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정도전’의 배경이 된 봉화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찾아서 靑 山 문 화 기 행
사극 ‘정도전’의 배경이 된 봉화 청암정과 석천정사를 찾아서
* 청암정을 찾아 떠나는 정자 기행
가장 한국적인 모멘트를 찾아보려는 갈증에서 시작된 산성과 정자 답사 여행! 처음 시작할 때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궁금증과 경치에 빠져 전국 각지를 찾았다. 그런 답사 중에 알게 된 역사적인 사실과 만약 지금이었다면 하는 가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또한 정자를 찾으며 느낀 오묘한 진리는 모두 자연친화적이며 정치와 이념을 초월한 낙향과 청빈낙도를 보았다는 점이다. 유배지나 고향에서 지역 주민들을 가르치고 배움을 주는 역할을 했던 정자는 선비들의 풍류와 시를 읊었다는 고정 관념을 깨는 계기도 되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정자 형태가 큰 차이가 있다는 것과 당대 유명인사들의 시와 글씨를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새로웠다. 도시 문화와 서양 문물의 빠른 전파는 우리들 고유 미풍양속을 너무도 급격하게 변모하게 만들고 있다. 변화의 시대에 우리 고유의 정취와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정자 투어는 뒤늦게 내게 준 보배로운 여행이다. 문득 주말에 보는 정통 사극 정도전의 배경에 시선이 꽂혔다. 정몽주와 정도전이 고려의 흥망성쇠와 조선의 개국을 놓고 설전을 벌이던 장소가 너무도 아름다운 정자의 형태로 다가왔다. 책자를 찾아보니 먼 봉화의 청암정이었다. 상주의 몇 정자를 기억했던 여정이 봉화까지 내달렸다. 상주와 예천 그리고 영주를 지나 봉화에 접어드니 낙동정맥 종주할 때 지나쳤던 바깥 풍경이 친숙했다. 봉화읍을 지나 닭실마을로 향한 주변 경관은 소백산 남쪽 지역의 푸근하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봉화 청암정과 닭실마을 원경>
닭실마을과 청암정이 있는 중재박물관 주차장에는 의외의 인파로 소란스럽다. 드라마의 인기로 관광객들이 이 먼 곳으로 몰려든 때문이다. 2대의 관광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로 박물관과 청암정은 난데없는 인파로 복잡하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니 제대로 된 촬영이 힘들다. 어이없어 포커스를 찾아보지만 이내 단념하고 주변과 정자를 세세하게 살핀다.
<청암정 입구>
酉谷先公卞宅寬(유곡선공변택관) 선공이 닭실에 집터를 점지하니 雲山回復水灣環(운산회복수만환) 구름 걸린 산 둘러 있고 다시 물굽이 고리처럼 둘러있네. 亭開絶嶼橫橋入(정개절서횡교입) 외딴 섬에 정자 세워 다리 가로질러 건너도록 하였고 荷映淸池活畵看(하영청지활화착) 연꽃이 맑은 연못에 비치니 살아있는 그림 구경하는 듯하네. 稼圃自能非假學(가포자능비가학) 채마밭 가꾸고 나무 심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능했고 軒裳無慕不相關(헌상무모불상관) 벼슬길 연모하지 않아 마음에 걸림 없었네. 更燐巖穴矮松在(경인암혈왜송재) 바위 구멍에 웅크린 작은 소나무가 激勵風霜老勢盤(격려풍상노세반) 풍상의 세월 격려하며 암반 위에 늙어가는 모습 더욱 사랑스럽구나.
퇴계 이황이 청암정을 읊은 시인데 정자와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퇴계는 충재를 존경도 했지만 충재의 증조부가 퇴계 외조모의 외조부여서 서로 친숙한 관계이기도 했다. 봉화에서 제일의 양반촌으로 닭실을 꼽는다고 한다. 닭실(酉谷)은 안동 권씨의 충재 권벌이 자리 잡은 후 400여 년간 후손들이 살던 곳이다. 이곳은 충재가 지은 청암정과 큰 아들인 청암 권동보가 충재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석천정사가 있는데 울창한 소나무 숲과 아름다운 암석으로 경관이 좋다.
<청암정>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경주의 양동, 안동의 내앞(川前), 풍산의 하회와 함께 삼남 지역의 4대 길지로 꼽고 있다. 충재는 안동 도촌에서 살다 정암 조광조의 기묘사화로 파직 당한 후 예전 삼척부사 시절 마음속에 두었던 봉화 닭실로 옮겨 살았다. 충재는 조정에서 다시 부를 때까지 15년간 세월을 보냈는데 중종 26년(1526) 무렵에 청암정을 짓고 경학(經學)에 몰두하며 10년 동안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사적 명승 제3호로 지정된 청암정은 거북처럼 생긴 암반 위에 춘양목으로 건축한 정자로 영남 최고의 정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거북 암반 주변에 연못으로 둘러져 있고, 바로 옆의 종택 뜰에서 정자로 건너가는 돌다리가 운치가 있다. 주위에는 노송, 느티나무, 향나무, 단풍나무의 고목들이 수백 년 세월을 보여주며 이 풍광은 계절에 따라 청암정의 풍광을 빛나게 한다. 정자에는 퇴계 이황, 백담 구봉령, 관원 박계현, 번암 채재공, 눌은 이광정 등 당시의 명현들의 현판이 즐비하게 걸려 있다.
