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교육의 회고와 전망
Ⅰ. 신학교육의 이념 Ⅱ. 신학노선 Ⅲ. 신학교육의 전망
1901년 조선 평양에서 창학되어 금년 2001년에 서울에서 10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장신대가 어떤 학교인가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그 신학교육의 정체성과 함께 그 신학과 신학노선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 간하배(Harvie M. Conn)는 특히 평양신학교의 역사와 신학은 더욱 연구를 필요로한다고 지적하고, "...이 유명한 학교에 대하여 진지한 연구논문이나 책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간하배, 한국장로교 신학사상, 실로암, 1988, 11쪽.
이 강연에서는 100년의 역사 속에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장신대의 신학교육의 이념과 그 신학의 입장을 살펴보고, 새 천년 21세기를 전망하면서 장신대의 책임과 사명을 다짐하고자 한다. 물론 장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를 만들어온 사람들(특히 이사회와 교수, 학생, 직원들)과 사건들, 도서관과 시설들, 재정적인 운영실태에 관해 아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또 장신대가 한국 최초의 신학교이며,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직영의 교단신학교로서 한국 장로교회와 맺어진 역사적 상관관계나 해외의 동역교회의 신학교들 및 에큐메니칼 기구들과의 교류관계, 국내외의 선교활동 그리고 국가 민족의 역사와 사회와 문화 등 다방면에서 수행한 직-간접적인 역할들도 고려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장신대 100년사와 관련된 이러한 자세한 내용들은 장신대 100년사 저술(대표집필: 김인수, 2002년 출판예정)에 맡기고, 이 강연에서는 장신대의 신학교육과 신학노선을 이해하고 21세기 장신대 신학교육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데 국한하고자 한다.
Ⅰ. 장신대 신학교육의 이념과 정체성
무릇 교육이념은 교육의 의지를 드러내는 마음이고, 그 마음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것이 목적이다. 그러므로 이념은 생각이고, 목적은 이 생각을 실현하려는 행동강령이다. 또, 그 행동강령을 실행하기 위해 제시된 구체적 방안이 목표이고, 그 목표달성을 위해 실제적으로 마련된 실천적 수단과 방법이 학제와 교과과정이며, 그 교육의 현장은 교수와 학생들에 의해 성립된다. 그러므로 교육의 이념과 목적, 목표와 학제와 교과과정은 상호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일체성을 이루게 되고, 그 일체성을 통해 나타나는 교육의 정체성은 그 교육의 성격과 방향성을 드러내게 된다.
장신대의 역사적 창학과 100년간 장신대 신학교육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도록 위탁받은 사람들의 소명에서 유래한다(살전 2:4; 요 8:12; 마 28:29-30; 행 1:8 등). 2001년 현재 장로회신학대학의 설립목적은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에 입각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직할 하에서 성서적 신학에 입각하고 장로회신조와 헌법에 기준하여 교회의 지도자와 교역자 양성을 위한 고등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
) 장로회 신학대학교 학칙 제 1조(목적) 참조.
이 설립목적과 연관하여 장신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그 교육이념으로 내 세운다. 이러한 이념과 설립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주지하기 위해 장신대는 각 과정에 따라 교육 목적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정하고 있다.
·대학 : 국가, 사회 및 교회에 봉사할 지도자와 교역자의 양성
·신학대학원: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봉사할 목회자 양성
·대학원: 교회와 사회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학자와 지도자 양성
말하자면, 장신대 신학교육 목적은 소극적으로는 교회가 필요로 하는 목회자와 교역자를 양성하는 것에서 나아가 적극적으로는 한국과 아시아와 세계를 향해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 구현의 역군이 될 인재, 지도자, 학자를 양성하려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을 양성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 다시 각 과정별 실천 교육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다.
·대학 : ① 경건의 훈련 ② 학문의 연마 ③ 복음의 실천.
·신학대학원 : ① 경건훈련을 통한 교역자의 인격(태도) 함양 ② 국내외 교역 현장을 고려한 신학적 지식 습득 ③ 교역의 전문기술과 창의적 능력 개발.
·대학원 : ① 교회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각 전공 분야에서 학문 적 수준을 향상시키고 전문적 능력 배양 ② 이론과 실제를 병행하는 교육으 로 심오한 학문 탐구 ③ 각 전공 분야에서 현장과 연계되는 교육으로 교회 와 사회에 효율적으로 기여 ④ 교회와 사회의 내일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미래 지향적인 교육 촉구.
요컨대 현재 장신대의 교육 목표는 두 궤도로 집약되며, 그것은 ① 경건과 ② 학문의 훈련이다. "경건과 학문"의 용어는 장신대 학교 마크에 라틴어로 새겨져 있으며(pietas et scientia), 이것은 1559년 개혁자 쟝 깔뱅이 제네바 아카데미의 학훈으로 삼았던 것을, 1971년부터 당시 이종성 학장이 주도하여 교수회와 교단 지도자들의 동의를 얻어 장신대의 학훈으로 채택한 것이다
) 1997년 2학기 교수 세미나 자료집: 이형기, "장신대 신대원의 교육 목적과 신학의 방향은?", 1997, 8월 29일, 2쪽.
장신대 학교 마크에는 라틴어로 널리 알려진 또 다른 유명한 구절이 새겨져 있는데,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영광이 하나님께만)"이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린다는 이 사상 역시 깔뱅 신학의 핵심 사상인 동시에 개혁교회 전통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어로서, 장신대는 여기서 그 신학교육의 성격이 깔뱅의 신학교육전통과 개혁교회와 신학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학교육의 이념, 목적, 목표를 통해서 장신대의 존재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고 하겠다
) 장신비젼 21세기, 1997-2006, "마크 설명"과 교육 이념, 목적, 목표의 체계도 참조.
학제는 현재 4년제 대학부(신과, 기교과, 교음과) 과정을 두고있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생을 받아서 3년 간 목사 후보생 교육을 하는 교역학 석사(M.Div.)제도를 1962년부터 한국 신학교사상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교과과정도 현재 구약학, 신약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기독교와 문화, 일반학, 실천신학, 선교신학, 기독교교육학, 교화음악학으로 독립하여 세분화함으로써 교육목표의 효과적인 성취를 위해 노력해왔다. 대학의 개설강좌 수가 110 과목(필수 69; 선택 41)이며, 신대원의 경우는 80 과목(필수 28; 선택 52)이다. 대학원에는 각 과의 석사과정, 목회학 박사 과정(맥코믹 신학교와 공동), 신학박사 과정이 설치되어있다.
