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명승 제60호>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 아름다운세상
대한민국 명승 제60호>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奉化 靑巖亭과 石泉溪谷)은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에 있는 명승이다. 2009년 12월 9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60호로 지정되었다. 거북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운 청암정(靑巖亭)과 마을 앞을 흐르는 석천계곡에 있는 석천정(石泉亭)은 유곡마을의 대표경관으로, 주변의 울창한 송림(松林), 계류(溪流), 아름다운 수석(水石) 등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뛰어난 명승지이다. 유곡(酉谷)마을은 1380년 충재 권벌의 선조가 처음 개척한 곳으로 마을모양이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지세라 닭실마을이라 부르게 된 곳으로 조선 중기의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이 지역을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경승지로 지적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역사문화 경승지이다. 선계를 보여주는 천하의 명당
이 계곡을 지나야만 천상의 새라고 하는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천하의 명당을 볼 수 있다. 석천계곡은 바로 이러한 이상향의 세계, 신선이 사는 선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장소다. 이 계곡은 통과의례가 이루어지는 마을의 문으로서, 닭실 마을의 대문과도 같은 곳이다. 정자 앞의 개울을 건너 다시 한 번 오른쪽으로 굽이진 협곡을 돌아서면, 닫혔던 시야가 확 넓어지면서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고 하는 ‘금계포란지국金鷄抱卵之局’의 명당을 보게 된다.
닭실마을은 오늘날 행정명칭으로 유곡리酉谷里다. 유곡酉谷은 닭실이란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그대로 옮긴 명칭으로, ‘금계포란金鷄抱卵’의 풍수형국으로부터 유래한 마을이름이다. 닭실마을은 동쪽의 옥적봉이 수탉을 담고, 서쪽의 백운령은 암탉을 닮았다고 한다. 오늘날 닭실마을은 봉화읍에서 울진방향으로 난 신작로인 36번 국도에서 마을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석천계곡을 지나는 길이 마을의 주 진입로였다. 이 길은 내성천의 지류를 따라 올라가는 길인데, 오늘날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길이다. 봉화읍에서 영동선 철길 아래로 흐르는 내성천을 따라 북쪽으로 200여 미터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내성천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여기서 우측의 개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야 석천계곡으로 향할 수 있다.
닭실은 전통한옥으로 마을이 구성되어 있어, 영남지방 반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마을이다. 안동 권 씨 세거지로써, 조선 중기의 지리학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에서 4대 길지 중 하나라고 칭송한 터전이다. 닭실 마을은 안동 권 씨 가문에서도 닭실 권 씨라는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었던 마을이고, 종가인 충재 권벌(權, 1478~1548)의 고택을 중심으로 다수의 한옥이 마을 전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반촌의 기품 어린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마을이다. 조선 중종 조의 문신으로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권벌은 기묘사화로 파직을 당하자 이곳에 집을 지어 닭실마을의 터를 닦았다.
자연을 품은 옛 사람들의 지혜
청암정靑巖亭은 권벌이 닭실마을에 종가를 지으면서 조성한 정자다. 1526년(중종 21)에 종택에 붙여 지은 정자로,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너럭바위 주변에 못을 파고 냇물을 끌어 들여 못물을 채워 놓았으며, 장대석을 걸쳐 놓아 좁고 긴 돌다리를 축조해 청암정에 다다를 수 있도록 조성해 놓았다. 청암정은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모습 그대로 살리면서 주춧돌과 기둥 길이를 조정하여 지은 집으로써, 주초의 높이가 각각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여 정자를 세운 옛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또한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청암정을 짓고, 암반 주위에 연못을 만든 정원조성수법은 매우 탁월한 조경기법이라 할 수 있다.
