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가을이면 내장산의 단풍을 구경하러 전국에서 몰려오는 관광객과 차량으로 정읍 주변 진입로는 몸살을 앓는다.
유진섭 정읍시장(54)은 “정읍이 발전하려면 내장산에서 벗어나는 ‘탈(脫)내장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장산만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자원을 발굴하고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뜻과 함께 내장산을 더욱 내장산답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탈내장산’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지역 자산인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민주문화유산 1호’로 지정해야 한다는 황태규 교수의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유 시장은 또 임진왜란의 와중에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이 고장 출신의 선비인 안의와 손홍록을 기념하는 사업도 모색하고 있으며 곧 기공식을 가질 다원시스 정읍공장과 첨단방사선연구소 등 3개 국책연구소를 활용한 지역산업 발전 전략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유 시장와의 대화는 80여 분간 쉼 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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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섭 정읍시장이 5일 전북 정읍시청 시장실에서 뉴스1 전북본부와 황태규 우석대학교 교수가 함께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9.4.5/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
황태규 우석대 교수(이하 황)=올해부터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5월11일로 지정돼 국가적인 행사로 치르게 됐다. 지역마다 입장 차이가 있어 100년 넘게 끌어온 것인데 유진섭 시장 임기 초반에 국가기념일 지정이 마무리됐다.
유진섭 정읍시장(이하 유)=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올해 처음으로 광화문에서 대통령께서 참석하는 국가 행사를 치르게 됐다. 나는 그날 정부행사에 참석하고 바로 정읍으로 와서 저녁에 동학농민혁명 기념제에 참석해야 한다.
황=동학농민혁명은 우리의 역사이면서 외국, 특히 아시아권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과거 왕정에서 민주정, 공화정의 단계로 넘어가는 한국의 근대 민주주의 역사를 중국의 학자들은 대단하게 생각한다. 이 소중한 자원을 우리나라 ‘민주화유산 1호’로 지정하고 민주문화유산이라는 제도를 만드는데 정읍시가 나설 필요가 있다.
유=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하면 많은 분들이 5·18광주민주항쟁을 대표적으로 이야기하고 그쪽의 시민들도 민주화의 성지라고 하는데 광주가 정읍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어서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정읍의 동학농민혁명이 있었기 때문에 3·1운동과 4·19혁명이 가능했고 5·18로 이어졌다. 이것은 광주의 시민들도 부정하지 않고 대부분 인정하고 계신다.
황=광주에서는 ‘광주인권상’을 만들어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이념과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동학과 관련해서 정읍에서는 어떤 것을 하고 있는지.
유=정읍에서는 전임 시장 때부터 동학농민혁명대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6회까지 수상자를 냈었는데 지난해 7회째는 대상자를 발굴하지 못해 시상을 하지 않았다. 동학농민혁명 대상 1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는데 이희호 여사가 대신 수상했다. 동학농민혁명과 연계한 민주주의 성지화, 민주문화유산 지정 등 제안한 내용에 대해서는 깊이 연구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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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섭 정읍시장이 5일 전북 정읍시청 시장실에서 뉴스1 전북본부와 황태규 우석대학교 교수가 함께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9.4.5/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
황=4년 전 서울에서 세계기록관리자대회를 했었는데 당시 유네스코에서 주는 문맹퇴치 공로상인 ‘세종대왕상’처럼 기록을 지킨 사람들을 위한 ‘안의·손홍록상’을 제정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전쟁의 와중에 3년 반이나 기록을 지키기 위해 전국을 떠도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기록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 분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보존을 함으로써 기록의 중요성을 보여준 것이다. (안의와 손홍록은 정읍 출신의 선비로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주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 등의 중요한 국가적 기록물이 전란에 손실될 것을 우려해 자신들의 가솔과 노비, 우마차를 동원해 이를 지켜낸 인물들이다.)