) 자세한 내용은, 2001-2002 장로회 신학대학교 요람, "교육과정", 181-279쪽 참조.
2001년 경상예산이 135억원에 새로운 건물과 시설도 확충되었고, 전임교수 47명, 직원 54명, 이번 학기 재적학생 총 수가 2,889명에 달하는 신학교로 발전했다. 그 중에 여학생 총 수가 687명이다. 1992년 총회가 여성안수를 허락함으로 신대원에서 여학생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M.Div. 과정의 이번 학기 남학생 수는 614명, 여학생 수는 121명이다). 외국인 학생도 44명이 재학하고 있다. 이상조 기념도서관은 현재 동서 93,823권, 양서 64,058권으로 합계 157,881권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신학과 종교관련 도서는 동서 51,740권, 양서 43,325권으로 합계 95,065권이다. 학술잡지는 국내 89종, 국외 105종을 구독하고 있다. 평양에서 장로회신학교가 개교한 이래 2001년 2월 15일 94회 졸업식까지 100년 동안 본교 졸업생 총 수는 19,806명이다. 이들이 한국 장로교회의 동량(棟樑)이 되었으며, 아시아와 세계선교의 주역이 되었다. 이제 장신대 창학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우리 각 사람은,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장신대는 무엇이기에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 참조)라는 경외의 기도와 함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 7:12)는 감격의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901년에 시작된 평장신은 l903년부터 장로회 선교공의회(미북, 남, 호주, 카나다 장로회)의 협력으로 한국장로회 목회자 양성기관으로 공식 출범하였고, 5년 학제와 그에 따른 교과과정이 결정되었으며, 설립자 마삼열이 1904년에 초대 교장이 되었다. 평장신은 1925년 2대 교장 라부열이 취임할 때까지 마삼열의 지도력을 중심으로 신학교육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져나갔다. 초기 평장신의 교육내용에 관해 백락준은 그러나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목사후보생들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배우는 신학과목은 기독교를 철학적 입장에서 다루는 것들이 아니요, 거의 전적으로 성경공부였다." 몇 개의 신학과목들이 있었지만 평장신은 사실상 교회 일꾼들을 위한 "성경학교"에 불과 했다는 것이다.
) 백낙준, 한국개신교사:1832-1910, 연대출판부, 1993년 5판, 317쪽 이하.
이것은 배낙준이 평장신의 교육정체성을 잘 모르고 말한 피상적인 관찰이고, 신학교육의 학문성을 오해한 말이다. 왜냐하면 교회 없는 신학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성경은 가르치지 않고 처음부터 "철학적 입장"에서 기독교를 가르치는 신학교는 더더욱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학교육의 바탕과 그 학문성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성경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학교는 어떤 의미에서 최고 수준의 성경학교가 되어야 한다. 오늘 장신대는 이러한 자랑스런 "성경학교"의 전통을 이어나가야 한다. 사실 평장신은 당시 그 입학조건부터 상당한 학식과 자격을 갖춘 자로 제한했다. "조사나 순행 전도인으로서 학식이 상당하고, 헌신적 정신이 유하며 담력이 유하고 모험적 가신(可信)할만한 교원 중에서, 또 중학교와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자격을 상당히 예비한 청년이 입학한다"고 마삼열은 기록했다
) "장로교회 신학교 약사", 신학세계, 1916년 제 1호, 164-6 쪽.
어쨌든 마삼열과 라부열 교장 시대를 일관하여 평장신의 교육이념과 그 정체성은 더욱 분명해졌고, 그것은 성경에 기초하여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할 능력 있고 진실하며 연구능력과 학문적 소양을 갖춘 목회자와 교역자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평장신 요람의 "교육목적" 항목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6개항의 내용을 통해 확인되는 사실이다.
) 장로교회 신학교 요람, 조선 평양, 1931, 3쪽이하.
1.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공부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자 양성.
2. 성경을 전심 연구케 하여 능력 있고 진실한 목사를 교회에 공급하여 그 사업을 계속 케 함.
3. 영적, 도덕적, 지적 방면의 목자의 의무를 다하며 사회적 책임을 심절(深切)히 의식하 는 인재양성.
4. 복음주의의 진정한 정신을 고취하고 장려하여 그리스도 교회를 확립케 함.
5. 연구정신을 고취하고 상당한 학력을 함양케 하여 졸업 후 일반인에게 존경과 신임을 받으며, 정교리(正敎理)를 보호하고 이단을 막을만한 인물을 양성함.
6. 장로교회의 역사적 표준, 즉 신경(信經), 요리문답, 정치권징 조례와 예배모범을 본교 교육의 표준으로 받음.
한마디로 평장신의 교육이념과 그 교육의 정체성은 개혁교회 전통에 선 복음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이었고, 그 전통은 오늘 100주년을 맞이하는 장신대의 교육을 통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전파와 하나님 나라를 이 역사 속에 구현하기 위해 성경에 기초하여 경건과 학문의 철저한 훈련을 받은, 예수그리스도의 신실하고 헌신적인 제자들을 양성하는 사업이다.
도양술은 과거 평장신의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적이 있다: "평양신학교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후 구라파 계통의 이론보다는 미국 계통의 목회자 양성에 그 목적을 두었다... 주로 성서를 가르치는 데만 집중했다. 그 결과 과학이나 철학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신앙가들을 양성했고, 여기를 나간 수많은 목사들은 전도와 목회에 성공하여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단시일 내에 교회가 발전했다... 특별히 우리 장로회신학대학은 이때까지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받아서 보수적 신학과 목회자 양성에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그러나 신학적 빈곤을 채우기 위해서 이 방면에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 도양술, "목회자와 신학교육", 교신, 65년 1집, 47쪽 이하.
"신학적 빈곤", 이것은 60년대 이후 오늘까지 장신대의 신학교육에 따라 다니는 부담이요 과제였다. 이 신학적 빈곤 의식은 과거 선교사 신학교육의 질이나 양에 대한 불만인 동시에 또한 한국인 특유의 지적 탐구열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70년대 말까지 장신대 학생들의 신학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긍정적이지 못했다. 커리큘럼에 만족하는 정도는 22.2%인 반면, 부정적인 반응이 77.5%에 이른다. 신학교육의 학문적 수준에 대해서도 32.3%가 긍정적인 반면, 67.7%가 불만이다. 흥미로운 현상은 신학교육 강화를 원하는 분야에서 성서연구가 47.2%로 가장 높은 반면, 일반교양은 21%, 종교와 신학은 13.6% 순으로 나타나 있다
) 고용수, "한국신학생들의 신학교육에 대한 태도연구", 교회와 신학, 1977, 제 9집, 157-216쪽, 특히 177-182쪽.
