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

[新택리지]그 날의 울분 신록의 여로(旅路), 동학의 역사탐방 정읍

도심안 2009. 9. 30. 19:34

[新택리지]그 날의 울분 신록의 여로(旅路), 동학의 역사탐방 정읍

경향닷컴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 댓글 0

  • 1
  • 0
정읍은 역사 시간여행과 경치 나들이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동학농민혁명, 정읍사·상춘곡의 발원지이자 피향정·무성서원 등 둘러볼 문화유적지가 많다. 게다가 동남쪽 내장산과 옥정호는 각각 가을단풍과 물안개로 전국에 이름이 나 있다.

정읍은 동학혁명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자손들은 불과 얼마전 까지도 자신들이 동학의 후손이라고 밝히기를 꺼렸다고 한다. ‘반란’, ‘역적’으로 몰려 총칼에 쓰러져 간 동학 농민의 피맺힌 함성이 붉은 황토밭에서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동학혁명 최초의 전승지인 황토현

황토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장원수 기자)


정읍시청에서 부안군 쪽으로 차를 몰아 동학농민혁명의 현장을 찾았다. 지금 이곳에는 국보나 보물 같은 문화재도 없고 수려한 경관도 없다. 최초의 전승지인 황토현에는 전적지 및 전봉준장군 동상, 기념관이 있지만 인공 조성미가 물씬 풍긴다. 오히려 언덕 위의 솔밭, 시뻘건 황토밭에서 한 떨기 들불처럼 타오르다가 사그라진 동학 농민군의 핏빛 혼(魂)이 서려있다.

110여 년 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에 결연히 떨쳐 일어난 농민군은 관군과의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주성을 점령한다. 전주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에 청국과 일본군이 출병하고, 결국 농민군은 일본군에 가로막혀 꿈을 이루지 못한다. 농민군은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한 길이 무슨 허물이란 말인가”라며 일본군의 무자비한 살육에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소리죽여 부르며 쓰러져갔다.

농민군에겐 돌아갈 고향도 집도 없었다. 굶주리며 산야를 헤매면서도 오직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며 분투했다. 하지만 평등한 세상, ‘민중적 유토피아’를 꿈꾸며 분노와 울분의 횃불을 치켜든 농민군은 일본군의 총탄에 무참하게 쓰려져 갔다. 수탈의 대상이 아닌 역사의 주인이고 싶어 스스로 봉기에 앞장섰던 농민군은 결국 ‘한밤의 꿈’처럼 미완의 혁명, 흔적의 역사로 남아 있다.

김지하는 ‘황토길’에서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국, 핏자국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두 손엔 철사 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메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중략)/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이라며 동학혁명으로 쓰러져 간 참혹한 농민에 대한 울분을 토해냈다.

동학농민 혁명기념관은 혁명 110주년 기념행사에 맞추어 2004년 5월 10만여 평의 부지에 4673평의 전통초가형 교육관과 전시관 등을 신축 개관했다. 무기류와 관련서적 등 유물 3700여점을 전시해 동학혁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기념관 맞은편에는 향토현 승리를 기리기 위한 전적지가 있다.

만석보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만석보유지비. (장원수 기자)


고부군수 조병갑이 보의 수축을 빙자하여, 물세를 강제 징수해 동학혁명 유발의 원인이 된 만석보터로 향했다. 백산에서 신태인 쪽으로 가다가 이평으로 향하면 뚝 위로 비석이 보이는데 여기가 만석보터이다. 지금 이곳에 보 흔적은 오래 전에 사라졌고 만석보유지비와 비문만이 배들평야를 내려다보며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듯한 지평선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넓어 호남 최대의 곡창지대임을 자랑하던 배들평야의 논과 밭에는 더 이상 보리를 심지 않는다. 주민들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유채꽃을 심었고, 봄이면 ‘유채꽃 축제’를 벌인다.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에 불만이 팽배해 있던 농민 500여명이 1894년 1월 10일 봉기했던 말목장터도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이평면 면사무소 맞은편에 전봉준장군이 집결한 농민들에게 일장연설을 하고 기대어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아름드리 감나무는 2003년 여름 태풍 ‘매미’에 의해 넘어지면서 고사돼 방부 처리한 다음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보관중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다. 유태길 향토사학자는 “지금은 자리를 5m 정도 옮겼지만 이전에 말목정이라는 정자를 감나무 옆에 짓고 콘크리트와 자갈을 깔아 뿌리를 상하게 했다”면서 “이 때문에 감나무의 뿌리가 허약해졌고 태풍에 그만 고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곳에는 현재 대체 감나무를 식재했다.

