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 나타난 물 연구
1. 서론
성경에 물과 관련된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창조 때부터 마지막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록에까지 그 등장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이러한 물 용어의 사용은 그 의미에 있어 일정한 규칙성이 있다. 즉 ‘질서와 혼돈,’ ‘생명과 죽음,’ ‘축복과 고통’이라는 양면성이 물이라는 용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1)
특별히 요한복음은 물에 관한 기록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경이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물(, 휘도르)’이 78회 나오는데, 그중 23회가 요한복음에서 나타난다.2) 요한복음에는 침례 요한의 침례의 물(요 1:19-34),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된 물(요 2:1-11),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의 ‘물과 성령’(요 3:1-15),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긴 물(요 13:1-20), 예수가 죽으실 때 몸에서 나온 물(요 19:28-37)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 직접적으로 ‘물’이라는 단어가 아니더라도 예수와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 중에서 나온 ‘생수’(요 4:1-42), 예수를 믿는 자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요 7:37-39), 예수가 걸어가신 ‘바다’(요 6:16-21) 등 물과 관련된 단어도 적지 않다. 이러한 물의 용례를 살펴볼 때 나름대로의 개념을 발견하게 된다.
본 논문에서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물이 어떤 개념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것이 성경의 물 개념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요한복음에서 물을 기록한 부분은 많이 있는데, 그중 성경 전체적인 물의 개념과 연관성이 있는 구절 여섯 개를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요 2:1-11; 3:1-15; 4:1-42; 7:37-39; 13:1-20; 19:28-37). 본 고찰을 통해 요한복음에 나타난 물이 지니는 ‘변화성,’ ‘생명성,’ ‘정결성’이라는 구속적인 개념을 밝혀 보고자 한다.
2. ‘물’의 원어적 개념
일차적으로 물이 갖고 있는 개념을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통해 살펴본 후, 구체적으로 성경의 용례를 통한 의미를 연구하고자 한다.
2.1. 구약성경에 나타난 ‘물’
히브리어에서 물의 의미를 가진 단어는 일반적인 ‘물’을 뜻하는 (may, 마이)와 ‘넘칠듯한 맑은 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mayim, 마임)이 있다. 이 단어는 오직 복수 형태로만 사용되며, 대략 580회 나타난다. 구약에 나타난 물은 역사적 사건 속에 등장하거나 이스라엘 백성 속에서 진행된 의식 속에서 나타나고, 때로는 비유적 표현 속에서 사용되고 있다. 히브리어 (마임)의 등장을 보면, 그 등장에서 일정한 규칙적 개념을 찾을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물은 때로 질서와 관련된 장면에서, 때로는 혼돈과 관련된 장면에서 등장하고 양면적인 상징으로 나타난다. 여기의 개념은 오직 하나님만이 조정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소유함을 묘사하고 있다. 물의 나뉨을 통해서 혼돈의 세력을 통제하고 더 적극적으로 질서를 형성하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 홍수 심판으로 인한 혼돈과 그 물이 걷힌 것으로 인한 질서 회복 곧 재창조가 된 노아 홍수 사건,3) 출애굽과 홍해 사건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 그리고 이를 노래한 시편 95편4) 등은 물이 갖고 있는 질서와 혼돈 개념을 말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물은 하나님의 원수 사단(사 27:1; 51:9, 욥 7:12 등)과, 사람들을 위협하는 사단의 세력으로 묘사된다. 특히 바다는 혼돈의 세력이 하나님과 창조 세계에 대해 가하는 계속적인 위협을 상징한다.5) 이런 혼돈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의 승리를 찬양하고 있는 말씀(시 29:3, 10 등)은 혼돈을 상징하는 물의 세력 위에 지배하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말씀하고 있다. 이런 물의 역할과 사상은 신약성경에서도 역시 유사하다.6)
구약성경에서 물은 생명과 관련된 장면이나 죽음과 관련된 장면에서 등장하고 양면적인 상징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나오는 개념은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시고 공급자라는 것이다. 물의 지배권과 소유권을 가지신 하나님은 인간이 순종할 때는 인간에게 생명의 물을 주시지만, 불순종할 때엔 물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죽음을 주시는 분이시다(레 26:19, 신 28:23 등).