<거북바위 앞에서 본 청암정>
* 거북바위 위에 지은 청암정
충재는 1518년 6월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임금이 그 자리를 공기(公器)로 여긴다면 그 용심(用心)은 두루 미쳐서 백성에게 은혜를 입힐 수 있지만, 만약 천하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긴다면 사사로운 일만을 생각하고 또 욕심이 일어나게 되어 자신을 위하고 욕심을 채우는 일만 하게 됩니다. …말세의 임금들은 그 지위를 자신의 사물로 여긴 나머지 조금만 급박한 일이 있을 것 같으면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없앴는데, 이는 모두 그 사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강직한 문신으로 이름을 떨쳤던 그는 공(公)을 생각한다면 어떤 사안이라도 군주에게 말해야 하고, 옳다고 생각한 바를 꾸밈없이 말하는 것을 공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인물인 충재는 기묘사화(1519)로 파직당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1526년 봄 독서당으로 3칸(두 칸은 온돌 방 한 칸은 마루)짜리 ‘충재’를 지었고, 같은 해에 그 서쪽 옆 거북처럼 생긴 바위 위에 정자를 완공했다. 정자를 처음 지었을 때는 온돌방을 넣고 이름도 ‘구암정사(龜巖精舍)’로 했다. 그런데 온돌방에 불을 넣자 바위가 소리 내며 울어 괴이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한 스님이 들러 이야기를 듣고는 이 바위는 ‘거북’이라서 방에다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이 등에다 불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바위가 우는 소리를 낸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아궁이를 막고 바위 주변을 파내어 못을 만들었더니 괜찮아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충재는 후일 다시 벼슬길로 들어섰으나 죽음은 결국 유배지에서 맞이했다. 정자 이름 구암정사는 후일 청암정으로 바뀌는데, 청암은 충재의 큰 아들 권동보(1517~91)의 호다. 청암정은 커다랗고 넙적한 거북바위 위에 올려 지은 丁자 형 건물이다. 주위를 감싸고 있는 연못의 돌다리를 지나 정자에 오르면 사방이 툭 터진 풍광이 다가와 시원한 선비의 기상을 불러오고 호연지기를 느끼게 한다. 연못 주위에는 소나무·향나무·느티나무·단풍·철쭉·국화가 어우러져 멋진 자연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청암정 전경>
<임금이 내린 교지>
<청암 권동보의 시 현판>
<청암 권동보의 시 - 글과 해석>
<퇴계 이황 시 현판>
<퇴계 이황 시 현판의 해석과 글>
<충재 유물관 자료>
<미수 허목의 마지막 절필 청암수석(靑巖水石)>
<거북 바위 위에 세워진 청암정 모습>
<매암 조식이 쓴 청암정(靑岩亭) 현판과 정자의 사계절 모습>
청암정 현판은 남명 조식이 쓴 것이며, 미수 허목이 쓴 청암수석(靑巖水石) 현판이 정자 대청 마루를 빛내고 있다. 허목은 청암정에 가보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다가 88세 되던 해 4월에 청암수석(靑巖水石)이라 네 글자를 써 놓고 글씨를 보내기도 전에 병석에 눕게 되었다. 그 달 하순에 운명하니 이 글씨가 미수의 절필이 되고 말았다. 미수가 현판 후미에 쓴 글은 다음과 같다. 미수는 전서로 ‘청암수석’ 네 글자를 쓴 뒤 그 옆에 작은 해서로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靑岩亭者 春陽權忠定公山水舊墻 洞壑水石最佳稱絶景 僕年老路遠 不得一遊其間 懷想常在高壁淸溪 特書靑岩水石四大字 亦慕賢之心也 識之 八年孟夏上浣台嶺老人書
‘청암정은 춘양 권충정공의 산수에 있는 옛집이다. 골짜기 수석이 가장 아름다워 절경으로 칭송되고 있다. 내 나이 늙고 길이 멀어 한 번 그 수석간에 노닐지는 못하지만, 항상 그곳의 높은 벼랑 맑은 시내를 그리워하고 있다. 특별히 청암수석 네 글자를 큰 글씨로 써 보내니 이 또한 선현을 사모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실을 기록해 둔다. 8년 초여름 상완에 태령노인 쓰다.‘
2011년에는 미수의 13세 종손이 미수의 마지막 작품인 이 ‘청암수석’ 글씨를 보기 위해 청암정을 찾았다. 그는 글씨 앞에 서더니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자리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자리를 가져오자 종손은 자리를 편 후 글씨를 향해 절을 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 종손은 그동안 미수의 절필(絶筆)인 이 작품이 경북 어디엔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으나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그러다가 2011년 가을 그의 친구가 청암정에 들렀다가 미수의 절필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종손에게 연락했고, 이야기를 들은 종손이 청암정으로 바로 달려와 확인한 것이다.
