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베이징에 대해 알려주세요

도심안 2009. 10. 26. 05:35

베이징에 대해 알려주세요

비공개 |2007-08-14 14:42 | 20

답변 1 | 조회 685

 

 베이징에 대해 알려주세요 ~

 먹을거나 그 곳의 경치 좀 알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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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시 님의 답변

1:1 질문하기 2007-08-16 09:21

질문자 한마디 늦어서 죄송해요 ㅠㅠㅠ 자유여행입니다 ㅋㅋㅋㅋㅋ

계태사[戒台寺]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당나라 때(622) 지어진 절로 1,3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담자사 남쪽으로 8㎞ 정도 떨어진 마안산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 환경이 아름다우며 500년 이상된 고목들이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22


명13릉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북경시에서 북서쪽으로 45㎞ 떨어진 창평현내에 있다.
명나라 영락황제 7년부터 마지막 승정황제 17년(1409-1644)까지 230여년에 걸쳐 막대한 인력과 물자가 동원되어 건조된 13개의 무덤이다.
그 중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정릉과 장릉이며 정릉은 명13대 만력제와 그 황후를 모신 릉으로 지하 20m에 만들어진 지하 궁전이다.


모전욕(慕田)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팔달령 동쪽 80㎞ 거리에 위치해 있다.
가장 견고한 곳의 성벽 높이는 5m, 폭은 4m로 팔달령에 비하면 웅장하지는 않으나 보통 생각했던 성벽처럼 친근감이 간다. 굴곡이 심한 주변의 경치도 멋진 곳으로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해발 1천m 지점까지 리프트로 오를 수 있는데 가격이 비싸다.


모주석 기념당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모택동이 죽고 1년이 지난 1977년에 드넓은 천안문광장 남쪽에 자리 잡았다.
모택동의 시신이 붉은 오성홍기에 덮여 수정관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곳에 들어갈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서 기념당 양옆의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겨야 한다.


와불사(臥佛寺)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당나라 때(627-650) 세워진 절로 과거에는 壽安寺·孝寺·永安寺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렸으나 보통 와불사라고 불린다. 길이 5m, 무게 54t의 누워서 자는 듯한 모습의 와불로 유명한 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불상의 자세는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 때의 자세를 본뜬 것이라고 한다. 벽운사 부근에 있다.


용경협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용경협은 북경시외 연경현 동북으로 약 10㎞로 떨어진 고성하(古城河)협곡중에 위치하고 있다.
용경협은 독특한 자연산수, 우월한 지리위치, 세심한 인공가공을 거쳐 천하에 명성을 날리고 있으며 북방소이강(일명소계림). 중국소삼협(小三峽)으로 불리우고 있다.

용경협 면적은 119평만키로이고 주로 두개 풍경구: 콩크리트 땜(여름에는 3천자에 달하는 폭포줄기를 볼 수 있고 겨울에는 절벽의 백장빙설경치를 볼 수 있음)코스와 14킬로나 되는 선상유람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에는 선상유람코스는 기아한 절벽, 우아한 산봉우리, 형태가 각이하고 생동한 곰, 낙타, 공작새 등이 있고 유일한 수상병풍, 斧壁山 등 30여곳의 경치가 좋은 곳이 있다.

이곳은 물은 맑고 먼지 없고 공기가 좋고 한폭의 그림과 같이 북경의 16명소 중의 하나로 되여 있다.


고궁(자금성)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중국 최대의 고건축물이자 세계최대의 박물관이다. 동으로 750m, 남북으로 960m, 면적은 약 72만㎡ (천안문광장의 1.6배)이며 높이가 10m의 성벽이 둘러싸고 있다.

자금성은 황제가 집무를 봤던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등의 외조와 황제와 황족이 일상생활을 하던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등의 내정으로 나뉜다.

태화전은 중앙의 대전으로 높이가 35m 폭이 64m로 3층의 대리석 기단위에 세운 목조건축물이다. 내당 중앙에는 황제의 옥좌가 있으며, 건물 앞뒤쪽의 층계에는 구름과 파도를 가르는 용을 조각해 놓았는데 이곳은 황제만이 지나갈 수 있는 어로(御路)이다. 태화전은 명·청 통치자들이 중대한 의식을 거행하던 곳으로 고궁에서 가장 웅대한 건축물이다.

