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륙 조 선
동으로 양양(襄陽)까지 540리, 서로 풍천(豊川)까지 600리,
남으로 해진(海珍)까지 980리, 북으로 여영(閭迎)까지 1470리,
동북으로 경원(慶源)까지 2190리, 동남으로 동래(東萊)까지 870리,
서남으로 태안(泰安)까지 390리, 서북으로 의주(義州)까지 1140리이다. -
세종실록 지리지 : 경도한성부 기록 - 06.05.21 01:06
양양 : 강원도, 풍천 : 황해도, 해진 : 전라도, 여영 : 평안도, 경원 : 함길도, 동래 : 경상도, 태안 : 충청도, 의주 등등.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한성부의 영역이 서로 풍천까지 600리라는 기록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도 황해도의 풍천이라면 한반도에선 서울에서 황해도가 북쪽에 있어서 스케일이 맞지 않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현 한반도 상황에선 경도한성부의 영역이 들어가기 힘듭니다. 세종실록을 보면 서쪽이 동쪽보다 60리가 더 깁니다. 그러나 여기로 대입하면 서해 한 가운데 풍천이 있었다고 말이 안되는 역사공식이 성립하게 돼죠. 그리고 이렇게 되면 현 한반도 전체가 한성부의 영역이 되는 일이 생깁니다. 나머지는 어디에 넣죠?
한성부가 이렇게 넓었다면 이곳을 포함하는 경기도는 얼마나 더 넓었겠습니까? 경기도 총 영역만 반경이 족히 3, 4천리는 되지 않았을까요?
참고로 조선 성종 때 명나라 사신 동월이 지은 기행서적 조선부에는 조선이 동서너비 2000리, 남북길이 4000리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고려가 동서 2000리, 남북 1500리라고 기록된 고려도경 기록을 참고하면 남북길이가 2500리나 확장된 겁니다. 동서너비 2000리요 송, 명과 강을 경계로 하여 각각 동서로 위치했다는군요.
임진왜란 당시에도 왜가 조선강역을 통과하여 명을 치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겁니다. 명과 왜 사이에 조선의 영토가 있었기 때문에 왜군들이 조선에 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요구지만 당시 정황을 볼 때 왜는 조선의 동남방, 명은 서남방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또한 명분이죠.
그리고 이렇게 되어야만 비로소 선조임금이 서쪽으로 피난가고 왜군들의 진격 방향이 서쪽인 이유가 설명됩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왜군들은 동남방에서 쳐들어와 서북 방향으로 진격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왜군들은 동에서 서로 진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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