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동국통감(東國通鑑)>! 일본의 <동국통감(東國通鑑)>?

조선의 기록 문화재, 그 중 <동국통감(東國通鑑)>은 익숙한 이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동국통감>이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더욱이 일본에서 <동국통감>이 발견되었던 것뿐만 아니라 <동국통감>을 찍어내기 위한 목판 또한 발견되었기에, 과연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 궁금증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어째서 조선의 역사서로 알려진 <동국통감>이 일본에서 발견된 것일까요?
그리고 일본에서도 <동국통감>이 제작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선 <동국통감>에 대해서부터 자세히 알아볼까요?
<동국통감>은 1485년 성종 16년에 서거정 등이 왕명을 받아 편찬한 국사책입니다. <동국통감>은 본래 세조 때부터 편찬이 시작되었는데요. 세조는 '우리나라의 기존 역사서가 탈락이 많아 자세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국사의 체계가 서 있지 못하고, 편년체 통사가 없기 때문에 상고 이래의 통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중국의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준하는 사서를 만들고자 하여 <동국통감>의 편찬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조 4년인 1458년에 <동국통감> 편찬 사업이 시작되었으나 1467년에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고, 이듬해 9월에 세조가 죽게 되자 <동국통감> 편찬 사업은 완전히 중지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성종이 즉위하게 되었고, 성종이 재위 중이던 1483년 10월 서거정의 발의로 <동국통감> 편찬 작업이 다시 시작되어 1484년에 완성되었습니다.
<동국통감>은 편년체 사서로, 단군조선부터 삼한까지는 책머리에 '외기'로 다루고, 삼국의 건국부터 신라의 문무왕 9년인 669년까지의 역사는 '삼국기'로, 669년부터 고려 태조 18년인 935년까지는 '신라기', 935년부터 고려 말까지는 '고려기'로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삼국 이전을 외기로 분류한 이유는 해당 시기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체계적인 서술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라기를 따로 분류하여 해당 시기의 역사를 서술한 것은 신라통일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라통일을 부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국통감>에서는 실제로 신라를 정통으로 내세우거나 하지 않고 삼국을 대등하게 서술하였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조선 성종 대에 완성된 우리나라의 역사서인 <동국통감>은 일본에서도 발견이 되었으며, 일본에서 <동국통감>을 인쇄하기 위한 목판본까지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시금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요.
그렇다면 조선에서 처음 편찬된 <동국통감>은 어떤 이유에서 일본에서도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요?
<동국통감>이 일본으로 넘어가고 발간된 배경에는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일본이 조선에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후, 일본군은 조선의 <동국통감>을 자신들의 국가로 함께 가지고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 일본 에도 시대 지식인들은 조선의 <동국통감>이 앞으로 자국의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판단하여 <동국통감>을 가져갔을 뿐만 아니라, <동국통감>을 바탕으로 일본 자체적으로 목판본을 제작하여 <신동국통감(新東國通鑑)>이라는 이름의 책을 다시 제작하였습니다. 즉, 일본에서의 <신동국통감> 제작은 일본이 임진왜란의 패배 요인을 분석하고 향후 전쟁을 위한 군사학적인 관심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조선과 일본에서 제작된 <동국통감> 목판본을 비교해보면 그로부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두 목판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보이시나요?
조선에서 제작된 <동국통감> 목판본은 한 쪽면에 2면 씩 인쇄가 되도록 만들어졌지만, 일본의 <신동국통감> 목판본의 경우 목판의 한 쪽면에 4면 씩 인쇄되게 만들어졌다는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목판본의 형태는 조선시대 이전 고려시대 사찰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형태로, 이를 통해 한반도가 일본의 목판본 기술에 미친 영향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국통감>은 조선의 사서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나라의 가치 있는 문화재이지만, 더불어 조선과 일본 간의 문화적인 영향 관계 및 양국의 책판 제작에서의 영향 관계 또한 알 수 있게 해 주기에 더욱 의미 있는 역사적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동국통감>과 함께 조선시대의 책판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참고문헌>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http://e-kyujanggak.snu.ac.kr/home/main.do?siteCd=KYU).
정원식, "조선과 일본, 전쟁문헌 교류 불구 전쟁인식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3132122005&code=9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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