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문제는 '공룡이 되어서 생긴 문제'와 '공룡이 되지 못해 생긴 문제'로 나뉠 뿐이다."
▲ 청어람아카데미가 <다시 프로테스탄트> 책 출판 기념 좌담회를 열었다. 최규창 대표, 조현 기자, 김형국 목사, 양희송 대표(왼쪽부터)가 패널로 나와 기독교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1년간의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프로테스탄트>라는 저작과 함께 돌아온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는 현재의 한국 기독교는 기후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공룡과 같다고 말한다.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라는 기존의 교계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멸종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양희송 대표는 이러한 진단과 함께 모두가 공룡이 되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생태계로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청어람아카데미는 11월 19일 서울 명동 청어람 소강당에서 양희송 대표가 주장하는 개신교의 새로운 생태계가 가능한지를 두고 좌담회를 개최했다.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패널로는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디자인 중인 김형국 목사(나들목교회), 외부자의 시선으로 개신교를 바라보고 있는 조현 종교 전문 기자(<한겨레>). '나는 꼼수다' 현상을 통해 개신교 내부를 성찰한 최규창 대표((주)포리토리아,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가 함께했다.
▲ 양희송 대표는 좌담 전 30분가량 신간 <다시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강의했다. 양 대표는 교계 패러다임을 벗어나 기독교 사회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역설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교회 회복이 먼저냐, 새로운 생태계가 먼저냐
패널들은 양 대표가 제안한 생태계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에는 동의했지만, 그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특히 교회론을 두고 목회자와 비 목회자의 입장은 달랐다. 김형국 목사는 여전히 교회 회복에 방점을 두었고, 양희송 대표와 최규창 대표는 개별 교회의 회복을 넘어 구조의 변화, 새로운 생태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김형국 목사는 "교회 개혁을 지속하지 않으면 생태계가 바뀐다고 해도 그곳에서 일할 주체는 없게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김형국 목사는 한국교회가 처해 있는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라는 고질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굳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김형국 목사는 "패러다임이 바뀌려면 혁명이 일어나야 하는데, 변화는 지금의 목회 현장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생태계의 변화 이전에 교회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김형국 목사는 주장했다. 교회 내부에서 개혁이 일어나야 새로운 생태계에서 일할 사람도 생긴다고 했다. 김형국 목사는 "중소형 규모의 건강한 지역 교회를 만들고 나서 구조를 변혁해야 한다"며 "개혁의 첫 단계인 교회에 더 천착하고 치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중·소형 교회인데 매우 건강한 교회가 꽤 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규창 대표는 개 교회의 변화보다는 구조의 변화에 방점을 두었다. 한국교회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목회자는 많지만, 문제는 그대로라고 했다. "구조는 늘 자기 나름의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기에 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기존 패러다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 최규창 대표는 "교회가 살아남기 위한 생태계의 변화에는 반대한다"며 "성경적이고 이상적인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양희송 대표도 "좋은 교회가 나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목회적 모델을 만들어 내는 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개신교의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예외의 사례는 새로운 스타 목회자를 만들어내는 데 그칠 우려가 있고, 구조의 문제를 바꾸는 데도 제한적이라고 했다. 양희송 대표는 "구조의 문제는 구조의 변화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풀어 가야 한다"며 "사례 연구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생태계 이끌 새 주체는 가나안 성도?
논의는 새로운 생태계를 이끌어 갈 새 주체에 관한 이야기로 흘렀다. 조현 기자는 "성공한 목회자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못 박았다. 그가 취재 현장에서 만나는 성공한 목회자는 하나같이 모범적인 인간상과는 괴리가 있다고 했다. 조현 기자는 "큰 교회의 목회자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며 "성질 급한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큰 교회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황폐하지 않게 우리를 지킬 것인지를 성찰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규창 대표도 "생태계에 대한 논의는 누군가의 선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죽고 사는 문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한국교회를 비판하지만, 정작 그 비판이 개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생태계의 변화가, 공룡이 된 한국교회가 생존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성경적이고 이상적인 생태계를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한국교회가 살아가겠다는 것인지를 잘 분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조현 기자는 대형 교회 목회자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마지막으로 양희송 대표는 새로운 주체의 가능성을 '가나안 성도'에게서 찾았다. 가나안 성도는 교회를 출석하지 않는 성도를 일컫는 말로, 이유를 가지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말한다. 양희송 대표는 "이들을 교회 이탈자나 탈락자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변방과 외곽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잘 들여다보아야 생각이 창의적으로 열리고 사회적 상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