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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궁주의 정체를 낱낱이 밝힌다| ☞ 우리역사 교육자료※

도심안 2009. 9. 26. 23:51
충주궁주의 정체를 낱낱이 밝힌다| ☞ 우리역사 교육자료※
여정구 조회 471 | 09.09.13 19:03 http://cafe.daum.net/haksansanggo24/Xb4r/117

 

드라마에서는 '충주궁주'라고 호칭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호칭이며 '대명궁부인(大明宮夫人)'이라고 불러야 옳다.

대명궁부인은 다름아닌 고려 제5대 경종의 제5비이다. 따라서 경종의 제3비 헌애왕후 황보씨(천추태후)와는 같은 남자(경종)을 남편으로 모시고 있는 처지였다.


1. 대명궁부인(大明宮夫人)의 혈통과 천추태후의 혈통

(1) 대명궁부인(大明宮夫人)의 아버지
   → 태조 왕건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貞德王后)의 아들 원장태자(元莊太子)이다.

정덕왕후 유씨는 태조 왕건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의 충주 유씨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태조의 제1비 신혜왕후(神惠王后) 유씨와 같은 경기도 정주(貞州) 유씨 출신이다.

   태조 왕건과 제5비 정덕왕후 유씨(貞德王后) 사이에 출생한 자녀로는 아들 원장태자(元莊太子),  딸 문혜왕후(文惠王后),  딸 선의왕후(宣義王后)등이 있었다.

   ① 아들 원장태자(元莊太子)는 태조 왕건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神明順成王后)의 딸 흥방공주와 혼인하여 대명궁부인을 낳았다.

   ② 딸 문혜왕후(文惠王后)는 태조 왕건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神明順成王后)의 넷째 아들 왕정(王貞)에게 시집가서 헌의왕후 유씨(경종의 제2비)를 낳았다.

   ③ 딸 선의왕후(宣義王后)는 태조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神靜王后)의 아들 대종(戴宗) 왕욱(王旭)에게 시집가서 성종(왕치), 헌애왕후(천추태후), 헌정왕후(현종의 모친)을 낳았다.

(2) 대명궁부인(大明宮夫人)의 어머니
   → 태조 왕건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神明順成王后)의 딸 흥방공주(興芳公主)이다.

  태조 왕건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神明順成王后)는 충주 유씨 가문의 유긍달의 딸이다.

태조 왕건과 신명순성왕후 유씨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는 다음과 같다.

아들로는
     ① 장남 태자 왕태 : 일찍 사망함
     ② 차남 왕요(王堯) : 제3대 왕(정종)이 됨
     ③ 3남 왕소(王昭)  : 제4대 왕(광종))이 됨
     ④ 4남 왕정(王貞)  :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사망후 
                                문원대왕(文元大王)으로 추존됨
         → 4남 왕정(王貞)은 태조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딸인
            문혜왕후(文惠王后)와 혼인하여 헌의왕후 유씨(경종의 제2비)를 낳았다.

딸로는
    ① 낙랑공주(樂浪公主)
    ② 흥방공주(興芳公主)가 있었다.

① 큰딸 낙랑공주(樂浪公主)는 고려에 항복한 신라의 경순왕에게 시집보냈고, 

② 둘째딸 흥방공주(興芳公主)는 제5비 정덕왕후 유씨(貞德王后)의 아들 원장태자(元莊太子)에게 시집보냈다. 흥방공주가 시집가서 낳은 딸이 바로 대명궁부인이다.

(3) 원장태자(元莊太子)와 흥방공주(興芳公主) 부부
  
  이복남매 사이의 원장태자(元莊太子)와 흥방궁주(興芳宮主)가 혼인하여 1남 1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흥방궁대군이고 딸은 대명궁부인이다.
    딸 대명궁부인은 고려의 제5대왕 경종에게 시집가서 5번째 부인이 되었다.
    그러나 대명궁부인은 자녀를 낳지 못했고, 오빠 흥방궁대군도 별볼일 없는 인물이었다.

(4) 천추태후의 아버지
   → 태조 왕건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神靜王后)의 아들 대종(戴宗) 왕욱(王旭)이다.

(5) 천추태후의 어머니
  → 태조 왕건과 제5비 정덕왕후 유씨(貞德王后)의 딸 선의왕후(宣義王后)이다.

2. 천추태후와 대명궁부인의 관계

고려의 제5대왕 경종의 왕후와 부인으로는 다음과 같이 5명이 있다.

  ① 헌숙왕후 김씨 : 신라 경순왕과 낙랑공주(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딸) 사이의 소생
     →  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외손녀가 된다.

  ② 헌의왕후 유씨 : 왕정(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아들)과 문혜왕후(태조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딸) 사이의 소생
       →  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손녀가 된다.
         → 태조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외손녀가 된다.

