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여기 어때!] ‘샘솟는 고을’ 정읍 역사탐방

도심안 2018. 12. 29. 04:03

[여기 어때!] ‘샘솟는 고을’ 정읍 역사탐방

[여기 어때!] ‘샘솟는 고을’ 정읍 역사탐방

전국이 영상이다. 가는 겨울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오는 봄을 마중 나가기도 조금은 때이르다. 이럴 땐 테마여행이 제격. 아이들의 손을 잡고 정읍으로의 ‘시간여행’, 역사탐방 길에 나서보자. 동학농민혁명, 정읍사·상춘곡의 발원지 등 정읍에는 둘러볼 문화유적지가 많다. 게다가 임진왜란 당시 태조 영정과 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용굴이 내장산에 있다. 서쪽 동진평야가 곡창지대를 이루고 동남쪽 내장산국립공원이 자리한 정읍은 역사와 문화·교육의 현장이다. 

호남평야의 유서 깊은 고을 정읍은 내장산의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이 유명하다. 하지만 볼거리는 내장산에만 있는 게 아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의 연원지인 정읍은 그 옛날 역사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다. 

정읍 관광은 동학농민혁명유적지권, 정읍사문화권, 호남지방에서 선비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태산선비문화권, 내장산문화권 등 4대 권역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게 좋다. 시간이 절약될 뿐만 아니라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지를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여정은 동학농민혁명문화권. 신태인에서 이평으로 가는 약 4㎞ 지점, 정읍천과 태인천을 건너는 다리 아래 보(洑)를 쌓은 흔적이 있다. 여기가 한국사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 만석보터다. 

이 터에는 당시 동학농민의 울부짖음을 담아 만석보유지비를 세웠다. 가까이 다가서면 어디선가 그때 그 외침과 서러움이 몰려들 것 같은 만석보유지비. 그 앞으로 끝없이 펼쳐진 배들평야가 보인다. 지평선이 아득히 보이는 넓디넓은 평야는 호남 최대의 곡창지대임을 실감케 해준다. 

만석보터에서 조금 떨어진 이평에는 말목장터가 있다. 동학농민군이 예동마을에 집결해 고부관아로 진격한 곳으로, 고부 점령 후 농민군의 진지가 됐다. 면사무소 맞은편에는 전봉준 장군이 일장연설을 하고 기대어 쉬었다는 아름드리 감나무가 있었지만, 지금은 고사돼 폐목을 방부처리해 동학농민기념관에 전시 중이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 장군이 살았던 고택을 비롯해 황토현전적지, 동학농민기념관 등도 동학 관련 유적지다.

정읍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의 고장이기도 하다. 정읍사는 장사를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부른 노래. 훗날 이 여인이 서 있던 자리의 바위를 망부석이라 불렀다.

정읍시내에서 전북과학대 앞을 지나면 정읍사 발원지다. 이곳에 6만7천여평 규모로 조성된 정읍사공원에선 망부상을 비롯해 정읍사여인 일대기 조각상, 사우, 노래비 등을 만날 수 있다. 절절한 부부의 정을 읊은 정읍사는 후세에 귀감이 돼 그 뜻을 기리는 행사가 매년 이곳에서 열린다. 

정읍시 북동부에 자리한 칠보는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賞春曲)의 마을. 불우헌 정극인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칠보로 내려와 후학을 가르치며 ‘불우헌곡’ ‘불우헌가’ ‘상춘곡’ 등을 지었다. 또 1475년에 마을 친목계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시행된 고현향약이다. 마을 뒷산에는 그의 묘소가 있다. 

칠보는 정극인과 더불어 최치원·이항·최익현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 낸 인재의 고을이기도 하다. 칠보면 무성리에 자리잡은 무성서원은 합천군수로 떠나는 고은 최치원을 흠모한 나머지 생사당을 세우고 태산사라 부른 것이 시초. 

인근 산외면 오공리에는 김동수 고택이 있다. 아흔아홉 칸의 집으로 불리는 조선상류층 가옥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에 터를 잡은 이 가옥은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이 1784년에 건립했다. 바깥행랑채,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호젓이 서있는 오래된 향나무가 가옥의 역사를 대변해 준다. 

최치원 선생이 태산태수로 재임 중에 풍월을 읊었던 정자로 알려진 피향정을 비롯해 옥정호 섬진강수력발전소 등도 태산선비문화권의 대표적 볼거리다.

정읍의 마지막 여정인 내장산은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명산. 내장산은 ‘가을 단풍, 겨울 설경’이 유명하지만 때가 아니라고 섭섭해할 필요가 없다. ‘용이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용굴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기 때문이다. 

용굴은 내장사에서 신선봉 방향으로 가다 까치봉으로 오르는 산벽 위에 있다. 굴이라 하기엔 그리 크지도 넓지도 않은 용굴의 역사는 임진왜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왜군이 금산에 침입해 오자 태인현 출신의 손홍록과 안의 두 선비가 참봉인 오희길과 함께 조선 태조의 영정과 왕조실록을 전주에서 옮겨 1년간 난을 피했던 곳이 바로 용굴이다. 당시 이름도 남기지 않은 주민 100여명이 합세해 밤낮으로 영정과 왕조실록을 지켰다 하니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왕조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용굴을 코앞에 두고 오르는 가파른 철제 계단이 옛 선조들이 이곳을 ‘보물창고’로 택한 이유를 짐작케 해준다. 

용굴 인근에는 볼거리가 많다. 선녀들이 금선폭포에서 목욕을 하는데 속인들이 볼까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기름을 발라서 미끄럽다는 ‘기름바위’가 있고, 신선들이 신선봉에서 천신제를 올린 후 등천했다는 ‘신선문’이 등산객을 반긴다.

또 용굴에서 100m를 더 오르면 태곳적 신선들이 목욕을 했다는 금선폭포가 있다. 높이 18m에서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수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 속까지 후련해진다.

〈정읍|글·사진 윤대헌기자 caos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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