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 정읍 옹동면 이야기 정읍 고향이야기
옹동면은 본래 태인현 옹지면과 동촌면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합쳐져서 옹동이라 하고, 정읍군에 편입되었다. 옹동면의 규모는 39.88평방미터이며, 7개리 32개마을 55개반에 1210세대 3160명이 살고 있다.(자료출처 2004년 9월 정읍소식21)
비봉리는 비봉산 아래에 자리하며, 풍수의 대가 옥룡자 선생께서 답산가에 비봉귀소를 논한 곳이기도 한데 아직도 비어있어 찾는이가 가끔있다 한다. 수암 마을은 수레골, 수약동이라고 하는데 전에 수약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마을 앞에는 본시 칠성바위가 있었으나 일제시기에 도로를 개설하고 농토를 정비하면서 땅 속에 묻었다고 한다. 마을엔 600년된 나무가 있어서 할머니 미륵과 상여 바위와 함께 당산제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아랫마을 화장이란 곳에서 수천석을 보유했던 덕인이 있었으며 인물란도 차관이라면 내놓을만 하다.
산성리는 산성이 자리했던 산성산 아래에 자리하며 대칠 마을엔 모충사와 학윤당이 있다. 태인의 동남쪽에서는 가장 먼저 촌락을 이룬 곳이 옻밭골인데 그 골짜기에 옻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도 조자손 입수가 잘되고 청룡, 백호가 얼싸안고 동진강 흐르는 물은 마을을 휘감는듯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으며 근세의 인물란(국회의원, 청장, 부지사, 고급 공무원다수)도 빠지지 않는 마을이다. 삼리에는 불세출의 전설이 전해지며 한때 면 소재지가 있던 곳이며 현재 사찰이 있어 신선이 머무는 것 같이 산세들이 지저귀며 휴양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며 갈매기 혈이 있어 갈매라고도 부른다.
매정리는 매당과 정동에서 한자씩 따서 부르는 이름이며. 내동마을은 350년 묵은 정자나무 두 그루와 300년 전통의 당산제가 있으며, 정동마을은 매정리의 중심을 이루니 마을 앞에 12 그루의 정자나무가 있어 십이정이라 고 불르기도 하며, 수질이 좋아 옹동 양조장이 자리하고 있다.
용호리의 용소골과 범호골을 합쳐 용호리라고 하였고, 용과 호랑이가 살던 지역이라고 하며. 시인이 나와 신인 문학상을 받기도하였다. 송월 마을은 "솟톤"이라고 부르며 재 기슭에 천연적으로 된 솥 모양이 있어 솥탄재라고 하며, 비서에 솥이 들썩이면 미륵이 출세하며, 태인(태인현일때)에서 큰 인물이 나와 결실을 보며 또 땅 속에 옹기를 묻어(옹자는 항아리 옹) 사람을 나오게 한다하셨고 이제 굴이 뚤리여 솥이 움직였스니, 천지에서도 춘생추살이 있고보면 천하대세 징조가 상 씨름판이 임박하였스니 혼란시기에 움막에서 사람이 나와 광제창생하는데 힘이 될줄안다.
상산리는 상두산 밑에 있으며 상산마을, 영삼마을, 저상마을, 상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영삼마을은 영산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절골 밑에 신령들이 마시는 영험한 샘이 있어 주민들이 장수하였다고 한다. 저상 마을엔 본래 닥나무가 많았는데 지금은 숙지황이 품질이 좋다고 하며,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마을 한가운데에 개구리 바위가 있다.
오성리는 두립 마을과 제내 마을, 일리와 작소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1번국도에서 갈라져 옹동면소재지로 가는 길 쪽에 자리하며, 오성천이 흘러내려 용호천과 합류하는 곳이다. 그리고 제네 마을은 이름과 같이 방죽안 마을이며 산세가 이리저리 휘감아 마을 인심이 좋아 산세와 같이 협동심이 유달으며 인물란도 고시 합격자가 다수이며 법조계 차장까지 있다면 이곳도 자랑할만한 마을이다.
칠석리는 일곱개의 마을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되골(칠석),시목, 농원, 성칠마을 고인돌과 전설이 있고 그 중에서 외칠과 내칠은 옛 능향터라고 하는데 밝능향을 외칠이라고 하며, 안능향을 내칠이라고 하며, 고려의 태조 왕건은 수많은 정략 결혼을 통해 호족들과 맺어졌는데 이곳 능향에는 왕건의 여인중 하나가 묻혀있어 고려 시대에 능향이 자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 왕조의 서슬을 피해 왕씨족의 한부족이 이곳에 은둔하여 살았고, 지금도 그 후손들이 상당 수 살고있어 매년 능에서 대제를 올리고 있다.