80년대부터 구라파 및 미국 등지에서 신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보강되면서(현재 47명의 교수 중 구라파에서 박사학위를 한 교수가 15명이다), 이제 100주년을 맞는 장신대는 "신학적 빈곤"도 어느 정도 해소했고, 선교사들이 후견인 역할을 한 신학교육의 테두리에서도 벗어나, 교권의 무리한 간섭 없이 주체적인 신학의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만족이 어디 있으며, 완전한 신학교육이 언제 어디서 가능할 것인가? 장신대의 학훈인 경건과 학문은 이분법적인 개념이 아니며 일체양면성의 내용인 데, 요즈음 "목회할 사람 따로, 공부하는 사람 따로" 라는 말이 학생들 중에 떠돈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사실 신학공부에서 경건은 물론이요, 학문적 탐구의 목적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데 있다.
) 경건과 학문의 일체 양면성에 대한 설명은, 김이태, "칼빈 신학에 있어서 경건과 학문의 상관성 연구", 중심에 서는 신학, 고 김이태 교수 저작 출판 위원회 편, 장신대출판부, 1994, 47-63쪽; 깔뱅의 경건 개념에 관한 연구는, Sou-Young Lee, "Calvin\'s Understanding of Pietas", Calvinus Sincerioris Religionis Vindex: Calvin as Protector of the Purer Religion, eds. W.H. Neuser, B.G. Armstrong, 1997, Sixteenth Century Journal Publishers, 1997, 225-239쪽 참조.
16세기 한국의 위대한 유학자요 스승인 퇴계는 "學文所以正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장신대의 신학적 빈곤이 해결되는 지점도 바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신학도들의 마음이 바르게되는 데 있을 것이다.
II. 장신대의 신학과 신학노선
그러면 이제 개혁교회 전통의 복음주의 교육이념에 따라 신학교육을 계속해 온 장신대의 신학과 신학노선을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 100 주년을 맞는 장신대는 평장신에서 시작된 한국 장로교신학의 내용과 그 노선을 잘 이해하고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있는가? 또는 어떤 의미에서 오늘의 장신대는 평장신의 신학전통과 단절된 채 나름대로 새로운 신학노선을 추구하고 있는가? 교육의 정체성과 함께, 신학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도 l00 주년을 맞이하는 장신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된다.
100년전 평장신에서 출발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형성되어온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전통에서 장신대의 신학노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경관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모든 기독교 신학은 성경에서 출발하며, 성경에 대한 해석과 이해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한국 장로교회는 여러번 분열의 아픔을 경험하였으며, 그 분열의 명분은 언제나 성경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있었다. 오늘 장신대의 신학노선 이해는 1950년대 한국장로교회의 대분열의 뿌리에 놓여진 성경관 문제의 이해 없이는 제대로 이해되기 어렵다. 김명룡은, "한국의 장로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신학적 이유의 중심에는 성경관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고 했으며, "이 성경관의 차이의 중심에는 성경에 대한 역사비판학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고, 아울러 성경무오설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놓여 있다."고 명쾌하게 지적했다.
) 김명룡, 열린신학 바른 교회론, 위의 책, 200쪽; 비교, 박용규, 한국 장로교 사상사-한국교회와 성경의 권위, 총신대출판부, 1992.
그렇다면 오늘 장로회 신학대학의 신학과 그 신학 노선을 가늠하는 데도 이 점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장신대 100년 신학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관의 관점에서 그 신학노선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먼저 일반적인 장신대 신학의 성격을 잠깐 언급하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며 순서일 것이다.
되돌아보건대, 장신대의 소위 광나루시대가 시작된 1960년대 계일승 학장은, "에큐메니칼(세계교회와 연대하는) 정신에 입각한 보수신학을 견지하는 것"이 장신대의 신학적 입장이며, 근본주의나 진보주의라고 일컫는 자유주의나 급진적 신학에는 비판과 신중을 기하면서, 한국교회의 건전한 발전과 선교의 전진을 염두에 두는 것이 장신대의 학풍이요 강조점이라고 했다.
) "신학교 탐방: 장신대", 기독교사상, 69.1, 130-3쪽.
그럼에도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장신대는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면 장로회신학대학은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보수신학은 합동 측이 가져가고 진보주의는 기독교장로회가 가져갔다고 한다. 우리는 극단의 보수도 원치 않고, 진보도 원치 않는다."
) 장로회신학대학 70년사, 위의 책, 189쪽.
그래서 장신대 신학노선은 좌도 우도 아닌 중도 보수로 알려졌고, 무특징이 특징인 신학, 때로는 색깔이 분명치 않은 신학, 부정적인 시각에서는 회색신학교라는 평을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장신대 신학은 보수신학의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근본주의와 차별화하고, 나아가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와 차별화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장신대 신학은 "정통-근본주의"와 "자유-급진주의" 양쪽을 다 지양하고 나온 신정통주의 신학노선인가? 예장총회는 1979년 이점에 대해 이종성 학장에게 다음과 같이 해명을 요구한 적이 있다: "... 귀하가 신정통주의를 장로회신학대학의 신학노선으로 삼겠다는 뜻입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이랬다: "아닙니다...본 대학의 신학노선과 방향은 본 교단의 노선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노선과 에큐메니칼 운동노선에 근거하여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을 영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 제 64회 총회 회의록, 1979년, 101-108쪽.
춘계는 이 후 장신대 신학은 물론이고, 한국교회는 교파를 초월한 "복음적이고 성서적 신학"을 영위해야 한다고 자주 강조하게 된다.
) 이종성, "한국신학의 과제", 기독교사상, 1981.9, 50쪽.
그러나 "성서적, 복음적" 신학노선이라고 했을 때, 성서적이라든지, 복음적이라는 용어가 여전히 불만족했기 때문에, 김이태는 장신대의 신학노선과 그 정체성을 "중심에선 신학"으로 표현했다. 김이태는 그 누구보다, 장신대 신학의 정체성과 그 신학노선에 대해 중요한 개념적 정리를 한 사람이다. 개교 80주년을 맞이하여 김이태는, 장신대 신학의 특성이 결코 진보나 보수의 중간에 끼어 어정쩡하고 무특성이 특성인 그런 중도신학이나 중간의 신학이 아니고, 진보와 보수를 다 부둥켜안고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복음전통의 중심에 선 신학"이라고 정리했다; 김이태는 지금까지 장신대 신학의 약점도 지적했는데, 참으로 성경에 기초하여 복음의 중심에 선 신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수구주의"가 되어서는 안되고, 항상 새로워지는 "개혁신학"이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김이태는 두 가지 보강책을 제시했다: 첫째는,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문제에 민첩하게 대처하는 신학"이어야 한다는 것과, 둘째는, "새로운 사상과 학설에 과감하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신학"을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것에 "노출된다"는 것과 그것을 "통째로 삼킨다"는 것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새로운 사조에 헤엄쳐 들어가되 전통의 밧줄에 단단히 몸을 묶고 헤엄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갈 1:9-10절을 인용하면서, 김이태는 장신대 신학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 만족을 줄 수 있을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 그에게 영광이 돌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데 있다"고 결론지었다.
