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1월 소성지서에 잡혀있던 만수리 신복균 등 주민들이 인근 야산에서 총살당했다. 소방지서 업무를 보조하던 청년방위대원 노씨는 잡혀 온 부역 주민들을 저녁에 지서 부근 야산에서 총살했는데 초기에는 10여 명을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고 한다. 전체 희생자 수나 희생당한 다른 주민들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애당리에서는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희생된 김보현의 동생 김석현은 국군 수복 후 도피하다가 체포되어 정읍경찰서에 감금되었다. 이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옹동면 주민들이 9·28 수복 후부터 1951년 4월경까지 옹동지서에 의해 희생되었다. 특히 옹동지서 백순경은 대낮에 동네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하거나 밤중에 술을 먹고 만취상태에서 매정리 정동마을 치안대 건물에 잡혀 있던 주민들에게 난사해 15명을 사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옹동지서를 돕던 청년방위대원 박씨는 치안대로 활동하면서 백 순경의 지시로 15구가 넘는 시신을 직접 매장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치안대원 왕씨에 따르면, 백순경이 지서에서 풀려나오기로 되어 있던 10여 명의 청년들을 정동마을 치안대 사무실에서 사살했다고 한다.
1951년 1월 9일 산성리 삼리마을 이장 집에서 백 순경과 술을 먹던 중 채영달이 다른 주민들과 함께 총살당하였다. 한용수 등 6명은 1950년 12월 27일 해질 무렵 옹동면 산성리 우동마을에서 치안대원들에게 끌려가 치안대에 구금되어 있다가 실종되어 2-3개월이 지나서 치안대 인근에서 총살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최성대는 1951년 3월 마을에서 옹동지서 백 순경에게 총살당했다.
1951년 2월 18일 입암면 신정리 김영출과 김위도 부자가 철도경찰에게 끌려가 희생당했다. 부자는 집에서 가마니를 짜던 중이었고 군령지로 연행되어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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