또 인간에게 죽음의 위협을 주는 혼돈의 물과 그 혼돈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는 인간의 죽음과 그것으로의 구원(생명)을 의미한다. 그래서 구약에 나타난 물의 비유적 표현 중에는 생명 그리고 죽음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많이 나온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렘 2:13),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사 58:11), 물가에 심은 나무의 생명감(시 1:3, 렘 17:8), 목마른 사슴과 같이 생명의 물에 대한 갈망(시 42:1) 등은 물이 지니는 생명의 개념을 나타낸다. 반대로 물 없는 마른 땅은 하나님을 떠나는 죽음을 묘사하고(시 143:6), 죽음이 물을 쏟는 것(삼하 14:14, 시 22:14) 등의 개념도 발견된다. 또한 랍비적 유대교는 율법의 말씀 또는 서기관의 말, 지혜, 성령, 지혜의 한 지류처럼 흐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로고스 등을 물에 비교하는데,7) 이것도 물이 생명의 말씀과 동일시됨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구약성경에서 물은 때로 축복과 관련된 장면에서, 때로는 고통과 관련된 장면에서 등장하면서 양면적인 상징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나오는 개념은 오직 하나님만이 축복의 근원이심과 그것을 받기 위해서 물은 정결케 하는 수단임을 묘사하고 있다. 물의 지배권과 소유권을 가지신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 동시에, 물을 통해서 인간에게 복과 고통을 주셨다.
땅을 허락하는 약속 중에 나온 물을 보장한다는 언급(신 8:7), 야곱의 아들에게 주신 ‘아래로 지하의 물의 복’(창 49:25, 신 33:13),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의 표시로서 주신 풍족한 물, 경건한 사람에게 주신 물(시 36:8) 등은 복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한편 홍수의 파괴적인 바닷물(시 42:7 등), 큰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의 머리를 휘감고 있은 물(욘 2:5-6)8) 등은 고통을 주는 도구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한 의식에 물이 등장하는데, 물은 옷이나 몸으로 뿌리는 것,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를 씻는 것, 희생제물을 씻는 것으로 정결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정결이라는 기능을 갖고 있다.9) 이런 정결 의식은 내적인 도덕적 순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 및 무죄의 상징으로 진행되어 왔다(시 51:1-2, 7-10). 정결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축복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10) 구약에 나타난 정결 의식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조건이 된다. 성경은 비유를 통해 정결케 함을 받은 자들이 하늘나라로 들어갈 것이라는 선언으로 결론을 맺고(겔 36:25-29), 반대로 정결치 못한 자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저주와 고통을 받는 것이다.
2.2. 신약성경에 나타난 ‘물’
헬라어에서 ‘물’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는 (휘도르)이다. 이 단어의 사용을 보면 역시 구약의 물이 갖고 있었던 개념, 즉 ‘질서와 혼돈,’ ‘생명과 죽음,’ ‘축복과 고통’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세 가지 개념을 나타내고 있다.