청암정이 놓여 있는 너럭바위는 물속에 든 거북으로 비유된다. 마치 물속에 거북이가 자리하고 있고, 그 위에 정자가 놓인 형상으로 풀이된다. 정자 한쪽에 마련된 방에는 온돌 구들이 아니고 마루가 깔려 있다. 청암정을 이 바위 위에 처음 지을 때, 이 방은 온돌방으로 꾸며졌으며, 바위 둘레에는 연못도 없었다고 한다. 집을 짓고 난 후 온돌방에 불을 지폈는데, 바위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괴이하게 느껴오던 차에 한 스님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스님은 이 바위를 가리켜 거북바위라고 했다. 정자의 방에다가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이 등에다 불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여, 아궁이를 막은 다음 주변의 흙을 파내고 물을 담았다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거북이에게 물을 주어 청암정을 등에 지고 있는 거북이가 살기 좋은 지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북바위에 지어진 청암정은 날아갈듯 날렵한 모습으로 바위 위에 가볍게 올라 앉아 있으며, 정자 내에는 ‘청암정’이라는 당호와 함께 ‘청암수석靑巖水石’이라고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전서체로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청암정과 함께 석천계곡은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석천계곡은 닭실마을 동쪽과 서쪽을 흐르는 창평천과 동막천이 마을 앞에서 합류하여 하나가 된 후에, 물이 빠지는 수구가 안 보이도록 감추듯이 돌아나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계곡이다. 수구가 열리지 않고 닫혀있어 마을의 상서로운 지기地氣가 유실되지 않고 응축되는 곳이므로, 닭실마을이 명당지세의 터전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수구를 감추고 있는 석천계곡에는 권벌의 맏아들인 권동보(權東輔, 1517~1591)가 지었다는 석천정사石泉精舍가 자리하고 있다. 권동보는 양재역벽서사건으로 아버지 권벌이 삭주로 귀양 가 1년 만에 사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20년간을 두문불출한 올곧은 선비다. 선조 때 아버지의 무죄가 밝혀지자 그는 복관되어 관직이 군수에 이르렀으나 벼슬을 사양하고 전원으로 돌아가 이 계곡 위에 석천정사石泉精舍를 지은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산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석천정사는 계곡의 암반 위에 석축을 쌓고 그 위에 팔작지붕의 한옥으로 지은 정자다. 정자 아래로는 맑은 계류가 흘러가고 정자의 뒤로는 창송으로 우거진 능선이 자리잡고 있어, 인공의 정자와 원생의 자연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석천정사는 정자의 난간에 기대면 그대로 계곡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천계곡의 모습 또한 빼어난 절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고정원의 가치
하지만 현재까지 한국에서 고정원의 명승 지정은 매우 미흡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일본에서 고정원이 명승으로 지정된 사례는 200건을 초과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명승은 360여 건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고정원은 일본 명승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으로써, 대단히 많은 고정원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10여 건 정도의 고정원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을 뿐이다. 아직도 다수의 고정원은 사적으로 지정된 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며, 국가지정 명승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승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고정원도 수없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 지정되지 못한 다수의 고정원을 발굴하여 조속히 명승으로 지정하고, 사적으로 남아 있는 고정원을 명승으로 다시 분류하는 것은 고정원의 보존과 효율적인 관리 및 활용을 위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명승 제60호 봉화 청암정과 석천계곡 전경 청암정은 거북형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온돌방을 만들었다. 방을 덥히고자 군불을 넣자 바위가 울었다. 지나가던 스님이 "거북의 등에 불을 피우니 뜨거워서 당연히 울 밖에"혀를 차자 이에 아궁이를 막고 주위를 파서 물을 넣었다고 한다. 바람의 화원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청암정 그동안 말랐던 청암정 주위로 물을 채우고 있었다. 만수위가 되면 더 좋은 그림에 될 터 인데 아직은 만수 위의 절반이다. 수돗꼭지에서는 계속해서 물이 흘러 나오건만 만수위 까지는 아직까지 요원해 보인다.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있듯이 불문곡직 찾아든 나그네에겐 그래도 이만하면 호박이 덩쿨째 굴러든 행운이다. 닭실마을은 풍수학적으로 볼때 금계포란형으로 닭이 알을 품고있는 형상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를 알아버린 일본은 민족정기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마을 앞으로 기찻길을 낸다. 미상불 증기기차는 지날 때마다 긴 기적을 울린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태교가 중요한 것, 결국 알을 품은 닭은 기차가 지날 때마다 꽥꽥거리는 긴 기적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 결국 이로 인해 천하의 명당이 그저 평범한 땅으로 변해 더 이상 걸출한 인물이 배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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