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빈최씨(淑嬪崔氏)-최복순(어릴적)>최무수리>최숙빈>최소령>최화경.
1724년(영조 즉위년) 영조가 어머니 사당을 지어 숙빈묘(淑嬪廟)라하였다.
1744년(영조 20) 육상묘(毓祥廟)라고올렸다가
다시 1753년(영조 29) 육상궁(毓祥宮)으로 승격시켰다.
묘소 또한 1744년 소령묘(昭寧墓)라고올렸다가, 1753년소령원(昭寧園)으로 승격시켰다.
사당과무덤에 궁호와원호를올릴때 화경(和敬)의시호를 올렸으며,
후에 휘덕안순수복(徽德安純綏福)의 존호를 더하였다.
최숙빈은 정읍태인출신으로 태인현에서 궁궐로들어간다.
1728년(영조4년) 이인좌(李麟佐)의난때 태인현감 박필현이가담하게되는데,
최숙빈이 태인출신이라 태인현이폐현되지않았으며 반란책임도묻지않고 그냥 무마되어살아남는다.
또한 숙빈최씨의이름은 최복순이며 어려서 가족이전염병으로모두죽고 고아가되었는데,
나주목사일행을만나 목사의부인이자 인현왕후의친척인 민씨가거두었으므로,
훗날 인현왕후가궁에들어갈때 따라들어가 궁인이되었다고 한다.
최숙빈의이름은 죽은후 시호를올린것에단서가있다.
숙종이죽기전에 장희빈사건을경험하고부터는 후궁은 절대 왕비가될수없다고
조선법령을고쳐 후궁이왕비로오르는일을막아버렸다.
그래서 숙빈최씨는 왕비가되지못했던것이다.
남인 장희빈은 나주~부산을대표한인물이라면, 최숙빈은 호남동인을대표한인물이라고보면된다.
호남동인은 경북낙동강서안 가야지방,경남 낙동강동안 가야지방의 창녕,밀양까지대변하였다.
원래 정읍태인이 대가야의서부전선 최전방지역이었다.
서북전선의최전방은 임실군관촌면 성미산성(각산산성)앞 슬치재기문이 가야백제국경이었다.
호남동인은 같은호남지방으로등용이쉬웠지만,영남동인은어려움이있었다.
일단은 호남지방에서 조선정부에 가장많은세금을냈기때문이고,
조선정권은 전북전주를기반으로창업되었기때문이었다.
그래서 호남동인이 영남동인을대신하여 영남대가야지방을대변하였고,
영남동인인 김성주,유성룡,김성일등은 나주목사로 오래재위한것을이용하여
나주에서 남강,낙동강이남,부산지역을대변하였던것이다.
그러므로 최복순은 고아가되었을때 원래부모님이지어주신이름이고,
궁에들어가서 인현왕후의 잡일을시중드는 최무수리로살다가
최숙빈이되자 숙종으로부터 새로운이름인 최소령을받은것으로보인다.
그후 최숙빈이죽은후에 영조가 후궁자식인것을괴로워하다가,
마지막으로 어머니 최소령에게 최화경이라는 새로운이름을지어주었고,
휘덕안순수복(徽德安純綏福)이라는 존호를붙여준것이다.
아름다운덕으로 복을받아순수하게살다가다.-최화경(숙빈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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