말목장터에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의 전봉준장군 고택까지는 차로 10여분 거리다. 본래 방, 부엌, 건넌방이 붙어 있는 초라한 초가삼간과 초가 흙담으로 둘러진 마당 한쪽에 헛간이 딸려 있는 옴폭한 옛집이었다. 1974년 해체 수리 당시 상량문(上梁文)에 ‘무인(戊寅) 2월 26일’이라는 적혀 있어 세워진 연대가 밝혀졌다. 지금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부엌, 큰방, 윗방, 끝 방에 다가 뒤뜰에 널찍한 잔디정원이 생겼다.

선비문화의 맥이 형성된 태산선비문화권

칠보면 태산선비문화권에는 3개의 서원과 10여개의 사우가 현존하며, 20여개의 효열정려, 10여개의 누정이 산재하는 등 선비문화유적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사학기관 ‘무성서원’, 호남제일정 ‘피향정’, 조선 99칸집 ‘김동수 가옥’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선비문화의 위상을 말해준다. 안성렬 태산선비문화사료관장은 “안동이 양반문화였다면 이곳은 벼슬보다는 의리와 학문에 뜻을 둔 선비문화였다”며 “선비문화는 구한말 의병운동, 일제시대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국란을 당했을 때 의연히 떨쳐 일어났다”고 말했다.

신라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해 세워진 무성서원. (장원수 기자)


태산선비문화사료관 옆에 있는 무성서원(武城書院)은 신라말 유학자인 최치원의 위폐를 모신 서원이다. 이어서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등을 함께 모셨다. 1696년(숙종 22년)에 사액됨으로써 무성서원이라 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전북에서는 유일하게 화를 면했으며, 2층 문루인 현가루와 강당, 장수재 등 건물이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1906년에 최익현, 임병찬 등이 호남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장소로 유명하다.

태인면에 있는 ‘호남 제일의 정자’라는 피향정(被香亭)은 정자 주변의 연못에 핀 연꽃향기가 주위에 가득하다 하여 이렇게 불렀다. 원래 정자의 앞뒤로 상·하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승을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하연지만 남아 있다. 최치원이 태산군수로 재임하면서 이 곳 연못을 거닐며 풍월을 읊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건물의 규모는 높이 약 4척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집이다. 4면이 모두 개방되어 있고 주위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다.

김동수씨 가옥은 흔히 99칸 집으로 불리는 조선 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김동수의 6대조인 김명관이 1784년(정조 8년)에 건립했다. 창하산(蒼霞山)을 배경으로 앞에는 동진강의 상류인 맑은 하천이 흐르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터전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온 이 집은 균형미가 넘쳐나며, 처마의 흐름이나 기둥의 배열 등이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을 보여준다.

한글로 된 백제 유일의 가요 정읍사

정읍사공원의 망부상. (장원수 기자)


“하 노피곰 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디 드디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어느이다 노코시라/어긔야, 내 가논디 졈그셰라. 어긔야 어강됴리/아으 다롱디리” 정읍사(井邑詞)는 현존하는 유일의 백제가요이며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내용은 행상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므로 높은 산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밤길에 무사하기를 바라는 아내의 간절함이 묻어난다.

정읍에는 정읍사비와 망부상이 여러 개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읍사공원의 망부상과 정읍사비이다. 정읍사 공원의 맨 위쪽에 자리한 망부상은 허리띠를 두른 백제여인의 의상을 갖추고 있다. 치마저고리가 하얀 색깔이며 아래까지 단이 있는 반코트를 입고 있다. 망부상은 지금도 남편을 기다리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듯 정읍 시가지를 바라보며 양손을 모은 채 서 있다.