공관복음 속에서 나타난 광풍 때에 예수가 많은 물을 향해 명하심(마 8:23-27, 막 4:35-41, 눅 8:22-25)이나 예수가 물 위로 걸어가심(마 14:23-33, 막 6:45-52)에 대해서는 구약의 물이 가진 질서와 혼돈의 개념, 인간을 대적하는 혼돈 세력과 하나님의 승리라는 구조와 연결해서 해석하는 시도가 있다.11)
요한계시록에서도 승리하고 영광 받으신 아들의 음성을 물소리에 묘사한 것(계 1:15), 물 위에 앉은 음녀(계 17:1), 용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 내는 모습과 핍박의 홍수로부터 구원받는 모습(계 12:15), 심판의 때에 구속 받은 자들이 마실 수 있는 물(계 8:10-11; 14:7; 16:4-5) 등 인간을 대적하는 혼돈 세력과 하나님의 승리라는 구조를 종말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3장 5-6절에서도 창조 때의 물과 노아 홍수 당시 물로 인한 멸망 그리고 미래에 일어날 멸망과 질서 형성을 암시하고 있다.12)
공관복음과 요한계시록에서는 인간을 대적하는 세력과의 싸움에서 얻는 승리와 구속 받은 자들에게 주실 생명의 물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요한계시록 1장 15절에서 하늘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암시한 물소리는 영생을 주는 물과 같이 영원한 생명력이 있다. 비유적인 용법에서 물은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있는 참 생명을 나타낸다. 그리고 침례는 정결함과 함께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의 변화를 상징한다(골 2:12).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그와 함께 장사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롬 6:4).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조건인 정결에 대해서 많이 기록하고 있는데, 물은 손과 기명(器皿)을 씻는 의식 등 정결의 수단으로서 사용된다(막 14:13, 눅 22:10). 예수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외적인 씻음보다는 내적인 씻음이 필요함을 말씀하셨던 것(막 7:2)처럼, 여기서도 정결은 내적인 순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 및 무죄의 상징을 말한다. 또 침례는 영적인 정결과 연결된다(히 10:22; 고전 6:11). 그리스도가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다(엡 5:26). 이런 영적인 씻음의 중요성은 구약에서의 정결 의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13) 그리고 그 내적인 정결이 이루어지면 성령이 임하시고 그리스도인을 성별하는 표가 되는 것이다(행 19:1).
3. 요한복음에 나타난 ‘물’
본 장에서는 요한복음에 나타난 물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떤 개념을 갖고 있는지를 여섯 구절을 선택해서 검토한다. 특히 성경 전체에서 물이 갖고 있는 ‘질서와 혼돈,’ ‘생명과 죽음,’ ‘축복과 고통’이라는 세 가지 개념이 요한복음에서는 어떻게 전개되어 있는지 연관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복음에서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여섯 구절의 본문은 수많은 물에 관한 기록 중에서 다른 복음서에서는 기록되지 않은 사건이나 표현이 포함된 것이다(요 2:1-11; 3:1-15; 4:1-42; 7:37-39; 13:1-20; 19:28-37).14)
3.1. 물로 된 포도주(2:1-11)
3.1.1. 표적을 나타내는 ‘물’
요한복음 2장에는 예수가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참가하시고 이적을 행했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된 물이 등장한다. 그때 예수는 그의 모친에게 ‘여자여’라고 칭하셨는데, 이것은 예수를 낳은 모친이라 할지라도 공생애가 시작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모친이 함께 한 자리에서 처음 표적을 행하신 것이다(요 2:11). 이 처음 표적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이루어졌다는 증거는 오직 요한복음에서만 나타난다.
여기서 표적(, 세메이온)은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으로 도래했다는 것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표적(, 오트)이라는 개념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일(출 3:12, 삼상 10:1-9 등)과, 선지자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게 되는 정상적 혹은 비정상적 사건(사 7:10-16 등)에 대해서 사용된다.15) 따라서 예수의 이적 행위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이 예수 안에서 그리고 예수를 통하여 실현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다. 이는 공관복음에도 나오지만 요한복음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예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로 연결된다. 즉 요한복음에서는 이 표적이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사망과 부활 가운데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 성령의 파송, 최후 심판과 부활을 위한 재림 등에 대해 예고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16)
또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시는 것은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을 확인케 하고 예수께서 하신 일을 통해서 그가 누구이신가를 믿으라는 것이다.17)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를 구세주(요 1:41), 하나님의 아들(요 1:49), 이스라엘 임금(요 1:49), 하나님의 어린 양(요 1:36)으로 증거 했듯이, 여기서 표적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이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2장 11절에서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이적을 믿었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선지자들과 율법이 예언한 말씀과 예수의 행함이 일치된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다.18) 김정태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과 구조를 연구하며, 이런 이적과 말씀(진리)과의 밀접한 관련이 요한복음의 전체 구조에 반영되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라는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과 연관된다고 지적하고 있다.19)
이처럼 이적은 현재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고 예언의 말씀들이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첫 번째 이적을 나타내는 요한복음 2장에서 물이 이적을 나타내는 도구로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3.1.2. 표적을 나타내는 ‘물’의 개념
표적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현재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영적 질서를 이루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영적 질서의 변화, 상황의 변화를 보여주는 실제적인 사건이다. 또한 혼돈을 가져온 세력이 지배하는 음부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나고, 그 권세에 맞서 이기게 된다는 영적 질서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물은 이 표적, 즉 변화를 드러내는 것이다.
