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글입니다-
20세기 초 일본에 나가노 마끼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다.
갓 안수 받은 그는 어디에서 목회를 할까 찾다가 동서남북 100km이내 교인이 하나도 없고 미신이 판을 치는 북쪽 가나사와를 찾았다.
그는 가나사와에서 텐트를 치고 개척을 시작했다. 창립예배는 아내와 자녀1명과 드렸다. 한 달 두 달 6개월이 지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믿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무려 5년을 지켰다. 예배 때마다 아내와 아이만 놓고 설교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예배 때 천막교회 안에 첫 번째 교인이 나타났다. 청년이었다. 그 순간 나가노 목사는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예배가 끝난 후 나가노 목사는 청년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런데 식사도중 청년이 갑자기“욱“하더니 입에서 핏덩이를 토해 내었다. 청년은 폐병환자였다. 당시에는 폐병환자는 불치병이었고 일반인들이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시절이었다.
나가노 목사는 순간 갈등을 느꼈다.” 내어 쫒아버릴까?“ 아니다. ”이 청년은 주님이 내게 보내신 첫 사람이다“ 나가노 목사는 행주를 가져와 청년의 각혈을 치웠다. 그리고 다시 상을 차리고 식사를 했다. 이 청년은 유명 정치인의 사생아였다. 청년이 되어 복음을 접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재학 중 폐결핵이 발병되어 완치하면 복학한다는 조건으로 강제휴학처분을 당했다.
다니던 교회로부터 병이 낫기까지는 출석을 금해 달라는 요청을 들었다. 평소 어울리던 교우들도 외면했다. 그는 단지 폐병환자인 자신을 말로서나마 하나님의 자녀로 따뜻하게 맞아 주는 크리스천을 단 한번이라도 만나 보기 원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서도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해 실망해서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자살 직전 우연히 나가노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가나사와의 나가노 목사는 단 한 명의 신자도 없는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5년간이나 지켜오고 있다는 사실에 그 분은 훌륭한 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나가노 목사를 한번 만나보고, 만약 그분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자신을 대해 주지 않으면 그때 스스로 세상을 버리기로 하였다. 나가노 목사는 그 폐병환자 청년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살면서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 청년은 나가노 목사를 통해 다시 예수님을 만났다. 나가노 목사 부부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청년은 폐결핵에서 완치가 되어 신학교에 복학을 해 후에 목사가 되었다.
그가 유명한 빈민의 아버지라고 하는 가가와 도요히코(하천풍언) 목사이다. 하천풍언 목사는 빈민목회를 하면서 먹을 것이 없어 몇 끼씩 연달아 굶을 경우 변비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일일이 손가락으로 후벼 주었다. 때로는 차돌같이 굳어 있는 환자의 변을 항문에 자기 입을 갖다 대고 침으로 녹여 빨아냈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은 하천풍언 목사가 그렇게 까지 할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 저는 배운 대로 합니다. 제 선생님은 제가 토해 낸 폐결핵 핏덩이를 닦아 주셨습니다. 그 분이 제게 해 주신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교회 성장학으로 보면 나가노 목사는 실패한 목사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을 잘 키운 목사이다.
오늘 우리들의 교회와 목회가 사람들은 많이 모이게 하는 목회와 교회는 되었을지 모르나 진정으로 변화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하천풍언 처럼 “저는 배운 대로 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목회가 되어야 하는데.. . . 대중의 인기와 박수소리보다 하나님의 한 마디 칭찬하심에 기뻐하는 목자. 유능한 설교자이기 전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과 영혼사랑의 열정으로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목자..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며 눈물 흘리는 목자. 꿈속에서도 목자이고싶다라고 소망한 목자 ..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의 마음을 가진 자는 많지 아니하니.. - 고전 4 : 15 -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 Luke 23 :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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