) 김이태, 위의글, 233쪽 이하, 특히 240쪽.
여기서 우리는 100주년을 맞이하는 장신대의 신학노선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그 교육의 정체성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는 개혁교회 전통을 따라, 복음주의의 중심에선 신학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일찍이 1920년 평양 장로회 신학교 교수회가 작성하여 발표한 7개 조항의 평양 "장로회신학교 신앙고백서(信經)"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1920년대를 전후로 미국장로교회가 성경관과 신학적 입장의 차이로 갈등과 분열의 양상이 짙어졌을 때
) 한국 장로교 분열에 역사적 영향을 미친 미국 장로교의 분열과 프린스톤 신학교의 1929년 분립상황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김기홍, 프린스톤 신학과 근본주의, 아멘서적, 1992 참조.
, 평장신 역시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위기를 분명히 감지하고 있었다. 평장신이 자신의 신학노선을 선언한 신경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 신구성경(新舊聖經)은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의 계시하신 바로 믿으며 이 성경은 우리 의 신앙과 생활에 대하여 유일무이한 확실한 준칙(準則)으로 받음.
2.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로 영원히 존재하시고 살아 계신 진신(眞神) 하나님 한 분 을 믿음.
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신성과 참 인성을 믿으며 또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시고 완전히 무죄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인속죄(代人贖罪)하심과 육체로 부활하사 승천하심과 우리를 위하사 대제사장이 되심과 크신 권능과 영광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 세상에 친히 재림하실 것과 만국을 의로 심판하실 것과 그의 모든 원수에 대 하여 완전히 승리하실 것과 마침내 그의 나라를 성부께 바칠 것을 믿음.
4. 성신의 절대적 신성과 인성과 또 창조와 섭리와 구원, 특히 신자의 중생과 성결과 영광 주장하심을 믿음.
5. 하나님 앞에서는 천하만민이 다 죄인인 것을 믿으며 끝까지 회개치 않는 경우에 이 죄의 대가로 영원히 하나님을 떠나 사망할 것을 믿음.
6.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은 자들은 성신의 능력으로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 되는 것을 믿으며 또 이외에는 구원 얻을 길이 없는 줄로 믿음.
7. 의인과 불의한 자의 몸이 반드시 부활할 것을 믿으며 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영생 얻을 것을 믿음.
) 장로교회신학교요람, 조선 평양, 1931, 4-5쪽.
여기에는 개혁교회 전통의 정통-보수주의 신앙고백의 기본적 교리내용이 잘 반영되어 있으며, 당시 자유-진보주의 신학 사조에 대응하려는 신학적 노선이 분명히 언표되고 있다. 무엇보다 성경의 초자연적 계시성을 제일 먼저 강조하였고,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대속,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과 승천, 재림과 심판, 믿는자의 영생 얻음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평장신의 신학적 노선은 내용적으로는 근본주의의 5대 교리와 공유하는 바가 많으나, 근본주의의 특징중의 특징인 성경관으로서 문자적인 "축자영감설"은 결코 주장하고 있지 않으며, 다른 신학입장에 대해서도 적대적, 배타적, 전투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근본주의 입장과는 차별화 되는 복음주의 신학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장로교 신학전통에서 성경관 문제는 역시 성경의 권위와 성서비평학, 즉 고등비평을 어떻게 취급하느냐가 그 핵심 사항이다. 일본 신학교는 1910년대에 이미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감리교 목사 양주삼이 1916-7년에 감신대 교지 "신학세계"에 기고 연재한 "구신약전서총론"이란 글에서, 처음으로 제약 없이 고등비평을 소개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전망사, 1986, 69쪽 이하.
이에 비해 평장신의 신학은 처음부터 성서비평학을 배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양주삼은 그의 글에서 "고등비평"이란 단어조차 사용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고등비평에 대한 소개는 평장신의 성서주해 교수인 어도만이 1921년 신학지남(제3권 4호)에 번역하여 소개한 "고등비평"이란 글이 최초의 것이다.
) 김중은, "고등비평을 한국에 처음 소개한 것은 누구인가?", 구약의 말씀과 현실, 한국성서학연구소, 1996, 352-370쪽.
놀라운 것은 이 글에서, 고등비평은 "원리적으로 적합한 것"
) 어도만역,"고등비평", 신학지남, 1921, 제3권 4호, 424쪽.
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여기서 어도만이 "원리적으로 적합하다"고 소개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아마도 하등비평 즉 본문비평과 구분하여, 고등비평은 성경본문에 내재하는 증거들을 찾아내어 성경문서의 형성사와 그 역사적 가치를 이해하려는 관심과 목적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변조은은 신학지남에 나타나는 초기 선교사들의 성서해석 입장이 맹목적으로 근본주의적 축자영감설을 추종하고 무조건으로 비평학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1930년대 이후 김재준이 신정통주의 입장에서 성서오류를 주장한 것이나 박형룡의 근본주의적인 축자영감설을 주장한 것과는 차별화하여, 평장신 초기 선교사들의 성서해석은 "(순)복음주의적인 해석방법"이었고, 그들의 주 관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속주로 선포하는 데 있었으며, 그들에게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만민의 구주로 증명하는 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도만의 입장은 "성서비평을 하되 주의 있게 하라는 것"으로 보았다.
) 변조은, "한국교회의 성서해석사", 교회와 신학, 1972, 87-107쪽, 특히 90쪽 이하.
그럼에도 1918년 3월부터 간행되기 시작한 평장신의 교지인 신학지남(神學指南)에 나타나는 실제 평장신의 신학에서는 고등비평의 신앙파괴적인 성격 때문에 그에 대한 주의와 경계하는 목소리가 더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성경관의 문제는 결국 성경의 권위 문제인데, 개혁교회 전통의 보수주의는, 성경을 인간 기자들이 역사속에서 기록하였으나 하나님의 계시를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성경의 참 저자는 성령 하나님이며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고 주장한다(딤후 3:16; 벧후 1:21; 삼하 23:2; 사 40:8; 딛 1:2 등 참조). 그러나 18세기 서구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자유주의는 성경의 계시성과 영감성을 부인하거나 상대화함으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 박봉랑, "자유주의 신학과 그 비판", 기독교사상, 1960.3, 11-12쪽.
