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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조선의 위치 의혹 : 강원도와 충청도의 실체

도심안 2019. 9. 21. 00:06

근세 조선의 위치 의혹 : 강원도와 충청도의 실체

게시물ID : sisa_1735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光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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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수 : 9개
등록시간 : 2005/11/08 14:52:53




족보를 이용하여 강원도의 강릉(江陵)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밝혀보자면..

※ 강릉유씨(江陵劉氏)

강릉의 고호(古號)가 고구려 때에는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고도 하였고 신라 때에는 명주(溟洲) 또는 소경(小京)이라고 하다가 신라 19대 태종 무열왕(武烈王) 때에는 주(州)로 승격하였고 고려 태조(太祖) 때 동경(東京)이라고 하다가 또 명주(溟洲)로 개칭하였고 고려 6대 성종(成宗) 때에 하서(河西)로 고쳤다가 다시 명주(溟洲)주라 하였으며 24대 원종(元宗) 때는 경흥(慶興)으로 불렀다가 25대 충렬왕(忠烈王) 때 와서 다시 강릉(江陵)으로 부르게 되었다

고구려 때 강릉의 속현(屬縣)이 셋이 있으니 지산(支山), 양곡(陽谷), 우곡(羽谷) 또는 옥당(玉堂)이었다

지산(支山)은 동토지산(東土支山)이라 했는데 고려 때는 연곡(連谷)이라 했다

동토지산(東土支山)은 신라 때 동제(棟堤)라 했고 우곡(羽谷)은 신라 때 우계(羽溪)라고 하였으며 고려 때도 같이 불러오다가 고려 현종(顯宗) 때 명주(溟洲)에 속하게 하였다

어떻든 모두 강릉을 칭한 것으로서 우곡(羽谷)은 일명 옥당(玉堂)이라고 하다가 옥성(玉城)으로도 불렀으나 뒤에는 옥천(玉川)으로 개칭하였으며 우계(羽溪)가 강릉부(江陵府)로 편입 되면서 강릉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 강릉김씨(江陵金氏)

강릉(江陵)은 본래 예국(濊國 : 1세기 초에 임둔 옛 땅에서 자립한 부족국가)의 도성지(都城地)로서 상고시대에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했으며, 서기 313년에 하서량(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 하였다

서기 550년 신라의 영토가 되어 639년 2월 소경(小京)으로 삼았다가 685년 하서주(河西州)로 개편, 서기 776년 다시 명주(溟州)로 개편하였으며, 고려 태조(太祖) 때인 936년에는 동원경(東原京)이라 칭하고 임영관(臨瀛館)을 세웠다

그후 우계,·연곡의 두 현을 두었다가, 조선 숙종 때인 1675년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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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강릉을 예(濊)나라, 한사군 시대에 임둔군(臨屯郡), 고구려 때의 하서량(河西良:또는 河瑟羅)으로 나와있습니다

정약용은 열동성(洌東省)이 지금의 강원도이며, 열동성의 영동 쪽 아홉 고을(북쪽의 ?谷에서 남쪽의 平海까지)은 본래 현도(玄?)의 남부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해부루(解夫婁)가 예(濊) 지역에서 동쪽의 가섭원(迦葉原)으로 옮겨왔는데, 가섭원은 하서량(河西良)이고, 하서량은 지금의 강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부분은 족보와 삼국사기, 경세유표(정약용)가 공통적으로 동일하게 나와 있습니다

정약용은 "이후부터 영동 아홉 고을이 예맥(濊貊)이라는 명칭으로 잘못 불렸으나 실상 예맥은 본래 요동(遼東)에 있었고, 이 지역은 아니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본래 강원도는 예맥의 땅이 아니었고, 예맥은 본래 요동(遼東)에 있었으므로 정확하 말하자면 섬서성 주변에 위치했어야 할 장소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여러 사서를 토대로 찾아나가다보면, 요동은 감숙성의 동북쪽과 녕하성인데, 이미 본인이 [한나라(漢 : 지나)의 실체] 글을 올려 밝힌 바가 있습니다

(* 본인이 지금 한나라(漢 : 지나)의 실체를 지웠습니다, 만약 필요하다면 나중에 다시 올립니다)