망부상 아래에는 정읍사 노래비가 있다. 노래비 앞면엔 남편을 기다리는 백제 여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그 밑에 큰 돌을 놓아 하나는 수제천(壽齊天)을 새기고, 다른 하나는 정읍사를 현대감각에 맞게 개사하여 악보와 함께 새겨 놓았다. 노래비 뒷면에는 이 고장 출신 KBS 관현악단장 김강섭선생이 작곡했다고 적혀 있다. 공원 입구에는 ‘미네랄이 풍부한 지하 암반수’라고 새겨져 있는 약수터가 있어 시민들이 아침저녁으로 물을 떠간다.

내장산의 봄은 온통 신록으로 뒤덮여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의 단풍나무 터널. (장원수 기자)


봄 내장산(內藏山)은 한가하다. 매표소에서 내장사 일주문까지 오가는 차량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가을이면 이곳은 ‘걷는 게 훨씬 빠르다’고 할 정도로 하루 종일 막힌다. 내장사까지 가는 길 역시 호젓하다. 길 양쪽으로 단풍나무와 굴참나무, 종가시나무가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며 방문객을 안내한다. 잎사귀들이 봄비를 머금고 이제 막 피기 시작했다. 빗줄기에 흠씬 시달린 땅은 축축이 젖은 채 서늘한 기운을 뿜어낸다. 대기는 가시지 않은 물방울의 잔흔으로 희붐하고 코가 아프도록 싸하다.

노산 이은상은 ‘내장산’이라는 시에서 “내장산 골짜구니 돌벼래 위에/불타는 가을단풍 자랑말아라/신선봉 등 너머로 눈 퍼붓는 날/비자림 푸른 숲이 더 좋다구나”라고 했다. 가을 단풍이 좋으면 봄 신록도 좋은 법. 밑에서 싹을 틔운 잎사귀는 점점 위쪽으로 매서운 속도로 초록으로 갈아입는다. 이 잎사귀는 가을이면 진홍색 물감을 뿌리면서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다. 연두색 산줄기 위에는 소나무 몇 그루에 의존한 능선이 뒤태를 고스란히 드리고 있다.

정읍시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내장산은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해발 600∼700m급의 기암괴석이 말발굽형의 능선을 그리고 있다. 원래 이름은 영은산 이었는데, 촘촘히 굴곡 진 계곡이 양(羊)의 창자와 비슷해 많은 인파가 몰려와도 계곡 속에 들어가면 잘 보이지 않아, 마치 양의 내장 속에 숨어 들어간 것 같다 하여 내장산으로 불리게 됐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힌다.

최고봉인 신선봉(神仙峰·763m)을 주봉으로 서래봉, 연지봉, 연자봉, 장군봉 등이 내장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내장사, 원적암, 벽련암 등 크고 작은 사찰이 있다. 내장사 북쪽의 기묘한 바위봉우리는 서래봉(西來峰)으로 논과 밭을 고르는 옛 농기구인 써레를 닮았다고 해서 써래봉 이라고도 한다. 약 1.1㎞의 기암괴석이 뾰족뾰족 솟아 있어 눈길을 끈다. 신선봉은 봉우리가 수려하고 계곡이 깊고 아름답다. 불출봉(拂出峰)은 어느 신선의 신비한 옷자락인 양 자욱이 깔려 있는 구름 안개로 유명하다.

내장산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으뜸은 가을 단풍이다. 단풍잎이 얇고 작아 붉은색이 잘 들고 색이 화려해 폭포들과 어울려 수홍(水紅)을 만들어낸다. 내장산 단풍 구경의 백미는 내장산 일주문에서 내장사에 이르는 단풍터널 250m 구간이다. 20∼50년 된 단풍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형형색색의 터널을 이룬다. 아치형의 이 통로를 지날 때면 마치 채색(彩色) 구름 속을 거니는 듯 황홀하다. 선홍빛 단풍 물결에 옷 색까지 홍장(紅粧)을 띤다.