  ③ 헌애왕후 황보씨(천추태후) : 대종 왕욱(태조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아들)과 선의왕후(태조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딸) 사이의 소생
           → 태조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손녀가 된다.
           → 태조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외손녀가 된다.

  ④ 헌정왕후 황보씨(현종 모친) : 대종 왕욱(태조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아들)과 선의왕후(태조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딸) 사이의 소생
            → 태조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손녀가 된다.
            → 태조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외손녀가 된다.

  ⑤ 대명궁부인 유씨 : 원장태자(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아들)과 흥방공주(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딸) 사이의 소생
       → 태조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손녀가 된다.
      → 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외손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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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5명의 관계를 정리하면 
경종의 부인 5명 중에는 
 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의  손녀 1명, 외손녀 2명이 포함되어 있고,
 
태조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의 손녀 2명이 포함되어 있고,
  태조의 제5비 정덕왕후 유씨의 손녀 1명, 외손녀 3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정리해 보면,
경종은 고모인 낙랑공주가 신라 경순왕에게 출가하여 낳은 고종사촌 누이를 제1비로 맞고, 문원대왕(文元大王) 왕정(貞)의 딸인 사촌 누이를 제2비로 삼았으며, 또 외사촌 누이인 대종(戴宗)의 두 딸을 제3, 제4비로 맞이하는등 5명의 왕후와 부인이 모두가 사촌·외사촌·고종사촌 관계인 것이다.

그런데도 '대명궁부인'은 5명 가운데 최하순위에 위치할 뿐 아니라, '왕후' 시호가 아닌 '부인' 호를 칭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혼인시기가 제일 늦었을 것이고 왕후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아래 등급이었음을 알수 있다. 따라서 왕후에 비하여 그 정치적 위상도 차별이 있었을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더구나 헌애왕후 황보씨(천추태후)는 경종(제5대)의 유일한 아들인 목종을 낳아서 경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을 것이고, 제6대 성종의 친누이에, 제7대 목종의 친어머니로서 태후가 되어 섭정을 하였으니, 그 지체와 정치적 위상은  '대명궁부인' 따위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또한 헌애왕후(천추태후)와 대명궁부인은 모두 경종의 왕후와 부인이었으므로 경종 재위 시절에 궁궐에 함께 살면서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였고,

그 당시 헌애왕후(천추태후)는 대명궁부인에게 따듯하게 잘 대우해주었다. 

태조의 제3비 신명순성왕후 유씨와 태조의 제4비 신정왕후 황보씨간에도 매우 친밀한 사이였으니, 헌애왕후(천추태후)와 대명궁부인은 대를 이어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009년 권력을 내놓은 후, 천추태후는 충주에 가서 여생을 보내려고 한 것이였다.
 
따라서 드라마에서 천추태후가 충주에 도착한 후, 대명궁부인이 "나는 태조의 제3비이고, 제2대 정종, 제3대 광종의 어머니이신 신명순성왕후(神明順成王后)의 따님이신 흥방공주(興芳公主)의 딸이다"라고 자기 소개를 한 것은 참으로 우스광스러운 장면이었다.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자기 소개가 웬 말이라는 말인가?(그녀의 소개는 자기 입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므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해설자가 소개하도록 하였어야 옳았다)

또한 정종은 제3대, 광종은 제4대였는데, 제2대, 제3대 라고 엉터리 소개를 하였고, PD와 제작진이 바로 잡지 않고 그대로 넘어간 것은 중대한 미스였다(아예 대본에 잘못기재되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천추태후가 권력에서 물러났다고 하더라도, 목종의 어머니이고, 경종의 왕후였고, 섭정 태후였는데,

대명궁부인 따위가 큰 소리 빵빵치면서 모욕을 가하고 뺨을 때리고 죽이라고 명한다는 것은 상식에 전혀 맞지 않고 그 당시의 왕실 법도에도 크게 어긋난다. 역시 무식한 PD와 똥물 작가가 만든 엉터리 막장 부분이라고 보아야 한다.

실제 상황이었다면, 천추태후가 충주가문에 도착하게 되면 대명궁부인은 버선 발로 마중나와서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 상전처럼 모시고 살아야 한다.

설령 목종과 천추태후가 스스로 양위를 한 것이 아니고, 강조의 쿠데차에 의하여 실각, 쫓겨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천추태후와 대명궁부인의 위상과 지위의 격차, 황보씨와 유씨 집안의 과거부터의 친밀관계에 비추어 본다면, 대명궁부인은 천추태후에게 극진히 대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에서의 대명궁부인의 행패는 도저히 납득할수 없는 수준이다.

더구나 대명궁부인은 연흥궁주(문화왕후) 따위와는 아무런 친분관계도 없는 사이였으므로, 연흥궁주가 이현운에게 쪽지 한장 써주었다고 해서, 대명궁부인이 천추태후를 감금하거나 독살하려고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