유=(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중의 한 분인)손화중이 손홍록의 직계 후손이다. 안의, 손홍록 이 두 분이 전주사고에서 실록 등의 기록물을 옮긴 날이 6월22일이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문화재 지킴이’날이 선포됐다. 올해 문화재 지킴의날 전국 행사를 정읍에서 개최하려고 협의 중이다. 전국에서 활동하는 수 만 명의 문화재 지킴이들이 정읍에서 모여 이 분들을 기리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황=정읍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문화자산을 가지고 있다. 내장산, 무성서원, 최치원, 고대가요인 정읍사, 상춘곡 등이 그렇다. 그런데 대부분이 거기서 끝난다. 이것을 현실세계와 접목해 무언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더 나아가지 못한다.
유=안의와 손홍록의 스승은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일재 이항선생이다. 일재 선생의 수하에서 많은 제자들이 길러졌는데 그 제자들에 의해 지역의 역사관과 가치관, 정체성 등이 면면히 이어져왔다. 정읍의 동학농민혁명 이후에 일어난 호남의병의 핵심 지역이 태인이다. 전국 각지의 선비들이 태인에 모여들어 국권을 되찾자는 창의를 하고 이를 지켜 본 선비들이 다시 각지로 흩어져 의병을 일으킨 것이다. 이 분들이 자연스럽게 고운 최치원 선생의 태산선비문화를 계승해 현대로 이어온 역할을 한 것이다. 이분들은 상당한 시간 교육을 통해 지역과 나라가 위급한 상황이 되면 개인을 기꺼이 희생하려고 했던 것이다. 임기 중에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태인이 중심이 된 호남의 의병사(史)를 연구하고 기념관을 세우고 싶다. 이미 많은 자료들이 연구가 되었고 국가적으로도 매우 필요한 사업이다. 그런데 국가는 지자체가 하려는 것을 잘 해주지 않는다. 가칭 국립의병사기념관으로 임기 중에 힘껏 해보겠으나 힘이 미칠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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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섭 정읍시장이 5일 전북 정읍시청 시장실에서 뉴스1 전북본부와 황태규 우석대학교 교수가 함께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9.4.5/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
황=자료를 보니 정우면에서 여주가 많이 생산되고 옹동에서는 지황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단순히 한약재의 생산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것을 치료와 연계하는 ‘애그리메디컬(농업과 의료를 합친 용어)’클러스터로 발전시키는 것을 구상해봤다. 아직까지 질병을 가지고 지역에서 특화한 사례는 없다. 정읍에서라도 작게 시작하면 어떨지.
유=정읍에 쌍화탕 거리가 유명한데 거기에서 파는 쌍화탕에 옹동의 지황을 넣고 있다. 옹동의 지질이 지황을 생산하기 좋은 마사토 성분이 많다고 들었다. 지황은 한약재 중의 감초하고 비슷해서 안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현재 생산되는 옹동 지황은 농협에서 전량수매하고 있다. 중국산 약재가 시장을 위협하고 있지만 옹동 지황에 대한 한약업계의 지명도가 높기 때문에 앞으로도 점차 확대하려고 한다. 농민들은 수매가 된다고만 하면 얼마든지 짓겠다고 한다. 애그리메디컬, 좋은 아이디어다. 얼마 전에 당뇨병 환자용 쌀을 납품하는 업체가 우리 시를 방문했었다. 이것도 연계하면 좋은 아이템이 될 것 같다.
황=전동차를 생산하는 기업인 다원시스가 정읍에 공장을 이전한다고 하던데.
유=다가오는 29일 기공식을 가질 예정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전동차 시장을 독식하던 업체가 창원에 있었는데 다원시스가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과 기술력 경쟁에 불이 붙었다. 더구나 전동차 교체수명을 20년으로 제한하는 법률이 개정된 후 올해 생산할 물량만 1조6000억 원대라고 한다. 다원시스도 약 6000억 원가량 수주했다고 들었다. 다원시스의 가동으로 이 지역에서 약 500~600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어 매우 기대가 크다. 또 정읍에 있는 3대 국책연구기관(생명공학연구원 전북분원, 안전성평가, 첨단방사선연구소)을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입주도 이어지고 있어 지역 산업 발전에 희망이 보인다.
