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허난설헌 생가터

도심안 2023. 9. 9. 23:57
허난설헌 생가터

2023. 8. 25. 23:59카테고리 없음

강릉 경포호 부근

 

1563~1589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

조선의 문호인 허엽의 딸이자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나

 

이름은 허초희

난설헌은 본인 스스로가 지은 호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

 

 

생가터에 있는 난설헌의 동상

난설헌의 삶을 떠올려보면 그 신산했던 생애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15살에 시집을 가서 두 아이를 낳았지만 전염병으로  잃고

마지막엔 뱃속의 아이까지 유산할 정도로 여자로서의 삶은 너무 참혹했다

 

거기다 아버지 허엽의 급사부터 평생을 의지했던 오빠 허봉의 죽음 어머니의 사망등

관동제일 문벌가로 소문이 자자했던 집안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참담한 일을 지켜보아야했다

 

먼저 보낸 두 아이에 대한 회한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

 

생가.

 

물론 몇백년동안 존속했던 집은 아니고 새로 지은 집이다

생가라고 하지만 난설헌이 이 집에서 생활을 한 것은 6살까지다

이후 가족 모두가 한양으로 상경했다

 

난설헌은 남편인 김성립과 사이가 나빴다

(동생인 허균이 난설헌이 죽은 뒤에 남긴 시에 -살아서는 부부금실이 아니 좋았고-라는 문구가 있다 )

남편인 김성립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과거만 보면 떨어지는...비루한 존재인데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문장력이 탁월한 여자가  내 마누라였던 것이다

 

 무너진 자존심과 뒤틀린 심기가 마누라를 무시하는  형태로 나타났을 것이다

 

실제 난설헌은 

내가 왜 조선에서 태어났고

여자로 태어났으며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단 말인가? 라고 한탄한 시도 지었다

 

난설헌은 흔히 말하는-시집살이-의 첫번째 세대다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혼인풍습은 처가살이가 대세였다

 

실제 강릉이 낳은 또 다른 여류예술가인 신사임당은 오죽헌에서 태어나 

오죽헌에서 혼인생활을 하다 39세가 되어서야 시댁이 있는 한양으로 떠났다

(사임당은 난설헌보다 60여년 정도 빨리 태어났다)

 

땔감이 잔뜩인 창고

 

 

디딜방아가 집 안에 있다는 것은 권세가 대단한 양반이라는 의미이자

집 안에 많은 하인들이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난설헌 기념관

 

 

조선시대 양반들의 회합

 

난설헌의 아버지인 허엽은 딸인 난설헌과 막내인 허균이 어렸을 때 직접 공부를 가르쳤다

이후 난설헌은 오빠인 허봉에게 공부를 배웠고

그 이후엔 오빠 허봉의 친구였던 이달에게서 다시 공부를 배웠다

여자를 위해 가정교사를 들여 공부를 가르친 이런 케이스는 조선을 통틀어 유일하다 할 것이다

 

이달이라는 인물은 어린 허균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허균이 쓴 소설 -홍길동전-의 테마가 서자의 불우함인데

이달은 문과에 응시조차 할 수 없는 서얼이었기 때문이다

 

난설헌보다 3살 어렸던 허균은 친가가 아닌 외가에서 태어났다

교산은 허균의 호인데 외가 근처의 바닷가에 있던 바위(교암이다)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난설헌은 조선시대 여자중 세상에 이름을 남긴 몇 안되는 사람중 하나이다

거기다 이름도 -초희-

오늘날에 비추어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세련된 이름이다

과연 문벌가의 자손~!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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