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2009/05/29 11:19 서울역 노숙인 "노무현 밉다더니..."

도심안 2009. 5. 29. 20:45
2009/05/29 11:19




저는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 운구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 나와 있습니다. 아직 오전이라 서울역 분향소는 한산하네요. 줄을 서지 않고 바로 헌화를 할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묵념이나 절을 하고 상주와 인사를 마친 시민들이 방명록에 글을 남깁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편안히 쉬세요."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기도가 한 장 한 장 늘어갑니다. 추모곡만 울려 퍼질 뿐 시청 앞과는 달리 아직 조용하네요. 몇 시간 후면 운구행렬과 시민들이 이 곳을 가득 메우겠죠. 슬픔과 아쉬움, 안타까움이 서울역 광장에 가득할 겁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대기 차량으로 와서 있는데 한 노숙인이 담배를 달라고 하더군요. 마른 얼굴에 머리에는 빨간 모자를 쓴 50대 아저씨였습니다. 없다고 했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가만히 있다가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이 언제 오시냐"고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두 시 정도에 지나갈 것 같다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은 매일 절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잘하셨네요"라고 했더니 "잘했지 그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씀했습니다.

"근디 신기한 게 그렇게 노무현 밉다고 할 때는 언제도 왜 저렇게 쳐오는지 몰라, 죽으니께 이제서야 난리여, 살아 있을 때 잘하지, 안 그려?"

간단히 "네"라고 맞장구를 치고 돌아서려는데 아저씨의 말씀은 금새 이어집니다.

"내가 신문은 본다고, 다 욕이야, 노무현이 욕, 무슨 참여정부 욕, 잘한 일 하나도 없다고 그랬는데 이제와서 덕수궁에서 난리고 여기와서도 난리고... 나야 노무현 좋아했어 인간답고, 시원 시원해서... 슬프지."

서울역 광장 모습

술냄새가 나는 아저씨의 말을 끊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사람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과 자신은 노무현 좋아했다는 말씀을 반복하더군요.

이러다가 붙잡혀 있을 것 같아서 틈이 났을 때 얼른 "슬프고 안타깝죠, 노무현 대통령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미워하는 사람은 소수예요"라고 말하고 돌아섰습니다.

참 아픈 말이네요. 애도하느라 잘 몰랐는데 노숙인 아저씨가 하는 말씀을 들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보수언론에 비친 노 전 대통령은 독선가와 아마추어로 비추어졌으니까요. 한미 FTA 협상 결과를 제외한 참여정부 주요 정책은 '저주'를 받았었죠.

이제부터라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된 평과와 정책, 업적의 되새김질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론에 대한 성찰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