또 표적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 성취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는 것인데, 이는 이 사실을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일이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는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며, 20장 31절에서도 성경의 기록 목적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와 같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아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고,20) 표적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한 죽음으로부터 이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다. 물은 이 표적, 즉 생명을 주는 도구이다.
모친은 하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무엇이라고 하든지 그대로 순종하라고 했는데(2:5), 이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한 것처럼 그와 같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순종하면 이제는 이적이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21) 이제까지는 예수를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여 순종하는 자가 없었기 때문에 예수는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2:4). 그러나 하인들은 예수가 ‘물을 길어다 돌항아리에 채워라’는 말에 그대로 순종했다. 예수는 ‘내 말이 너회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예수의 말을 받아들인다면 이적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로 된 포도주’(요 2:1-11)에서 나오는 ‘표적을 나타내는 물’이 갖고 있는 개념은 영적인 질서의 변화, 즉 이적을 통해서 알게 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변화, 그를 통해서 혼돈의 세력에 대한 승리로 형성된 새로운 질서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변화성이다. 그리고 그 물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 성취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생명성의 개념을 갖고 있다.
3.2. 물과 성령(3:1-15)
3.2.1. 영적인 거듭남에 대한 증거인 ‘물’
요한복음 3장에서는 예수와 니고데모의 대화 기록이 나오는데, 5절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으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말씀한다. 이는 니고데모의 거듭남에 대한 질문(3절)에 대한 자세한 대답이다. 이 문장을 비교하면, 3절의 ‘거듭나다’와 5절의 ‘물과 성령으로 낳다’, 그리고 3절의 ‘하나님의 나라에 볼 수 없다’와 5절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거듭나다’ 와 ‘물과 성령으로 낳다’는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22) 즉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들어가는 것)은 거듭남에 의해 가능한데, 이는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거듭나다’는 말은 헬라어에서 두 단어(, 게네데 아노덴)를 번역한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게네데)는 수동형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태어나는 일이 반드시 태어나게 하는 주체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노덴)은 부사로서 두 가지로 번역이 가능한데, 장소를 언급할 때 ‘위로부터’로 해석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다시,’ ‘새로이,’ ‘다시 한 번’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니고데모가 이 거듭남을 어머니에 의해 다시 한 번 태어나게 하는 일 즉 인간적인 차원의 출생으로 해석하는 것은 4절에서 그가 늙었는데 어찌 다시 태어날 수 있는가라 반문한 부분을 보면 확실하다.
그에 대해서 예수는 먼저 5절에서 ‘물과 성령’이 태어나게 하는 주체라고 하셨다. ‘태어나다’라는 동사 뒤에 전치사 가 사용되어 있는데, 이는 ‘~에 의해’로 해석한다. 예수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는 인간의 자연적인 태어남이 아니라 ‘물과 성령’의 개념을 가진 신적인 태어남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아노덴)는 어머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예수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고 구분지어 설명하셨다(요 3:6). 거듭남은 육체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보다 영원한 영혼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예수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23)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는 예수를 시인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인데, 여기서 성령으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부어 주셔서 아들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못 들어가는 곳, 즉 성령으로 예수를 주라고 완전히 시인하지 않으면 못 들어가는 곳,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구원의 체험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예수의 공로와의 연합과 구원의 체험에 대한 증거는 침례를 통하여 얻는 것이다(벧전 3:21-22).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물로는 구원의 증표를 얻는 것이고 성령으로는 예수를 주라고 시인한다는 뜻이다.24) 여기서 ‘물’은 영적으로 거듭나고 구원을 얻었다는 침례를 말한다.
3.2.2. 영적인 거듭남에 대한 증거인 ‘물’의 개념
‘물과 성령’(3:5)은 영적으로 나서 즉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조건이 되는데, 이 때 ‘물’은 침례를 의미한다. 침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어 구원의 체험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며, 아들의 영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고 성령을 받아 예수를 주라고 완전히 시인할 수 있게 된다. 즉 침례는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통해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신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신분을 얻었다는 변화의 증표가 된다. 그 변화는 영적인 신분의 변화이고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질서의 변화이다. 그리고 그는 거듭나서 순종의 삶을 살게 된다는 변화이다. 과거에는 하나님 없이 자기 임의대로 살았던 자가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영적인 상황 변화를 말한다.
