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태산(정읍)학당에서 안향선생이 문화,국방교육
안향은 충열왕의 세력자 송인 고향 정읍 사람 그 후손 안지 안당 안의
안당의 종 송사련이 무고로 멸문 퇴계 율곡 에게 '도덕이론' 책만 전해서, 국방이 무능했다
최치원 사당을 송씨 소유지에서 사병교육하는 학당으로 고려시대 종합교육 학당 (學堂) 글씨 기와파편
학당은 무술 문화 등 전과목을 교육시키는 곳 충열왕 시대 쌍화점 문화바탕에 안향이 있었다
안향은 충열왕시대 실력자 송씨 송인의 배경으로 출세하여 그업적을 고증하는 '학당유적과 후진들의 학문 국방 병술이 정읍 송씨 지역에만
살아 있어 유일한 연속적 항일의병 동학군 지역으로 증명한다
후손이 조광조를 구출하려다 역모죄로 피하여 영주사람으로 알려젔으나 용비어천가 최항 안지, 안당 조선실록구출자 안의가 살았다
태조 이성계와 세조 .연산 광해군은 정읍의 세력을 친교하여 한민족교육을 시키고, 태종과 중종 인조는 정읍세력을 파괴하여 유교 충성 명나라 맹종 성균관 교육을 하였다
정읍시 칠보면 태산학당 學堂 은 허기 최치원 이자겸 안향은 무술 의술 학문 전반의 교육을 하였으나 안향의 후손 안당의 종 송사련 송익필 부자가 이 주인을 역모로 고발하여 정읍 학당의 도학정치의 책을 모두 가지고 이율곡 마을로 갔고 일부후손이 주왕산으로 피난하여 살아서 이퇴계 이황이 그곳 군수로서 그곳에서 일부 예절책을 보고 퇴계학파가 생겼다
정읍은 이자겸 3대 정권시대 이전부터 중국망명족 송씨들의 보물 서적등을 자기소유지 땅에 사병교육 학당을 세웠는데 송나라에서 망명하여 온 송씨 송인의 충열왕 세력시대에는 안향이 원나라에서 엄청난 서적을 구해 와서 조선 세조 연산군시대 까지 문화 예술 국방 의학등 모든 학문의 중신지가 되었다
안향은 충열왕시대 권력자 송인의 고향 세력하에 정읍에서 학당을 세우고 세종시대 안지,
안향(安珦)▶ 안우기(安于器)▶ 안목(安牧)▶ 안원숭(安元崇)▶ 안원(安瑗)▶ 안종약(安從約)▶ 안경(安璟)▶ 안돈후(安敦厚)▶ 안당(安당:右議政)▶ 안처겸(安處謙)인데
진시황제가 불로초 케러 보낸 서시가 오두마차를 굴앞에 대기하여 진시황제 재림을 비는 돌 마차 유물로보아 그시대부터
왕족등 망명족이 대대로 이곳에서 상류문화로 종합교육학당을 세우고 살아서 승전하였다
중종시대 ‘조선의 공자’라는 이정숙(세종의 고손자) 안당. 안처겸으로 유학의 성지를 이루고 이장곤 조광조를 길러냈다
중종이 이들이 유자광 계보라하여 무고하여 시산(詩山)정 이정숙을 숙청하고 한림학사로 불리는 태인현감 신잠은 신숙주 후손이러서 살려주어 명종시대 8년간 태인현감으로 학당을 재건했다 시산은 옛 태산군청 이름 현 정읍시 칠보면 시산 詩山리 이다
안당은 시산정 이정숙과 같은 고향사람 그후손 안의가 충열왕의 애첩 태인시씨 본향 능향마을 인접 자시내 마을 에서 살았다
세조대왕, 유자광, 홍길동, 대장금 허준 이항, 정여립, 김천일, 이순신등 태산학당 연고자는 국방 의술 예술등의 다재능을 여기서 교육받은 결과로 나타났다
신라시대 안록산 토벌군 태인허씨 허기 장군을 따라온 터어키 군사와 몽고군 포로들이 수용소
정읍 태산군 지역으로 터어키 페르샤 에서 사용하는 빨강기와 로 송인 사당을 지은 기와출토 사진
그 이유가 중국에서 역대왕조가 패망하여 대대로 망명하는 피난처가 다도해 남서해안과 노령산맥 이다
