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전기 문신 사숙재 강희맹 농학사상 연구(2)

도심안 2019. 6. 28. 02:13

조선전기 문신 사숙재 강희맹 농학사상 연구(2)

박관우 객원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7/11/01 [08:35]

▲ 박관우 브레이크뉴스 객원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강희맹(姜希孟)의 농학사상(農學思想)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문절공(文節公) 이행(李行)을 소개한다면 호(號)는 기우자(騎牛子)로서 고려말과 조선초기에 활동하였던 학자라 할 수 있으며 관직은 예문관대제학(藝文館直提學)을 역임하였다.

 

필자가 문절공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배경은 그가 조선 초기에 농서집요(農書輯要)의 양잠편(養蠶編)의 내용을 요약하여 “양잠방(養蠶方)” 제하의 농서를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였다는 사실에 있다.   

   

사숙재(私淑齋)의 입장에서 볼 때 증조부의 농학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과 더불어 부친의 스승 문절공이 사숙재가 9세가 되는 1432년에 일생을 마치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나 부친의 스승인데다가 “양잠방” 제하의 농서를 편찬한 인물이었기에 사숙재의 농학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이제 사숙재가 왜 농학자인지를 입증하는 그의 저서 “금양잡록(衿陽雜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금양잡록은 강희맹이 경기도 금양현(현재:경기도 시흥시)을 기반으로 당시 농부들과 대화한 내용을 중심으로 농학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기술한 농서라 할 수 있는데 조선초기 대학자로 명성이 있었던 매계(梅溪) 조위(曺偉)가 서문(序文)을 찬(撰)하였으며, 사숙재의 장남 강구손(姜龜孫)이 발문(跋文)을 찬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금양잡록은 이미 간행되었던 농사직설(農事直說)과 쌍벽을 겨눌 정도로 조선전기의 핵심농서였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이와 더불어 사숙재가 편찬한 농서를 추가로 소개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시찬요초사(四時纂要抄)” 제하의 농서라 할 수 있다.

 

본래 “사시찬요”는 중국 당대에 한악(韓偓)이 편찬한 농서인데 사숙재가 이러한 농서를 조선농업 사정에 맞게 필요한 부분만 초록(초록(抄錄))하여 간행한 책이 바로 “사시찬요초”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농학자(農學者)로서의 사숙재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는데 이번에는 문장가(文章家)로서의 사숙재를 논한다.

 

사숙재는 세종의 처조카로서 세조의 이종사촌 동생이라는 특수한 위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사숙재의 모친 청송심씨靑松沈氏)가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에 소헌왕후가 이모가 될 뿐만 아니라 결국 세종이 이모부가 되는 것이다.

 

사숙재는 24세가 되는 1447년(세종 29) 문과에 장원급제한 이후 주부(主簿)를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쳐 세상을 떠나기 전해인 1482년(성종 18) 좌찬성(左贊成)에 이르렀다.

 

그는 경사(經史)와 전고(典故)에 통달하였다고 하며, 특히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과 쌍벽을 겨누는 당대의 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쳤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사숙재 못지 않게 그의 형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도 시와 글씨와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삼절(三絶)이라 불리웠다는 것이다.

 

특히 그림은 작은 풍경화를 묵화로 그렸으며, 더불어 영모화,산수화,인물화에도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였다. 

 

여기서 강희안의 행적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농학사상과 관련된 부분인데 구체적으로 동생인 강희맹과 더불어 공목공의 농학사상을 계승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화훼원예 서적이라 할 수 있는“양화소록(養花小錄)”을 편찬하였다는 점인데 이와 같이 형제가 공목공의 농학사상을 계승한 점에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희맹 못지 않게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강희안이 48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인데 강희맹은 강희안의 죽음에 대하여 상심이 컸다고 하며, 그가 농학에 더욱 몰두하게 된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결론적으로 사숙재 강희맹은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자로서 “금양잡록”과 “사시찬요초”제하의 농서를 편찬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가정 서거정과 쌍벽을 이루는 당대의 탁월한 문장가였다는 것이다. pgu77@naver.com

 

*필자/문암 박관우.브레이크뉴스 객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