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과학기술 관련 주요 업적
도량형 정비
도량형은 이미 고구려 시대부터 한 기준을 세워 사물을 측정하는 것이 생겨났으며, 고구려의 도성인 평양은 여러 가지 측정기구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계획 도시였다. 그러나, 나라가 혼란할 때마다 도량형은 무질서해졌다. 세종대왕은 박연 등에 명하여 길이, 부피, 무게를 측정하는 도량형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세종대왕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가지 척(자)과 되와 말, 저울, 황종율관 등은 도량형의 발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시각 측정 도구
물시계 |
세종대왕 때에는 앙부일구, 지평일구, 자격루, 옥루 등을 포함하여 10여 가지의 시계가 발명되었다. 백성들이 시각을 알 수 있도록 앙부일구를 만들어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에 설치하였다. 자동 시보 장치가 붙은 물시계가 발명되었으며, 그 기술은 기계 장치의 발명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참조: "장영실 선현의 발자취 찾아서", 과학문화교육연구소, 2004)
독자적인 천문학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천문을 추정하여 계산하는 일이란 전심 전력해야만 그 이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계산된 일식과 월식의 시각과 분수(分數)가 비록 측정한 숫자와 맞지 않더라도 서운관으로 하여금 모두 기록하게 하여 뒷날에 대비토록 하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 나라 독자적인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고대 수리 계산법에서 부족한 부분을 정확하게 정리하여 "칠정산내편"을 만들었으며, 아라비아의 천문 계산법을 검토한 후 "칠정산외편"을 만들었다. 또, 천문 기상의 관측, 역서의 제작, 풍수지리에 관한 일을 서운관에서 맡게 하였다. (참조: "이순지 선현의 발자취 찾아서", 과학문화교육연구소, 2004)
기상 측정 기구
측우기와 수표 |
기상 측정 기구들을 만들었다 측우기는 원시적으로 강우량을 측정하던 방법을 개선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기구이다. 측우기는 1441년에 발명되었으며, 수백년 동안 각 고을의 관리는 우리 나라의 각 지방에 내린 비의 양을 측정하여 기록해 두었다. 그 외에도 바람의 방향과 속력을 재는 풍기대, 계절의 변화와 24절기를 알려주는 규표 등이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농지 개발
태종 대왕 시대에는 주로 수리시설을 보완하는 정도였다. 세종대왕 시대에 이르자, 우리 나라 각지에서 농사를 잘 짓는 방법을 찾아 가장 오래된 농사 책인 "농사직설"을 펴내고 이를 전국에 알렸다. 농사를 지어 거두어드린 곡식의 양은 조선시대 중 세종대왕 시대에 가장 많았다.
금속활자의 발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기술을 발전시켰다 활자를 이용한 인쇄는 평평한 나무판 위에 글자를 새기는 목판인쇄보다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활자 인쇄 중에서도 금속 활자의 발명은 이미 12세기 고려시대에 이루어졌으나, 조선시대 태종과 세종의 명에 의하여 금속 활자로 인쇄하는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많은 서적을 편찬하는데 사용되었다. (참조: "이천 선현의 발자취 찾아서", 과학문화교육연구소, 2004)
우리나라 글 훈민정음
훈민정음 |
사람의 입 모양과 소리가 나는 원리를 이용하여 자음을 만들고, 동양 철학의 뜻을 담은 모음을 만들어 새롭게 글을 창제하였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수년 동안 연구하여 훈민정음을 만들고, 3년 동안 검사한 후, 1446년에 신하들 앞에서 반포하였다. 그 당시 백성은 거의 모두가 농사에 종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종대왕 때 만든 "농사직설"을 읽을 수 있게 하려면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이 필요했다. 예로 "농사직설"에는 농민들이 사용하는 농기구를 훈민정음으로 기록하여 농민 모두가 농기구 이름을 쓰고, 말할 수 있게 하였다. (참조: "세종대왕(世宗大王)의 발자취 찾아서", 과학문화교육연구소, 2004)
인재의 등용과 집단 활동
세종대왕 시대에는 정인지, 정초, 이순지 등의 많은 학자들이 세종대왕의 명에 의하여 서운관에서 천체를 관측하고, 옛날 천문 서적을 연구하였다. 또, 자격루를 만들었던 이천과 장영실도 한때 서운관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서운관은 2곳이 있었는데 하나는 경복궁 안에 다른 하나는 궁의 밖에 있었다. 궁 밖에 세워져 있던 관천대는 높이 3.46m, 넓이 2.42㎡로 그 위에서 해시계를 놓고 시간을 재기도 하였다. 당시에 만들어졌던 관천대가 서울 가회동(지하철 3호선 안국역 주변)에 보존되어 있다.
집현전은 세종대왕 시대 과학기술 발전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 두뇌집단이었다. 집현전 학사들 중에서 세종대 과학기술사에 이름을 남긴 학자들은 적지 않다. 강희맹, 강희안, 권채, 김담, 김돈, 김빈, 김수온, 노사신, 박서생, 서거정, 성임, 신숙주, 신석조, 신장, 양성지, 유성원, 유효통, 윤회, 이순지, 이예, 정인지 등이 핵심 인물들이다. 그들은 집현전을 거친 학사들 99명 중 2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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