거기서도 동진강과 섬진강이 만나는 이곳 산내면 교통의 중심지이며 게릴라 군사작전의 요새지로 운주산과 회문산이 있는 현 옥정호 지역이다
그래서 진시황제의 5두마차 유적이 있고, 흑치상지, 지수신, 가야족 허씨의 탄생지로서 허기 장군, 고려시대 이자겸 3대가, 그리고 몽고7차 남침을 격퇴한 송군비, 삼벌초를 평정한 임씨, 충열왕 시대 세력자 송씨의 호족, 공민왕의 모친 명덕태후 홍씨, 그리고 예종 성종연산군시대 유자광의 세력으로 군사 예술 문화 유교 학문을 태산학당에서 교육시켰다
시대마다 다투어 이곳을 장악하여 사병훈련 양성교과서로서 손자병법. 삼국지. 초한지등과 사서삼경 같은 서적을 중국귀족이 망명하면서 가저온 도서등 모두 구비하여 중국귀족 피난의 세력지대였다
887년 허사문 장보고 후손 장정과 함께 기거 태산태수로 부임한 최치원
그래서 신라 품일, 당나라군 ,몽고군사, 일본 아지발도가 대패하는 천하요새지로서 귀족의 사병양성지 피난지로서 이어왔다
태종왕이 태산군을 친 이성계파 이화. 허경. 송안.고향이기에 고의로 군을 페지하여 버렸으나 여전한 민족학당(學堂)교육으로 학문의 성지였기에
지속되었고 중종반정에서 중종은 음악 국방전문가인 유자광 (일등공신)을 반정에 이용하고 나서는 강원도 평창으로 유배시켜 숙청 했다
그리고 유자광의 제자 박영문 장군도 종 막개로 하여금 거짓 밀고하게 하여 숙청했다
연이어 이런 방법으로 조광조 까지 역모로 꾸며 죽이려하여 안향선생의 후손인 안당. 안처겸이 친구 조광조를 살리려하니 안당(안향의 후손)의 종 송사련을 시켜서 거짓 역모를 고발케하여 안당의 안씨 일가 9족이 몰살하게 되어 안씨족 일부가 주왕산으로 도망가서 순흥안씨, 또는 전라도 강진 다도해 섬으로 숨어 훗날에 탐진안씨 등으로 변성하여 살아났다
탐진안씨는 이곳 태산 호족 강진김씨 들이 자기고향 강진군 탐진에 망명지를 알선 피난하여 살았다고 한다
조선시대는 주인을 역모로 밀고하면 주인의 재산, 부녀자를 종으로 하사받고 양반 귀족이 되어 사는 특혜가 있어서 종이 주인을 자주 고발하여 죽이고 출세하는 부도덕 시대였다
몽고 포로가 정착한 쌍화점 송인의 소유영역 유상곡수 냇가 쌍구정
송사련은 안당(안향-안지의 후손)의 종인데 머리가 좋아서 안당이 글을 가르처 주고 조카사위를 삼았다
그러나 글을 배우고 송사련이 욕심을 내어 벼슬을 하려고 작정하고 주인 가문 모두를 죽이고 왕족과도 혼인 했다
그러나 자기보다 학문 국방 실력이 월등한 호남지역 3000명의 학당전통계승 선비들이 걸려서 이들을 모두 숙청하기 위한 궁리 끝에
그 종 송사련 아들 송익필이 대를 이어서 정여립을 무고하여 전라도 국방우수 지식인 만 골라서 3000명을 학살하여 심혼 이율곡 정철 귀족으로 살려고 했다
송사련이 안당 안처겸 가문을 몰살시키고 그 의 모든 서적을 가지고 이율곡에게로 갔다
이율곡은 머리가 총명하여 그 책을 읽어 이론은 잘 알았으나 그에 따른 실천하는 실학이 없다
즉 국방에서 충성 효도만 알았지 군사력과 농사 의술 경제 살림살이 실학 서적이 없었다
종 송사련이 벼슬쟁취에 필요한 유교예절 서적만 가지고 파주로 떠난 것이다
이때 까지도 금강산 중으로 불경을 줄줄 외우고 있던 이율곡이
여기서 안당의 종 송사련이 해주와 파주 이율곡 마을에서 살면서 이율곡에게 희귀한 고서를 보이고 많은 유학이론을 주었다
원종, 충열왕, 송인의 세력시대 송인의 사병학당 에서 부터 안지. 안당. 안의. 후손이 학당을 주도했다
