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학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창녕 9살 아동 학동 사건' 친모(노란색)가 지난해 8월14일 오후 경남 밀양시 창원지법 밀양지원에서 열리는 1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층 다락방으로 쫓겨났을 때 엄마가 비닐봉지에 맨밥을 담아서 주었고, (중략) 엄마와 아빠에게 맞은 후 2층 테라스 구석에서 맨밥에 더러운 물을 먹었다.”
“다른 가족들이 식사하는 동안 그 옆에서 잔심부름하며 기다렸고, 가족들이 식사를 마친 후 남은 반찬을 집어 먹었다.” (중략)
지난해 5월29일 온몸에 멍이 든 상태로 집에서 도망 나온채로 발견된 경남 창녕 아동학대 사건의 피해자 A양(당시 9세)이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이다. A양은 당시 쇠사슬로 묶여 있거나 달군 프라이팬과 젓가락으로 지지는 학대를 당하는 등 사실상 노예같은 생활을 해온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
부산고법 창원재판부 형사1부(재판장 민정석)는30일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각각 징역 6년과 3년을 선고받은 계부(37)와 친모(30)에게 각각 징역 7년과 4년을 선고했다. “계부와 친모가 딸에게 한 학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는 판단에서 원심보다 무거운 형을 내렸다. 하지만 친모는 심신미약이 인정돼 계부보다 형량이 가볍다. 또 이들에겐 5년 간 아동·청소년 관련 시설 취업 제한, 아동학대 프로그램40시간 수강도 명령했다.
A양은 친모 등과 같이 살던 빌라 4층 높이 옥상 지붕을 타고 탈출해 잠옷 차림으로 도로를 뛰어가다 한 주민에게 발견돼 구조됐다. 높이 약10m인 지붕은 경사가 져 어른이 건너가기에도 아슬아슬한 곳이었다. 그런데도 빌라 테라스에 쇠사슬로 묶여 감금돼 있다가 잠깐 풀린 틈을 타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A양은 발견 당시 인근 편의점에서 발견한 주민이 먹을 것을 사주자 며칠을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먹었다.
창녕 아동학대 소녀가 살던 4층 빌라(오른쪽) 테라스 모습. 테라스와 테라스 사이 경사가 진 지붕을 건너 A양은 탈출했다. 위성욱 기자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A양이 친모 등으로부터 받은 학대는 충격적이었다. 친모 등은 지난해 1월부터 4개월간 불에 달군 프라이팬과 쇠젓가락으로 당시 9살이던 A양의 손가락이나 발바닥을 지지는 등 학대한 혐의(아동복지법 위반 및 특수상해)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평소 밥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목에 쇠사슬을 걸어 채운 채 화장실 수도꼭지 등에 묶어 두기도 했다. 달군 프라이팬과 쇠젓가락으로 지졌고, (열을 가해서 물건 등을 접착할 때 사용하는) 글루건의 실리콘을 양쪽 발등 및 배 부위에 떨어뜨려 화상을 입게 했다”는 A양의 진술 대부분을 인정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학대 장면을 동생들이 지켜봤다는 점이다. A양의 동생들은 아동보호 기관의 방문 조사 당시 ‘A양이 학대당할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엄마와 아빠가 A양을 때릴 때 (A양이) 투명해지면서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동학대 범죄는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아동에게 일방적으로 해악을 가해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줄 뿐 아니라, 피해 아동에게 씻기 어려운 기억을 남겨 향후 성장 과정에서 지속해서 나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친모 등이 일부 범행을 부인하는 등 반성하며 사죄하는 마음이 있나 의심스러우며, 피해보상 예상이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원심판결이 너무 가볍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1심 선고 후 계부와 친모는 반성문만150여 차례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에 시민단체 등에서는 엄벌진정서를500여 차례 법원에 보내며 이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한편 A양은 과거 자신을 보호한 적 있는 위탁 가정에서 지내고 있다. 경남아동보호전문기관이 이 가정을 꾸준히 방문해 A양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데 1년 만에 키가15㎝ 자랄 정도로 잘 자라고 있다는 것이 기관 측의 설명이다. 이 기관의 관계자는 “A양에 대해서는 1년마다 보호명령 연장을 신청하는 식으로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