또 이런 변화는 죽음으로부터 생명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그와 함께 장사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롬 6:4). 즉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죽음을, 물로부터 나옴과 새 생명을 각각 동일시하는 것이다.25) 그러므로 침례는 변화와 동시에 죽음과 생명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침례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정결성을 갖게 한다.
성막의 구조를 보면 물이 씻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성막의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다. 번제단에서는 짐승을 잡아 피 흘림으로 자기가 갖고 온 죄를 짐승에게 옮겨서 회개를 하고 그 다음에 물두멍으로 가서 손발을 닦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는데(출 30:17-21), 이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려면 그전에 회개와 씻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의 전도를 들은 사람들이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회개를 먼저 하라고 했고 그 다음에 회개하는 표시로 받는 침례를 받으라고 했다(행 2:38-39). 여기서 회개는 깨끗해져야 한다는 의미이고, 침례는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하고 깨끗해졌다는 표시이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요 3:5)에서 나온 ‘영적인 거듭남에 대한 증거 즉 침례로서의 물’이 갖고 있는 개념은 신분과 질서와 상황의 변화를 의미하는 변화성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연결되는 생명성이며,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하게 된 표시가 된다는 정결성이다.
3.3. 생수(4:1-42)
3.3.1. 하나님의 선물인 ‘물’
요한복음 4장에서는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생수(요 4:10), 우물의 물과 구별된, 믿는 자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물(요 4:14)이 등장한다. 예수가 주시는 ‘생수’는 실제로 ‘하나님의 선물’(요 4:10)과 동일시된다. 이 ‘하나님의 선물’은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성령,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 주려고 하시는 구원과 영생, 복음을 말한다.26)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선물 즉 구속의 은혜를 가져오실 분은 메시야밖에 없었다.27) 사마리아 여자는 처음에는 예수를 유대인으로(요 4:9) 또 선지자로(요 4:19) 다음에는 그리스도로(요 4:25-26) 보았는데, 이는 선물인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분을 찾은 것이다. 예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주리라’ 하셨고, 여자는 ‘내게도 그러한 물을 주옵소서’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은혜, 곧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시며 또한 그 떡을 주시는 분이라고 표현되는데(요 6:51), 이 떡의 상징은 물이라는 상징과 결합되어 있다(요 6:35). 이는 예수가 생수 자체도 되시고 동시에 믿는 자에게 생수를 주시는 분도 되신다고 볼 수 있다.28)
3.3.2. 하나님의 선물인 ‘물’의 개념
여기서 물을 소유하시고 줄 수 있는 분은 하늘에서 온 하나님 뿐이며, 이는 생명과 축복을 줄 수 있는 분은 예수라는 것이다. 예수는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요 4:10)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거저 받을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며 그분이 바로 네 앞에 선 나다’라는 말이다.
그는 생명을 소유하시는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거저 달라고도 요구하실 수 있다.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신 분은 만물의 주인이신 그분밖에 없다. 그에게는 무엇이든 명령하실 권리와 어떤 것이든 임의로 취하실 수 있는 권리가 있으시다.
이런 생명의 물을 주관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앞에서 본 대로 성경 전체를 통해서 찾을 수 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이런 물을 소유하시고 줄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늘에서 온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특히 믿는 자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영생의 물을 주는 그리스도로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한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물’이 갖고 있는 개념은 생명을 얻게 하는 생명성이다.
3.4. 생수의 강(7:37-39)
3.4.1. 내주하신 성령인 ‘물’
요한복음 7장에서는 예수께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군중에게 외치신 소리 중에 믿는 자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부분은 다른 물에 관한 기록과 다르고 그 의미에 대한 설명이 분명히 부가되어 있다(요 7:39).
