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커피에 세상이 담겼다
11만7000t.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커피의 양이다. 성인 1명이 한 해 동안 312잔을 마시는 것으로 금액으로 치면 4억2000만달러에 이른다.
2010년 커피 원두의 국제거래액은 165억달러로 전 세계적으로 연간 6000억잔의 커피가 소비된다. 우리나라 커피시장 규모만 2조7000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하고 마시는 커피지만 단순히 음료의 의미를 넘어 커피가 문명과 근대화의 역사, 경제 흐름, 사회상의 변화 등을 압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근영 수석연구원은 4일 ‘커피 한잔에 담긴 사회경제상’ 보고서에서 커피에 얽힌 상식을 통해 커피가 지닌 사회적·경제적 의미를 분석했다.

4일 서울 정동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근대의 원동력 된 ‘이성’의 음료
커피는 8~9세기경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된 이후 중동(11~12세기), 유럽(17세기)을 거쳐 아메리카, 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됐다. 술을 마실 수 없는 이슬람교도들이 술 대신 마셨기 때문에 ‘이슬람의 와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는 에티오피아의 ‘염소지기 소년 칼디설(說)’과 예멘의 ‘오마르 전설’ 등이 있다. 칼디설은 염소지기였던 칼디가 자신이 돌보던 염소떼가 커피 열매를 먹고 흥분한 것을 보고 커피의 각성 효과를 발견, 음료로 마시는 방법을 고안했다는 설이다. 오마르설은 예멘의 모카 지역 사막에서 굶주림에 처한 오마르가 신의 계시에 따라 커피나무 열매를 먹고 원기를 회복한 후 전파됐다는 설이다.
이렇게 전파된 커피는 17~18세기 계몽주의가 확산되던 유럽에 보급되면서 ‘이성의 시대’를 상징하는 음료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인은 오염되기 쉬운 물 대신 도수가 낮은 맥주나 와인을 마셨다. 그런데 커피는 알코올음료와 달리 지적 활동을 자극하는 각성 효과를 지녀 귀족, 성직자는 물론 작가, 과학자 등 ‘지식인’ 계층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커피의 인기에 힘입어 1650년 옥스퍼드대학 내에서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생겼고, 1652년에는 당시 경제와 상업의 중심이던 영국 런던에서도 커피하우스가 생겨나면서 이후 30여년 만에 3000여곳으로 증가했다. 커피하우스는 출입과 정보 교환에 폐쇄적이던 귀족 중심의 클럽과는 달리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다. 이 커피하우스는 평등한 소통의 장이자 과학과 상업적 혁신의 발원지가 됐다.
당시 커피하우스에는 최신 잡지와 출판물이 비치돼 있었다. 뉴스와 고급 정보가 유통되면서 다양한 주제의 토론과 사업 거래가 이뤄지는 장소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 가격이면 누구나 대학교육 수준의 지식 습득과 교류가 가능하다고 해서 ‘페니(동전) 대학(Penny University)’으로 불리기도 했다. 더 나아가 과학자와 기업가, 투자자를 이어주는 초기 투자자본(벤처캐피털) 기능이 생겨났고 때로는 증권거래소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의 재보험사인 영국 로이드사의 탄생도 1688년 에드워드 로이드가 런던에 연 ‘로이드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됐다.
■ 원두 가격, 금보다 빠른 상승

커피 생산량에 비해 소비량이 급증한 것이 원인이다. 2000년 158만t에 불과했던 커피 소비량은 2010년 795만t으로 급증하면서 10년 사이 400% 이상 증가했다. 고급 원두 수요가 많지 않았던 브라질이나 차 문화가 지배적이던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에서 커피 소비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수요 증가 배경이다. 신흥국의 경제성장 속도와 최근의 커피 소비 패턴으로 볼 때 향후 커피시장의 잠재 성장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 커피시장도 최근 몇 년 새 급성장했다. 커피 원두 수입량이 최근 4년간 27% 증가했고, 2006년 말 1500여개에 불과했던 커피전문점 매장 수는 2010년 말 9400개로 6배 이상 증가했다. 독특한 것은 국내 커피시장의 성장이 불황을 기회로 삼아 더 빨리 성장했다는 점이다.
고정 소비자층을 지닌 커피의 소비 특성(수요)과 불황기 창업 수요에 힘입은 커피전문점의 공격적인 확장 전략이 맞물린 결과다. 불황기에는 기호식품을 줄이려는 경향이 일반적이지만 커피는 습관적 소비 성향이 강하다. 또 자기 위안형 소비재라는 특성도 있어 소비에 관대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자기 위안형 소비재란 불황기에 마음껏 소비를 할 수 없는 데 대한 보상심리로 자신을 위한 작은 소비가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 감성적·실용적 체험을 제공
이 같은 커피 열풍의 이면에는 커피를 단순한 음료에서 ‘체험의 매개체’로 보는 인식 변화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커피가격이 비싸다고 불평하면서도 수요가 줄지 않는 것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 이상의 효용을 느끼거나 마땅한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소비자가 커피에 부여하는 가치는 감성적·실용적 체험에서 얻는 효용에 기반을 두며 커피전문점이 바로 이를 충족시켜주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한때 이런 감성적 가치가 ‘파노플리 효과(개인이 소비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통해 특정 집단에 소속된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효과)’ 등으로 대표되는 과시욕의 충족 수단으로 해석되면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코피스족(Coffe+Office, 커피전문점을 사무실로 삼아 업무를 보는 사람), 카페맘(Caffe+Mom, 자녀를 학교나 학원에 보낸 후 카페에서 교육 정보를 교환하는 학부모), 카페브러리족(Caffe+Library, 카페를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사람) 등의 신조어가 상징하듯 다양한 연령과 성별 계층이 각자의 욕구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커피전문점을 이용하고 있다. 또 최근 커피전문점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감성적 효용이 과거에 비해 희석되는 반면, 실용적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 패턴도 증가하고 있다. 일례로 획일화된 대형 브랜드 커피전문점과 달리 매장에서 직접 커피를 볶아 신선하고 개성 있는 풍미로 승부하는 로스터리 카페가 증가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자신만을 위한 전문점 수준의 커피를 맛보고 싶다는 욕구가 확산되면서 홈카페 시장(가정에서 직접 커피음료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커피머신 등의 도구를 공급하는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커피는 각성 효과를 지닌 음료에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 체험을 제공하는 문화상품 등으로 끊임없이 변신해왔다”면서 “역사적, 시대적 환경 변화와 고객 요구에 맞춰 지속적으로 사업 기회를 창출해온 커피 산업의 혁신은 타 산업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근대 유럽에서 ‘커피하우스’가 단순히 음료를 파는 곳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 아이디어 교류의 장으로 기능해왔듯이 조직 내에서도 부담 없이 공유하면서 자유로운 소통과 지적인 자극을 가능하게 하는 커피와 같은 매개체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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