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종 10년 계유(1873, 동치12) 강영규

도심안 2010. 12. 12. 21:12

 고종 10년 계유(1873, 동치12)
  12월 12일(병술) 눈
좌목
 박우현에 대해 실정을 캐낼 것을 청하는 전 장령 강영규의 상소
○ 전 장령 강영규(姜永奎)가 상소하기를,
“난신적자(亂臣賊子)가 예로부터 어찌 한정이 있겠습니까만, 어찌 박우현(朴遇賢)이 군부(君父)를 이처럼 패악하게 무욕(誣辱)한 것처럼 한 자가 있겠습니까. 특별히 목숨만은 용서하여 준다는 명이 비록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에서 나왔습니다만, 인도(人道)를 부식(扶植)하는 것은 강상(綱常)이며, 국세(國勢)를 유지하는 것은 법입니다. 그가 비록 이나 서캐 같은 하찮은 무리지만 감히 이처럼 패악한 말로 우리 임금을 헤아릴 수 없는 지경으로 무고한단 말입니까. 이를 만약 주벌하지 않는다면 인도를 장차 어떻게 부식하며, 국세를 장차 어떻게 유지하겠습니까.
그의 흉소(凶疏) 가운데, ‘효상(爻象)이 조화를 잃고, 떠도는 소문들이 마땅함에 어긋나서 장탄식을 하고, 귀엣말을 하고 눈짓으로 말을 한다.’라고 하였으니, 아, 통분합니다. 조화를 잃고 마땅함에 어긋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일이며, 장탄식을 하고 귀엣말을 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말입니까? 또 ‘잠시 조금이라도 효성이 미진(未盡)하면 비록 백 가지 일이 다 선(善)하더라도 치도(治道)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하였고, 또 ‘다스림은 혹 화락(和樂)한 기상이 있지만 아직도 천하 후세에 비난하는 의논을 면치 못한다.’라고 하였으니, 아, 통분합니다. 미진한 것이 과연 무슨 일이며, 비난하는 의논이란 과연 무슨 의논입니까? 꾸짖고 욕하는 말이 이에 이르러서 곧장 돌아보지 않은 죄를 범하였으며, 흉역(凶逆)의 마음이 이에 이르러서 남김없이 다 드러났습니다. 끝에 가서는 몇 가지 흐리멍덩한 말로 마치 시폐(時弊)를 아뢰는 것처럼 하여 자취를 혼란시킬 계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전 화재의 경계를 또 억지로 끌어다가 말의 단서를 만들어 은연중 공동(恐動)하는 뜻을 삼았으니, 아, 통분합니다. 그가 획책하고 도모한 것이 교묘하고 또한 참혹합니다.
지금 전하의 조정에서 북면(北面)하고 섬기는 자라면 그 누군들 잡아 죽이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흉악한 소가 나온 지 이미 하루가 지났는데도 조정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어 특별히 목숨을 살려 주라는 명이 갑자기 예사롭지 않게 나왔는데, 후설(喉舌)의 신하가 예사로이 반포하였습니다. 신이 이에 너무도 놀랍고 한탄스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이 적을 토벌하지 않으면 임금이 당한 무함을 설욕하지 못하게 되는 데 어찌하겠으며, 이 적(賊)을 죽이지 않으면 국시(國是)가 정해지지 않는 데 어찌하겠습니까. 신은 외딴 곳에 칩거(蟄居)하고 있어서 이제서야 그 흉악한 소를 보고 머리털이 곤두서고 담이 떨렸습니다. 이에 감히 우러러 호소하니, 삼가 박우현에 대해 빨리 의금부로 하여금 국청을 설치해서 실정을 캐내도록 하여 나라의 법을 바로잡으소서. 재결을 바랍니다.”
하니, 답하기를,
“상소를 보고 잘 알았다. 박우현의 일은 상소의 말이 극히 흉패함을 모르는 바 아니나 짐작하는 바가 있는데다가 또 자교(慈敎)를 받들었기 때문에 우선은 특별히 목숨을 용서한 것이다. 그대의 말이 이와 같이 간절하고 곧으니, 공의(公議)가 울적해 함을 알 수 있겠다. 죄가 있으면 반드시 복법(伏法)되어야 하는 것으로 자연 나라의 법이 있으니, 어찌 처분하는 날이 없겠는가.”
하였다.