한국장로교회의 분열과 신학적 갈등으로 문제가된 것은 그러나 자유주의가 아니고 신정통주의 성경관이 문제였다. 칼 바르트로 대표되는 신정통주의는 개혁교회 전통의 신앙과 신학을 이어 받아 인본주의 사상의 자유주의에 응전하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성경관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었다. 그것은 성경이 계시가 아니라 참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증언일 뿐이며, 그 인간의 증언은 역사속에서 부정확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킨 것이다.
) 오토 베버, 김광식역,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5. 성서와 교회", 대한기독교출판사, 1992, 59-75쪽, 특히 59쪽 이하; 데이비드 L. 뮬러, 이형기역, 칼 바르트의 신학사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교리, 기독교적 신학의 규범", 양서각, 1986, 56-66쪽 ; 박봉랑,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말씀의 개념", 신학연구, 1960, 춘계, 57쪽; 비교, 코닐리어스 밴틸, 이상근역, 칼 바르트, 한국개혁주의 신행협회, 1971, 특히 "성경", 12-24쪽.
신정통주의는 그럼으로 성서해석에서 역사-비평적 방법을 사용하는 성서비평(고등비평)을 예비적 지식으로 전제한다. 그 결과 신정통주의는 성서의 무오성은 하나님의 인류 구속의 도리와 관계된 복음의 내용에만 적용되는 것이며, 일반 역사, 과학적 지식의 문제에서는 분명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생활을 지도하는데는 불오성(Infallibility)을 말할 수 있으나, 그 외의 분야에서 무오성(Inerrancy)은 성립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럼으로 신정통주의 성경관에서 김재준은 성경의 불오성은 믿고 받아들이는 데, 성경의 역사적 과학적 무오성은 학자적 양심으로 결코 인정할 수 없음으로, 성경의 오류를 끝까지 주장한다고 했다.
) 김양선, 한국기독교 해방 10년사, 종교교육부, 1956, 특히 "김재준교수의 진술서"와 총회 "심사위원회의 보고서", 222-226쪽 참조.
여기에 대해 한국의 메이첸으로 알려진 박형룡은 성경의 무오성과 불오성은 분리될 수 없다고 보고, 소위 "축자영감설"을 내세워 성경의 오류를 주장하는 신정통의 입장을 자유주의 내지는 신신학으로 매도하고, 전투적이며 배타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근본주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 초기 평장신의 선교사들과 박형룡의 성경관의 미묘한 차이에 관해서는, 박용규, 한국장로교사상사, 위의책, 240쪽 참조.
여기서 개혁교회 전통의 보수주의적 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저러한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의 성경관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그들의 성서해석 방법론을 백안시하거나 무시하고 상대방의 신앙을 정죄하며, 분리주의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어느정도 이해는 하지만, 그것은 결코 성경적이며 복음적인 올바른 신학의 입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언제나 분명히 한다(벧전 3:15-16 참조). 이러한 관점에서 평장신의 신학노선을 계승하는 장신대의 신학노선은 결코 근본주의나 신정통주의 노선이 아니라 개혁교회 전통의 복음주의 신학노선이다. 복음주의 성경관은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면서, 성경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복음주의는 성경에 "오류"(errors)가 있다고 말하지 않고 성경에 "난제"(Bible difficulties; hard sayings)가 있다고 말한다. 복음주의는 결코 성경에 "모순"(contradictions)이 있다고 말하지 않고 성경의 기록에는 여러 인간 기자들과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의 시공간 차이에서 당연히 예견되는 "차이"(differences)가 있다고 말하며, 그 차이들이 이루는 조화와 화음을 찾는다. 그 난제들과 차이점들이 지금 당장 모두 해결될 수 없다고 하더라고, 복음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부지런히 연구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복음주의는 "역사-문법적인 방법"(Historical-Grammatical method)으로 성경을 연구하며, 역사-비평적(Historicla-Critical method) 방법에 대해 백안시하지 않으나 비평적인 입장을 취한다.
) 예컨대, John H. Sailhamer, "Walter C. Kaiser, Jr.", Bible Interpreters of the 20th Century, eds. W.A. Elwell & J.D. Weaver, Baker Books, 1999, 특히 381-384쪽 참조; 비교, Bernard Ramm, The Evangelical Heritage, Baker Books, 2000, 특히 "An evangelical assessment of the Enlightenment", 70-74쪽 참조.
한편, 장신대 교수회에서도 박창환 학장시절 개혁교회 전통의 복음주의 신학노선을 분명히 할 필요를 느끼고 1986년 "장로회신학대학 신학 성명"을 발표했다. 그 서문에서, "우리는 여기에서 신학의 전제, 개혁주의 신학 전통과 에큐메니칼 신학, 신학과 교회, 신학의 선교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 신학의 자리의 방향, 신학의 한계와 신학의 대화적 측면에 대하여 7가지 명제들을 제시하려고 한다. 이는 장신대의 신학 교육을 가늠하며, 교회와 사회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라고 밝혔다. 그 7명제들은 다음과 같다
) 장로회신학대학의 신학노선, 28-33쪽.
1. 우리의 신학은 복음적이며 성경적이다.
2. 우리의 신학은 개혁주의적이며 에큐메니칼하다.
3. 우리의 신학은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 봉사한다.
4. 우리의 신학은 선교적인 기능과 역사적, 사회적 참여의 기능을 수행한다.
5. 우리의 신학의 장은 한국이요, 아세아요, 세계이다.
6. 우리의 신학은 기술사회의 문제들(현대 과학주의와 현대 문명의 문제들)에 응답해야 한다.
7. 우리의 신학은 대화적이다.
각 명제에 따라나오는 해설을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제1 명제의 해설에서 오늘 장신대의 성경관과 그 신학노선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성경 안에는 중심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복음이다. 부활의 빛과 성령강림의 빛에서 본 예수님의 말씀들과 행동들, 무엇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 및 이 사건의 의미에 대한 사도적 선포가 복음의 진수이다. 성령에 의하여 영감된 성경의 진리들은 이 복음에 입각해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경우에 따라서 성경비평학에서 얻은 통찰로써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신학적 맥락들을 존중하면서 성경 내에 계시된 진리들을 신학의 규범으로 삼이야 한다. 이 계시된 진리들은 하나의 인격적 진리요 말씀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그 의미가 완전해 진다." 이러한 장신대의 신학노선은 100년 전 평장신에서부터 시작하여 2000년 기독교 역사의 모든 정당한 신조(신앙고백)들과 연대하는 것이며, 특히 그 복음에 대한 이해나 성경관과 그 성서해석학적 입장은 16세기 개혁교회 신앙과 신학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학입장임이 틀림없다.