비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맑은 호수 옥정호

운무에 싸인 옥정호의 아침. (정지윤 기자)


옥정호(玉井湖)를 제대로 보려면 새벽 일찍 서둘러야 한다. 일교차가 큰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서슴없이 파고든다. 드넓은 옥정호를 감싼 산줄기와 수면을 가득 채운 물안개의 신비로운 모습에 감탄할 쯤 부드러운 능선에서 솟은 태양은 운무와 함께 아기자기한 일출 풍경을 잉태한다.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정(靜)에서 동(動)으로 변한 운무는 거대한 파도처럼 봉우리를 삼켰다가 토하기를 몇 차례 반복한다.

그렇다고 물만 보는 건 아니다. 노령산맥을 타고 내려온 산들이 호수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드라이브 코스는 물뱀이 유영하듯 산자락 굽이굽이를 에둘러 돌아간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달리면 드넓은 호수의 장관에 가슴이 탁 트인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 산자락이 투영된 호수면, 안개에 휘감긴 봉우리 등은 말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이다.

운암호, 섬진호, 산내호 등으로도 불리는 옥정호는 섬진강 최상류의 호수다. 전북 임실군과 정읍시 등에 걸쳐 있다. 1961년 김제평야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섬진강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졌다. 면적은 26.5㎢로 여의도의 9배이며, 수원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옥정호는 대부분 임실군에 속해 있으며 최고의 전망대라는 국사봉(475m) 역시도 임실군에 속해 있다. 정읍에서는 산내면이 섬진강댐을 사이에 두고 임실군과 맞닿아 있다.

<경향닷컴 장원수기자 jang7445@khan.co.kr>

내장산에 복수초, 노루귀, 현호색 등 봄을 알리는 야생화와 진달래가 산을 덮기 시작하면 어느새 생강나무, 산벚꽃까지 한 몫 거들어 온통 꽃천지로 변한다. (정읍시청 제공)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서기 636년)에 영은(靈隱) 조사가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이후 숱한 중창을 거쳤으나 한국전쟁으로 1951년 소실됐다. 197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정읍시청 제공)


벽련암은 옛 백련사(白蓮社)가 있던 절터이다. 백련사는 의자왕 20년(660년) 유해 스님이 세웠다고 하는데, 추사 김정희가 백련사를 벽련사(碧蓮寺)로 바꿔 부르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다고 한다. (정읍시청 제공)


케이블카를 타고 내장산 전망대에 서면 월령봉, 서래봉, 불출봉 등 내장산 9봉 뿐만 아니라 우화정, 벽련암, 원적암, 내장사까지 파노라마처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정읍시청 제공)



가는 길/
자가용으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 정읍IC에서 빠지면 된다. 내장산으로 갈 경우에는 내장산IC에서 빠지는 것이 빠르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줄포IC나 선운사IC에서 각각 29번, 22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 고속버스는 강남고속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3시간 소요된다. KTX를 탈 경우에는 용산역에서 정읍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2시간 20분 소요)

맛집/
삼일회관/내장산국립공원 입구. 25년간 산채정식을 주메뉴로 하는 곳. 산채정식(1만5000원), 산채비빔밥(7000원) 063-538-8131
산외장터 한우정육점/산외면은 생산농가와 업소간 직거래로 한우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등심·안심 600g(1만5000원) 063-537-6692
대일정/태인면에 있으며 전라도 향토음식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참게장백반(1만5000원), 참게탕(4만5000원) 063-534-4446
서래원/내장산조각공원 못 미쳐 있다. 아구찜(4∼5인분 5만원), 떡갈비정식(1인분 1만5000원), 병어찌개(1인분 1만3000원) 063-536-3377

숙박/
세르빌호텔/내장산 입구에 위치. 굿스테이 선정 우수 숙박업소. 063-538-9487
산정호텔/태인면에 위치해 있으며 작년 12월에 리모델링해 시설이 깨끗하다. 063-534-4222
송산파크장/최근 신축된 건물로써 정읍시 상동에 있다. 063-533-8484
일반 숙박정보는 정읍시 문화관광 홈페이지(culture.jeongeup.go.kr)를 참조하면 된다.

네티즌 댓글

최신순공감순

댓글달기

댓글 삭제기준 보기

댓글등록

현재 0자/최대 2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