후에 정여립은 서울 이율곡이 훌륭하다하여 문하에 들었으나 국방과 실천 실학에서 이론뿐이지 실속이 전혀 없다 고하여 내려왔다
이율곡 국방은 군사훈련 병참 군량 무기제조 작전등 기술이 전혀 없는 허구이론 뿐 이였다
정여립은 정읍에서 민중 대대로 전래 되는 전투 경험체험담과 지남서. 손자병법. 삼국지. 줄거리 내용을 웅변소리로 군사교육하는 사습대회에서 척계광의 지남서, 적벽대전. 화령도, 등 병법을 외우고 낭독하는 군사훈련이 판소리의 기원이 되었다
그래서 판소리 북은 반드시 ‘군용 쇠못북’을 사용 한다
정여립은 이율곡의 제자 전주부사 남언용이 서해에 왜병침입에 겁을 내고 민간인 정여립에게 요청하여 대동계 민병을 데리고 왜군을 격퇴하였다
그래서 송사련의 아들 송익필이 우수한 지식인 고향사람 정여립의 출세는 곧 자기 종의 신분이 드러나기에 머나먼 황해도에서 전라도 정여립을 거짓 밀고했다
당나라 '율수현위' 최치원의 학당을 유자광이 크게 신축 이전하고 그자리에 조카 권이의 제실에 남은 '율수학당'의 이름
대를 이어 노하우 기술 역모로 꾸며 밀고하여 정여립 같은 우수 선비만 골라서 죽였다
이로서 왜군을 격퇴의 조선의 최고의 명수 유자광, 박영문, 정여립,을 죽어서 그 무능한 군사 정보를 알고 일본군이 마음 놓고 군사양성하여 그 첩보가 들어와서 일본에 김성일을 보내어 정탐을 시켰으나 거짓말로 일본 침략기미가 없다고 보고하여 무방비로 임진난이 조선땅 불바다 학살지옥을 초래했다
이율곡의 제자 신립장군은 문경새재 요세지를 제장들이 지키자고 원해도 도망하듯 물러나 충주 탄금대로 왔는데 왜병이 들어온다고 알리는 척후병사를 목베어 효수하는 겁쟁이로서 전투를 전혀 모르는 대장으로 죽었다
임진난의 방위 격전지 행주산성 진주산성 남원산성을 모두 유자광이 수축한 기록이 있고 이율곡의 '10만양병설'은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없는 일, 단지 그 율곡제자 김장생의 거짓말을 추모글 추측을 교과서에 사실로 올려 우상화 했다
그런데 율곡제자 신립. 김성일을 충신 애국자로 가르치고 음악, 국방수호 리더였던 유자광을 지금도 역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신라 최치원 고려 안향 조선 안지 안당 이정숙이 지킨 ‘태산학당’ 그 이전부터 역사유적이 있다
진시황제의 5두마차 유적이 있고, 흑치상지, 지수신, 가야족 허씨의 탄생지로서 허기 장군, 고려시대 이자겸 3대가, 그리고 몽고7차 남침을 격퇴한 송군비, 삼벌초를 평정한 임씨, 충열왕 시대 세력자 송씨의 호족, 공민왕의 모친 명덕태후 홍씨, 그리고 예종 성종. 연산군시대 유자광의 세력으로 군사 예술 문화 유교 학문을 태산학당에서 교육시켰다
시대마다 다투어 이곳을 장악하여 사병훈련 양성교과서로서 손자병법. 삼국지. 초한지등과 사서삼경 같은 서적을 망명하면서 가저와 모두 구비하여 귀족의 학교 학당교육의 시발지였다
중국유교 음악을 가르치는 이름 '현가루' 건물
지금까지 이론과 실속 있는 교육의 땅에서 허기 세조대왕 홍길동 유자광 대장금 이순신 송상현 김천일 허준 전봉준이 배운 이론과 실속이 있었다
세조대왕은 여기서 기거 가야금 계면조를 창조하고 예종왕자를 낳아 모악산에 예종태묘도 있고, 정읍현감 이순신 역시 그 후손 이택당 문집에서 이허겸 (태인허씨) 후손이라고 했고 홍길동전을 허균이 지었다고 기록했다