따라서 정약용은 강원도가 본래 예백의 땅이 아니었다고 제대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도는 현도군이기도 하며, 현도군(玄?郡)는 한무제가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한 예맥(濊貊)의 땅에 두었으며, 요동군의 고현(高顯) ·후성(候城) ·요양(遼陽)의 3현을 편입시켰고, 그 후 다시 망평현(望平縣)을 병합하여 모두 7현을 관할하였습니다

(※ 창해(滄海)는 현재 하북성 북부 부근이며, 내몽고자치구의 동남부에 있는 실존 지명입니다)

그 후 현도군은 낙랑군과 더불어 요동태수가 된 공손 탁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238년 공손씨가 3대만에 망하자 위(魏)의 지배하에 들어갔다가 후에 다시 서진(西晉)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나라(漢 : 지나)가 설치한 한사군은 '내몽고자치구' 전체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현재 중원 대륙의 요녕성에 임둔군(臨屯郡) 봉니가 출토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거나 직접 보셨다면 이해하실 것입니다

결국 강원도(열동성)에 임둔군(臨屯郡)이 있으므로 유물실증론적으로서 현 대륙의 하북성 동쪽 일부 지역과 요녕성 전체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정약용은 경기도(京畿道)가 열수(洌水)의 서쪽에 있다고 하였고, 경기도의 동쪽에 강원도가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현 하북성에 열수(列水)가 흐르고 있는데, 근세 조선의 경기도에 열수가 존재하려면 본래부터 대륙에 위치해야 성립할 수 있습니다

네티즌 여러분께 알기 쉽게 한가지 힌트를 드리지요

서울의 옛 이름은 경사(京師)와 경성(京城)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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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071107bt.JPG 그림 파일을 보시길 바랍니다

보면 알 수 있듯이 붉은 색과 관련되는 지명들이 백제 지명에 속해 있습니다

百濟諸城皆復歸順..
孫仁師與劉仁願等振旅而還..
詔劉仁軌代仁願率兵?守..
乃授扶余隆熊津都督, 遣還本國, 共新羅和親, 以招輯其余?..
麟德二年八月, 隆到熊津城, 與新羅王法敏刑白馬而盟..
先祀神祇及川谷之神, 而後?血..

윗 글은 구당서의 동이전에 나와 있습니다

신라가 공격하는 루트 가운데 백제의 제성(諸城)이 나와 있고, 그 곳이 현 산동성(山東省)의 동남쪽에 있습니다

물론 황산벌로 유명한 지명들 가운데 고성(故城)과 백마하(白馬河)도 현 산동성(山東省)에도 실존합니다

현 한반도에 백제 지명이 있다고 해도 황산(黃山)만 있을 뿐, 사서에 기록된 지명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본래 근세 조선의 충청도에 속한 지명이라면 현 한반도가 아니라 현 산동성(山東省)에 위치해야 성립할 수 있는 모순을 보여지고 있습니다

우리 근세 조선과 관련된 문헌 및 기록을 살펴보면, 우리 땅안에 자오지(치우) 단군 무덤과 기자 무덤에 직접 와서 제를 올려 지냈다고 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현 산동성에 그러한 무덤들이 잠들고 있습니다

1990년대 이전까지 그 당시 남한의 강단사학과 고고학은 백제의 마지막 왕가 무덤이 현 한반도의 중서부 지역(충청도) 지역에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백제 왕자 부여 융의 무덤은 현 대륙의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부근에 잠들고 있습니다

일제 조선총독부의 휘하 아래, 조선반도사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던 그 당시 도쿄제국대학 고건축 담당 교수 세키노 타다시(關野貞)와 교토제국대학 강사로서 조선사를 강의하던 이마니시 류(今西龍)이라는 사람이었고, 그들의 직계 제자가 바로 '이병도'와 '신석호' 이고, 그 다음 아래는 역사하면 누구나 아는 사람들인데, 고구려연구재단의 김정배, 교원대의 송호정, 고고학과 문학의 대가 이기백, 김원룡,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무 등 두루 다양합니다

지금까지 일제의 조선반도사 내용을 하나도 틀림없이 그대로 반복하여 외우면서 계속 가르쳐 왔습니다

소위 실증을 추구하는 강단사학에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일제의 조선반도사에 맞추기 위해 추정과 논리를 때려 맞춘 것에 불과합니다

고조선에 있어 유일한 실증적 근거가 있다면 한반도의 서북부 부근 즉 요녕성의 '홍산 문화' 유적지에 직접 가서 조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현 우리 나라의 강단 사학계는 고조선을 신화로 치부하면서 부정해왔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