름!

    • DAUM 계정빛줄기2시간전

      세바스챤! 그게 일본식인지 백제에서 시작해 일본에서 형성 된건지 어찌 확신하냐? 일본의 섬나라가 저절로 인류가 생긴게 아니고 대륙에서 이동되어 정착한 인류인데 왜 자꾸 일본이 먼저다 일본이 처음이다 라고 확신을 하지?

    • DAUM 계정참다래 농장 마을2시간전

      신라인 대다수는 삼한인 출신이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신라 마립간 세력은 스키타이+고구려 부여족이었을 확률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신라 마립간 세력 중 스키타이 세력이 서양에서 신라로 진출한 것이 아니라, 알타이 산맥이 있는 지방에 있었던 아르잔 스키타이 문화 세력과 파지리크 문화 세력이 신라로 왔을 확률이 있는 것 같습니다.

    • DAUM 계정참다래 농장 마을2시간전

      놀라운 내용은 아르잔 스키타이 문화는 약 2900년 전 문화로서 세계 최초의 스키타이 문화이고, 아르잔 스키타이 문화 세력이 서쪽으로는 이집트까지 진출했고 동쪽으로는 신라까지 진출했을 확률이 있는 것 같아요. 고구려의 기마 문화, 복합궁(맥궁) 제작 기술도 스키타이 세력으로부터 배웠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기마 문화, 복합궁 제작 기술을 세계 최초로 만든 민족이 스키타이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 DAUM 계정참다래 농장 마을2시간전

      신라 마립간 세력 중 스키타이 계열 세력의 주요 부계 유전자는 R1a, N, Q 유전자로 추정됩니다. 유전자 검사를 하면 자신이 스키타이 세력이 후손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 DAUM 계정나만의스타일2시간전

      백제 신라는 백인이였지. 다 죽었지만... 신라보다 백제문화가 더 우월함. 왜 백제를 언급하지 않고 신라만 높이는줄 알아? 백제가 일본이거든. 너희가 살고있는 한반도에서 백제인들은 다 떠나거나 죽었지. 멸망

    • DAUM 계정아하2시간전

      오~일리 있어보이는데 검증은?

  • 란수3시간전

    칠지도 원판만 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