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인허씨(泰仁許氏)
서기 42년. 김수로왕께서 국왕이 되어 국호를 가야(가락)라 하다.
서기 48년. 호위 수십인을 이끌고 석탑을 실은 큰 배를 타고 온 인도 아유타국공주 허황옥을
배필로 귀히 삼으시다. (지금의 경남 창원군 능동면 용원리에 있는 부인당에 정박
진해시 운동앞바다에 이르러 수로왕의 영접을 받았다 함.)
황후께서 죽기전에 성을 이어전하지 못하고 먼 타향에서의 죽음을 슬퍼하자
열 아들중(10남 2녀) 두 아들로 하여금 허씨로삼아 모성을 후세에 전하다.
서기 514년. 신라법흥왕원년 수로왕 10세손 구형왕이 나라(금관가야)를 신라에 바치니
가야왕국은 패망으로 접어든다.
(가야는 철기무기등 강력한 국가로 신라 경주에 인접한 경북 청도군까지 점령하여
서라벌을 종횡무진하였으며 백제도 지리산 남원까지 점령하였다.
여기서 놀란 신라 진흥왕이 고구려군을 지원받아 가야는 멸망하였다.)
후에 거주지에서 관적을 하게되어 현 김해에 머물러 계신분이 그 후 누전하여 고려에 이르러
김해허씨가 되고, 이주하신분은 태인(시산)허씨, 양천(공암)허씨, 하양허씨, 한산허씨가
그 시작이었으며, 한산허씨는 자손이 없기에 허씨의 본관은 네개의 본관이 그 대표격이다.
허씨의 본관은 문헌상으로는 쉬흔개가 넘지만 실제적으론 서른개가 넘는 본관이 존재한다.
그 뒤 태인허씨에서 인천이씨가 갈라지고, 인천이씨에서 양산이씨가 분관됐다.
따라서 한민족의 허씨, 김해김씨, 인천이씨, 양산이씨는 모두 같은 혈족이다.
시조 허사문은 가락국 김수로왕비 허황후의 30세손이다. 시조께선 고려때 시산군을 지냈고,
부인은 개성왕씨로 고려 태조 왕건의 딸이었다. 시산은 태인(현재의 정읍)의 옛 이름이다.
후세 허포는 고려 때 기천 현령, 풍해도 관찰사 등을 지낸 후 태산군에 봉해졌다.
허엄은 병부시랑을 역임했으며, 그의 아들 허벽은 이부시랑을 지낸 뒤 시산부원군에 봉해졌다.
숙종과 예종 때 문학이 뛰어났고 청렴 충직하기로 이름난 허경은 1101년(숙종 6) 즉위사가 되어
요나라에 다녀왔고 여러 관직을 거쳐 중서문하평장사를 지냈다.
둘째 아들 허사문(시조와 동명이인)은 낙안 군수를, 넷째 허사행은 사헌부 감찰을,
막내 허사제는 사평을 지내는 등.. 아들 6형제가 모두 관직에 올라 가문을 크게 중흥시켰다.
- 태인허씨 지평공파 31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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