) 한숭홍, 학국신학사상의 흐름, 하권, 장신대출판부, 1996, 578-581쪽 참조.
성경의 권위에 관하여, 장신대 신학은 성경유오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장신대 신학은 성서비평학(고등비평)을 "결정적인 도구"로 환영하여 받아들이지 않으며, 결코 백안시하거나 적대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지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만 각자의 신앙양심(또는 믿음의 분량)과 신학적 책임아래 그 비평학에서 얻은 통찰을 유익하게 사용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바울 사도가 기록한 대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는 말씀과 상통하는 복음 안에서 자유하는 입장이다(요 8:31-32). 평장신의 조직신학교수 이눌서의 후계자였던 구례인은 동양성현의 지혜를 인용하면서
) "신신학과 구신학을 비교함", 알에이웹, 구례인 역, 신학지남, 1925, 7권 3호, 18쪽.
, 생명력 있는 복음주의 신학의 입장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人皆好之 必察焉 人皆惡之 必察焉 擇其善而居"(사람들이 다 좋다고 해도 반드시 살펴보고 사람들이 다 나쁘다 해도 반드시 살펴보아 그 좋은 것을 택하여 거할지니라).
Ⅲ. 장신대 신학 교육의 전망(책임과 사명)
장신대 개교 90주년인 1991년 맹용길 학장은, 본 교단 총회에서 장기 발전 계획을 세우고 각 산하기관에게 그 응답을 요구함에 따라, 장신대 교수회에서도 2000년대를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장신대의 신학과 교육에 관해 각 분야별로 세미나 발표를 하게 하고, 그 자료집을 출판한 바 있다.
) 2000년대를 향한 신학과 교육, 장신대 교수 세미나 자료집, 장신대출판부, 1992 참조.
이 자료집에 나타난 미래 지향적인 장신대 신학 교육의 공통된 책임과 사명은, 새 천년이 시작되는 21세기의 도전과 요청에 응전하고 응답할 바르고 건전한 신학을 정비하여,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과 생활에서 일치된 바른 실천을 할 수 있도록, 장신대 교육 이념을 더욱 힘차게 구현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형기는 이 자료집의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현재 장신대의 신학 교육은 다양성은 있으나, 통일성이 없다"는 매우 중요한 지적을 했다.
) 1997년 2학기, 교수 세미나 자료집: 이형기, "장신대 신대원의 교육 목적과 방향은?", 8쪽.
장신대의 신학이 그 교육 이념에 충실하고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신학의 3대 분야인 성서신학과 역사신학 및 교의신학, 그리고 모든 신학의 꽃이요 열매인 실천 신학(교육, 선교, 윤리, 예배와 설교, 교회 음악 등)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존재하고 사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이러하다면, 장신대는 100주년을 맞이하여, 각과의 세분화된 각개약진보다는 뿌리와 줄기와 꽃과 열매가 어우러지는 통합적이며 유기적인 신학 교육의 체계를 우선하여 만들어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꽃과 열매는 과연 제 자신의 뿌리와 줄기를 통해 수액과 영양을 공급받았는지 점검해야 하고, 줄기는 뿌리와 꽃과 열매의 중간 매개 역할을 점검해야 하며, 뿌리는 그 상함과 썩음이 없는지 예의 점검해야 한다. 이것은 막연한 원리적 주장이 아니다. 이를테면, 성서 신학의 경우는 적어도 장신대 성서 주석 전집과 성경사전이 나와야 하고, 역사 신학과 조직 신학에서는 각기 장신대 성서주석에 연결되는 교과서가 출판되어야 하며, 실천 신학에서는 이 두 채널과 연결된 실제 작품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3분야의 상호의존적인 통합 신학 작업을 성취해나가기 위해, 장신대 신학은 무엇보다 서로 본교 교수들의 논문들을 관심을 가지고 읽고, 각자의 분야에서 그것을 사용하고 비평하며, 보완 발전 원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외국 신학자들의 논문과 책들만 각주에 수도 없이 나열하는 신학작업은 앞으로 지양되어야 한다. 장신대가 진정한 에큐메니칼 신학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장신대 교수들의 신학적 목소리가 인용되는 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아시아와 세계의 신학자들과 각 분야에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늦은 감은 있으나, 2001년부터 장신대 교수들의 글을 영문으로 발표하는 잡지를 출간하기로 결정한 것은 장신대 신학이 에큐메니칼 운동에 책임을 감당하겠다는 긍정적 신호이며, 금년 세계 교회 협력 센터가 준공되어 좋은 시설이 마련된 것도, 아시아와 세계 교회와 신학을 향한 장신대 사명의 새로운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이 기대된다. 이러한 시설들과 연계하여 앞으로 국제 신학원과 같은 기구를 설치하여 아시아 및 나아가 세계의 신학교들과 활발히 협력하고 신학사업을 증진하는데 장신대가 한 몫을 감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신대는 1992-1996년을 장기 발전 1단계로서 미래 교육을 위한 기반 조성 단계로 삼고, 신교사 신축과 전산화 시설을 완비하여 하드웨어 구축에 힘썼다. 1997-2006년은 21세기 교육의 소프트웨어(내실화 프로그램) 개발 단계로 정하고, 창학 100주년을 맞이하여 ①충분한 교수 요원 확보 ②관리, 운영 체제의 합리화 및 체계화 ③LAN 망의 완전한 구축과 전산화를 추진하여 세계적 신학대학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는 단계로 삼았다. 그 교육 이념 및 신학 노선과 연계하여, 21세기의 장신대 비전을 "민족 복음화와 세계선교"에 두고, ①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교육 ②연구 및 교류의 세계화 ③교육과 행정의 정보화 ④학문의 실용화를 발전 전략으로 삼았다. 이러한 발전 전략에 따라 ①단계별 교육 과정 개발 계획 ②각 과정별 교육의 특성화 ③연구소 기능 활성화 ④해외 연수 및 학술 교류의 확대 ⑤학술·연구·행정정보 전산망 구축 ⑥경영 진단과 업무제도 개선 ⑦열린 신학·교육체제 강화 ⑧산학연 협력 개발을 통한 연구 지원제 도입을 구체적인 발전 과제들로 정했다. 이러한 과제들에 따라 교육, 연구, 교수, 학생, 행정, 시설, 재정의 각 분야에서 필요한 발전 지표들을 마련하게 되었다.