중화전은 태화전 뒤쪽에 있는 건축물로 황제가 정사를 보러 태화전에 나갈 때 휴식을 취하며 대신을 배알을 받던 곳으로 궁중연회를 열기도 했으며 큰 의식을 거행할때는 이곳에서 정무를 보기도 했다.

보화전은 과거를 치르던 장소로 황제가 실지 정사를 보던 곳이다.
현재는 여러가지 보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보화전을 태화전·중화전과 함께 3대전이라고 한다. 이 3대전을 지나면 황제가 거쳐하며 정사를 보던 건청궁이 있고, 황후를 책봉하기도 하고 황후의 생일잔치도 거행했던 교태전이 나온다. 뒤쪽에는 명나라 때는 황후의 거쳐로 쓰였으며, 청나라때는 제사를 지내던 곤녕궁의 황금색 기와가 빛난다. 주변에는 황제이 후궁과 궁녀, 환관들이 거주하던 작은 궁과 전각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곤녕문을 나서면 황제의 화원인 어화원으로 갈수가 있다. 이 정원은 고궁의 끝부분으로 20여채의 작은 건축물과 나무, 괴석이 어우러져 있다. 건물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그림, 도자기, 공예품, 보석 등을 전시하는 전시실로 이용되고 있고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자금성은 그 자체가 박물관이다.



경산공원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경상공원은 고궁 북쪽에 위치한 해발 88.7m 의 산으로 베이징 중심가에 가장 높은 지역이 다. 고궁 전체광경은 물론베이징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원래 원나라 황족 화원이었으나 명나라 때해자를 파낸 흙으로 인공산을 만들어 만세산이라 블렀다. 일설에는 명대에 베이징 으로 천도할 때 황성 북쪽에 북방의 신인 현무를 고려한 풍수지리설에 의해 산을 쌓았다고 한다. 또한 황궁을 지을 때 석탄을 묻은 적이 있어 매산이라 불린다. 경산은 청나라 순치제 1655년부터 불렀다. 5개 봉우리 정자 중 중앙 만춘정이 가장 높다. 이곳에 올라 시내를 조망한 후 동쪽 비탈길 을 내려오다 보면 관묘정이 있다. 관묘정 북쪽에는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황제가 목매어 죽은 느티나무가 이다. 1644년 이자서으이 농민봉기군이 베이징으로 진공하자 황제는 세 아들을 변장하여 도피시 키고 곤녕궁에 있던 황후와 귀빈은 스스로 목매달아 죽게 하였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공 주들을 죽였다. 황제는 의관을 벗어버린 채 신무문을 통해 경산으로 올라갔다. 그를 따를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에게 봉사하던 태람 왕승은 한 사람뿐이었다. 황제는 산비타을 오르 다 사람 키 정도의 구부정하게 자란 느티나무를 발견하고 허리띠를 풀어 스슷로 목을 매 었다. 이로써 명 276년은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왕승은 역시 황제가 자진한 옆 나무에 목을 매 죽었다. 지금도 숭정제 무덤인 13릉의 사릉 옆에는 왕승은의 묘와 비석이 나란히 세 워져 있다. 이후 청조의 한 황제를 구하지 못한 죄를 범한 이 나무에 불충죄를 내리고 쇠사슬로 옆의 큰 돌에 묶어두었다. 이 사슬은 1949년에 가서야 플렀다. 현재는 본래의 나무는 베어져 없 어지고 대신 1963년에 새로 식수한 자그마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 승정제의 종말에 대한 일화는 1641년에 흠안전에서 항을 피우던 숭정제가 상자 하나를 발 견한 데서 유래한다. 상자속에서 미래를 예견하는 미식적인 그림 한 장이 나왔는데 수많은 패잔병과 백성들이 피난하는 모습과 관을 쓰지않은 백관들이 동분서주하는 그림이었다. 또 한 최후의 한 사람은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을 가니 채 나무에 목매 죽어 있었다.

