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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인 전통가옥]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 고래등이 따로없네 [중요민속자료 196호]
▲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 중요민속자료 제196호로 지정이 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소재한다
아산시 둔포면은 예전에 아흔 아홉 구비 물길이 들어오던 곳이다. 이곳은 충남 아산지역이면서도 경기도 평택과 도계를 이루고 있어, 오히려 아산보다는 평택 쪽에 생활근거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둔포면 신항리를 찾아가면, 마을에 고래 등 같은 한옥들이 몇 채가 보인다. 그 중 가장 마을 안에 넓은 평지를 앞에 두고 한 가운데 집이 있다. 중요민속자료 제196호로 지정이 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이다.
"巴"자형으로 자리 잡은 기와집
윤보선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가면 제일 먼저 느낌이 '거대하다'라는 생각이다. 물론 아흔아홉 칸 집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오히려 더 크다는 느낌이 든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ㄴ자 형으로 꾸며진 대문채와 행랑채가 있다. -자로 된 대문채와 꺾인 부분의 행랑채가 ㄴ 자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행랑채와 연결된 담에는 중문이 있고, 중문은 담벼락이 행랑채와 연결이 되면서 다시 ㄴ자의 광채와 중문채를 이루고 있다. 밖에서 보면 이 행랑채와 중문채의 담장이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
![]() ▲ 대문 솟을대문. 좌측으로는 대문채가 있고, 우측으로는 꺾어진 행랑채가 있다. ![]() ▲ 행랑채 안으로 들어서면 솟을대문으로 구분하여 대문채와 행랑채로 나뉜다. ![]() ▲ 담벼락 행랑채와 중문채가 담벼락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중문채를 안사랑채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광채와 연결된 중문채라고 보아야 한다. 사랑이란 집안의 남자들이 묵는 곳인데, 이 중문채에 연결된 방 등 공간은 집안에서 일을 하는 부녀자들이 기거를 하는 곳으로 안사랑채와는 다르다. 바깥쪽의 행랑채나 사랑채는 출입을 할 수가 있으나, 중문 안으로는 굳게 잠겨 있어 담 밖에서만 촬영이 가능하다.
안채는 중문채와 반대로 ㄱ자 형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담 밖에서 몇 바퀴를 돌아 안채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고택을 찾아가면, 이렇게 안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려움이다. 안채는 모두 아홉 칸으로 전형적인 중부지방의평면 구성이다. 안채는 남쪽으로부터 부엌, 안방, 샛방, 윗방을 차례로 두고, 꺾이어진 곳에 두 칸의 대청과 두 칸의 건넌방, 맨 끝에 부엌을 배치하고 있다. 바깥 사랑채와 안채사이에도 담장으로 구분을 하였다.
▲ 중문 대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을 거쳐 중문을 들어갈 수 있다
▲ 광채와 중문채 안사랑채라고 하는 중문채는 광채와 중문채로 보아야 한다 ![]() ▲ 안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밖에서 촬영을 하였다. 꺾인 부분에는 안방 샛방 윗방 부엌이 있다 특이한 구조의 사랑채의 미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는 윤 전 대통령의 선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지었다고 한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서 우측에 자리한 사랑채는, 192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채는 별도의 담을 둘러 일각문을 내었다. 사랑채의 누마루 아래에는 숨은 쪽문이 있어 사랑채의 뒤로해서 안채로 이동을 할 수 있는 동선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으나, 안채로 통하는 일각문이 굳게 잠겨 있어 안을 볼 수는 없었다. 사랑채는 서쪽으로 누정과 같이 높은 네모뿔대 주추를 놓고, 그 위에 누마루방을 들여놓았다. 이곳에 오르면 앞뜰이 훤히 내어다 보일 것이다.
그리고 두 칸 큰사랑과 두 칸 대청, 건넌방을 두었다. 앞으로는 모두 유리문을 달아냈는데, 우리 전통 고택의 창호와는 다르다. 전체적으로 사랑채는 하나의 또 다른 공간 구성을 하면서 멋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점이 이 집의 특징이기도 하다.