상징주의자들은 이 구절의 물은 공동체의 특별한 섭리로서 여겨지는 기적적인 샘이나 수원지, 혹은 인간의 깊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움직임으로서 내적인 수원지, 이 두 가지 흐름으로 묘사될 수 있다고 본다.29) 그들은 기적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분의 창조력으로 독특하게 봤던 선지자 이사야의 기록에 착안했다(사 41:18, 20). 이사야는 이 능력을 이전보다 더 포괄적인 공동체를 창조하고 유지한 것으로 보고 샘으로 표현했다.
그와 동시에 이사야는 고통 받는 자에게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자들이 좋은 것, 힘과 기쁨의 회복으로 만족함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샘으로 표현하고 증거하며(사 58:11), 그 새 힘을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구원으로 연결시켰다(사 12:2-3). 그리고 신약에 와서 그 샘의 수원지가 개개인 안에서 하나님의 성령에 움직임을 나타내 주고, 예수의 능력을 재현하여 세상으로 감당하지 못하게 하는 역사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요 16:8). 이런 내적인 샘은 사마리아 여인에 대한 예수의 제안에서도 나타난다(요 4:14).
성령이 임하시는 것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심으로써 이 생수의 강인 성령을 충만히 마시게 하셨다. 성령을 받은 자는 마치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는 것 같이 충만할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충만은 구약시대의 성령의 감동으로서의 충만과 구별된 성령의 내주하심으로서의 충만이다. 구약에서는 성령이 그 사역을 하러 오시고 다시 떠나시는 한시적인 감동이지만, 신약에서는 성령이 믿는 자 안에 임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시면서 진리를 알게 하여 완전한 힘을 주는 내주하심이다.
3.4.2. 내주하신 성령인 ‘물’의 개념
인간 개개인 안에서 내주하신 성령은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기록이다. 내주하신 성령은 그 안에서 새 힘의 원천지가 되고 움직이며 새 힘을 나타내신다. 그는 이사야가 말한 것과 같이 공동체라는 새 질서를 창조하는 힘이다. 성령은 인간에게 질서의 변화를, 동시에 개개인 안에도 그 영적인 상황의 변화를 갖고 오신다. 성령이 신자에게 내주하심으로써 인간이 본래 갖고 있었던 영적 질서, 즉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영적 질서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변화성의 개념으로 말할 수 있다.
또 내주하신 성령은 고통 받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힘과 기쁨의 회복으로 만족함을 얻게 하시는데, 성령이 그 안에 임하시는 것은 고통 받는 자들이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하게 되어 그 안에 정결이 있을 때이다. 성령은 정결이 있는 곳에 오시는 것이다. 성령이 안에 임하셨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사실은 성령 받은 자가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하게 되어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개개인 안에 내주하신 성령인 ‘물’이 갖고 있는 개념은 인간의 질서와 인간 안의 영적 질서를 변화시키는 변화성과, 성령의 임하심이 말하는 정결성과 생명성이다.
3.5. 발을 씻기신 물(13:1-20)
3.5.1. 깨끗하게 씻는 ‘물’
요한복음 13장에서는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기록에서 씻는 도구로서의 물이 등장한다. 이 사건에 대한 기록도 요한복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의 모범적인 교훈으로 남기신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라고 하신 말씀(요 13:8)이다. 이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갖기 원한다면 먼저 그리스도로 인해 죄 사함 받고 은혜를 받아야 하며, 순종하여 침례를 받아 성령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뜻이다.30) 구약에서 손발을 씻지 않고 들어오면 죽으리라고 한 것같이(출 30:17-21), 인간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를 씻지 않으면 그와 상관없는 자가 된다.
베드로는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했으며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이는 주님의 말씀에 의해 이미 깨끗해졌기 때문이다(요 15:3). 발만 닦으면 된다고 하신 것은 그때마다 지은 죄를 매일 발 닦듯이 회개하면 된다는 의미이다.31)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침례를 받아서 이미 마음에 변화가 온 것을 말한다.