정자에는 ‘청암수석’과 함께 ‘청암정’ 편액이 걸려있다. 해서로 쓴 ‘청암정’은 매암(梅庵) 조식(曺湜·1526~1572)이 썼다. 그동안 누구 글씨인지 정확히 모르다가 2008년에 도난 방지를 위해 청암정과 근처 석천정사의 현판 30여개를 모두 철거해 유물관에 보관하는 과정에서, 편액 뒤를 보니 필자가 적혀 있었던 것이다. 매암은 필력이 뛰어나 당대에 이름이 높았던 인물로 그에게 편액 글씨를 받은 선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석천정사 쪽에서 바라본 청암정 원경>
<석천정사와 현판>
* 석천계곡(경북 봉화군 봉화읍 삼계리 내성유곡)
충재 권벌(1478-1548)의 장자인 청암 권동보 (1518-1592)가 초계군수에 임명되었다가 향리에 돌아와 선지를 계승하여 1535년에 창건한 정자이다. 석천정사는 산곡간의 울창한 송림을 끼고 청류벽에 세워진 청암정과 삼계서원 일대와 함께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및 명승 제3호 지정구역내에 보존 관리 되고 있다. 시원한 석천 계곡을 따라 난 길을 오르면 물길이 돌아 흐르는 내성천을 앞에 두고 정자라고 하기엔 규모가 큰 석천정사(石泉精舍)가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다. 정자는 춘양목으로 지어졌으며 주위는 기암절벽과 노송으로 장관을 이룬다.
<석천정사>
<석천계곡에 있는 석천정사>
충재 권벌 선생의 큰아들인 청암 권동보는 중종 37년인 1542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명종 2년인 1547년에 ‘양재역벽서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아버지가 삭주로 유배되어 1년 만에 죽자, 관직을 버리고 20년 동안 두문불출하였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져 복관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향리에 돌아와 전원의 계곡 위에 석천정사를 짓고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석천정사가 있는 곳은 청암정이 있는 곳에서 논을 가로질러 다리를 건너고 숲을 끼고 돌면 볼 수 있는데, 개울과 면한 약간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개울의 맑은 물과 더불어 그 위치가 절경은 아니지만 깨끗한 맛이 더욱 두드러진다. 건물의 정면은 개울의 경치를 쉽게 볼 수 있도록 판장문을 달아 언제든지 밖을 볼 수 있도록 하여서 개울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또한 난간(익랑)을 만들어 놓아서 단순치 않은 멋이 장식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개울을 지나 송림 밑의 바위에 걸터앉아 석천정사를 바라보니 온갖 피로가 확 풀린다. 계곡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더위를 잊게 한다. 정자들은 한결같이 명승지의 계곡이나 강을 따라 지어 졌는데 선비들의 청빈낙도와 학문에 몰두하는데 제격이었는지 모른다. 많은 글과 시를 짓고 자신의 학문을 완성하기 위하여 노력한 흔적들이 정자의 도도한 자태속에 그대로 묻어난다. 주변은 석천 계곡으로 알려져 있고, 들어가는 길은 닭실마을 쪽뿐만 아니라 봉화읍내에서 나와 울진 쪽 말고 915번 지방도로 이용 삼계교 건너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된다.
<계곡의 바위에 새겨진 지주암(砥柱巖)과 비룡폭(飛龍瀑) 각자>
석천 정사 위쪽 내성천 가운데 큰 바위에 지주암(砥柱巖)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또한 작은 규모이긴 하나 폭포와 방불하여 비룡폭(飛龍瀑)이란 각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도 있다. 내성유곡 석천계곡에는 큰 바위에 청하동천(靑洞霞天)이라는 멋진 각자가 있는데 충재선생의 5대손인 명필 권두옹(1656-1732)의 글씨로 ‘하늘 위에 있는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기암괴석이 많은 석천계곡에는 도깨비들이 몰려와서 놀았고, 이 때문에 석천정사에서 공부하던 서생들이 괴로움을 당하자 권두옹이 바위에 글씨를 새기고 주사칠을 하여 필력으로 도깨비들을 쫒아냈다는 전설이 전한다.
<석천계곡 중간 지점 암벽에 새겨진 명필 권두옹이 쓴 청하동천(靑霞洞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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