담장에 낸 굴뚝, 궁궐과 같은 효과를 내
사랑채의 뒤로 난 담장에는 굴뚝이 높게 솟아있다. 굴뚝은 사랑채와 땅 밑으로 난 연도로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의 뒤로해서 안채로 출입을 할 수 있는 동선인 일각문 옆에 자리한 굴뚝. 흔히 우리가 고궁을 관람하면서 볼 수 있는 형태로 꾸몄다. 고궁을 관람하다가 보며 이런 담장에 난 굴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굴뚝 하나가, 이 집이 이 마을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巴"자형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아산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 비록 중간에 약간의 보수를 하였다고 하지만, 처음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중문을 넘어설 수 없어, 안채를 꼼꼼히 살필 수 없었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많은 고택을 보았지만, 그 중에서는 단연 '고래등'이라는 말이 적합한 표현일 듯하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큰 인물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 굴뚝 사랑채 뒤에 있는 안채로 통하는 일각문 담장에 붙은 굴뚝 [출처] : 하주성 전통가옥의 숨은 멋 엿보기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 고래등이 따로없네 - 오마이뉴스 고택의 멋과 격정의 근현대사를 함께 느끼다
제 2공화국 윤보선 대통령 생가가 있는 곳은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마을로 고산 윤선도의 후손인 해평윤씨의 집성촌이다. 윤보선 생가에서 주변으로는 윤일선가옥(충남민속자료 제12호), 윤승구가옥(충남민속자료 제15호), 윤제형가옥(충남민속자료 제13호) 등 고택들이 즐비하다. 이 집들도 19세기 중엽에 윤보선 생가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져 동네를 한바퀴 돌면 그 당시로 시간이 돌아간 듯하다.
윤보선 생가는 넓은 평지마을 한가운데 동남향으로 윤보선 전대통령의 부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건립하였고, 바깥사랑채는 건축 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1920년대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 196호로 지정되었다 ![]() ▲ 윤보선 생가 윤보선의 부친인 윤치소는 1911년 당시 조선상업은행 감사였고, 동양서원과 혁신점을 경영하면서 분원자기주식회사 감사를 지냈다 한다. 그는 1924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3년간 역임하였다. 윤치소의 6남 3녀 중 장남이 제2공화국 대통령에 오른 윤보선이며, 이곳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던 곳이다 ![]() 대문을 들어서면 다른 고택에 비해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이 집은 'ㄴ'자형 행랑채의 뒤쪽에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안사랑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행랑마당 오른쪽에 'ㄴ'자형 바깥사랑채가 자리 잡고 있어 전체적으로 파(巴)자형 평면구조를 하고 있다.
바깥사랑채에는 대문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안채는 원래 안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건넌방, 작은 부엌, 오른쪽에 웃방이 배치되고, 웃방 앞으로 샛방, 안방, 부엌이 튀어나와 있었는데 후대에 가로 칸의 6칸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윤보선은 정치가로서 험난한 길을 걸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붕괴된 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후보로 입후보하여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하지만 이듬해 박정희의 5.16 군사 정변으로 윤보선 대통령은 대통력 직에서 사임한다.
사임후 민정당을 창당하여 그해 대통령선거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박정희와 겨루었으나 실패하고, 제 6대 국회의원에 당선하였다. 현재 사랑채 안에 윤보선 기념전시관을 만들고 있다. 기념관 완공 후 윤보선 생가를 방문하면, 19세기에 고택의 멋을 느끼는 동시에 윤선 대통령을 통해 격정의 근현대 정치 시대상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된다
[출처] : 고택의 멋과 격정의 근현대사를 함께 느끼다 - 오마이뉴스
아시아건축연구실(Asian Tradition in Architecture; http://ata.hannam.ac.kr) [출처] [본문스크랩]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주택(한옥)|작성자 Tu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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