3.5.2. 깨끗하게 씻는 ‘물’의 개념
여기서 물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갖기 위해 죄를 씻고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영적인 정결을 가져온다. 즉 물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기 위해 필요한 정결성을 갖고 있다. 또 그와 동시에 인간이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과 관계를 갖게 된다는 의미가 되며, 인간에게 생명을 가져 오는 일도 된다. 즉 물은 생명성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은 죄를 씻고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케 함으로써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고 그 사이에 새로운 질서를 갖고 온다. 그 의미에서 물은 변화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죄를 씻고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물’이 갖고 있는 개념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질서의 변화를 가져 오는 변화성, 그리고 죄를 씻고 영혼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갖게 된 정결성과 생명성이다.
3.6. 물과 피(19:28-37)
3.6.1. 예수의 인성과 죽음에 대한 증거인 ‘물’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고난 받으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와 함께 물이 나왔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고난은 다른 복음서에도 나오지만(마 27:50-56, 막 15:37-41, 눅 46-49) 예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왔다는 부분은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고 피와 물이 나왔다는 19장 34절의 말씀은 다른 성경에 예언된 것에 응한 것이다. 성전 뜰에는 번제단과 물두멍이 있다. 번제단은 제물을 잡아 피 흘리는 곳이고 물두멍은 손을 씻는 곳이며 피 흘린 자는 반드시 물두멍에 가서 손발을 씻어야 했는데(출 30:19-21), 이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예표이다. 그 예언대로라면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 피 흘리고 물로 씻어 낸 것같이 예수에게서 피와 물이 나와야 했으며 마침내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피와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인성의 실제성을 의미한다. 피와 물에 대한 기록은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이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 것을 증거하고, 예수의 죽음이 실제적인 죽음, 즉 예수께서 육체를 가진 참 인간이며 온전한 인성을 가지신 분임을 증거한다.32) 김득중은 이런 예수의 참 인성에 대한 증거는 요한복음 여러 곳(요 1:14; 4:6; 19:28; 20:20, 27)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33)
예수의 인성과 죽음의 실제성은 그의 대속적인 죽음의 완전성을 증거하는 것이다. 김정태는 요한복음에 많이 등장하는 둘이 짝을 이루고 있는 표현과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과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19장 34절의 물과 피를 요한복음 6장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는 말씀과 연결하고 있다. 그는 19장 34절의 흘리신 물과 피는 예수의 살과 피를 뜻한다고 해석하여 그 살을 먹는 것은 예수께서 물을 흘리심으로 그의 육신을 인간에게 다 주신 것이고 예수의 육신이 감당하는 그리스도의 일을 믿으라는 것이라고 이해한다.34) 여기서 물은 예수께서 육신을 갖고 오셨다는 인성과 그의 죽음이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이었다는 실제성을 증거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3.6.2. 예수의 인성과 죽음에 대한 증거인 ‘물’의 개념
여기서 물은 예수의 인성과 죽음, 즉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를 갖고 오시는 것을 증거한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이 나오는데(요일 4:2-3), 그것은 하나님에게 속하지 않고 생명이 없는 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오신 것, 즉 예수의 인성과 죽음을 시인하는 것은 생명에 이르는 것이 된다. 물은 이런 생명에 대한 증거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인성과 죽음에 대한 증거인 ‘물’이 갖고 있는 개념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체로 오신 것을 증거하고 생명을 주는 생명성이다.
4. 요한복음의 ‘물’ 신학
본 장에서는 앞 장에서 여섯 구절을 통해서 봤던 요한복음의 물이 가지는 개념을 ‘변화성,’ ‘생명성,’ ‘정결성’이라는 세 개념으로 정리한다. 특히 성경 전체에서 물이 갖고 있는 ‘질서와 혼돈,’ ‘생명과 죽음,’ ‘축복과 고통’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요한복음이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 세 개념과의 연관성이라는 관점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4.1. 변화성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물은 먼저 변화성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이것은 영적 세계의 질서의 변화, 영적인 신분과 상황의 변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질서의 변화, 인간 안에 있는 영적 질서의 변화 등이다. ‘물로 된 포도주’(요 2:1-11)에서 나오는 ‘표적을 나타내는 물’은 영적인 질서의 변화, 즉 이적을 통해서 알게 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라는 변화, 그를 통해서 혼돈의 세력에 대한 승리로 형성된 새로운 질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물과 성령’(요 3:5)에서 나온 영적인 거듭남에 대한 증거 즉 침례로서의 물은 침례를 통해서 이뤄진 신분과 질서와 상황의 변화를 말하고 있다. 7장에서 나온 ‘생수’의 물은 성령이 개개인 안에 내주하시고 인간의 질서와 인간 안의 영적 질서를 변화시키는 변화를 말하고 있다. 13장에 나온 발을 씻기신 물은 죄를 씻고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 있어서 질서의 변화를 가져 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물이 갖고 있는 변화성의 개념은 성경 전체가 갖고 있는 ‘질서와 혼돈’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더 깊이 영적인 차원까지 발전하고 있다. 요한복음의 물은 보이지 않는 영적 질서와 상황, 그리고 그 변화를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35)
4.2. 생명성
요한복음에 나오는 물은 생명성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이 개념은 선택한 여섯 본문 모두에서 발견되는 개념으로, 요한의 물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생명은 하나님만 소유하고 줄 수 있는 물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 소유하고 줄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이다.
