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관사업 IMF로 망해… 자식들 고향에 맡기고 공사판 전전하며 저축
"식구끼리 밥먹는게 행복"
"나 어때?" 이마가 훤한 하태민(48)씨가 어깨를 들썩이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멋있어요." 부인 김행수(43)씨가 지그시 웃으며 남편의 검정 티셔츠와 외투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냈다.12일 오후 2시 인천시 부평구의 3층짜리 다세대 주택에 사는 하씨가 "고향으로 출발" 하고 말하자, 큰딸 하늘(18)양이 과일 박스를 품에 안고 현관문을 나섰다. 둘째 하희(17)양과 막내아들 범수(13)군은 양손에 선물박스를 들고 아빠 뒤를 따랐다. 부인 김씨는 시어머니께 드릴 흰 봉투 2개를 핸드백에 넣었다. 현관문을 잠근 하씨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자주색 통장 하나를 꺼내 확인했다.
"부모님께 보여 드릴 주택청약통장입니다. '집은 언제 장만 하느냐'며 걱정하셨는데 이거 보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공사장을 전전하던 하씨는 올해 5식구가 함께 살 '내 집'을 갖게 된다. 결혼한 이래 20년 만에 처음 가져보는 '우리 집'이다. 전북 임실군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하씨는 2남2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빈농(貧農)의 장남이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입대했고, 제대 후 1987년 서울 광진구에 있는 여관 안내원으로 취직했다. 하씨는 "여관에서 먹고 자며 돈을 모아 초등·중학생이던 동생들에게 학비 부치고 남은 돈은 다 저축했다"고 했다.
- ▲ 12일 인천 부평구에서 타워크레인 기사 하태민씨 가족이 나란히 손을 잡고 고향인 전북 임실군으로 출발하고 있다. / 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하지만 1997년 그의 '금의환향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IMF 위기가 들이닥치면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고 결국 하씨는 2001년 2억여원의 빚만 안은 채 여관 문을 닫았다. "사채업자들이 매일 집에 찾아와 협박했습니다. 말없이 와서 안기는 두 딸과 막내아들 때문에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른 하씨는 자식을 고향 부모님댁에 맡기고 부인 김씨와 전국을 돌며 화장품을 팔았다. 숙식은 여관에서 해결했다. 그는 "라면 한 봉지 더 살 돈이 없어서 라면 한 개 끓여 둘이 먹다가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2002년 아내와 함께 인천으로 올라온 하씨는 공사판에서 하루 10만원을 받고 타워크레인을 설치하고 해체하는 일을 했다. 수십m 높이의 크레인 위에서 한 손으로 기둥을 잡고 다른 손으로 망치를 휘둘러 주먹만 한 볼트를 빼냈다. 그는 "힘이 없으면 떨어져 죽을 수도 있어 매일 밤 운동을 했다"고 했다. 타워크레인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씨는 "크레인 기사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하기에 무작정 도전했다"고 했다. 노곤한 몸을 이끌고 밤 공부를 한 지 1년쯤 지난 2003년 12월 22일 하씨는 마침내 타워크레인 자격증을 땄다.
- ▲ 지난 11일 오전 서울 구로구의 한 건물 신축 공사장에서 하태민씨가 수십m 높이의 타워크레인 조종석에 올라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2007년에는 부인 김씨도 남편의 권유로 타워크레인 기사가 됐다. 하씨 부부는 차곡차곡 돈을 모았고 2008년 말 빚을 모두 청산했다. 부부는 올 9월 서울 근교에 다섯 식구가 함께 살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이다.
부인 김씨는 "주말에도 철야작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설책을 사오는 남편이 고맙기만 하다"고 했다. 하씨는 "식구들 다 건강하고 오래됐지만 차도 있으니 이 정도면 금의환향"이라고 웃었다. 하씨는 가족과 함께 97년식 흰색 승용차를 몰고 고향으로 향했다.
전체백자평(28)
강인한 한국인의 표본이십니다. 축하합니다. 행복하세요.[2010.02.13 16: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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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몰라도 참 힘든 시간을 이겨내신 승리인듯..인간의 집념과 가족간의 사랑이 이처럼 큰 에너지의 원천이 될수 있는것을 기사를 보며 잠깐의 잘못된 생각으로 막다른 생각을 하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이 기사가 삶의 본보기가 될수있기를 ..축하합니다.. [2010.02.13 13:5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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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아름다운 희생! 이제는 행복하게 사는 것만 남았군요. [2010.02.13 13: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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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멋진 가족이고 가장인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더욱더 행복하시고 멋지게 사십시오! ^^[2010.02.13 13:2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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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축하해 주고 싶은 기사이다. 그러나 imf 때 탈락자 대부분은 국가의 실패를 약자인 서민에게 떠넘긴 고약한 일이었다. 다른 예로, 결혼 연령이 올라간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인 젊은이들이 그 피해를 직접적으로 당한다는 말이다. 하선생 가족은 그간 10년여를 어떻게 살았겠나.. 국가는 망해도 국민은 살게 해줘야 한다. 약자를 보호 못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가 없다. [2010.02.13 12: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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