악학괘범 저자 유자광이 이장곤을 등용했고 이장곤이 조광조를 등용시켰다
조광조를 살리려 하다 안당과 이정숙이 송사련의 무고로 정읍의 안향선생 학당이 도망처 영주에 있지 안향선생 후손이 대대로 영주에서 살고 학당을 지은 곳은 아니다
세종대왕의 용비어천가를 지은 최항 후손과 안지의 후손이 옹동면에 살고 있고 그 후손 안의가 전주사고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임진난에 수호보존 했다
중종34년 즉 대장금이 중종의 병치료하고 득세하는 시기에 안당의 고향사람 대장금의 요청으로 그랬는지 영주 주왕산에 안씨 일부 친척이 생존하여 고의로 유자광 세력 호남에서 먼곳의 후손생존지역을 골라 그곳에 서원을 세웠을 것으로 본다
유자광의 계보는 모두 죽이고 이 숙청을 미리 눈치 채고 내려간 이항(일제)과 절친한 경상도 남명 조식선생의 제자만이 학문무술겸비 교육을 받아 김천일 정인홍 곽재우등 제대로 싸우며 임진난에 영.호남 전공을 세웠다
중종이 유자광파를 모두 숙청했는데 오로지 유자광이 연산군때 입궁시킨 대장금은 뛰어난 의술에 중종병환을 치료하여 간신히 살아 남았다
고려시대 설경성. 허중민. 어의의 고장으로 향약집성방을 지은 권채의 외갓집이 이곳 홍씨, 홍길동의 집안이고 그 책을 모방하여 동의보감 을 지은 허준 역시 이곳 허씨였으나 산청으로 피신하여 살다가 허균의 광해군 세력시대 의술책 동의보감을 지었고 허균도 이마을 실화 홍길동전을 지었다
최치원 안향 학당이 현재의 무성서원으로 남아서 백제가요 정읍사를 연주하는 후진악사들
그곳 영주군수로 주세붕과 이퇴계가 그 안당이 소유를 몰수한 송사련의 책 일부를 보고 공부하여 병법과 실학자 조식과 학문격차가 크게 달라서 대립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퇴계가 이율곡을 가르친 적이 없고 종 송사련 부자의 친교 뿐이다
송사련 송익필 부도덕자가 가저간 도학 책은 실속 실학이 없는 충성을 강요하는 이론 뿐이다
그래서 그 교육을 받은 전투는 뺑소니 뿐이고 임진난 불바다 참살인데도 친명파 송시열이 명나라의 원수를 갚고 청나라를 치자고 그 토록 임진난에 당하고도 오로지 개인의 영화를 위하여 일본과 화친하고 드디어 민비가 일본군을 끌어 들여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
그리고 민비마저 그들 일본군 손에 죽었다
일본군사 포위 속에 고종의 목숨이 위태로운 마당에 항복조인 강행하려고 일본군 총칼 협박이 다가오려는 순간이였다
이때 이완용의 용감한 고종왕을 여자로 위장탈출한 작전으로 고종왕이 러시아 공관에 들어가서 왕권기간을 몇 년 더 유지했다
청나라도 도망하고 그 토록 믿었던 미국. 영국이 일본군 지원으로 러시아 마저 패망시켰다
어디에도 일본을 밀치고 도와 줄 국가가 전혀 없어 이준열사도 헛수고로 홧병으로 죽었다
적의 포로로 자살의 길뿐 살아날 길이 없다
최치원. 안향. 안당.안처겸 시산정 이정숙이 여기서 시를 읊어서 시산이라고 부른다
시산군 허서문, 시산정 이정숙,의 정읍 송씨 충열왕시대 소유 시산 냇가
왜 국가가 망하는 이런 시기에 대항군은 정읍의병을 모두가 찾는 길 뿐인가
민비에게 밀려난 1895년 대원군이 태인 동학군 전봉준을 찾아 뜻을 이루고 ,
그래서 1905년에는 태인으로 포천사람 최익현이 동학군을 소집하여 일어났고 ,