요한은 ‘물로 된 포도주’(요 2:1-11)에서 물이 표적을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함으로써 주는 생명을 보여주고 있다. ‘물과 성령’(요 3:5)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연결된 침례가 생명을 얻는 표가 된다’고 한다. 4장에 나온 물은 생명이 오직 하늘에서 온 하나님을 통해서만 줄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7장에 나온 물도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13장에 나온 발을 씻기신 물은 죄를 씻고 영혼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생명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물과 피’(요 19:34)는 예수의 인성과 죽음에 대해서 증거하고 생명을 보여주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물이 갖고 있는 생명성의 개념은 성경 전체가 갖고 있는 ‘생명과 죽음’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데, 그와 동시에 더 깊이 영적인 차원 즉 영원한 생명까지 발전하고 있다. 구약에는 육체의 생명과 죽음에 관련된 물이 요한복음에서는 영의 영원한 생명과 죽음으로 등장한다. 요한복음은 이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17:3; 20:31), 물은 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때 등장하고 있다.
4.3. 정결성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물은 정결성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이는 죄 사함을 받고 죄를 씻고 깨끗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물과 성령’(요 3:5)에서 나온 물은 침례로 거듭나는 정결을 얻는 표시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7장에서 나온 물은 성령의 임하심이 죄를 씻고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정결을 얻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13장에 나온 발을 씻기신 물은 죄를 씻고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함으로써 가지게 된 정결을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물이 갖고 있는 정결성의 개념은 성경 전체가 갖고 있는 ‘축복과 고통’이라는 개념을 정결이라는 관점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구약에서도 볼 수 있듯 정결은 의식을 통해서 얻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지 못한 것에 비해 신약의 정결은 예수의 공로로 완전히 죄를 씻고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복음을 포함하는 신약의 정결은 구약의 정결을 더 깊이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5. 결론
요한복음에 나오는 물은 성경의 물이 갖고 있는 세 개념, 즉 ‘질서와 혼돈,’ ‘생명과 죽음,’ ‘축복과 고통’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이는 구약의 개념을 발전시키며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물의 쓰임이 주는 의미는 ‘변화성,’ ‘생명성,’ ‘정결성’으로 정리할 수 있다.
변화성의 개념으로 나타난 요한복음의 물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차원의 질서와 상황, 그리고 그 변화를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 생명성의 개념으로 정리된 요한복음의 물은 영의 영원한 생명과 죽음으로 등장한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물은 그런 핵심 내용,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할 때 등장한다. 정결성의 개념으로 정리된 요한복음의 물은 예수의 공로로 완전히 죄를 씻고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정결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축복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물은 이런 정결이 이루어질 때 등장한다.
이상의 세 가지 개념, 즉 ‘변화성,’ ‘생명성,’ ‘정결성’이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것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요소를 말한다. 변화성은 인간의 영적인 신분과 상황의 변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질서의 변화이다. 죄인이 의인이 되는 이 변화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또 생명성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되는 영의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정결성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요소이다. 이처럼 요한복음에서는 구속적인 개념으로 포괄되는 ‘변화성,’ ‘생명성,’ ‘정결성’ 이라는 세 개념을 물이라는 용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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