교통: 101,103,109번 버스로 징샨하차
개관시간: 06:00~21:00 입장료: 0.5



노구교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베이징시 서남쪽 50km 지점에 위치한 800년전인 금나라 시기의 다리로 중일전쟁의 발발원 인이었던 노구교 사건으로 유명한 곳 이다. 마르코 폴로는 노구교를 일컬어 '세계에서 보기 드문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격찬하였다. 베이징에 도읍을 정한 금은 서방과의 교통을 원할히 하기 위해 노구교를 1192년에 건설하 였다. 다리는 전체 길이 260.5m, 폭 7.5m로서 11개의 아치형 교각이 떠받치고 있다. 다리 난간의 140개의 기둥에는 281개 사자상이 있다 노구교의 사자조각은 사자 모체 이의 새끼사 자 198개, 다리 동쪽 난간 좌우로 각각 1개로 전체 485개이다. 또한 다리밑 모랫속에서 1개 가 추가 발견되어 전체 486개이다. 다리의 사자상 숫자가 너무 맣아 중국 속담에는 '노구교 의 사자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다리 이의 사자는 금나라르 거쳐 원명대에 보수된 것이 많아 모양이 각각 다른 형상이다. 1975년 중국정부는 다리의 견고함을 측정하 기 위해 429t트레일러 트럭을 고속통과 시키는 실험을 해으나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 다. 그러나 이로 말미암아 다리 내부에 손상이 생겨 현재 차량 통행이 금지된 상태이다

교통:309,310,339번 버스노선
입장료:외국인 15 천지(텐츠)



만리장성1(하북성 산해관-감숙성 가욕관)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만리장성은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건축물로 보통의 성벽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성벽의 높이는 7-8m, 폭이 6-7m나 되는 곳도 있다. 험준한 산의 능선을 타고 끝없이 펼쳐진 성벽은 동쪽 발해만에 있는 산해관에서 시작해 서쪽 고비사막 속에 있는 감숙성의 가욕관에서 끝나는 6천㎞의 길이다. 만리장성은 북방의 이민족 침입을 막기위해 통일 국가 진(秦)이 들어서면서 진시황은 소규모 장성을 한나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성벽은 남아있는 것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지금의 장성이 진나라때 만든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리장성2-팔달령

[이미지준비중]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70㎞ 지점에 있는 장성으로 명나라때 축조된 것이어서 중국에서는 명장성(明長城)이라고도 부른다. 팔달령은 건축된지 5백여년밖에 안되서 보존된 상태가 좋은 편이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등성이에 만들어진 장성은 어떤 지형에서도 끊어지지 않고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망루에 올라 바라보면 끝없는 성벽이 장관이다. 성벽에는 적의 침입이 있을때 즉시 알리는 통신수단으로 쓰였던 봉화대가 120m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적을 공격하는 토대와 두겹으로 된 방어용 성채도 위용을 자랑한다. 급경사인 곳도 있으니 내려오는 길에는 뛰지않는 것이 좋다.


이화원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북경시 북서쪽 15㎞ 지점에 있는 중국 4대 정원의 하나이며, 최대의 황실정원이다. 금나라(1153년)때 처음 이곳에 궁전이 세워졌고, 명·청 때는 인공의 호수와 산인 곤명호와 만수산이 만들어졌다.

아편전쟁때 연합군(영국, 프랑스)에 의해 파괴된 곳을 서태후가 1888년에 해군경비를 빼돌려 다시 복구하였다. 이런 이유로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만수산은 높이 59m로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곤명호는 아름답다. 이곳에는 불향각을 비롯한 많은 누각이 있으며, 뒤쪽에 7층 16m의 다보유리탑이 있는데, 7가지 자기로 만든 색깔과 모양이 화려하다. 불향각은 8면 4층으로 높이는 41m 이다. 아래쪽에 20m의 돌기초가 되어있어서 밑에서 올려다보면 웅장한 기세이다. 불향각 아래, 곤명호 북쪽 기슭을 따라 728m의 장랑이 팔각정 네채를 연결하고 있다.

장랑의 천정에는 아름다운 경치 8천여점의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발길을 더디게 만든다. 장랑이 끝나는 곤명호 북쪽에는 서태후가 비가오는 날 나와 앉았다는 돌로 만든 배가 금방이라도 물결을 헤치고 날아갈 듯 보인다. 외국사절을 접견하며 정무를 봤던 인수전, 침실이었던 악수당에는 청화백자와 구리화로 등 서태후가 쓰던 물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천단공원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천단은 숭문구 정양문 밖의 영정문거리 동쪽에 위치해 있다.
명·청 시대에 황제가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빌던 곳이다. 천단의 담장은 남쪽이 각이지고 북쪽은 둥그스름한데 이것은 하늘이 둥글고 땅이 평면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기년전은 북쪽에 있으며 높이 38m로 꼭대기를 금도금한 3층의 원형 건축물이다. 내부의 기둥 4개는 사계절을 뜻하고 4개의 기둥을 둘러싼 12개 기둥은 열두달을, 그 바깥쪽 12개의 기둥은 12시간을 의미한다. 이 웅장한 건축물은 못을 한 개도 쓰지않고서 지었다고 한다.