) 장신 비전 21세기, 1997-2006, 장신대출판부, 1997, 6-11쪽.
이러한 장신 비전 21세기의 특징은 한국 통일을 대비한 민족 복음화의 사명 자각과, 아시아와 세계에 대한 선교의 책임을 재삼 인식하는 점이다. 또, 장신대 교육의 미래는 종래의 가르치는데 편중된 기능을 조정하면서, 연구와 사회 봉사, 교회와의 실제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싶어하며, 그 신학노선은 특히 "열린 신학"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열린다는 뜻은 닫혀있다의 반대 개념이다. 물론 모든 생명현상은 개폐운동을 반복해야한다. 열려만 있으면 죽은 것이다. 그러나 장신신학의 미래가 열린 신학을 강조한 것은, 앞으로 예상되는 모든 신학적 도전들 앞에서 장신대신학은 안가에 칩거해 있거나 회피하지 않고 응전하겠다는 의지이다. 이를테면,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고후 10:5) 바른 신학을 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리하여, 에큐메니칼 신학운동으로 장신대의 위상을 세계 속에 자리매김 하면서,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섬김으로 감당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21세기 비전을 가지면서도 장신대는 새 천년 21세기를 결코 낙관하지 않는다. 서정운 총장은 21세기에 대한 장신대의 역사 의식을 다음과 같이 대변하고 있다: "낙관적인 기분으로 시작되었던 초기의 현상과는 대조적으로 인류는 고통과 불안 속에서 20세기를 마감하고 있다... 무수한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허탈감과 욕구 불만에 가득 찬 채 격류에 떠내려가는 부스러기 같은 느낌으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교회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일해야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복음 전파와 교육에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사람들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고 그의 의와 사랑과 평화를 실현할 교회 형성을 위해 교회 지도자 양성을 책임진 신학교육기관으로서의 본 대학교의 책무는 실로 막중한 것이다."
) 서정운, 장신 비전 21세기, 위의책, "발간사"에서 인용함.
21세기는 선교적 측면에서 대추수기요, 영적 싸움에 있어서는 대격전장이 될 것이기 때문에 고용수 현 총장도 100주년을 맞이하는 장신대 21세기 신학 교육의 방향은 내적으로 개혁교회 전통에 뿌리를 내린 복음의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확립하고, 밖으로는 21세기의 역사적 도전과 사회 변화(세계화, 정보화, 다양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하나님 나라 구현(생명의 존귀성, 나눔과 섬김, 용서와 화해, 정의와 평화, 창조 질서의 보전 등)에 앞장서는 교회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 고용수, "우리 학교 신학 교육이 나아갈 방향", 신학춘추, 2000년 11월 28일, 제13호 8면;"평양에서 광나루까지", 기독공보 2001년 1월 6일 제 2303호 주간 논단 참조.
이제 장신대는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어느 정도 하드웨어는 갖추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거기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업그레이드"해 나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장신대 사람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는 성경말씀대로, 장신대는 결코 자만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믿음으로 21세기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장신대 교수협의회도 2001년 새해 모두에 "하나님 앞에서 거듭나고자"라는 제목의 광나루 서신을 발표했고, 오늘 한국 교회가 물량주의와 기복주의 및 세속주의에 심각히 오염된 상황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교수들에게 있음을 통감한다고 시인했다. 하나님 앞에서 먼저 교수들이 회개하고, 거듭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21세기가 요구하는 바르고 올곧은 하나님의 일꾼을 길러내는 데 더욱 힘을 쏟으려고 합니다"라는 다짐도 했다. 이것은 장신대가 개혁교회 전통의 복음주의 신학노선에서 자신의 책임과 사명의식을 다시 한번 일깨운 사건이다.
)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협의회 교수 일동, 기독공보, 2001년 2월 3일, 제 2306호 참조.
여기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본 교단 기관지 기독공보 사설자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매우 건설적이다: "우리가 특별히 \'광나루 서신\'에서 주목하는 것은 한국 교회 갱신의 핵심에 신학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는 신학 교수들의 자각과 자성이다... 교회의 교회로서의 역할은 먼저 교회가 교회다워짐으로 출발된다. 또한 교회다워짐은 목회자의 인격과 지도력과 우선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학교 교수들이 신학 교육을 개혁함으로써 더욱 목회자다운 목회자를 배출하겠다는 결단을 피력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 교육의 갱신은 결코 신학교 교수들만의 힘으로는 열매를 거둘 수 없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전국 교회의 기도와 구체적인 협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 기독공보 사설, "신학자들의 고백과 선언", 2001년 2월 10일, 제 2307호.
오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장신대가 나아가는 새 천년 21세기는 신학적으로 볼 때, 하나님 부재의식, 하나님 말씀의 결핍이 더욱 심화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암8:11 참조). 신정통주의가 과거의 정통주의와 자유주의를 다 이기고 올라와서 20세기의 세계적인 신학으로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지난 세기의 70년대부터 벌써 신정통주의는 자신의 초월적인 신학 명제와 내재적인 성서해석 방법론 사이의 부조화와 괴리현상 때문에 설득력을 잃기 시작했으며, 역사 불가지론에 근거하여 언어철학 내지 언어현상을 신학적 작업의 내용으로 표방하는 신자유주의 신학에게 자리를 내주었다(성서신학의 경우는, 예컨대 폰 라트 와 불트만의 소위 "케뤼그마" 신학이 신정통주의 입장을 대표하는 아이히로트와 오스카 쿨만의 "구속사"를 강조하는 신학을 밀어냄). 20세기말에는 신자유주의 신학도 힘을 잃고, 종교다원주의와 함께 신과학주의 사고와 소위 뉴에이지 운동, 그리고 우주론적 범신론에 근거한 포스트모더니즘 신학이 기존의 모든 교회의 신앙과 신학적 파라다임들을 우선 해체하려고 하는 현상을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해체를 통해 극도의 혼돈을 유발함으로써만, 다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는 신과학적 사고에 기초한 소위 "카오스 이론"의 사상적 실험들이라고 이해된다. 계몽주의 사상의 세계상(世界像)과 세계관(世界觀)의 해석학적 기초가 되었던 3차원적인 뉴턴의 고전 물리학과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소위"기계론식 합리론")는 이제 아인슈타인(A. Einstein)의 4차원적 상대성 원리와 하이젠베르그(W. Heisenberg)의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자연법칙의 인과율에 대한 재해석) 등에 의해 그 파라다임 쉬프트를 요구받고있다.