황=지역에 맞는 연구가 꼭 필요하다. 정읍에는 전북과학대학이 있고 민간에도 연구역량이 있는 기관들이 있을 것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지역산업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정읍의 경우에는 단풍과 관련된 연구소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유=단풍나무가 연구대상인 것은 맞다. 국내나 세계적으로 단풍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관리하는 곳이 필요하다. 정읍에도 단풍100리길 조성사업을 해서 곳곳에 많이 심어 놨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체계적으로 연구 관리가 필요해 연구소를 언급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읍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탈(脫)내장산’ 해야 된다고 본다. 단풍에만 이미지가 고착되면 정읍의 깊이 숨어있는 것을 자칫 간과할 수 있다. 그래서 내장에 와서 단풍만 소개하지 말고 내장이 어떤 산이고 어떤 역사를 품고 있는지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단풍으로 유명한 일본에 가서 관련 상품들도 많이 봤다. 그런데 그 모양만 베껴온다고 성공할 수 있겠나. 정읍만의 것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례로 붉은 가을의 단풍만을 관광 상품화할 것이 아니라 막 피어나는 단풍새싹도 꽤 볼만하다. 정읍이 먼저 할 것이다. 올해 준비해서 내년 6월 무렵 새싹이 돋아날 때 ‘단풍새싹축제’를 개최해볼 생각이다. 또 아예 가을 내장 단풍은 예약 없이는 못 본다는 ‘예약제’를 도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엄청난 교통체증과 많은 손님으로 인한 서비스의 질 저하 등이 오히려 내장산의 이미지를 깎고 있다. 가을 내장산 관람 사전 예약제 도입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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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섭 정읍시장이 5일 전북 정읍시청 시장실에서 뉴스1 전북본부와 황태규 우석대학교 교수가 함께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9.4.5/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
황=최근에 중국 관광객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중국에는 단풍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별로 없다고 들었다.
유=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입장객의 1/10이 중국관광객이라고 하더라. 중국인 관광객들이 서울로 와서 내장산으로 오는 것 같다. 뭔가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 느낀다. 중국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관광안내도를 중국어로 병기하고 해설사도 배치했다. 할 것이 참 많은데 행정이 다 할 수는 없고 민간에서도 스스로 뭔가를 도전했으면 하는데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황=도전은 단체장이 제일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
유=많이 하고 있다.(웃음)
황=국가하천 가운데 정읍에서 발원하는 것이 동진강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진강의 발원지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나 근거가 없었다. 같은 국가기관의 기록에도 내장산의 까치샘이라는 곳이라고 하는가 하면 다른 곳으로 표기된 자료도 있었다. 지역의 지리적 자원 활용 측면에서 관리가 필요한 것 같다.
유=정읍의 동쪽 임실군과 인접해 있는 산외면 여우치마을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동진강의 발원지다. 산중턱의 햇볕이 잘 드는 마을 가운데 샘이 있는데 그 곳에 얼마 전에 발원지라는 표식을 설치했고 도로표지판으로도 안내를 하고 있다.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외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앞으로 홍보계획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다.
황=정읍시와 자매도시인 강원도 속초시에 얼마 전 산불이 발생해 안타깝다.
유=자매결연 이후에 큰 교류는 없었다가 지난해 내장산 단풍나무를 보냈었다. 속초시에서도 우리가 보낸 나무를 잘 관리하고 표식까지 따로 설치해서 감사했다. 모쪼록 이번 화재의 피해복구가 하루 빨리 이뤄져 주민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 자매도시의 빠른 피해복구를 위해 우리도 협조할 부분이 있다면 힘껏 도울 것이다.
95minky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