황궁우는 기년전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기년전을 닮았으나 단층의 건축물이다. 역대 황제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회음벽(回音壁)과 삼음석(三音石)이 유명하다. 회음벽은 화우궁을 둘러싼 원형의 토벽을 말한다. 이 토벽 가까이 입을 대고 말하면 먼곳의 담벽에 선 사람 귀에도 똑똑히 들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음석은 황궁우를 받치고 있는 석단 아래의 세 받침돌을 말하는데 첫번째 받침돌에서 한번 손벽을 치면 한 번, 두번째 받침돌에서 한 번 손뼉을 치면 두번, 세번째 받침돌에서 한번 손뼉을 치면 세번의 메아리가 들린다. 환구단은 천단의 남쪽에 있는 대리석으로 된 3단의 원단으로 황제가 동지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천안문 광장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천안문은 명청시대 항성 정문으로서 명나라 1417년에 처음 세워진 것이다. '황제가 하늘로 부터 명을 받아 잇는다.'는 뜻의 승천문이랄 불리었으나 1457년에 소실 되었다. 현재의 천 안문은 청나라 1651년에 세워진 것으로 '천하편안 하게 한다'는 뜻으로 천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천안문은 전체 너비 1,710㎡, 성루 너비 62,77㎡로서 매우 거대한 문이다. 성 루 지붕 네 모서리에는 선인을 필두로 용, 봉황,사자, 기린, 천마 등 전체 11개 조각들이 서 있다. 이는 성루를 호재 등의 재난으로부터 지킨다는 의미이다. 전체 5개의 문 중, 가운 데 문이 너비 5,25m 높이 8.82m, 길이 30m로 가장 큰 규모이다. 이전에는 황제만이 드나들 수 있는 어도였다 어도의 좌우 두 문은 왕이나 고고나대신 들어 드나들던 문이었으며 그 옆 두 문은 관리나 병졸 등이 드나들던 문이다. 문 앞 좌우에는 화표라 불리는 2개의 큰 기둥 이 서 있다. 화표 위의 동물은 후라 불리는 짐승이다. 이 후는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반면 천아문 뒤쪽의 후는 북쪽 황궁을 바라 보고 있다. 후는 황제의 거동을 주시하는 신성한 전 설상의 동물이다. 뒤쪽 후는 황제가 궁 안에만 머물며 국정을 돌보지 않을 때 황제에게 밖 에 나가 만정을 살피도록 권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황제가 출문하기를 기다리는 이후 를 이컫어 망군출이라 부른다. 그리고 앞쪽의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 후는 황제가 밖에 나갔 다가 돌아오지 않을 때 어서 돌아와 국정을 처리하도록 군했다하여 망군귀라 부른다. 천안문 앞의 조그마한 강물은 금수하이다. 금수하 위의 5개 다리는 금수교이다. 맨 가운데 다리는 황제만이 건널 수 있는다리 다리이다. 금수교 양쪽의 사자상은 왕궁을 외부로부터 지키고 있다. 천안문은 황제의 조서를 전국에 발표하던 곳이다. 또한 황제가 하늘이나 땅에 제사를 지 내려 갈때나 출정할 때 반드시 통과하는 문이었다. 1911년12월 25일 천안문에서는 중국 마 지막 황제 푸이가 퇴위조서를 발표하였으려 1949년에는 마오쩌똥이 신중국 성립을 선포하였 다. 입장료를 내면 성루 위에 올라갈 수 있다.

교통: 지하철을 타고 치엔면에서 하차하여 도보로 15분 걸린다. 버스는 1,2,4,5,10,20,47,52,54,110,116번 노선이 있다.

개관시간:09:00~17:30 입장은 16:30까지 입장료: 30
북경근처의 볼만곳이구요,,,

어떤 여행이신지가 없네요,패키지이신지...자유여행이신지..

북경에 많은 패스드푸드점 잇구요,,,

가시면 꼬옥 꼬치 요리 먹어보시구요...

내용출처 : http://www.chinatravel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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