1907년 이용구의 시천교도 들까지 독립군으로 나서려 해도 미국 선교사들에게 무기를 사달라고 했어도 구하지 못하여 맨몸으로 태인으로 와서 산내, 쌍치 의병지역으로 들어가려다가 일본군에게 몰살 당했다
태인 3.1 만세 운동도 유달리 치열 했고 ,
이들은 보천교. 차천자 동학교궁전으로 집결 600만 신도들이 결성되어 두려운 일본 총독 데라우찌가 직접 찾아 친일을 원했고, 차천자가 독립군자금을 보내려다가 숙청되었다
1945 해방으로 이승만이 이곳을 찾아 지금의 세종시 민심잡기로 독립호소를 했고,
동학군 김구선생이 따시 오기로 하여 주민들이 환영농악을 연습하던 정읍 설장구 신기남의 증언이 있었다 ,
학당이 성균관 향교로 되어 군사훈련등 학교가 종합교육이 없이 상명하복 맹종하는 예의법 당쟁파벌 만이 정읍을 제외한 곳의 교육이였다
그래서 6.25전투에서 준비 없이 군에 간 학도병 들은 총탄이 쏫아저도 유교적 양반자세 취하기로 '남아 대장부' 양반자세 가문 위신을 중시하여 서서 싸우다 거의 전사했다
조선국방교육은 충성과 자살 두가지 뿐이다
오랜 세월 중국에서 구한 귀중한 종합학문으로 학당에서 이순신, 동학군 기술은 게릴라 전투였고 종 송사련 부자가 모든 지식인을 죽이고 가르친 학문이 신립장군의 뺑소니 작전 결과로 모두 그랬다
그래서 사색당파 경쟁은 송사련 송익필 부자와 정철의 학문으로 무고를 씌워서라도 상대방 죽이기 싸움이 한국의 정치사회 전통교육이다
실기종목은 버리고 오직 벼슬따기 유학이론 도덕서적만 배워 벼슬하고 무술 실업 예술 직업등 을 천시하고 적의 침입에는 전혀 몰라서 전투병술 전통이 계승 경험이 살아있는 정읍으로 달려와 군사력 취하려 하는 한반도 였다
안향선생의 후손 안당의 종 송사련이 자기 출세하기 위해 지식인 모두를 학살한 아이디어가 독일 히틀러가 아인슈타인 지식인만 죽이기 유태인학살로,그리고 김일성이 6,25 남침 전쟁 때에 남한 지식인 학살지령,
캄보디아전쟁에서 폴포트가 교사. 의사 .안경쓴자.등 지식인 만 죽이기로 아이디어로 지식인 학살 종의 출세법이 수출되었다
종이 출세하려니 '지식인 주인이 걸리니 치워버리자' 이런 철학이다
이런 가장 치졸한 전통이 무능한자 출세의 길, 한국형 정치싸움 상대방의 행보에 종 송익필 정치승리 우수두뇌 숙청 만이 계승되고있다
그래서 우리 선거에는 정책은 없고 상대 흠집내기 흑색선전 반대를 위한 이기주의 연구뿐이다
당선승리하면 모든 백성은 노획품으로 공금횡령 사조직으로 지역감정 부추기기 최면술로 주민을 현혹 부정부패 비리정치를 속여 정의가 없어 젔다
호족의 사병교육 군사작전술과 문화 의학 예술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 즉 학당(學堂)이 있는 그 학당(學堂)이 개성과 서울로 이어저서 현재의 서울대학이 되었다
이런 태인군에 만 있었던 학당교육으로 인격이 형성되어 유자광 안당 정여립 전봉준이 국방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대원군, 최익현, 이용구, 홍범식, 김구,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노무현 까지 동학군 전봉준을 우상화하여 자기와 같은 위인으로 칭송하여 보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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