) 김재희 편, 신과학 산책, 김영사, 1994, 특히 259쪽 이하, "신과학의 새로운 인식들" 참조.
이렇게 사상사적 대변혁과 혼란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신과학적 사고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신학적-성서해석학적 파라다임 쉬프트를 장신대도 자신의 교육이념과 신학노선에 맞추어 부지런히 연구하고 준비해야한다. 최근 현요한은 "첨단과학과 전통적 신학의 만남"에 관해 시의에 적절한 논문을 발표했다.
) 현요한,"기독교와 과학", 장신논단, 2000, 16집, 328-354쪽, 특히 340쪽 이하, "폐쇄적 우주관과 개방적 우주관", "진화론과 창조론", "공간 메꾸기의 신?" 참조.
여기서 현요한은 오늘의 변화된 과학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신학과 과학은 고정된 실체들이 아니다"
) 현요한, 위의책, 351쪽.
는 점을 강조한다. 또, "우리는 명백하고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한(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증거가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세계관이나 신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영역에서는 (우주의 기원, 기적과 같은 문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커다란 해석틀로서 창조론적인 관점과 기적 긍정의 관점을 포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 현요한, 위의책, 352쪽.
고 했다; 이러한 관점들은 21세기 신과학주의 시대에 어떻게 장신대 신학이 성경의 권위를 기반으로 복음주의적인 신앙과 신학적 정체성을 계승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그 가능성들을 열어보이는 주목할만한 통찰이다.
21세기의 장신대 신학은 단순히 이론적인 신학의 학문성만 추구해서는 안된다. 이제 100년의 한국 장로회 신학교육의 전통을 이어받은 장신대는 평장신의 보수신앙과 함께 눈물의 회개와 신앙의 부흥과 기도와 전도하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 이점에서 1928년 5월 평장신 기도회 시간에 있었던 성령체험 부흥사건을 잠깐 소개하려고 한다. 당시 신학지남에 실린 평양신학교 소식란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을 수 있다: "금년은 특별이 전무(前無)한 은혜가 신학교에 나리게 됨은 신학교 직원 일동과 학생 전반이 감사함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다. 5월 23일 오전 기도회 시간에 어도만 박사가 요나서 1장 8절 이하를 보고 강도할 때에 신(神)의 은혜(恩惠)가 학생 일동(一同)에게 나려 견딜 수 없었다. 일시 통곡하고 자복하기 시작하여 그 날 공부(工夫)를 전폐하고 기도를 계속하여 학생 일동은 시가에 나가 열심히 전도한 결과 않은 효과를 얻었으며, 학생과 직원 일동은 더욱이 견딜 수 없는 정경(情境))을 당하여 그 다음날도 여전히 부흥을 계속하였는데, 점점 부흥회는 농후하여져서 평양 각 교역자도 참석하여 같이 대 부흥이 됨으로 그냥 1 주간을 부흥하고 6월 31일 부터는 교수 중 어도만, 라부열, 이눌서, 학생 중 이석락, 정재면, 이인섭 이상 6씨(氏)로 부흥위원을 선정한 후 학기 시험까지 전폐하고 공부(工夫)는 오전에만 한 후에 오후에는 전도에 전력하게 하였다... 금반 우연히 일어난 부흥은 조선 전반 교회에 미치리라고 추측하며 결과로 미로(迷路)에 든 양(羊)이 정로(正路)를 찾을 자가 많아질 것은 사실이다. 모든 신학생의 가슴속에 붓는 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 "평양신학교소식", 신학지남, 1928년 10권 4호, 65쪽.
평장신의 신학교육의 장점과 특성은 역시 불붙는 가슴으로 복음의 말씀을 배우고 체험하며, 그 복음을 역사의 현장에서 증언하는 현장성 있는 신학교육이었다. 그렇다면 장신대 신학교육의 현실은 어떠한가? . 사실 오늘 장신대 신학교육에서는 이러한 생동감 있는 "현장성"이 크게 부족한 점이 위기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수영은 장신대의 "목회현장과 신학세계 사이의 괴리 현상"에 대해 이렇게 진단을 내렸다: "신학교에서... 추상적이고 사변적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상아탑적인 이론들만 가르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요즈음 신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은 목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른다. 즉, 설교할 줄 모르고 성경공부 가르칠 줄 모르고 전도할 줄 모른다는 말들을 많이 듣는다... 역사의식이 없고, 현실참여의지가 없으며, 사회의 부조리와 구조악에 대한 투쟁의식이 없다고 비판하는 소리도 있다."
) 이수영, "오늘의 목회와 이론신학의 과제", 제13회 전국신학교수 세미나자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신학교육부, 1992, 19쪽 이하.
여기에 대한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교수들에게 있음을 인지하면서, 이수영은 교수들이 무엇보다 연구와 저술과 강의를 통해 현실의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생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생명체"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신학은 직업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사업이 아니고,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이수영, 위의글, 23쪽.
말하자면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장신대의 21세기 신학교육은 "해산하는 수고"(고전 4:15; 갈 4:19 참조)를 해야한다는 숙연한 요청이다.
황무지 같이 암울한 역사의 현장에서 평장신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개혁교회 전통의 복음주의 신앙과 신학의 생명력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었을 때, 노벨상 계관시인이며 인도의 시성인 타고르(Sir Rabindranath Tagore, 1861-1941)가 1929년 당시 일제치하에서 고난당하는 한국국민을 격려하기 위해 지어 보냈던 짧은 시 한편을 읽고 끝을 맺고자 한다.
46) 1929년 일본을 방문한 타고르 시인에게 동아일보사가 방한을 요청했을 때, 이에 응하지 못 한 타고르는 대신 이 시를 써 보내어 동아일보에 게재했던 작품이다.
동방의 등촉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黃金) 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주요한 옮김)
일찍이 페르샤 고레스 대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70년 동안 바벨론제국에 포로되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본국으로 귀환하여 무너진 성전을 재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던 하나님께서(대하 36:22-23), 또한 인도의 타고르 시인을 감동시키사 일본제국에 35년간 나라를 빼앗기고 흑암의 역사속에서 고난 당한 한국민족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일깨우는 예언자적인 시를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한다. 21세기 통일된 한국과 새 천년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장신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진리의 빛 안에서 이러한 마음의 고향이 되기를 바란다: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장신대 마크의 중심부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등잔이 있다. 이것은 진리의 빛을 상징한다. 그 주위에는 두 개의 동심원이 있는데, 그것은 각기 한국과 세계를 상징한다. 그럼으로, 이제100주년을 맞이한 장신대여,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3; 요 1:4 참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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