성칠 마을은 칠석리의 중심이며 마을이 배(舟)의 형국이라서 마을안에 우물을 파지 못하도록 하였고, 지나던 스님이 가르쳐준 마을입구 논 가운데 있던 우물 하나로, 전체 마을이 물을 마시며 생활하여 왔는데, 1998년 경지 정리로 그 우물터가 없어졌고, 마을옆 남쪽 고인돌이 있스며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위치를 갖고있는 마을은 고인돌이 있을만큼 전통이 있는 터 이었던 것이다. 고인돌은 마을 맨 윗편 낮으막한 야산에 자리하고 있스며,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그 산은 정상부가 평탄하였고 그 평탄지가 흐트러져 동서로 갈라지는 곳에서 서쪽으로 기우는 양지바른 곳에 고인돌이 있다.
외칠 마을은 7개뜸이 있으며 그 중 큰동리는 앞 말이라하여 말 형국으로 냇가를 향하여 엎드려 물을 마시는 형국이고 그 다음은 뒷 말이 그렇고 마을 중심지이며 회관이 있고 또 덕문터(작소터), 쌍갈마가 있어 태인면 쌍갈마(독양동)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마을에 공동 건물은 앞말에 모정, 덕문터에 모정 중간에 회관이 있으며 앞말 모정은 서기1940년 음 6,19일 태풍으로 무너지자 곧 바로 마을민들이 협조하여 다시 모정을 건축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옹동면은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어 상두산이 넓다랗게 자락을 펼치고있는 가운데 산성산과 비봉산이 옹호하고 있스며 서쪽으로는 동진강(태인천)이 앞을 지켜주고 있고, 용호천이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데 냇가 어디에나 물이 많아서 한파가 심해도 흉년을 모른다고하며, 또한 옹지면이라고 불으던 곳에 지하에 연못을 파 물을 저장하고 그 위에서는 수답을 이루고 물이 항아리 속에 물을 담그어 그 물로 농사를 짓고 수세를 주고 있음이 풍수지리로 지명이 옹지면(瓮池面)인데 글자 그대로 연못 항아리라, 이렇듯이 산과 물이 풍부한지라 일찌기 문명이 정착한 것으로 여겨지는 옹동면에 선사시대의 유적이 없다면 아니될 일이며 풍수지리의 지명이 헛되지 않아 각 지역이 운수 돌아닿는대로 인물이 배출할 것이다.
부언 하고픈 말은 지구 전체가 사방 250센치 간격에 사방 70센치의 네모가 있는 맥을 자기맥(자기혈)이라고 하여 모든 천체가 그리하겠지만 이리저리 얽혀있으며, 풍수지리로 말하면 중국 곤륜산이 세계의 주산이며 백두산 - 금강산 - 모악산 남서쪽 장방 팔십리 후천 오만년 천하대지라고 하며, 석가님께서도 미륵이 출세하여 세상을 구하고 제도한다 하시니, 예수교 성서 요한 계시록에도 해돋는 나라 흰옷 입은 자들이 세상을 구하며, 증산께서도 만국활계 남조선이라 하시며 금강산 일만이천 봉정기 뽑아 만이천 도통군자 나온다고 하신다.
혈을 다시 논하자면 한국을 중심으로하여 곤륜산 주산으로해서 백두산 입수하여 일본을 자측 내청룡하고 외청룡 아메리카하여 우리나라를 잘 감싸안고, 우쪽으로 중국을 내백호로하고 유럽쪽을 외백호로하여 잘 옹호하고 있스며 안산을 제주, 필립핀, 오스트라리아 하면 이만하면 천하 대명당이 아니겠소.
한국에서도 전북 서남쪽으로 기운이 쏠리고 있스니 전북지방 꼴치 지방이라고 많은 이들이 말하는데 환경적으로는 으뜸 고을이라 가장 복받을 고장이오며(청정지역) 지금은 대자연(우주일년 십이만 구천육백년)이며, 사계절로 나누면 가을 백양기라 가을개벽이 올때이니,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사람마다 그날의 행한일을 수첩에 기록하여 잠든사이 천상에 보고하니 착하고 선한 사람을 씨종자로 선정 할 것이니 욕심부리지말고 자비,사랑으로 배려하며 덕을 쌓아가며 사노라면 천사들도 기록한 책자를 꺼내고 착한사람 찾을 때 그 속에 적어있기를 빕니다. 우리 산성초등 동문들의 가정에 항상 좋은일만 있기를.. (다음까페에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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